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51
1451회. 그럼 공평하게 갑시다
티탄족 전사의 이능에 대해 말하려던 베리스는 문득 모쿠바스의 군주를 보았다.
‘그런데 이놈은 어떻게 살아 나왔지?’
대폭발을 뚫고 나왔다고 하기에는 전반적으로 상태가 너무 좋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궁금했지만 차마 묻지 못했다.
괜히 대폭발을 거론해 그의 비위를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다.
“과거 군주 중에 하나가 손상된 불멸의 사다리를 습득한 적이 있다. 불멸의 사다리에서 티탄족 마도구를 얻은 그는 타메이온의 절반을 통치했다. 그때 처음으로 불멸의 사다리가 마족들에게 알려졌지. 봉인이 해제된 불멸의 사다리에서 환영을 본 군주는 있지만……. 소리를 들었다는 말은 없었다.”
베리스가 말을 끊고 모쿠바스의 군주를 힐끔 보았다.
그러자 엘리오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래서 티탄족 전사의 이능이 무슨 소리냐고.”
“군주들은 불멸의 사다리가 티탄족 전사를 강화시키기 위한 장치라 생각한다. 불멸의 사다리마다 가지고 있는 마도구가 달랐는데…… 어제 오니스토스 신전에 있던 것은…… 에테르눔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
순간 엘리오는 티탄족 전사의 이능이 뭘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가 생각에 잠기자 베리스는 서둘러 설명을 이어 갔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불멸의 사다리 표면에 상처를 냈을 때……. 그것이 곧바로 회복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에테르눔이 뭔데?”
“왕국의 아르테늄과 비슷한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엑시티움까지 방어한다는 그 아르테늄?”
“그렇다. 물론 에테르눔을 아르테늄 따위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차이가 크다고?”
“아르테늄의 경우 같은 자리에 충격을 두세 번 받으면 파괴된다. 하지만 에테르눔은 파괴되지 않고 오히려 빠르게 재생 되기까지 한다. 파괴되지 않는 에테르눔을 피부에 두르고 있다 생각해 보아라.”
“오, 괜찮네.”
“괜찮은 정도가 아니다. 그걸 두른 티탄족 전사들이 전장을 휩쓸고 다녔으니까. 그런데 불멸의 사다리에서 무슨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냐?”
“몰라도 돼.”
“…….”
또다시 대놓고 무시당한 베리스는 입술을 악물었다.
‘죽여 버릴까?’
지금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손을 쓰면, 상대가 알아차리기 전에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엘리오가 비웃듯 말했다.
“쫄았냐?”
순간 베리스는 머릿속에서 뭔가 툭 하고 끊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베리스의 두 손이 마치 박수치듯 모쿠바스 군주의 몸통을 때렸다.
그러나 손바닥이 엘리오의 몸에 닿기 직전, 엘리오는 이형환위의 신법으로 사라졌다.
쩌억―!
두 손바닥이 마주침과 동시에 베리스의 어깨 위로 엘리오가 나타났다.
당황한 베리스는 반사적으로 손을 돌려 모쿠바스의 군주를 잡아 갔다.
때맞춰 공허의 검이 번득였다.
베리스의 손을 자른 공허의 검이 연이어 베리스의 목을 베었다.
베리스의 피부는 바위처럼 단단했지만 공허의 검을 튕겨 내지는 못했다.
순식간에 사람 몸통보다 큰 손바닥이 반으로 갈라지고, 목의 절반이 잘렸다.
뒤늦게 이성을 되찾은 베리스가 멀쩡한 손으로 잘린 목 부위를 잡으며 소리쳤다.
“살려다오!”
“너 같으면 그러겠냐?”
냉랭하게 받아친 엘리오가 허공으로 도약하며 공허의 검을 내리그었다.
세 가닥 오라 블레이드가 베리스 위로 떨어져 내렸다.
베리스는 마법으로 제 목을 치료하면서 동시에 실드를 전개했다.
그러나 정신이 분산된 탓에 실드의 위력은 형편없었고, 오라 블레이드에 무기력하게 박살 났다.
콰드드드―!
실드를 파괴한 오라 블레이드가 베리스의 머리와 양쪽 어깨에 떨어졌다.
콰직! 콰직! 콰직―!
조각난 베리스의 몸이 설원 위로 무너졌다.
베리스가 손뼉을 치고 삼 등분이 되기까지 한 호흡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군주인 베리스가 처참하게 죽자 마족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기다렸다는 듯 서부군의 사격이 시작됐다.
퍼퍼퍼펑―! 퍼엉―!
타나토스 특유의 파란 빛줄기가 마족 진영에 쏟아졌다.
타나토스를 모두 사용한 총병들은 멈추지 않고 마력총을 쏘아 댔다.
타나토스로 기선을 제압한 뒤 일반 마력탄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북부 왕국 연합군의 최신 전술이었다.
타나토스에 부상당한 마족들이 픽픽 쓰러졌다.
일반 마력탄에도 치명상을 입는 마물의 피해는 더욱 컸다.
서부군의 일방적인 공격은 더 이상 움직이는 마족이 보이지 않게 되어서야 끝났다.
마족 군단을 피해 없이 괴멸시킨 서부군은 승리의 환호를 내질렀다.
“와아아!”
“서부군이 또 해냈다!”
북부 왕국 연합군에서 서부군의 전과가 가장 뛰어났다.
부대의 사기도 가장 높았다.
마족과의 전투에서 전사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으니 당연하다.
전투를 마친 서부군은 알레크스 국경 마을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강행군으로 지친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타나토스의 보급을 위해서다.
마물은 일반 마력탄으로 충분하지만, 마족을 상대로는 타나토스가 필수인 까닭이다.
일선 부대에 타나토스를 보급하는 곳은 에스카토스 왕국군이 속한 3군 사령부 군수처였다.
군수처는 열흘 간격으로 타나토스를 보급했는데, 오늘이 그날이었다.
다섯 시간 정도 지나자 하늘이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 변했다.
백야의 밤이 시작된 것이다.
막사에서 쉬고 있는 엘리오에게 참모장 오스카 아비드 자작이 찾아왔다.
“사령관님.”
“무슨 일이야?”
“3군 사령부에서 보급이 오지 않았습니다.”
“오늘이 십 일째 되는 날 맞지?”
“맞습니다.”
“타나토스 수량은?”
“총병들에게 하나씩 보급하고 100개 정도가 남았습니다. 총사들에게 추가로 지급하면…… 없습니다.”
“딱 한 번의 전투밖에 못 치른다는 거네?”
“그렇습니다.”
“3군 사령부에서는 별말 없고?”
머뭇거리던 아비드 참모장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게…… 제가 들은 이야기가 좀 있습니다.”
“뭔데?”
“라미노프와 아발론 왕국에서 에스카토스 왕국을 견제하는 모양입니다.”
“견제?”
엘리오가 이해하기 어려운 얼굴로 참모장을 보았다.
동부 지역에서 에스카토스 왕국이 최전방, 라미노프와 아발론 왕국에서 좌우를 맡고 있었다.
최전방에서 마족 군단을 정리해 주면 감사해도 모자를 판에 웬 견제란 말인가?
“우리 에스카토스 왕국군의 전과(戰果)가 뛰어나지 않습니까? 같은 지역에 배치된 라미노프와 아발론 왕국에서 반발이 좀 있었던 모양입니다.”
“무슨 반발?”
“3군 사령부가 타나토스를 에스카토스 왕국에 집중적으로 밀어 줘서 그렇게 됐다고요.”
“그게 무슨 개소리야? 우리가 그들보다 많이 싸워서 그렇게 된 거잖아.”
“과정을 들여다보면 사령관님 말씀이 맞습니다. 타나토스의 보급 숫자만 가지고 해괴한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겁니다.”
“그런 병신 같은 짓거리 때문에 타나토스의 보급이 늦어진다고?”
“3년 전 라미노프 왕국과 아발론 왕국이 왕실 간 혼인으로 손을 잡았습니다. 라미노프 왕국의 발언권도 자연히 강화되었고요. 라미노프 왕국은 우리 에스카토스 왕국과 지난 수백 년간 전쟁을 한 나라입니다. 에스카토스 왕국이 잘나가는 게 보기 싫었을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북부 왕국의 존망이 걸린 일에 그런단 말이야?”
“에스카토스 왕국이 북부의 중심으로 떠오르면…… 자기들에게 불리해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뭐, 실제로도 그렇게 되겠지만요.”
에스카토스 왕국의 귀족인 아비드 자작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안 돼. 타나토스가 없으면 전사자 수가 엄청나게 늘어날 거야.”
전쟁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다.
자신이 마족 군주와 싸울 동안 서부군은 마족과 마물을 상대해야 한다.
타나토스로 마족의 기선을 제압하지 않는다면, 마족의 반격에 엄청난 희생이 따를 터였다.
“3군 사령부는 라미노프 왕국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아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마족 군단에게 영토를 빼앗기고도, 병신 같은 정치질에 놀아난다고?”
“오늘 3군 사령부의 보급 부대가 오지 않은 걸 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3군 사령부에 보급을 독촉해야지요.”
“그 정도로는 부족하지. 에스카토스 공작 각하께 전해. 서부군은 타나토스의 보급이 재개될 때까지 여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다고.”
“그렇게 되면 에스카토스 왕국군 전체가 멈춰 설 겁니다.”
“잘됐네. 기다리기 싫으면 라미노프나 아발론 왕국 중에 하나더러 선봉을 맡으라고 해. 그들에게 타나토스를 팍팍 쓸 기회를 주자고.”
“사령관님. 그건 좀 극단적인 처방인 것 같습니다.”
“극단적인 건 최전방에서 싸우는 부대에게 타나토스의 보급을 끊는 거야. 그건 죽으라는 소리잖아? 타나토스가 없다면 모를까? 있는데 안 주는 건 에스카토스 병사들 목숨을 하찮게 여긴 거라고. 썅놈의 새끼들. 생각할수록 화가 나네. 가서 공작님께 내 말 그대로 전해.”
“……예.”
아비드 참모장은 사령관이 펄펄 뛰자 군례를 올리고 물러났다.
역시나 참모장의 예측대로 에스카토스 왕국군은 진격을 중단했다.
다음 날.
좌우편 후방에 있던 라미노프 왕국군과 아발론 왕국군이 에스카토스 왕국군 근방까지 전진했다.
그러나 기다려도 에스카토스 왕국군이 움직이지 않자 화가 난 라미노프 왕국군 사령관은 3군 사령부에 참모를 보내 항의했다.
사태가 그 지경에 이르자 3군 사령부에서는 동부 지대의 사령관들을 3군 사령부로 불러들였다.
***
알레크스 국경 지대.
3군 사령부.
3군 사령관은 프리치아 왕국의 키릴 보우바 공작이다.
프리치아 왕국은 지정학적으로 에스카토스, 라미노프, 아발론 왕국과 멀었다.
약소국인 프리치아 왕국에서 3군 사령관이 나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약소국이었기에 라미노프 왕국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세 왕국의 대표가 모이자 3군 사령관 보우바 공작이 말문을 열었다.
“오늘 긴급하게 여러분을 모신 것은 타나토스의 보급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입니다.”
순간 라미노프 왕국 국왕 라미노프 3세가 딴지를 걸었다.
“보우바 공작, 타나토스의 보급을 정상화시키자는 것이 어째서 문제인가?”
그러자 에스카토스 공작이 점잖게 한마디 했다.
“국왕 전하, 3군 사령부의 공식 회의 자리니 직위로 부르는 게 좋겠습니다.”
이번에는 라미노프 왕국의 소드마스터인 이스크라 라미노프 공작이 반박에 나섰다.
“괜한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지 맙시다. 지금까지 에스카토스 왕국군에 지급된 타나토스의 양이, 라미노프와 아발론 왕국군에 지급된 것을 합친 숫자보다 많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소?”
“그야 우리 에스카토스 왕국군이 최전방에서 마족 군단과 전투를 벌이다 보니 그런 거 아니오?”
“…….”
라미노프 공작이 머뭇거리자 아발론 왕국의 제프 디마 공작이 끼어들었다.
“라미노프 왕국군과 아발론 왕국군이라고 해서 마족과 전투를 벌이지 않은 줄 아시오? 누가 들으면 에스카토스 왕국군만 마족과 전쟁을 하고 있는 줄 알겠소이다.”
2:1이라 그런지 말발에서 에스카토스 왕국이 밀렸다.
묵묵히 말싸움을 지켜보던 엘리오가 손바닥으로 탁자를 딱딱 두드렸다.
3군 사령부 회의실이 한순간 조용해졌다.
시선이 집중되자 엘리오가 말했다.
“공평한 거 좋아하는 모양인데, 그럼 공평하게 갑시다. 탈린 왕국을 수복하는 데 우리 에스카토스 왕국군이 선봉이었습니다. 마침 알레크스 왕국에 이제 막 들어섰으니까, 라미노프나 아발론 왕국군 중에서 선봉을 맡으세요. 이참에 왕국 하나를 수복할 때마다 선봉을 돌아가면서 맡기로 합시다. 그렇게 하면 타나토스의 분배도 공평해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