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79
679회. 너희가 신이 되리라
사벌주
세타레 성.
법요종 종산 바하르 산.
파티샤 궁.
“……백은 존자님은 법요종과 함께 구주의 종문을 지켜 내기를 희망하십니다. 하여 일곱 제군들을 이끌고 법요종의 종산으로 오고 계십니다.”
광염종의 사자 구르 노조는 상석에 앉은 페라르바 존자의 안색을 힐끔 살폈다.
호감인지 적의인지 표정만 봐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가 불안한 눈빛으로 머리를 굴릴 때, 페라르바 존자가 말했다.
“백은 존자가 광염종의 종산을 비우고 이곳으로 온다는 말이냐?”
“예.”
“피신은 아니고?”
“…….”
조롱하는 듯한 페라르바 존자의 말에 구르 노조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분위기가 싸해지자 알리키 제군이 끼어들었다.
“광염종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천지종에 합류한 종문들로 불안해하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혈주종이 어떻게 됐는지 알면서도 그런 소리가 나오는가? 숫자는 의미가 없음이야. 우샤스 칸샤사 군주님 한 분이 움직이면 천지종의 일곱 종문은 하루아침에 모래성처럼 허물어질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페라르바 존자께서 품어 주시면 그 은혜를 잊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 않은가?”
알리키 제군이 구르 노조에게 고개를 돌렸다.
상당히 굴욕적인 질문이지만 구르 노조는 감히 아니라고 답할 수 없었다.
“예, 그렇습니다.”
알리키 제군이 말을 이어 갔다.
“구주의 종문들이 천문(天門)을 손에 넣기 위해 전쟁까지 벌였습니다. 그 결과가 일곱 종문의 통합이지요. 이제는 우리 법요종도 그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피할 수 없다면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페라르바 존자께서 광염종을 받아들이시고, 연적하의 천지종을 격파하면, 자연히 ‘구주의 종사’가 되실 것입니다.”
“구주의 종사라…….”
페라르바 존자는 그 말을 음미하듯 나직이 중얼거렸다.
법요종이 연적하를 상대로 승리하면 그들 일곱 종문은 법요종의 아래로 올 것이다.
단 한 번의 싸움으로 ‘구주의 종사’가 될 기회였다.
제멋대로 구는 광염종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차피 거둬야 할 대상이라면 못 할 것도 없다.
“일리가 있는 말이야. 광염종과 손을 잡도록 하지. 광염종의 사자는 들어라.”
“예.”
“백은 존자에게 그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나의 뜻을 전하거라.”
“예, 그리고 아뢰옵기 황송하온데, 백은 존자께서 이번 일에 우샤스 킨샤사 군주님이 나서 주시는 게 맞는지 확인하라 하셨습니다.”
“그야 이를 말인가. 일곱 종문의 힘을 법요종 혼자서 감당하리라 생각했나?”
“알겠습니다. 그리 전하겠습니다.”
구르 노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사실 우샤스 킨샤사 군주가 없는 법요종은 아무것도 아니다.
백은 존자와 제군들도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꽤나 기뻐할 게다.
***
사벌주.
장비에 성.
아데 살테나 항.
정오 무렵.
무량하에 접한 항구 도시 아데 살테나가 갑작스럽게 출현한 대부대로 북적거렸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그들은 광염종의 고수들이었다.
그 숫자가 무려 일천칠백여 명.
아데 살테나 항에 있던 일반인들은 숨소리도 크게 내지 않고 태풍이 지나가기를 기원했다.
숙박업소 미향(微香)의 호르델.
귀빈 전용 접객실.
구르 노조가 백은 존자와 일곱 명의 제군들 앞에 공손히 서서 결과를 보고했다.
“백은 존자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일에 우샤스 킨샤사 군주님이 나서 주시는 게 맞느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습니다.”
백은 존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랬군. 수고했다. 가서 쉬어라.”
“예.”
구르 노조는 백은 존자에게 인사를 올린 뒤 조용히 접객실을 빠져나갔다.
백은 존자가 편안한 얼굴로 의자 등받이에 비스듬히 등을 기대었다.
“우샤스 킨샤사 군주가 나선다니 연적하도 끝났군.”
그때 화린 제군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그런데 존자님.”
백은 존자가 말하라는 듯 화린 제군을 보았다.
“연적하가 혈주종에서 보인 신위는 인간의 경지를 벗어난 게 아닙니까?”
“그래서? 설마 우샤스 킨샤사 군주가 연적하에게 패하기라도 할까 봐 그러느냐?”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이 벌어지면…….”
“천지가 개벽을 해도 그럴 일은 없다. 날고 기어 봐야 연적하는 인간이다. 하지만 우샤스 킨샤사 군주는 신이 아니더냐. 인간이 신을 이길 것 같으냐?”
“하지만 어느 인간이 홀로 종문 하나를 멸할 수 있습니까?”
“연적하가 독보적인 경지라는 것은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는 인간이다. 지금까지 인간이 신과 싸워 이긴 예는 없다.”
“그렇게 말하면 구주 역사상 종문의 성물이 일시에 파괴된 적도 없습니다.”
“어허! 어디 성물을 연적하에 비하느냐? 그렇게 간이 작아서야 원.”
백은 존자가 ‘쯧쯧!’ 하고 혀를 찼다.
화린 제군은 그런 백은 존자의 태도에 그냥 입을 다물었다.
이미 쏘아진 화살이고, 엎질러진 물이다.
이제는 정말 우샤스 킨샤사 군주가 연적하를 죽여 주기만 바라야 했다.
***
사흘 후.
세타레 성.
법요종 종산 바하르 산.
일천칠백이 넘는 광염종 고수들이 마침내 법요종의 종산에 도착했다.
법요종 종사 페라르바 존자는 법요종 고수들을 이끌고 나와 대대적인 환영 행사를 열었다.
법요종에서는 광염종을 위해 종산의 동쪽 봉우리 하나를 통째로 내어 줬다.
동쪽 봉우리에 있던 법요종 고수들이 이곳저곳으로 흩어졌지만 누구 하나 불만을 말하는 이가 없었다.
종문의 사활이 걸린 위기인 만큼 어느 정도 피해를 감수한 것이다.
파티샤 궁.
술시 정(오후 8시) 무렵, 마침내 법요종과 광염종의 존자와 제군 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칠 대 이의 불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회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법요종의 후견인이라 할 수 있는 우샤스 킨샤사 군주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쌍방 간의 소개와 인사가 끝난 직후, 페라르바 존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험, 광염종 여러분, 먼 길 오느라 수고들 하셨소. 지금 구주가 망둥이 한 마리 때문에 소란스럽지만, 너무 염려하지 마시오. 우리에게 우샤스 킨샤사 군주님이라는 든든한 후원자가 계시니까. 다들 우샤스 킨샤사 군주님에 대한 믿음으로 이 자리까지 오셨을 게요.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들께, 구주의 아홉 군주 중의 한 분이시며, 미혹을 밝혀 주는 영원한 지혜의 신이자, 법요종의 영원한 후원자이신 우샤스 킨샤사 군주님을 소개해 드릴까 하오.”
갑작스러운 그의 발언에 파티샤 궁은 고요해졌다.
지금 이 자리에 우샤스 킨샤사 군주가 참석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까닭이다.
페라르바 존자만 알고 있었던지 법요종의 제군들도 놀란 얼굴이었다.
잠시 후 페라르바 존자가 비어 있는 단상을 향해 허리를 깊숙이 수그리며 말했다.
“우샤스 킨샤사 군주님.”
순간 단상이 광채로 뒤덮였다.
이윽고 빛이 걷히자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존재가 단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우샤스 킨샤사 군주였다.
그 신비로운 등장에 광염종은 물론 법요종의 고수들도 숨을 멈추었다.
우샤스 킨샤사 군주가 페라르바 존자를 향해 가볍게 손을 들어 보였다.
그제야 페라르바 존자는 접었던 허리를 세웠다.
페라르바 존자는 종사의 신분이건만 허리를 숙인 것에 대해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신에게 선택받은 걸 자랑이라도 하듯 턱을 치켜세웠다.
“군주님, 간악한 연적하가 혈주종의 고수들을 참살하고, 그 기세를 몰아 광염종으로 향했습니다. 이에 광염종의 백은 존자가 군주님의 가호를 바라고 이곳으로 왔습니다.”
말끝에 그는 백은 존자에게 눈짓을 보냈다.
먼저 인사를 올리라는 뜻이다.
백은 존자는 군주와의 갑작스러운 대면식에 놀랐지만 급히 허리를 조아렸다.
“광염종의 종사 백은 존자입니다.”
무덤덤한 눈으로 백은 존자를 굽어보던 우샤스 킨샤사가 입을 열었다.
“백은 존자. 너는 신이 되고 싶으냐? 아니면 ‘구주의 종사’가 되고 싶으냐?”
“…….”
일순 백은 존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신’과 ‘구주의 종사’ 모두 지금의 그에게는 꽤나 과분한 목표였다.
연적하에게 쫓겨 법요종까지 피신 온 주제에 무슨 ‘신’이며 ‘구주의 종사’란 말인가.
그런 그의 마음을 짐작한 우샤스 킨샤사가 피식 웃었다.
“신이 될 기회가 앞에 있는데. 싫은가 보군.”
그 말에 백은 존자는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지혜의 신인 우샤스 킨샤사가 그 방법을 알려 주려는 것일까?
“신이 될 기회라고 하셨습니까?”
“왜? 그럴 마음이 있느냐?”
“예, 되고 싶습니다. 종문의 제자치고 신이 되고 싶지 않은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몸이 후끈 달아오른 백은 존자는 한마디 한마디 힘주어 말했다.
장내에 묘한 긴장이 감돌았다.
백은 존자는 물론 페라르바 존자와 양 종문의 제군들까지 우샤스 킨샤사의 입만 보았다.
우샤스 킨샤사 군주는 백은 존자의 애를 태운 뒤에 우아하게 돌아섰다.
“너희 모두에게 신이 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마. 그 첫 번째 방법은 천문(天門)을 여는 것이다.”
한껏 기대하고 있던 법요종과 광염종 고수들의 어깨가 푹 꺼졌다.
풀 죽은 인간들을 감상하던 우샤스 킨샤사 군주가 계속해서 말했다.
“두 번째 방법은 그보다 쉽다.”
순간 백은 존자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천문이 아니고도 정말 신좌에 오를 수가 있습니까?”
“있느니라. 아무렴 지혜의 신이라 불리는 내가 거짓을 말하겠느냐?”
순간 백은 존자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하고 넘어갔다.
천문을 열지 않고도 신이 될 수 있다니?
그건 종문 역사에 없는 소리지만 의심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거짓이라도 좋으니 그게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백은 존자는 숨소리도 내지 않고 우샤스 킨샤사 군주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스스로 대종사라 칭하는 연적하의 영기를 취해라. 그리하면 너희가 신이 되리라.”
“…….”
한순간 장내에 침묵이 감돌았다.
고작 연적하의 영기를 취하는 것만으로도 신이 될 수 있다니?
수천 년에서 일만 년 가까이 수련한 그들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소리였다.
우샤스 킨샤사 군주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 데도 믿는 페라르바 존자조차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끝내 불경을 무릅쓰고 페라르바 존자가 되물었다.
“정말 연적하의 영기를 취하면 신이 될 수 있습니까?”
“그러하다. 그의 영기는 창조신의 생령(生靈)이니 그것을 취하는 자, 신이 되리라.”
“연적하에게 어찌하여 창조신의 생령이 있는 것입니까?”
“본디 아홉 종문의 성물에는 창조신의 생령이 깃들어 있다. 소요종의 성물이 파괴되기 전에 연적하가 그것을 취하였을 것이다.”
성물이 파괴되고 난 뒤에 취한 것이지만 우샤스 킨샤사 군주도 그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우샤스 킨샤사 군주의 말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단지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연적하를 적대시하던 백은 존자와 페라르바 존자의 눈이, 이제는 거대한 탐욕으로 불타올랐다.
연적하의 영기를 빼앗아 신이 되겠다!
욕망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른 그들을 우샤스 킨샤사 군주가 부추기듯 말했다.
“연적하는 창조신의 생령을 취하고도 신좌에 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인간의 한계에 도달한 너희는 다르다. 신이 되고자 하는 자, 연적하의 영기를 취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