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32
131화. 학생회장과 망나니 (2)객잔 앞.
팔뚝과 어깨에 시뻘건 호랑이 문신을 한 사내들 대여섯이 흉흉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하. 이 새끼들이 간덩이가 부었나. 뭐? 상납금을 못 내겠다고?”
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대머리 거한이 목을 좌우로 꺾었다. 그의 앞에는 남루한 차림의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못 내는 것이 아니라, 다음 달까지만 시일을 미뤄 주시면…….”
“나으리! 저희 애가 아픈데 약값도 못 내고 있어요.”
“사, 살려 주십시오!”
애원하는 사람들의 얼굴과 몸에는 이미 폭행의 흔적들이 보였다.
대머리 거한은 자신의 반질반질한 머리를 벅벅 긁으며 짜증 가득한 한숨을 쉬었다.
“너희가 이 동네에서 마음 편하게 장사하는 게 다 누구 덕분이냐? 우리 적호방에서 편의를 봐주니까 감히 다른 놈들이 안 꼬이는 거 아니야? 내 말이 틀려?”
“마, 맞습니다.”
“알지요……. 잘 알지요…….”
거한의 험악한 인상 앞에 사람들은 고개를 조아렸지만, 속으로는 울화가 치밀어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니들이 편의를 봐줬다고?’
‘정작 필요할 땐 보이지도 않는 놈들이!’
‘네놈들이 가져가는 돈이 버는 것의 절반이 넘어!’
보호비라는 명목으로 적호방에서 돈을 가져가면, 상인들의 수중에 남은 돈은 하루를 겨우 버틸 정도였다.
그 탓에 안 그래도 형편이 어려운데, 최근 적호방은 보호비를 올리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빈민가의 사정은 날로 악화되고, 악순환이 계속되는 이유였다.
“안다니까 다행이네. 난 또 모르는 줄 알았지. 우리가 밤낮으로 순찰을 돌면서 치안을 지키니까 이 동네가 그나마 살 만한 거야.”
“…….”
“…….”
상납을 하지 못해 본보기로 잡혀 온 상인들은 고개를 푹 숙였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모른 척 고개를 돌리고 빠르게 걸었다.
거한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얼마 전에 포두 새끼한테 찌른 놈이 있더라고. 누군지 몰라서 안 잡는 거 아니야. 한 번만 더 걸리면 토막 내서 개밥으로 줄 거니까 그렇게 알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협박에 상인들이 바들바들 떨었다. 거한과 그의 부하들은 상인들이 공포에 질린 모습을 보며 히죽거렸다.
“밀린 상납금은 내일까지 내라.”
“내, 내일까지는 도저히…….”
“어떻게든 갖고 와. 부모를 팔든 자식새끼를 팔든 마련하라고. 뒤지기 싫으면.”
그때였다.
모여 있던 상인들 중 한 사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거한에게 삿대질을 했다.
“씨발놈들아! 나는 더 이상 못 내겠다! 죽이려면 죽여!”
그러더니 냅다 몸을 돌려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거한이 옆에 있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저 새끼 잡아 와.”
“잡아!”
적호방의 똘마니들이 도망치는 사내를 잡기 위해 뛰었다.
사내는 얼마 도망가지 못해 붙잡혔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폭행을 당했다.
“끄악, 끄아아악! 이런 죽일 놈들!”
사내는 맞으면서도 저항했다. 상인들을 눈을 돌렸다. 거한과 그 부하들은 킥킥 웃었다. 사내를 때리는 자들은 일부러 그를 놓아주고 쫓아가면서 계속 때렸다.
콰지직!
누군가의 발차기에 얻어맞은 사내가 낡은 객잔의 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갔다.
벙어리 노파가 운영하는 객잔이었다.
“다들 잘 봐둬. 적호방에 반항한 새끼가 어떻게 되는지.”
거한이 무릎을 꿇고 있는 상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상인들은 두려움에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 새끼 이리 데려오고, 내 칼 가져와.”
모두 앞에서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거한은 사람들이 많이 보는 곳에서 사내의 팔을 자를 생각이었다.
부하 두 명이 객잔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한 거한은 남아 있는 상인들을 죽 둘러보며 히죽 웃었다.
“아까 그 새끼 끌고 나오면 손모가지를 자르고, 그다음엔…….”
퍼억! 퍼억! 퍼버버벅!
그때, 객잔 안에서 타격음이 들려오자 거한은 말하다 말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부하들이 사내를 데리고 나오기 전에 때리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새끼들아! 적당히 하고 데려와! 그러다 뒈지면…….”
“뒈지진 않았으니까 걱정하지 마. 선생님이 뒈지기 직전까지만 패랬거든.”
“음?”
낯선 목소리에 거한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잠시 후, 객잔 안에서 피투성이가 된 그의 부하들이 기절한 채로 굴러 나왔다.
“미친…….”
거한의 시선은 부하들을 지나, 객잔에서 걸어 나오는 웬 어린놈을 바라봤다.
“저건 또 뭐 하는 새끼야?”
사나운 인상에 체격도 상당히 건장했다.
게다가 피부가 찌릿해질 정도로 매서운 살기라니…….
거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웅방 놈인가? 못 보던 얼굴인데…….”
“어이 대머리. 앞으로는 자주 보게 될 거다.”
‘대머리’라는 말에 거한의 표정이 굳었다.
그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적호방주의 제자 중 하나인 거한에게 대머리라고 놀릴 수 있는 사람은 적호방 내에서도 거의 없었다.
눈에 살기를 띤 거한이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데려와. 반 죽여서.”
거한의 부하들이 우르르 앞으로 나서자, 헌원강은 픽 웃더니 도를 들어 올렸다.
“데리러 안 와도 내가 갈 거야.”
그 순간 헌원강의 신형이 벼락처럼 쏘아졌다. 순식간에 적호방 무리 속으로 파고든 그가 도를 휘둘렀다.
퍼억! 퍼억! 퍼버버벅!
헌원강은 도를 뽑지 않았다.
이곳에 오기 전에 들은 백수룡의 충고 때문이었다.
-싸움이 벌어져도 웬만하면 상대를 죽이지는 마라. 관아에 처넣는 쪽이 뒤처리하기가 쉬워.
-그럼 팔다리는 잘라도 돼요?
헌원강의 대꾸에 백수룡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니들이 치울 거 아니면 하지 마. 뼈마디만 잘게 부수고 적당히 끝내. 평생 병신으로 살게 만들면 충분하지 않겠냐?
-죽이는 것보다 그게 더 나쁜 것 같은데…….
스승의 충고를 떠올리며, 헌원강은 도갑의 넓은 면으로 적호방 패거리를 먼지 나게 두들겨 팼다.
“선생님 덕분에 안 뒈진 줄 알아!”
빠악! 빠바바박!
인정사정없는 매타작에 당하는 자들은 물론이고 대머리 거한의 표정까지 창백하게 질렸다.
“이, 이런 미친…….”
대머리 거한은 그제야, 상대가 무림의 고수라는 것을 깨달았다.
적호방주에게 고작 일 년 정도 무공을 배운 자신은 절대 못 이길 상대라는 것을 말이다.
‘도, 도망쳐야…….’
거한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려는 순간, 헌원강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거기 얌전히 서 있어라. 도망치다 잡히면 두 배로 처맞는다.”
“…….”
헌원강은 거한이 독 안에 든 쥐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서 여유를 부렸다.
무림 경험이 일천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빌어먹을 놈이! 누구한테 명령질이야!”
거한은 품에서 주먹만 한 검은 구슬을 꺼내 바닥에 던졌다.
퍼어엉!
구체가 폭발하며 매캐한 연기가 터져 나왔다.
연기가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시야를 가렸다.
하지만 연기 속에서 헌원강은 코웃음을 쳤다.
“어디서 개수작이야. 이딴 걸로 내가 기척을 놓칠 것 같아?”
헌원강이 연기 속으로 숨으려는 거한을 쫓아가려는 찰나, 헌원강을 뒤따라 나온 독고준이 뒤에서 소리쳤다.
“멈춰라, 원강! 독탄이다! 모두 숨을 멈추십시오!”
독고준은 그렇게 외치고 자신은 오히려 연기 속으로 뛰어들었다.
연기 주변에 있던 상인들, 기절한 적호방 패거리들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순식간에 경공을 펼친 독고준은 사람들을 연기 밖으로 빼냈다. 헌원강도 거한을 추격하는 것을 멈추고 그를 도왔다.
“헌원강. 너는 괜찮나?”
“콜록! 콜록! 좀 매운 거 빼면 괜찮아.”
내공을 익힌 둘에겐 거의 영향이 없을 정도로 조잡한 독이었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었다.
“콜록, 콜록!”
“도, 도와줘…….”
“눈이 따가워! 물, 물 좀…….”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헌원강과 독고준의 표정이 굳었다.
“다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저희가 내공으로 독을 몰아내 드리겠습니다. 가부좌를 틀고 앉으십시오!”
두 사람은 독을 들이마신 사람들에게 내공을 주입해 독을 몰아내도록 도왔다.
다행히 저급한 독이라 죽거나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모두 치료하고 나니 거의 한 시진 가까이 지나 있었다.
그 사이 독탄을 터트린 거한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 새끼가…….”
헌원강은 놓친 거한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그 사이 독고준은 겨우 정신을 차린 상인들에게 물었다.
“다들 괜찮으십니까?”
내심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줄 알았는데, 상인들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우린 이제 다 죽었어…….”
“분명히 우리한테 보복하러 올 텐데.”
“젠장. 저 사람들은 왜 일을 크게 만들어서…….”
심지어 헌원강과 독고준을 원망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기까지 했다.
두 사람은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헌원강이 표정을 험악하게 굳히며 물었다.
“뭔데? 위험에 처해있는 걸 우리가 기껏…….”
“도와줬다고요?”
한 중년의 여인이 체념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들은 대단한 무공을 뽐내고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저놈들은 내일 또 올 거예요. 당신들한테 당한 걸 우리에게 분풀이를 하겠죠. 그땐 당신들은 여기 없을 테고요.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하죠?”
“아니, 그렇다고 저런 짓을 하는 놈들을 그냥 내버려 둬?”
그 말에 여인이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나도 놈들이 죽이고 싶도록 미워요. 하지만 어차피 다 없애지 못할 거라면 그냥 내버려 두는 게 나아요. 결국엔 우리만 더 힘들어지니까.”
“…….”
헌원강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중년 여인은 처연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고맙지 않다는 건 아니에요. 소협. 구해 줘서 정말 고마워요.”
“어, 음……. 끄응.”
헌원강이 난감함에 머리를 긁적이는 가운데, 독고준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앞으로 저희가 매일 이곳에 오겠습니다. 적호방이 여러분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계속 순찰을 할 계획입니다.”
그 말에, 여인은 독고준에게 착하고 순진한 청년이라며 웃었다.
“놈들이 당장 오늘 밤에라도 우리 집에 불을 지르러 오면요? 밤새도록 지켜보고 있을 건가요?”
“그건…….”
독고준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침묵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세가와 학관에서 무공만 익혀 온 소년은 배우지 못했다.
독고준이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거 쫑알쫑알 불만도 많네.”
조용히 듣고만 있던 헌원강이 자신의 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리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적호방이 어딘데?”
“……예?”
“나도 찝찝한 건 싫거든. 보복이 두렵다며? 그럼 보복 안 당하도록 해 주면 될 거 아냐.”
그 태연한 말에 상인들과 독고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헌원강이 적호방의 위치를 묻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을 테니까.
“……설마 적호방에 쳐들어가겠다는 거야?”
헌원강은 대답 대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독고준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백수룡 선생님이 했던 말 기억 안 나? 적호방과 정면충돌은 피하라고…….”
“흐흐. 내가 말을 그렇게 잘 들었으면 그동안 망나니 소리를 들었겠냐? 아줌마! 적호방이 어디냐니까?”
헌원강은 진심으로 적호방에 쳐들어갈 생각인 모양이었다.
여인이 머뭇거리며 적호방이 있는 방향을 가르쳐 주자, 헌원강은 망설임 없이 그쪽으로 몸을 틀었다.
“……잠깐.”
그 순간, 독고준의 검이 헌원강의 앞을 가로막았다.
헌원강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나직이 말했다.
“이거 안 치워?”
“보내 줄 수 없다.”
그 순간 헌원강의 몸에서 맹렬한 투기가 끓어올랐다. 그가 독고준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럼 그놈들이 돌아와서 저 사람들한테 보복하도록 내버려 두자고?”
“아니.”
독고준은 공포에 질린 상인들을 둘러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끼어들지 않았으면 모르되, 자신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게 할 수는 없었다.
“나한테 다른 방법이 있다.”
“……다른 방법?”
헌원강의 기세가 수그러들자, 독고준이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일단 적호방 근처로 간다. 하지만 안으로 쳐들어가지는 않는다.”
“그럼 어쩌자고?”
“유격전. 놈들을 끌어내서 하나씩 팔다리를 끊어내는 전술을 쓴다.”
독고준이 눈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가문에서 무공과 학문, 여러 병법서도 읽으며 자란 반듯한 소년.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헌원강과는 생각하는 방식이 달랐다.
하지만 느낀 감정은 같았다.
“헌원강. 너만 불의를 보면 못 참는 무인이라고 생각하지 마. 나 역시 적호방 놈들이 한 짓을 용서할 수 없어.”
지금껏 평온하던 독고준의 목소리에 뜨거운 감정이 실리고 있었다.
“어……. 어어?”
오히려 당황한 것은 헌원강이었다.
‘이 범생이가 갑자기 왜 이래?’
정작 본인 때문이라는 생각은 못 하는 헌원강이었다.
그가 적호방 패거리와 싸우는 모습이, 독고준의 의협심과 경쟁심을 자극한 것이다.
그걸 모르는 헌원강은 독고준의 감정적인 변화에 소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저기? 독고? 우리 조금만 더 고민해 볼까? 선생님한테 서찰이라도 하나 남기고…….”
“어림도 없는 소리! 선생님이 허락할 리가 없어. 그러니 우리끼리 강행한다.”
학생회장이란 놈이 그래도 되는 거냐고!
헌원강은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독고준은 그럴 틈조차 주지 않았다.
시간을 확인한 독고준이 씩 웃었다.
“마침 한 시진이 지났군.”
“뭐?”
독고준의 입가에 맺힌 웃음이 더 짙어졌다. 그가 놀리듯 말했다.
“이제부터 한 시진 동안은 내가 대장이다. 그러니 잔말 말고 따라와.”
“어? 야!”
독고준은 헌원강의 대답도 듣지 않고 몸을 돌려 휘적휘적 걸어가기 시작했다.
“……에라 모르겠다. 같이 가!”
헌원강은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독고준을 뒤쫓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