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19
218화. 밑천을 다 드러내야 할 것이다만박자는 백수룡이 알려 준 일곱 번째 구절을 확인하며 손을 바르르 떨었다.
“이, 이걸 어떻게…….”
귀신이라도 본 듯한 만박자의 반응에, 백수룡은 난감한 기색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다 알면서 일부러 여섯 개만 말한 줄 알았더니, 아니었어?’
충격받은 만박자의 얼굴을 보니, 일곱 번째 주화입마 구절은 정말 그도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백수룡은 만박자에게 다소 실망했다.
‘그것도 놓쳤으면서 무슨 천하제일이야?’
하지만 놀란 것은 만박자뿐만이 아니었다.
창천검왕과 조교들, 다른 신입 강사들도 모두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백수룡은 겸손하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운으로 만박자도 못 찾은 것을 찾아냈다는 말인가? 허허. 납득하기 어렵군.”
창천검왕은 묘한 표정으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호기심을 넘어 무언가를 의심하는 듯한 날카로운 눈빛.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하면, 추궁이라도 당할 분위기였다.
다행히 백수룡은 적당한 변명을 미리 떠올려 놓았다.
“예전에 무림맹의 의뢰로 마공을 조사한 바 있습니다. 그때 쫓았던 마공의 흔적과 흡사한 부분이 있어서 쉽게 풀 수 있었습니다.”
악연호가 손을 들고 그 사실을 증언했다.
“저도 그때 함께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청룡학관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고리대금업자였던 허 노인이 마공에 당해 사망한 사건을 무림맹의 의뢰로 함께 수사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넌 왜 그것밖에 못 풀었어?”
명일오가 아직 반도 읽지 못한 악연호의 비급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묻자, 악연호가 입 모양으로 ‘닥쳐요.’라고 말했다.
백수룡이 덧붙여 말했다.
“그때 수사를 위해 마공에 대해 조사한 것이 이번 시험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청룡학관에선 제 담당 과목이 ‘사파 무공의 이해’이기도 하고요.”
“흐음. 그런가…….”
백수룡이 준비한 변명이 어느 정도 먹힌 모양이었다.
아직 의문이 다 풀린 것은 아니었으나, 창천검왕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해도 대단하군. 만박자. 그렇지 않소?”
“흠흠. 사실 나는 대충 한 번만 읽고 풀었다. 꼼꼼히 보았다면 충분히 알 수 있었는데, 그때 일이 많아서 마지막 부분을 놓친 모양이군.”
뒤늦게 정신을 차린 만박자가 주절주절 떠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구차한 변명처럼 들렸지만, 다들 아무 말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이 조금 붉어진 만박자가 백수룡에게 말했다.
“어쨌든 만점이다. 포상으로 다음 이론 교육 때, 내게 두 번 질문할 수 있는 권한을 주겠다.”
백수룡은 속으로 ‘포상이면 돈이나 영약으로 주지.’라고 투덜거렸지만, 겉으로는 포권을 취하며 겸손을 떨었다.
연수에서 치고받는 것은 타 학관 강사들과 할 일이지, 자신을 평가할 창천검왕과 만박자, 그리고 조교들 앞에서는 평판을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
“감사합니다.”
가증스럽게 바라보는 동기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백수룡은 얼굴 가득 가식적인 미소를 지었다.
만박자가 뚱한 표정으로 물었다.
“다 풀었으니 어쩌겠느냐? 오후 실기 교육 시간까지는 네 마음대로 해도 된다.”
“자리에 돌아가서 기다려도 되겠습니까?”
“마음대로 해라. 행여나 전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답을 알려 주려고 했다간 경을 치를 줄만 알고.”
“그럴 리가요.”
백수룡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갈! 여유가 넘치는 걸 보니 다들 문제가 쉽나 보구나!”
신입 강사들은 오만 가지 표정으로 백수룡을 바라보다가, 만박자가 호통을 치자 다시 비급 풀이에 집중했다.
다들 비급에 얼굴을 박고 끙끙거릴 때, 백수룡은 혼자 느긋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를 악물고 비급을 해석하는 사마영이 보였고, 비급에 거의 코를 박고 있는 제갈소영의 모습도 보였다.
악연호와 명일오도 나름 열심히 풀고 있었다. 곽두용은 식은땀을 흘리며 쩔쩔매고 있었다.
동기들을 둘러본 백수룡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설마 혈교의 마공을 시험 문제로 낼 줄이야.’
운이 좋았던 것은 사실이다.
혈교 교관 출신에게 혈교 무공을 해석하라고 던져 줬으니 말이다.
사실 해석과 첨삭에 일 각도 안 걸렸지만, 일부러 반 시진이나 기다렸다가 제출했다.
그렇게 첫 시험부터 가뿐하게 실력을 보여 줬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만박자가 어떻게 혈교 무공을 알고 있는 거지?’
만박자가 천하에 모르는 무공이 없을 정도로 박식하다고는 하지만, 오십 년 전 멸망한 혈교의 마공까지 알고 있다는 것은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직접 물어볼 수도 없고…….’
만박자가 이 무공의 출처가 혈교인 걸 먼저 밝히지 않았으니, 이쪽에서 먼저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듣기로는, 만박자는 남궁세가의 식객으로 꽤 오래 머물고 있다고 했다.
그럼 남궁세가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인데…….
그 순간, 백수룡의 머릿속에 한동안 잊고 있던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조막생!’
남궁수가 올해 청룡학관에 입학시키려 했던 소년.
공손수와의 비무에서 패배했으나, 결과를 납득하지 못하고 공손수를 해치려 했고, 결국 위지천에게 팔이 잘려 쫓겨났던 녀석.
알고 보니 아주 어려서 강제로 탈혼대법이라는 극악한 사술로 뇌에 마공을 이식받아, 자기도 모르는 새 마공을 익히고 있었다.
-몰라! 정말 모른다고! 혈교라니! 애초에 난 고아야……. 커헉! 무공은, 고아원에서, 그 후에는 남궁세가에서 배웠어…….
조막생은 남궁세가에서 후원하는 고아원에서 자랐고, 그곳에서 무공의 기초를 배워 결국 남궁수의 눈에 들었다고 했다.
백수룡의 미간이 가늘게 좁혀졌다.
‘그때는 남궁수를 의심했지만, 남궁수는 혈교와는 아무 상관도 없어. 그건 확신할 수 있다.’
백수룡은 자신의 사람 보는 눈을 믿었다.
적어도 남궁수는 혈교와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하지만…….
백수룡은 고개를 들어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남궁세가의 풍경을 바라봤다.
‘남궁세가 전체로 본다면? 세가의 수뇌부는 혈교와 아무 상관도 없을까?’
백수룡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창천검왕을 향했다.
지금의 남궁세가를 오대세가 중 하나에서, 독보적인 천하제일세가로 일으켜 세운 인물.
공교롭게도 그 순간, 창천검왕도 고개를 돌려 백수룡을 보았다.
“…….”
“…….”
두 사람의 눈빛이 부딪치며 묘한 분위기가 만들어졌을 때였다.
“다 풀었습니다!”
“저도 다 풀었어요!”
그들의 시야 사이에서 두 사람이 동시에 벌떡 일어나 시야를 가렸다.
사마영과 제갈소영이었다.
둘은 잠시 눈을 마주쳤지만, 후배인 제갈소영이 먼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리 가져오너라.”
잠시 후, 두 사람의 답안을 확인한 만박자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올해 신입들은 제법이군. 둘 다 합격이다.”
“……감사합니다.”
백수룡에 이어 두 번째로 합격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마영의 표정은 못마땅한 듯 구겨졌다.
만박자는 그녀에게 합격이라고만 했지, 백수룡처럼 만점이라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스르륵.
현무학관에서 유일하게 연수에 참가한 음침한 인상의 여인도 자리에서 일어나 답을 제출했다.
그녀 역시 합격이었다.
한 시진도 되지 않아 세 명이 연달아 합격했다. 그 이후로는 합격자가 나오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올해 기수 녀석들은…… 끄응……. 제법이군…….”
만박자가 못마땅한 신음을 흘리는 가운데, 창천검왕은 그 모습이 우스운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오늘 천하의 만박자가 망신을 당하는군!”
“망신은 무슨.”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백수룡은 팔짱을 끼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남궁세가라. 지켜보면 알 일이지.’
신입 강사 연수는 오늘을 제외해도 엿새나 남았다.
이곳에 혈교와 관련된 무언가가 있다면, 충분히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 * *
두 시진에 걸친 이론 시험이 끝났다.
기준 미달의 시험지를 제출한 강사들에게 만박자의 불호령이 떨어졌지만, 다행히 그들을 쫓아내지는 않았다.
“휴. 십년감수했네…….”
청룡학관에서는 유일하게 시험에서 떨어진 곽두용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흥. 내일 보자, 애송이들아.”
기분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기 힘든 표정으로 만박자가 시험지를 모두 걷어간 후, 창천검왕이 앞으로 나섰다.
“다들 고생했네.”
그는 진이 다 빠진 신입 강사들에게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점심을 먹은 후에 다시 모이도록 하지. 오후에는 실기 기초평가가 있을 테니, 점심을 든든히 먹어 두도록 하게.”
““예!””
힘차게 대답한 강사들이 학관별로 삼삼오오 모였다. 그들은 차라리 실기가 낫겠다느니, 오후에는 숨 좀 쉴 수 있겠다느니, 따위의 대화를 나눴다.
“휴우. 머리에 쥐 나는 줄 알았네.”
“오후에는 그래도 실기니까 좀 낫겠지.”
“몸을 좀 움직여야 할 것 같아.”
그 말이 심기를 거슬렸던 걸까. 창천검왕이 다시 말했다.
“잠깐. 정정하겠네. 다들 점심은 되도록 가볍게 먹는 게 좋겠군.”
“예?”
“어째서…….”
일부 눈치 빠른 신입 강사들이 불안한 표정을 짓는 가운데, 창천검왕이 허리춤의 검파를 툭툭 치며 말했다.
“다 토하게 될지도 모르니 말일세.”
“…….”
입을 함부로 놀린 신입 강사들의 표정이 핼쑥하게 변했다.
* * *
점심 식사 후, 가벼운 무복으로 갈아입은 신입 강사들이 대연무장에 다시 모였다.
학관별로 모여 정렬해 보니, 총 서른한 명이었다.
주작학관 열다섯.
백호학관 열.
청룡학관 다섯.
현무학관 하나.
각자의 학관을 상징하는 무복으로 갈아입은 강사들 앞에, 새하얀 무복을 차려입은 창천검왕이 가벼운 걸음으로 나타났다.
“다 모였군.”
창천검왕의 실제 나이는 팔십 세가 넘었다는데, 반로환동으로 인해 겉모습은 이십 대 중반의 청년으로 보였다.
천하제일에 가까운 고수의 가르침을 받을 생각에, 강사이기 이전에 한 명의 무인으로서 다들 가슴이 설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창천검왕이 강사들에게 처음 꺼낸 이야기는 무공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오대학관을 졸업한 무인들이, 최근에 어떤 비판을 받고 있는 줄 아나?”
뜬구름 잡는 질문이었지만, 곧바로 손 하나가 위로 올라왔다.
사마영이었다. 그녀가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이에 비해 무공은 고강하지만, 실전에서의 대처 능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창천검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오대학관을 졸업한 학생들의 절반은 대형 상단, 표국, 황궁 등에서 제 능력을 발휘하지. 헌데 그들 중 대부분이 제대로 된 실전을 겪지 못한 탓에, 정작 강호에 나가서 곤란을 겪는 경우가 있다네.”
“때문에, 주작학관은 올해부터 외부 실습 비중을 늘리기로 결정했습니다.”
“훌륭한 자세라고 생각하네. 허나.”
모범생다운 사마영의 대답에 창천검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어진 질문에는 그녀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보기엔, 그 실전이라 하는 것도 부실하기 짝이 없네. 기껏해야 뒷골목 파락호들과 싸우고, 산적들을 토벌하겠다며 나서는 것이 전부 아닌가?”
“그건…….”
사마영은 무언가 반박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그 전에 창천검왕이 말을 이었다.
“지금은 혈교와 같은 사파 세력이 준동하는 시기가 아니야. 무림은 평화롭고, 사파 세력들은 대부분 몸을 웅크리고 있지. 때문에 제대로 된 실전을 경험하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여기 있는 강사들 중에 강호행을 해 본 이가 몇이나 되겠나? 사람을 열 명 이상 베어 본 경험은?”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그러한 분위기가 아니었던 탓이다.
창천검왕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대로 된 실전을 겪어 본 강사들이 부족하니,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단 말이네.”
“제대로 된 실전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백호학관의 당백호가 손을 들고 물었다. 다소 반항적인 눈빛을 담아서였다.
창천검왕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예를 들면, 실전에서는 일대일 비무는 거의 일어나지 않네. 대부분이 난전이지. 항상 함정이 있는지 살펴야 하고, 독을 경계해야 하며, 등 뒤에서 언제 암기가 날아올지 모르는 것이 실전이네.”
“…….”
겉모습만 청년일 뿐, 창천검왕은 팔십 세의 노고수였다.
그리고 그는, 오십 년 전 혈교와의 전쟁에도 참여했을 만큼 많은 실전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길게 말했지만, 결국 실전을 겪어 봐야 실전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 내 말의 요지네. 그렇다고 서로 죽일 순 없는 노릇이니, 최대한 실전과 같은 환경을 만들었지.”
꿀꺽.
상황을 인지한 신입 강사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괴팍한 만박자의 이론 교육보다 차라리 실기가 나을 거라고 생각했던 이들은, 그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지금 깨닫고 있었다.
“한 번만 설명할 테니 잘들 들어라.”
창천검왕의 말투가 바뀌더니, 몸에서 서릿발 같은 기세가 뿜어졌다.
“오늘부터 이레 동안, 너희는 저기 천주산을 무대로 실전과 같은 교육을 받을 것이다.”
그는 검을 들어 연무장 뒤편으로 보이는 산을 가리켰다.
“여러 상황이 주어질 것이다. 너희들은 때론 산적이 되고, 표사가 되고, 살수가 되어 싸울 것이다.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료가 되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 살아남고 싶다면…… 그리해야 할 것이다.”
고오오오……!
절세고수가 내뿜는 가공할 기세에 주변의 공기가 무거워진 듯했다. 전신을 내리누르는 압박감에 강사들이 이를 악물었다.
“간단히 말하면 생존 교육이다. 나와 창천검대가 매일 너희를 죽이려 들 것이다. 너희는 살아남아라.”
“!!”
창천검왕의 형형한 안광이 한 명 한 명을 쏘아봤다.
“큭…….”
“허억…….”
안색이 창백해지고 무릎이 후들거리는 것은 예사였다. 다들 간신히 쓰러지지 않고 버틸 따름이었다.
“연수 기간 동안 가장 적게 죽는 강사에겐 가산점, 그리고 마땅한 포상이 있을 것이다.”
강사들 중 몇몇은 이를 악물고 창천검왕을 노려봤다.
창천검왕은 그들의 투기가 마음에 든다는 듯 씩 웃었다.
“쉽지 않을 것이야. 나도 제법 진심으로 임할 터.”
강사들을 죽 둘러본 창천검왕의 시선은, 마지막에 백수룡에게서 멈췄다.
“가진 밑천을 다 드러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