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97
497화. 이름을 대라
‘누구지?’
접근해 오는 무리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일정한 속도로 이곳을 향해 거리를 좁혀 오는데, 엄격하게 훈련된 조직이라는 느낌이었다.
낯선 기척들을 눈치챈 사람은 백수룡과 사호만이 아니었다. 곧 노군상도 표정을 굳히며 부관주 곽철우를 불렀다.
“내가 직접 확인해 볼 터이니, 부관주는 이곳에 남아서 통솔하게. 아무래도 그냥 지나가는 인파 같지는 않군.”
“예! 전부 중앙으로 모여라! 선생들은 주변을 경계하시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상황이 발생한 것을 눈치챈 강사들이 무기를 뽑아 들었고, 학생들은 놀란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뭐지?”
“산적인가?”
“지나가는 상단일 수도…….”
학생들은 그리 심각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길에서 상단이나 무인들을 만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었고, 설령 녹림이나 사파의 무인들과 마주친다 해도 청룡학관의 전력이라면 무서워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백수룡의 표정은 점점 굳어 가고 있었다.
‘단순히 저들의 숫자가 문제가 아니야.’
정체 모를 다수의 기척이 접근해 오는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저들을 선두에서 이끄는 인물의 기운이 백수룡이 만나 본 십존들에 못지않을 만큼 강렬하다는 것이었다.
“혹시…….”
백수룡이 표정을 굳히며 옆을 돌아보자 사호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는 뜻이었다. 그의 표정 또한 딱딱하게 굳어 있었는데, 옛 스승이 자신을 의심한다고 생각한 듯했다.
그러나 백수룡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널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저들이 내가 생각한 자들이라면, 네 입장이 불편할 테니 미리 묻는 것이다.”
“…….”
사호는 비로소 무슨 말인지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동시에 그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종적을 감췄다.
“이, 이형환위?”
“흔적도 못 찾겠어…….”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에요?”
백수룡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놀란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는 제자들에게 당부했다.
“다들 여기 있어라.”
사호와 마찬가지로 이형환위를 펼친 그의 신형은 어느새 노군상 옆에 내려서고 있었다.
높은 곳에 올라가 접근해 오는 무리를 지켜보고 있던 노군상이 옆을 돌아보지도 않고 물었다.
“지인과 이야기는 잘했나?”
“예.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허허. 배려하지 않았으면 나를 가만두지 않을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었다네.”
은근히 뼈가 있는 농담에 백수룡은 쓴웃음을 지었다. 경험 많은 노강호답게, 노군상은 사호가 범상치 않은 고수라는 사실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자세히 묻지는 않겠네. 이제 와서 그러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 다만, 학생들에게 위험한 일은 생기지 않도록 하게나.”
“물론입니다.”
단호하게 대답한 백수룡은 노군상과 같은 방향을 바라봤다.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접근하는 무인들이 보였다. 그는 강호 경험이 풍부한 노군상에게 물었다.
“저들의 정체를 아시겠습니까?”
“글쎄. 조금 더 가까워진다면 알 것도 같네만…….”
가늘게 좁혀졌던 노군상의 눈이 점점 커지더니, 이내 탄성을 터트렸다.
“허어!”
선두에서 한 마리 학처럼 뒷짐을 지고 우아하게 경공을 펼치는 노인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노군상의 표정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군. 우리와 같은 편일세.”
“……같은 편이요?”
“오십 년 전에는 그랬지. 분명 지금도 그럴 것이고.”
“오십 년 전이라면…… 어?”
그 순간, 백수룡도 아는 얼굴을 한 명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선명한 주홍색 무복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여인이었다. 남궁세가에서 만났을 때보다 머리가 조금 길어진 듯했지만, 자신감 넘치는 표정은 여전했다.
백수룡은 반가운 마음에 웃으며 말했다.
“주작학관이군요.”
“허허. 예나 지금이나 짓궂은 양반이야. 미리 연통도 안 하고 불쑥 찾아오다니. 자, 이제 내려가세나.”
껄껄 웃은 노군상이 산 아래로 내려가자, 백수룡도 그 뒤를 따라갔다. 노군상은 곽철우에게 적이 아니니 경계를 풀라고 지시했다.
“손님 맞을 준비나 하게.”
“……예? 손님이라면?”
“주작학관일세. 성미가 고약한 염왕이 직접 왔으니, 대접을 소홀히 했다간 자네가 꽤나 곤혹스러워질 게야.”
“……!”
잠시 후, 청룡학관과 주작학관의 관주가 만났다.
염왕을 마중하는 노군상이 낮게 한숨을 내쉬며 엄살을 부렸다.
“사마 형님. 연통도 없이 불쑥 찾아오시면 제가 얼마나 놀라는지 아십니까? 하필 주작학관의 주홍색 무복이 시뻘게서, 혈교의 무리인 줄 알았습니다.”
“군상이 네놈이 혈교를 무서워할 종자더냐? 혈교도가 질색하던 미친개가 엄살은.”
클클 웃으며 다가오는 염왕은 키가 훌쩍 크고 깡마른 노인이었다. 주작학관의 그 누구보다 선명하고 화려한 주홍빛 무복이 바람에 크게 펄럭였다.
노군상이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허허. 미친개라니요. 언제까지 고릿적 별명으로 부르실 겝니까?”
“한 번 미친개는 시간이 흘러도 미친개지. 주름 좀 생기고 허옇게 수염 좀 길렀다고, 내 앞에서 신선놀음이라도 하려는 게냐?”
“거참, 아이들도 듣는 데서…….”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친분을 나눈 사이인 듯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지만, 그들 주변의 강사들은 감히 그렇지 못했다.
“저분이 주작학관주야?”
“형님은 그 유명한 염왕도 모르십니까?”
잔뜩 긴장한 명일오가 침을 삼키며 백수룡에게 속삭이듯 알려 주었다.
“염왕(炎王) 사마량. 전대의 십존이자 극양무공을 익힌 무인들에겐 신처럼 떠받들어지는 절세고수라고요. 성격도 무공처럼 불같기로 유명하신데…….”
“음? 어느 놈이 내 욕을 하나? 아까부터 귀가 간지럽구나.”
“흡……!”
수십 년 전 무림의 은원을 전부 정리하고 은퇴한 염왕은, 이후 주작학관을 세워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염왕이 주작학관에 미치는 영향력은 관주 이상이었다.
대략적인 설명을 들은 백수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지금도 상당히 강해 보이네.”
“……상당히라고요?”
백수룡은 황당해하는 명일오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인 후, 염왕의 뒤에서 따라오는 주작학관 강사들을 바라봤다.
‘오랜만이에요.’
눈이 마주친 사마영이 입 모양만으로 그렇게 말하더니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 곁을 그림자처럼 지키는 소검동도 고개를 숙이며 포권을 취했다.
“오. 저기 남궁수네 형도 왔네.”
주작학관 일타강사로 알려진 남궁학의 모습도 보였는데, 그의 표정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백수룡과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슬쩍 피했다.
그러나 그 모습을 그냥 지나칠 백수룡이 아니었다. 남궁학에게 들으라는 듯, 옆에 있는 명일오에게 말했다.
“일오야. 방금 남궁세가 첫째가 날 못마땅하게 바라보지 않았냐? 내가 잘못 봤나?”
“저도 봤습니다. 은인 대접이 영 시원찮네요. 남궁세가에 서찰 한번 보내셔야 할 것 같은데요?”
쿵짝이 맞는 두 사람의 대화에 남궁학의 표정이 새하얗게 질리더니, 뒤늦게 가문의 은인을 향해서 포권을 취했다.
“쯧쯧. 저런 자를 일타강사라고……. 가문의 후광이 없었으면 주작학관에 입사하지도 못했을 놈이.”
작게 혀를 찬 염왕은 다시 노군상을 바라봤다.
오랜만에 만난 노군상은 예전처럼 허허롭게 웃고 있었지만, 염왕은 그의 기도가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
“……기연이라도 얻은 게냐?”
“허허. 그럴 리가요. 그저 내려놨을 뿐입니다. 사마 형님께서는 이 근처에 계셨던 겁니까?”
말해 주기 싫은 모양이로군. 염왕은 젊은이들처럼 검고 윤기 나는 수염을 쓸어내리며 대답했다.
“며칠 먼저 왔다. 근방에서 실전 감각을 닦아 주고 있었지. 우리 아이들이 무공은 쓸 만한데, 실전 경험이 영 일천해서 말이다.”
염왕의 말은 겸손에 불과했다.
주작학관 학생들의 기도는 하나같이 출중했다.
천무제에서 오 년 연속 준우승.
비록 천무학관에 가려져 있지만, 주작학관은 뛰어난 후기지수들을 끊임없이 배출하는 화수분이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노군상을 비롯한 청룡학관 강사들은 학생들이 전에 없이 긴장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흐음. 우리가 괜히 온 게냐? 불편하면 그냥 따로 가도 된다.”
“아닙니다. 여러모로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노군상은 분위기가 크게 다른 청룡학관과 주작학관의 학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염왕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장난기를 담은 어조로 말했다.
“하기야, 우리와 같은 일정을 공유하다니. 보고 배울 것이 많은 청룡학관이 백번 고마워해야…….”
“물론 서로에게 말이지요.”
“……허. 이놈 봐라?”
염왕은 노군상의 되바라진 대답에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 * *
청룡학관과 주작학관은 자연스럽게 동행하게 되었다.
두 학관은 악가의 분가에서 만나 일정의 상당 부분을 함께할 예정이었다. 수학여행 일정에는 두 학관의 교류 수업 등이 포함돼 있었다.
“자네가 청룡신협인가? 듣던 대로 대단한 미남이로군.”
“백수룡입니다. 주작학관주님을 뵙습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백수룡을 살피던 염왕이 수염을 쓸어내렸다.
“늦었지만 내 손녀를 구해 주어서 고맙네. 돌아와서 어찌나 자네 칭찬을 하던지,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었다니까.”
“할아버지!”
사마영이 당황해서 끼어들었지만, 아무리 그녀라도 염왕의 입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내 말이 틀렸더냐? 나는 네가 누굴 그렇게까지 칭찬하는 모습도 처음 보았다. 나중에는 연모라도 하는 줄 알았다니까? 직접 얼굴을 보니 그럴 만도 하다만…….”
“그런 거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드렸어요!”
“클클. 그거야 두고 보면 알 테지.”
짓궂게 웃은 염왕은 백수룡에게 노군상과 셋이서 따로 이야기를 나누자고 제안했다.
“예. 그러지요.”
전설적인 고수로 알려진 염왕이 백수룡에게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청룡학관의 동료 강사들과 학생들은 새삼스럽게 백수룡의 위치를 실감했다.
“……우리 선생님. 십존이었지.”
“가끔씩 잊는다니까.”
“평소에는 그냥 무공만 무지하게 센 동네 형 같은데.”
그런 청룡학관의 분위기를 읽은 염왕이 클클 웃으며 백수룡에게 말했다.
“동료들이나 학생들과도 꽤 사이가 좋아 보이는구나.”
“친하게 지내는 편입니다. 서로 도움도 많이 받고요.”
“마음에 든다.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것도, 그에 걸맞은 실력을 갖춘 것도. 나는 실력 없이 허세만 부리는 놈은 질색이다.”
“저도 비슷합니다.”
백수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세가에서 처음 사마영을 만났을 때도 느꼈던 부분이지만, 염왕 역시 그와 성향이 잘 맞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백수룡에게 하는 제안마저 똑같았다.
“혹시 이직할 생각은 없느냐?”
백수룡이 사마영의 제안을 떠올리며 웃음을 참느라 거절하지 못하고 있을 때, 노군상이 미간을 찌푸리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형님. 이러려고 먼저 찾아오신 겁니까?”
“농담이다, 농담. 군상이 네놈 눈빛을 보니 미친개 시절처럼 물어뜯겠구나?”
“오십 년 전에나 그랬지, 지금은 사람은 안 뭅니다.”
“지금은, 이라고요……?”
백수룡이 관주님의 충격적인 과거사에 입을 벌리고 그를 바라볼 때였다.
“솔직히 수준이 안 맞잖습니까.”
감정적으로 날이 잔뜩 선, 아직 학생일 게 분명한 앳된 목소리였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같은 방향으로 향했다.
준수하게 생긴 소년이 화를 참는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저렇게 놀러 온 것 같은 사람들과 함께 수업받는 게, 저희한테 무슨 이득이 있습니까? 십 년 연속 꼴찌. 운 좋게 무림십존을 스승으로 만났다고 해 봤자, 일 년 만에 실력이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주율상! 입 다물지 못하겠나!”
그보다 선배로 보이는 학생이 말렸으나, 주율상이라 불린 소년은 멈추지 않았다.
“제 말이 뭐 틀렸습니까? 어차피 합동 교육 때 실력이 다 들통날 겁니다. 저쪽이야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저희에겐 전혀 도움 될 것이 없습니다.”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그럼에도 주율상은 멈추지 않았다.
“저쪽에서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누가 누굴 도와주는 건지,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말입니다.”
그 말에 주작학관 학생들 중 일부는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반면 청룡학관 학생들의 표정은 돌처럼 굳었다.
“…….”
백수룡은 전부 들었지만 나서지 않고 가만히 지켜만 보았다.
만약 주작학관의 강사들이 도발을 했다면 그가 나섰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학생들의 일이었다. 때문에 그는 나서지 않을 작정이었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염왕과 사마영이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미안하군. 꼭 이런 때 혈기방장한 녀석들이 하나씩 있어서…….”
“괜찮습니다. 저희도 그런 녀석들이 있거든요.”
“뭐라?”
그리고 당연히, 백수룡은 제자들에게 비웃음을 당하고도 가만히 있으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카악- 퉤!
“어이. 너 방금 뭐라고 했냐?”
걸쭉한 침을 뱉은 헌원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을 희번덕이며 슬렁슬렁 걸어오는, 주작학관에서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유형의 불량배스러운 무인.
주율상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헌원강을 바라봤다.
“……뭐야 넌?”
“나? 오늘 네 대가리를 두 쪽으로 쪼개 줄 분이시다!”
헌원강이 흑도를 뽑아 들려는 순간, 순식간에 달려온 독고준이 그를 등 뒤에서 덥석 안고 뒤로 끌어냈다.
“헌원강! 너 여기서 벌점 더 쌓이면 천무제에 못 나가!”
“이거 안 놔? 저딴 말을 듣고도 참으라고? 내가 저 새끼를 그냥…….”
“청룡오망! 너희들도 보고만 있지 말고 말려! 여기서까지 사고를 쳤다간…….”
그러나 청룡오망은 말리기는커녕, 자기들끼리 모여서 충권(蟲券 : 가위바위보의 일종)으로 승부를 가렸다.
그리고 그 결과.
“주작학관 학생 여러분.”
한 소년이 주작학관 학생들을 향해 걸어 나왔다.
다소 수줍어 보이는 표정.
또래에 비해 작은 키와 호리호리한 체형.
그러나 청룡학관의 누구도 소년을 걱정하지 않았다.
“저희한테 불만이 있으면, 쥐새끼처럼 뒤에서 수군대지 말고 앞에 나와서 당당하게 말하세요.”
“……!”
그 상상을 초월하는 도발에, 주작학관 학생들 전체가 분노해서 노려보는 순간에도.
“원하시면 얼마든지 상대해 드릴게요. 단, 수학여행 장소까지 기어서 갈 각오 정도는 하셔야 할 거예요.”
채앵!
모욕을 참지 못한 주율상이 검을 뽑아 들고 소년의 앞에 섰다.
“너! 이름을 대라!”
이름을 대라는 말에, 수줍게 싱긋 웃는 소년은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청룡학관 일 학년. 위지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