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09
509화. 어떤 선택이든
청룡학관 수학여행 첫날.
관주가 직접 준비한 진짜 담력시험을 겪으면서, 학생들은 수많은 흑역사를 탄생시켰다.
“제가 선두에서 길을 열겠습니다! 우오오오오!”
적진으로 과감하게 돌진한 거상웅은 열 개도 넘는 그물에 칭칭 감겨서 나무에 거꾸로 매달렸고.
“크허어어엉!”
캬앗!
야수혁은 은호와 함께 산의 짐승들을 불러들여서 시험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었으며.
“……전부 죽여 버리겠어요.”
서슬 퍼런 살기를 드러낸 위지천은 키득키득 웃으며 살검을 휘두르다가, 보다 못한 노군상에게 뒷덜미를 잡혀 제지당했다.
그들 외에도 많은 학생들이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자 비장한 유언을 남기고 흑의인들에게 달려들거나 꽁지가 빠져라 도망쳤고, 이미 흑의인으로 변장한 학생들은 웃음을 꾹 참으며 그 모습을 구경했다.
하지만 그 상황 자체를 의심하거나, 처음부터 속지 않는 학생들도 있었다.
“세상에. 이런 허술한 속임수에 속는 바보들이 정말로 있나요?”
“그렇게 말하면 속은 우리는 뭐가 되냐…….”
당소소는 단번에 꾸며 낸 상황이라는 것을 눈치채곤, 수풀 속에 숨어 있던 강사들과 학생들을 민망하게 만들었다.
“……잠깐만. 이곳에 준비된 게 진짜 담력시험이라면…….”
그런데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당소소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지는 것이 아닌가?
“소소. 왜 그러지?”
독고준이 그 이유를 묻자, 당소소는 이곳까지 오면서 겪은 이상한 일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저희 조는 셋이었는데, 가끔씩 돌아보면 모르는 발자국이 하나가 더 있었어요.”
“뭐?”
“그래서 선생님들 중 한 분이 장난치는 건 줄 알았어요. 담력시험이니까 그런 줄 알았는데…….”
당소소의 이야기를 들은 노군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생들은 각자 자기 자리를 지키도록 되어 있어서, 너희를 미행한 사람은 없었을 터인데?”
사천왕을 제외한 청룡학관 강사들은 이곳에서 담력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때문에 학생들을 따라다니는 일은 불가능했다.
“저희도 아닌데요?”
사마영도 고개를 저었다. 주작학관 강사들 중에서도 그런 장난을 친 사람은 없었다.
“……그럼 대체 누구라는 거죠?”
오싹.
갑자기 등줄기가 서늘해진 학생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여기저기서 “귀신 아니야?” 라는 말이 들려왔다.
게다가 당소소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더 이상한 건…… 그 발자국을 따라서 음식 냄새가 났어요……. 만두 냄새 같은게…….”
“그러니까 부회장. 귀신이 너희를 따라오면서 만두를 먹었다는 거야?”
독고준이 말도 안 된다는 식으로 말하자, 당소소가 자신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상하지만 분명히 봤다니까요? 왜 발자국이 넷이었겠어요?”
“으음…….”
당소소와 독고준이 진지하게 귀신의 정체를 고민하는 동안, 그들을 외면한 청룡오망이 저희들끼리 수근거렸다.
‘만두 사형인 거 같지?’
‘확실한 것 같아요.’
‘그 양반은 왜 담력시험하는 데까지 따라온 거야?’
‘이제 와서 궁금해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수?’
‘이 얘긴 우리끼리 비밀로 하자.’
만두 귀신 소동은 금세 진정되었다. 그 발자국을 목격한 학생이 셋뿐이었고, 어떤 피해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소동이 있었지만, 큰 문제 없이 마지막 조까지 무사히 담력 시험이 마무리 되었다.
“청룡학관…… 강하군요.”
복면을 벗은 사마영의 솔직한 말에, 남궁학을 비롯한 주작학관 강사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흑의인 역할을 흔쾌히 맡아 준 이유는 간단했다. 청룡학관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서.
담력시험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주작학관 학생들보다 청룡학관 학생들이 한 수 아래라고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위지천이라는 천재를 보았지만 그건 특별한 예외라고 생각했다. 주작학관에도 연소하라는 천재가 있는 것처럼.
하지만 지금, 주작학관 강사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묘했다. 그들은 한 명씩 감상을 말했다.
“무공도 무공이지만, 학생들의 정신이 매우 단단한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두려움에 그대로 주저앉을 법도 한데…… 누구 하나 쉽게 포기하지 않더군요.”
“몇 명은 후기지수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공이 완성돼 있어요.”
“하마터면 학생들에게 망신을 당할 뻔했습니다.”
강사들은 순수하게 청룡학관 학생들의 실력과 재능에 감탄했다.
그들은 천무학관에 이어 천하에서 두 번째로 뛰어나다는 주작학관의 강사들이었다.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기에 상대를 쉽게 인정하지 않지만, 청룡학관은 그들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마영은 강사들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천무제에서, 주작학관은 청룡학관과 경쟁해야 할 거예요.”
“…….”
주작학관의 누구도 그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사마영은 약간의 초조함과 긴장감, 그러나 그보다 훨씬 큰 기대감과 호승심을 느꼈다. 그녀의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벌써부터 내일 합동 수업이 기대되네요. 서로에게 분명 좋은 자극이 될 거예요.”
모두가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주작학관 강사들은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사마영은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노군상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다가갔다.
노군상은 흡족하게 웃으며 그녀를 맞아 주었다.
“고생시켜서 미안하네. 우리 학생들이 다치지 않게 잘 지도해 줘서 고맙고.”
“아닙니다. 저희야말로 많은 걸 보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형님께는 내일 내가 찾아뵙겠다고 전해 주게나.”
“네. 저희 관주님도 이곳에 함께 계셨다면 좋았을 텐데…….”
사마영은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주작학관주이자 그녀의 조부인 염왕은 이 자리에 함께하지 않은 탓이었다.
염왕은 지금 주작학관 숙소에 남아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허허. 형님께선 보고 계시기가 조금 힘드셨을 테지.”
노군상이 씁쓸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주작학관 강사들 중 연차가 높은 강사들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마영 또한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알지만, 언제까지 과거에 사로잡혀 계실 건지…… 조금 답답해서요.”
“허허. 과거를 떨치는 게 그리 쉽게 되는 건 아니라네.”
염왕과 같은 이유로, 곽두용도 이번 담력시험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노군상의 배려였다.
“……그럼 먼저 내려가 보겠습니다.”
“내일 보세나.”
주작학관 강사들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천왕이 다 함께 복귀했다.
“사천왕이다!”
그들을 보자마자 학생들의 원성과 야유가 쏟아졌다. 진짜 담력시험인 척 앞에서 학생들을 괴롭히며 감쪽같이 속였기 때문이었다.
우우우우우-!
그중에서도 냉혈수라마왕과 옥면음랑을 향한 야유가 가장 컸는데, 다른 둘보다 훨씬 더 무자비하게 굴었던 탓이었다.
그러나.
“본좌에게 불만이 있다면 도전하도록. 언제든지 받아 줄 테니.”
청룡학관의 일타강사는 냉혈수라마왕이라는 별호가 은근히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다른 사천왕들이 가면을 벗을 때도, 그는 혼자서 묵묵히 용 가면을 쓰고 있었다.
반면에 옥면음랑은 놀리는 맛이 있었다. 일단 본인이 하고 싶었던 별호가 아니었으니까.
“몇 번을 말해, 이 자식들아. 철혈마존이라고 부르라니까!”
“저거 봐! 옥면음랑이 화낸다!”
학생들 중 누구도 백수룡을 철혈마존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청룡오망을 필두로 다들 짓궂게 웃으며 옥면음랑을 놀려먹기에 바빴다.
“……어휴. 그래. 니들 마음대로 해라.”
결국에는 백수룡도 체념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루만 지나면 관둘 거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그날 이후로 수학여행 내내 백수룡을 부르는 호칭은 옥면음랑이 되었다.
노군상이 봉우리 정상에 모인 학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몸은 좀 괜찮은 게냐?”
“네!”
다들 많이 지치고 피곤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대답만큼은 힘이 넘쳤다.
노군상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늘의 경험을 잊지 말거라. 언제라도 현실이 될 수 있는 일이다. 아주 먼 일일 수도 있지만, 예상치 못하게 가까운 날이 될 수도 있지.”
실제로 혈교와 전쟁을 경험한 노고수의 조언이었다.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하던 학생들도 모두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때가 되면 너희는 어떤 선택이든 해야 할 것이다. 그 선택이 너희와 전우들의 운명을 결정할 수도 있을 터.”
일부 학생들의 표정이 굳었다.
당황해서 실수를 연발하거나, 잘못된 판단으로 흑의인들에게 금방 사로잡힌 학생들이었다.
노군상은 그런 학생들에게도 괜찮다고 말해 주었다.
“기죽을 것 없다. 오늘 한 실수를 가슴에 새긴다면, 언젠가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테니. 그러니 내일은 더 과감하게, 얼마든지 실수하거라.”
그것을 가르치는 것이 선생의 일이니, 몇 번이고 다시 가르쳐 주면 그만이었다.
노군상이 개구쟁이처럼 웃으며 말을 맺었다.
“자, 오늘은 실컷 놀았으니 이만 내려가자꾸나.”
“네! 알겠습니다!”
학생들의 우렁찬 대답에, 밤의 산새들이 일제히 푸드득 거리며 달을 향해 날아올랐다.
그렇게 수학여행 첫날 일정이 모두 종료되었다.
* * *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되니까 너무 늦게 자지 마라.”
““네!””
“하여간 대답들은 잘해.”
피식 웃은 백수룡은 문을 닫고 돌아섰다. 방금 확인한 방이 학생 숙소의 마지막 방이었다.
벌써부터 뒤에서 살금살금 움직이는 기척들이 여럿 느껴졌지만, 일단은 내버려 두었다.
학생 숙소 건물에서 나와 강사 숙소로 돌아오자, 남궁수는 잠시 자리를 비웠는지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남궁수야 어디서 일이라도 하고 있겠지만……. 연호 이 녀석은 어떻게 된 거야?”
백수룡은 신경이 쓰이는지 창밖을 바라봤다.
가문의 일로 불려간 악연호는 담력시험이 끝난 이후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야심한 밤이 되고도 시간이 제법 지났는데도.
“애도 아닌데, 이걸 찾으러 가?”
백수룡이 잠시 고민할 때였다.
밖에서 익숙한 기척이 느껴지더니, 가면을 쓴 사내가 휘익, 하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사천왕의 최종병기! 지존마창 등장!”
평소보다 훨씬 더 방정맞은 모습의 악연호였다. 얼굴에는 늑대보다 너구리를 닮은 가면을 쓰고, 한 발을 들고 두 팔을 좌우로 벌리는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취했다.
“……뭐 하냐 너?”
“하아, 진짜 아쉽다. 내가 꼭 가야 했는데! 담력시험 엄청 재미있었다면서요?”
킥킥 웃은 악연호가 걸어와 백수룡의 맞은편 침상에 앉았다. 그러곤 앉자마자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학생들 앞에 등장하는 자세까지 미리 만들었다고요. 상황별 대사도 잔뜩 준비했는데, 가문에서 오랜만에 왔다고 식사를 대접하겠다지 뭐예요? 거절하기도 난감해서 실컷 먹었는데, 이게 또 술이 한두 잔씩 들어가다 보니까…….”
백수룡이 아는, 악연호답게 분위기를 띄우고 활발하게 까부는 모습.
그러나 백수룡은 웃지 않았다.
그는 물끄러미 악연호를 바라보았다.
익살맞은 너구리 가면 너머에 있을 진짜 표정이 궁금했다.
“너, 가면 벗어 봐.”
그러자 악연호가 움찔했다.
“예? 왜요? 담력시험 때도 못 써 봤는데, 잠깐 쓰고 있으면서 분위기나 좀 내보려는 건데.”
“벗으라면 벗어. 강제로 벗기기 전에.”
“와, 형님 방금 그 말 진짜로 옥면음랑 같았던 거 알아요?! 벌써 소문 엄청 났던데…….”
백수룡이 말 대신 손을 뻗으려 하자, 악연호가 급히 뒤로 물러나며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왜 이래요, 진짜?”
“…….”
“……알았어요.”
악연호가 천천히 가면을 얼굴에서 떼어내자, 딱딱하게 굳어 있는 얼굴과 피딱지가 생긴 입술이 보였다.
“너네 가주가 그랬냐?”
백수룡이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목소리와 달리, 그의 눈은 사납게 번뜩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