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12
512화. 궁금하긴 하네
짜아악!
통렬하게 울려 퍼진 소리.
남궁수가 놓친 검을 다시 잡기 위해 휘두른 손이 자신의 뺨에 닿는 순간, 창왕의 얼굴에는 경악과 분노가 어렸다.
그러나 절세고수는 찰나의 시간마저도 분절해서 사용하는 자들.
창왕은 즉시 호신강기를 펼쳐 자신의 얼굴을 보호함과 동시에. 그 형태를 톱날처럼 날카롭게 만들어 반격을 시도했다.
‘놈!’
손바닥이 얼굴에 닿은 순간까지도, 그들의 ‘실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남궁수를 흘겨보는 악비의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손바닥을 갈가리 찢어 주마!’
그는 남궁수의 손바닥을 피해 옆으로 틀던 동작을 멈추고 오히려 얼굴에 힘을 줘 버텼다. 호신강기를 믿고 한 행동이었다.
잠시 후면 남궁수의 손바닥은 다시는 검을 쥘 수 없을 만큼 망가지리라. 손가락의 힘줄과 근육이 모두 찢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운이 없다면 뼈까지 잘려나갈 것이다.
공력 사용에 제한을 두기로 한 싸움에서 호신강기는 펼쳐선 안 될 절기였으나,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펼쳤다는 핑계 정도면 충분할 터였다.
지금은 어차피 피차간에 ‘실수’를 하는 상황이니 말이다.
‘나를 상대로 같잖은 수를 부렸으니, 자업자득이다.’
그러나.
아직 ‘실수’가 끝나지 않은 것은 남궁수도 마찬가지였다.
파지직!
남궁수의 손바닥에 백색의 호신강기가 뒤덮이는 것을 본 순간, 악비의 눈은 더할 수 없이 부릅떠졌다.
저 남궁세가의 서자 놈은 자신의 다음 수까지도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했……!’
얼굴에 힘을 주고 버티던 악비의 뺨을, 남궁수는 호신강기까지 두른 손바닥으로 아주 힘껏 날려 버렸다.
……짜아아악!
안간힘을 줘 버티던 창왕의 얼굴이 옆으로 홱 돌아가고, 그의 몸이 돌풍에 휘말린 것처럼 꼴사납게 몇 장을 날아가다가 겨우 멈춰 섰다.
“……하.”
바닥에 내려선 악비는 멍하니 자신의 뺨을 매만졌다.
얼굴에 선명하게 손자국이 남았고, 왼쪽 입술은 찢어져서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찰나지간에 이루어진 수싸움의 결과.
그러나 남들이 보기에는 우연이 벌어진 상황으로만 보일 터였다.
“가주님!”
“이놈!”
창왕의 수신호위들이 뒤늦게 고함을 지르며 달려왔다.
그들은 산동악가의 가주이자, 자신들이 모시는 주군의 찢어진 입술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을 보곤 어쩔 줄 몰라 했다.
이 상황에선 말을 거는 것조차 두려운 가주 대신, 그의 몸에 손을 댄 남궁수에게 화를 낼 뿐이었다.
“이러고도 무사하길 바라는가!”
“감히 누구의 존체에 손을……!”
창왕 악비는 십존이었다.
아무리 공력 사용의 양을 제한하여 불리한 대련을 했다고 해도, 아들뻘의 후배에게 뺨을 얻어맞아서는 안 될 절세무인.
만약 이 사실이 소문이라도 퍼진다면, 십존이라는 명성에 커다란 금이 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온갖 조롱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십존이라는 지고한 위치마저 의심받게 될 터.
“…….”
악비가 자신의 뺨을 어루만지며 무겁게 침묵하는 이유였다.
단순히 뺨 한 대를 맞아서가 아니라, 어쩌면 자신이 쌓아 올린 것들을 한순간에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그때, 반대편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괜찮으십니까?”
남궁수가 낭패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가주님의 창이 제 가슴을 스치는 순간, 저 또한 손에 힘이 과하게 들어갔습니다. 해서 검을 놓치는 못난 모습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남궁수의 무복 상의가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고작 뺨을 한 대 맞은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상처.
그 모습에 남궁수를 비난하던 수신호위들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평생 대련 중에 검을 놓친 경험이 처음이었기에 무척 당황하고 말았습니다. 검을 다시 쥐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다가 그만…… 큰 실수를 범했습니다.”
그 이후에 벌어진 일은 차마 말로 하기 민망하다는 듯, 남궁수는 공손하게 포권을 취했다.
잘 부어오른 악비의 뺨과 터진 입술을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것을 잊지 않으며.
“미리 말씀드렸다시피, 이 대련은 서로 간에 불문에 부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청산유수의 언변은 일타강사의 기본 소양 중 하나였다.
남궁수는 방금 전 일어난 ‘사고’의 과실이 둘 모두에게 있음을 주지시켰고, 그러니 조용히 묻자고 말하고 있었다.
즉, 따귀 맞은 것은 소문내지 않을 테니, 너도 더 이상 따지지 말고 얌전히 물러나라는 뜻이었다.
“가주님께서 양보해 주시고 배려해 주신 덕분에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이 말만큼은 진심이라는 듯, 남궁수는 정중하게 인사를 한 후 아까 그렇게 필사적으로 잡으려 했던 검을 주워서 납검했다.
“그럼 후배는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할 말을 마친 남궁수가 몸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누구 마음대로 그만하자는 것이냐?”
스산한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악비를 수십 년간 섬긴 수신호위들이 즉시 남궁수를 넓게 포위했다.
“이건 무슨 의미입니까?”
미간을 찌푸리며 되묻는 남궁수의 얼굴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의 그것이었으나, 악비에게는 가증스럽게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화내지 않았다. 죽여 없애기로 결심한 인간에게 화를 내는 것은 감정적인 낭비일 뿐이었기에.
“뇌룡신검의 진짜 실력을 보고 싶군.”
갑자기 악비의 존재감이 몇 배로 거대해졌다.
지금까지 보여 준 무공은 장난에 불과하다는 듯, 창에서 시작된 와류가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격렬한 소용돌이를 발생시켰다.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기골이 장대한 사내의 눈이 살기로 형형하게 빛났다.
“이번에는 공력에 제한 없이 해보도록 하지.”
“……후회하실 겁니다.”
남궁수의 서늘한 경고에, 악비가 가볍게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공손한 척 예의를 갖추며 자신을 도발하는 남궁세가의 직계를 보고 있자니, 수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느껴 온 열등감이 폭발할 것처럼 끓어 오르고 있었다.
“지금보다 더 후회할 것 같진 않구나.”
“…….”
남궁수의 손이 다시 천천히 검파로 향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악비는 더 이상 눈에 살심을 감추지 않았고, 두 사람 주변에는 수신호위들이 포위한 상황.
자칫 이곳에서 뼈를 묻을 수도 있었지만, 남궁수의 표정은 놀랍도록 평온했다.
“자신감이 있나 보군. 검을 뽑아라. 그때까진 출수를 미뤄 줄…….”
악비는 갑자기 말을 얼버무리며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렸다. 남궁수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은 것과 동시였다.
천둥 같은 굉음에 수신호위들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밤하늘을 찢어발기며 맹렬하게 날아오는 한 자루의 검이 보였다.
그것은 남궁수와 악비의 중간에 유성처럼 내리꽂혔다.
콰아아앙!
원형으로 번지는 충격파의 압력에 악비의 수신호위들이 비틀거렸다.
“무, 무슨…….”
“이기어검?!”
안색이 하얗게 질린 수신호위들이 경악성을 터트렸다. 십존을 근접에서 수행하는 무인들조차 질리게 만든 한 수였다.
“청룡신협…….”
악비의 눈이 가늘어지더니, 멀리서 날아오는 푸른 장포의 청년을 바라보곤 이를 악물었다.
장포를 펄럭이며 바닥에 내려선 백수룡이 능글맞게 미소 지으며 다가왔다.
“웬만하면 구경만 하려고 했는데 말입니다. 십존이라는 양반이 치사하게 후배 하나를 상대로 부하들과 협공하려고 하는데, 안 나설 수가 있어야지요.”
“……협공?”
악비가 굵은 눈썹을 꿈틀대며 묻자, 백수룡은 주위를 포위한 수신호위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럼 아닙니까? 제 눈에는 가주님이 부하들과 함께 남궁수를 둘러싸고 겁박하는 모습밖에 안 보였는데. 아, 혹시…….”
백수룡의 입매가 가느다란 호선을 그렸다.
“살인멸구(殺人滅口)라도 하려고 했던 건 아니겠지요?”
백수룡의 입에서 살인멸구라는 말이 언급되자, 수신호위들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나 정작 백수룡은 태연하게 말했다.
“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사마외도도 아니고, 존경받는 산동악가의 가주이자 무림십존인 창왕께서 후배한테 따귀 좀 맞았다고 살인멸구를 하시려고 했겠습니까? 그냥 화풀이로 몇 대 쥐어박으려고 하셨겠지요.”
“…….”
백수룡은 지금 마음대로 선을 넘나들고 있었다. 악비는 굳은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청룡신협.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또한 터무니없는 모함으로 나를 모욕한 것은 본가에 대한…….”
“궁금하긴 하네. 만약에.”
백수룡이 악비의 말을 단호하게 끊었다.
스르륵.
창룡신검이 저절로 바닥에서 뽑혀 나와 백수룡의 손에 잡혔다.
“이 자리에서 저희가 서로 살인멸구를 하려고 든다면, 어느 쪽이 살아남을까요?”
“……!”
악비를 바라보는 백수룡의 입매는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은 고요하고 깊은 살기가 어려 있었다.
‘저놈…….’
악비는 혼란스러웠다. 청룡신협은 그가 단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가문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왔지만, 그로서도 저런 눈빛을 가진 자는 만나 보지 못했다.
“물론 그럴 리야 없겠지만요. 그냥 궁금해서 생각만 해 본 겁니다.”
“…….”
무인의 본능이 맹렬히 경고하고 있었다.
청룡신협과 충돌하는 순간, 파멸을 면치 못하리라는 것을.
“……대련은 그만하도록 하지.”
결국, 먼저 꼬리를 만 쪽은 악비였다.
백수룡의 시선을 애써 무시한 그는 남궁수에게 짧게 말한 후 돌아섰다.
“시간이 지체됐군. 서두른다.”
악비가 몸을 돌려 떠나자, 수신호위들이 잠시 눈치를 보다가 그를 따라갔다.
[상대가 남궁수여서 다행인 줄 알아. 이 샌님은 받은 만큼만 갚아 주는 수준에서 끝내니까.]등 뒤에서 들려오는 전음에도 악비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한 번만 더 연호 얼굴에 상처가 생기거나, 개수작을 부리려고 들면…….]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마치 맹수의 이빨처럼 뒷덜미에 섬뜩하게 닿았다.
[그땐 내가 직접 아가리를 찢어 버릴 줄 알아.]“…….”
악비는 그 전음을 똑똑히 들었지만, 끝내 한 번도 돌아서지 않고 멀어졌다.
“진짜 그냥 가네? 발끈해서 덤빌 줄 알았는데.”
빠르게 멀어지는 악비의 뒷모습에 백수룡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자, 남궁수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악가와 정면충돌이라도 할 셈이었나?”
“뭐하러? 살인멸구하면 그럴 필요도 없는데.”
“…….”
남궁수가 진심으로 정색하며 노려보자, 백수룡은 어깨를 으쓱했다.
“농담이야. 명분도 없이 십존을 해치울 수는 없지. 아무리 무늬만 정파인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도 말이야.”
“백수룡.”
“농담이라니까.”
손을 휘휘 저은 백수룡이 말을 돌렸다.
“그보다, 구해 줬으면 고맙다는 말부터 해야 하는 거 아냐?”
“……네가 오지 않았어도 충분히 설득할 수 있었다.”
“잘도 설득이 됐겠다. 따귀를 갈겨서 그렇게 열 받게 했으면서. 너 뒷일 생각 안 하고 일단 갈기고 본 거지?”
백수룡의 의심의 눈초리에도 남궁수는 뻔뻔했다.
“봤다면 알 텐데. 내 손짓은 명백한 실수의 연속이었다는 걸.”
“그래. 아주 명백하고 멋진 실수였지.”
백수룡이 큭큭 웃자, 남궁수의 입꼬리도 아주 희미하게 올라갔다. 둘 다 옷에서 주향을 풀풀 풍겼다.
그들은 함께 숙소로 돌아갔다.
“맞다, 빨리 이거나 발라 둬.”
백수룡이 품에서 금창약을 꺼내 남궁수에게 던졌다.
“연호가 알면 기겁할 테니까 잘 싸매 두라고. 필요하면 호법이라도 서 줘?”
“……얕은 상처다.”
“그거 하나 못 피해서 베이기나 하고 말이야. 연호가 알면 얼마나 걱정하겠어?”
“평소 네 행실을 돌아보도록. 내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숙소로 돌아가는 내내, 두 사람은 여느 때와 같이 말다툼을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