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022
1022화 미친놈
오유겁을 영원히 없애는 것!?
무희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
천도가 사라진 이후로 오유겁은 주기적으로 발생해 왔다. 그리고 무구한 오유계의 역사 중, 이 오유겁을 진정으로 막아 낸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무적이라 불리던 불패아라 역시 고작 자신의 나라를 지켜낸 것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그마저도 전 병력의 반 이상을 잃고 자신 또한 기억을 잃을 정도의 큰 타격을 받아야 했다.
주재경의 강자인 무희도 오유겁을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선각자는 이 오유겁을 아예 없애려 했다?
무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발상이었다.
“그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이 말에 무희가 임평생을 바라보았다.
“농담으로 하는 말인가?”
임평생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그의 능력은 이미 오유계를 벗어난 것이니 충분히 가능할 수 있는 것이지.”
“오유계를 벗어나다니, 혹시 둔일경에 이르기라도 했단 말인가?”
임평생이 재차 고개를 저었다.
“그건 분명하지 않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당시 그가 혈혈단신으로 천도를 만나려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공했지.”
천도!
순간 무희의 눈이 가늘어졌다.
“선각자가 천도를 만났다고?”
천도, 이 이름은 고대에 태어난 모든 무인들의 존경의 대상이었다. 일개 인간이 천도를 만났다는 것은 매우 놀랄만한 일이었다.
이때 임평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당시 그는 이곳에 왔었다. 나를 만나러 온 것도 천마족을 보러 온 것도 아닌 바로 천도를 찾아온 것이었지. 그리고 그때 선각자는 천도에게서 한 가지 물건을 가져갔다.”
“믿을 수 없군… 이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된 것인가?”
“선각자가 직접 말해 주더군.”
“그와 만난 적이 있었나?”
임평생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물론이다. 당시 천도성을 괴멸시켰던 것이 바로 선각자였으니까. 내가 다시는 그의 영역에 침범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자 그제야 물러났지. 그런 그가 얼마 후 갑자기 사라져버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죽었나?”
임평생이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 강자가 어디 쉽게 죽겠는가? 스스로 자진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말이야.”
이때, 무희의 눈이 번뜩였다.
“이제 이해가 가는군. 너희가 엽현을 처치하려는 이유는 첫째, 서옥 안에 너희에 대항해 만들어진 무기가 있기 때문이고, 둘째 선각자가 천도에게서 받아 간 물건을 회수하기 위함이었군. 내 말이 맞나?”
“그렇다.”
“그런데 왜 내게 이런 말까지 해 주는 거지? 이는 호도자들의 비밀이 아니었나?”
이때 임평생이 반문했다.
“너는 왜 내가 천마족과의 공존을 받아들였는지 아느냐?”
“나 역시 그 점이 궁금하군.”
“왜냐하면 이번 오유겁은 이전의 것들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무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다르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임평생이 다소 망설이는 듯하더니 말을 꺼냈다.
“엽현이 오유계에 나타난 이후, 영생지, 불패아라, 악마족과 신령족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마 허무계 역시 조만간 어떤 움직임을 보이겠지. 여기에 덧붙여 고시대, 한무기, 백악기 시대의 절정 강자들이 속속 다시 등장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 모든 시대의 강자들이 한 지점에 모여들고 있다는 말이다.”
임평생이 무희의 눈을 바라보았다.
“느낌에, 누군가 뒤에서 조작하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
“흠…….”
“선각자가 사라지자 이전 시대의 강자들이 동시에 출몰했다. 참 공교롭지 않느냔 말이다.”
“그러니까 네가 하고 싶은 말은… 이 모든 게 선각자의 농간이라는 건가?”
임평생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확신할 수 없다. 다만 반드시 선각자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든다.”
임평생이 무희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선각자의 강점은 막강한 무력뿐 아니라, 이 세상에 대한 깊은 이해도에 있다. 어쩌면 천도보다도 오유계에 대해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이런 생각도 든다. 네 생각대로 혼자서는 오유겁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선각자가 강자들을 모두 불러 모아 한판 승부를 벌이려는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이에 무희가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전부 모인다 해도 오유겁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글쎄, 내가 아는 선각자라면 그 정도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겠지.”
“…….”
무희가 침묵한 이때 임평생이 말했다.
“내가 너희와 공생하려는 이유는 함께 오유겁을 막아 내기 위함이다.”
“오유겁을 막아?”
무희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호도자들은 오유겁을 옹호하는 쪽 아닌가?”
“후… 예전에는 그랬지. 다만 지금은… 천도가 우리를 보호해 주지 않을 거라는 강한 예감이 든다. 천선지인인 천자가 죽었다. 그런데 그를 죽인 엽현을 천자는 내버려 두었지. 어쩌면 우리는 이미 천자로부터 버림받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호도자들이 지금까지 오유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천도의 보호 때문이었나?”
임평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천도와 마지막으로 교류했던 것도 이미 수만 년 전의 일이다. 천자가 우리를 위해 나설 것인지는 미지수인 상황이지. 그렇게 된다면 우리 호도자들 역시 너희와 마찬가지의 신세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와 손을 잡고 싶다는 건가?”
무희의 질문에 임평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혼란스런 세상이다. 우리 호도자들이나 너희 천마족이나 혼자서 버티려 하다간 쥐도 새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손을 잡으면 생존의 확률은 크게 올라가지. 게다가 엽현의 서옥을 빼앗고 그 안에 있는 천도의 신물을 차지할 수만 있다면, 오유겁으로부터 살아남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에 무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우리가 함께하더라도 엽현을 잡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알다시피 그의 배후엔 소도가 있지 않느냐?”
“소도, 그녀 역시 완전히 엽현의 편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게 무슨 뜻이지?”
무희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
“그녀가 엽현에게 이유 없이 잘 대해 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소도 역시 엽현으로부터 꾀하는 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둘은 아직 완전한 신뢰 관계에 있다고는 볼 수 없지. 어쨌거나 엽현이 제 발로 이곳에 들어온 것은 우리에게 큰 기회임이 확실하다. 이런 기회를 놓칠 텐가?”
무희가 어두워진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만큼 쉬운 결정이 아닌 것이다.
“무희, 내 말을 어떻게 생각하나?”
“생각하고 자시고가 있겠느냐? 어차피 금역에 들어간 이상 살아서 나오지 못할 텐데.”
무희의 말에 임평생이 차원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정말로 선각자의 계획에 있는 존재라면, 반드시 살아서 돌아올 것이다.”
“…….”
“우선 기다린다. 만약 그가 나오면 힘을 합쳐 죽이고 서옥을 빼앗으면 된다. 주재경 강자 둘이 함께하는데 겁날 게 뭐가 있겠는가? 설령 소도가 복수를 하려든다 하더라도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흠…….”
말없이 차원문을 응시하는 무희.
그의 눈빛이 점점 차갑게 변해갔다.
* * *
검종, 현공산.
밭을 갈고 있는 엽현과 한쪽에서 비질을 하고 있는 여인이 보였다.
언뜻 보면 평화로운 필부의 일상이다.
“설이 누님, 혹시 하얀 소복을 입은 검수 여인을 알고 있습니까?”
“알지.”
“둘이 싸우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어떻게 되긴, 내가 지겠지. 우리 아버지라면 좋은 상대가 되겠지만.”
그 말에 엽현이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님의 아버지는 도대체 누구십니까?”
엽현의 물음에 설이 존경심이 잔뜩 담긴 표정으로 대답했다.
“우리 아버지… 세상 사람들은 그를 이렇게 부르곤 했지…….”
이때 바람이 불고, 설의 눈동자에 아련한 기색이 스치듯 지나갔다.
대화를 이어 나가던 중, 설이 갑자기 말을 멈추고 침묵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부친을 뭐라고 불렸습니까?”
엽현의 한 마디에 회상에서 깨어난 설이 웃으며 대답했다.
“미친놈.”
“미, 미친놈 말입니까?”
“그렇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망설이던 이때 여인이 빗자루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며칠 밭을 가꾸는 동안 깨달은 바가 있었느냐?”
“아직… 없습니다.”
“그건 네 마음이 아직 고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하면 그런 상태가 될 수 있습니까?”
“스스로 한 번 깨우쳐 보거라.”
말을 마친 설이 자리를 떠났다.
스스로 깨우쳐라!
엽현은 일손을 멈추고 우두커니 서서 생각에 잠겼다.
이때였다.
[평범한 여인은 아니구나.]“왜 그리 생각하시오?”
[저 여자의 실력은 결코 아라의 밑이 아니다. 게다가 처음 너를 여기에 데려온 노인 역시 범상치 않지. 한 가지 궁금한 것은 그녀가 어찌 너를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흠… 나도 그 부분이 매우 궁금하오.”
[혹시 네 부친과 관련된 것이 아닐까?]“음… 그것도 한 가지 가능성이 될 수 있겠군.”
이때 구층 존재가 한숨을 푹 쉬었다.
[지금까지 널 보아왔지만, 점점 더 알 수가 없다. 너란 놈은 어찌 이렇게도 신비한 것이냐?]“…….”
엽현은 계속해서 밭을 가꾸는 데 열중했다. 매일 같이 채소를 심었으며, 일과가 끝나면 식사를 준비했다.
설은 엽현의 음식 솜씨에 매번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설은 검종 대전 앞에 서서 청삼남의 조각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뒤에는 검갑을 등에 지고 있는 백발노인이 서 있었다.
“아가씨, 저 아이가 정말…”
“아마도?”
여인의 대답에 순간 백발노인의 눈에서 한기가 흘러나왔다.
“진작 알았더라면, 앞서 그를 죽이려 따라 들어온 자를 살려 보내지 않았을 것을!”
노인이 막 자리를 떠나려 하자 설이 그를 불러 세웠다.
“뭘 하려고요?”
“가서 그놈을 죽일 생각입니다!”
설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아가씨, 하지만…”
“그의 일은 자신이 해결하도록 놔두세요.”
설의 말에 노인이 입을 다물었다.
“그는 아직 더 강해져야만 해요.”
“하지만 나이에 비해 대단한 건 사실입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설이 가볍게 웃으며 대꾸했다.
“당시 아버지가 왜 그렇게 하려 하셨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요. 저 아이 몸에 붙어있는 인과는… 너무 많기도 하거니와 너무나 복잡해요.”
“그분께서도 그의 인과들을 끊어낼 수 없었단 말입니까?”
설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모든 인과의 원천은 엽현 자신이에요. 인과를 끊어내려면 그를 죽이는 수밖에 없죠.”
“…….”
“어쨌든 오유겁이 도착했을 때 가장 중요한 인물은 엽현이 될 거예요.”
“아가씨, 그럼 저 아이를 데려가는 것입니까?”
설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때가 아니에요. 그는 아직 고생을 좀 더 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위기의식은 손톱만큼도 없는 데다, 겉멋만 잔뜩 들었으니까 말이에요.”
“하지만 홀로 두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위험?”
설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주재경 강자 하나 처리하지 못한다면 훗날 어떻게 우리와 함께 그자와 맞설 수 있겠어요?”
“그건 그렇습니다.”
“후… 저 녀석의 마음은 당시 우리 아버지보다도 훨씬 더 들떠 있으니,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겠네요.”
“그런 것 치고는 이미 범검에 올랐으니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설이 가볍게 웃고는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청삼남의 조각상을 응시하는 설.
그녀의 눈빛엔 근심이 한가득 서려 있었다.
오유계는 그녀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위험한 상태로 접어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