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684
1685화 소주라고?
여우의 말을 들은 엽현은 너무나도 황당했다.
부친은 여기서 도대체 뭘 하고 돌아다녔단 말인가?
그 많은 사람들에게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다니!
그래 놓고서는 자신더러 이곳으로 오라고 한 이유는 뭐란 말인가?
‘설마 나더러 이들을 구제하라는 의미였을까?’
엽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부친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었다.
그는 엽현을 골탕 먹이길 즐겨 했지만, 그렇다고 아무 이유도 없이 이런 일을 벌일 사람은 아니었다.
자신을 이곳으로 들어오게 하고, 또 그의 이름을 대라고 한 것은 분명 골탕을 먹이는 것 이상의 의미가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생각해 보면 이곳에 있는 자들을 빼내는 것은 엽현으로서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이들의 실력은 대부분 의경이었다.
잘 구슬려서 자신의 편으로 만든다면 엄청난 전력의 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다만, 이곳의 존재들은 어딘가 다소 이상했다.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이곳에서 만난 의경 강자들은 개천족 안에서 수련을 도왔던 허영들과는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가짜 의경?’
엽현은 고개를 저었다.
진짜든 가짜든 이들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거론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을 데리고 나가면 이유족과의 대결에서 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이었다.
결론에 이른 엽현은 흰 여우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너희를 밖으로 데려가기 위해서야!”
이 말에 아목렴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엽현을 쳐다보았다.
“우릴 데리고 나간다고?”
여우의 물음에 엽현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지난날 아버지가 너희에게 한 약속을 대신 지키러 온 거야!”
“그런데 왜 그가 직접 오지 않고 네게 맡긴 거지?”
엽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중요한 업무를 보는 중이거든!”
“무슨 일?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한 일도 있나?”
순간, 엽현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한 가지 묻자. 아버지가 왜 너희를 데리고 나가 준다고 약속했을까? 너희가 그에게 대가를 지불한다고 한 건가? 아니면 너희한테 뭔가 빚진 거라도 있나?”
여우가 고개를 저었다.
“전혀 그런 건 없었어! 그 자가 그냥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한 거라니까!”
이에 엽현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해준 것도, 빚진 것도 없는데 무슨 근거로 이렇게 당당하게 요구를 하는 거지?”
“왜냐하면 자기 입으로 약속한 거니까! 약속은 약속이잖아!”
엽현이 질문을 이어갔다.
“그래, 약속했다 치자. 그럼 그 시기도 명시해 놓았나?”
순간, 여우가 말없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를 보자 엽현이 씩 웃었다.
“보아하니 그런 말은 없었나 보군.”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엽현이 반문했다.
“내가 볼 때 아버지는 굳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야. 왜냐하면 둘 사이에 오고 간 게 없으니까. 그래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를 대신 보냈는데 너는 뭐가 그렇게 불만인 거지?”
이 말에 여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넌 너무 약해서 안 돼. 자격이 안 된다고.”
이 대답을 듣자 엽현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참, 멋있는 대답이군. 내가 아버지라면 절대 너희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을 거다.”
“그게 무슨 말이지?”
“아버지가 구해주겠다고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그럴 의무가 있나?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 하는 거다. 이 간단한 이치도 모르다니….”
여우의 눈빛이 점점 날카롭게 변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흥! 더 이상 할 말 없다. 너희에게는 아무것도 받고 싶지 않으니, 너희도 지금처럼 쭉 이곳에서 갇혀 살면 되겠구나!”
말을 마친 엽현이 이아와 소백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가자!”
이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렇게 엽현 일행은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엽현은 화가 단단히 난 상태였다.
이들과 청삼남 사이에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여우의 이 같은 태도는 그를 매우 불쾌하게 만들었다.
여우를 포함해 이곳에서 만난 자들은 도움을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당연한 권리로 여기고 있었다.
당시 청삼남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떠난 이유는 어쩌면 이러한 태도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돕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도움을 받는 쪽 역시 그만한 도리를 갖추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부친이 자신을 이리로 보낸 것은 아마 당시의 인과를 청산하기 위한 의도였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직접 와서 보니 그 인과는 이미 악연으로 변한 상태였다.
엽현은 청삼남에게도 화가 났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자신을 이곳에 보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꼴을 겪게 한단 말인가!
이때, 흰 여우가 갑자기 엽현 앞을 가로막았다.
여우가 소백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 쟤랑 같이 갈 거야!”
엽현이 웃으며 대꾸했다.
“소백이가 왜 그래야 하지?”
이 말에 여우가 엽현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나 영호(靈狐)와 함께하는 것은 영조에게도 이익일 테니까!”
이 말에 소백이 눈을 깜빡거리더니 이아를 쳐다보았다.
자신에게 무슨 이익이 있냐고 묻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때, 엽현이 이아에게 물었다.
“소백이한테 뭐 좋은 게 있어?”
이 말에 이아가 여우를 보며 직접 물었다.
“나 역시 소백이에게 어떤 이득이 있는지 궁금하군? 자신 있으면 증명해 보지?”
순간, 여우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지만, 이아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그 눈빛은 뭐지? 지금 싸우자는 건가?”
이때, 소백에 이아의 팔을 붙들고는 고개를 저었다.
소백은 같은 천지지령과 다투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게다가 소백이 여우를 찾은 이유는 그녀를 데리고 가기 위함이지 노예로 삼고자 함은 아니었다.
하지만 소백은 더 이상 여우에게 호감을 느끼지 않았다.
왜냐하면 청삼남과 엽현에 대한 태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소백이 만류하자 이아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좋아! 굳이 싸울 필요는 없겠지! 그럼 이쯤하고 여길 떠나자! 더 이상 기분이 나빠지기 전에!”
엽현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엽현 일행이 다시 걸음을 옮기자, 여우는 이들을 향해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
이때, 이아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여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금 날 도발하는 거냐?”
이아는 여우에게서 악의를 느낀 상태였다.
이에 여우가 이아와 엽현을 차례로 노려보더니 차갑게 대꾸했다.
“날 원망하지 마라! 곧 후회하게 될 테니까!”
이 말을 끝으로 여우가 등을 보이며 돌아섰다.
이아가 주먹에 힘을 준 이때, 엽현이 한발 앞서 여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엽현은 주저하지 않고 그대로 검을 뽑아 들었다.
찰나의 순간, 백 번의 발검술이 중첩됐다.
엽현이 출수한 것을 본 여우는 제 자리에서 빙글 돌며 뛰어올랐다.
순간, 여우의 꼬리가 순식간에 아홉 개로 늘어났다.
이때, 엽현의 검이 도착했다.
쾅-!
꼬리가 우수수 잘려 나가면서 여우의 신형이 천 장 밖으로 튕겨 날아갔다.
여우가 지나친 공간은 한편의 암흑으로 변해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아목렴과 이천화는 안색이 검게 물들었다.
특히, 이천화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엽현이 펼친 검의 위력은 입신경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파괴적이었다!
이때, 엽현이 검을 들고서 여우에게로 다가갔다.
“말해봐, 왜 내가 후회할 거라고 한 건지.”
여우는 엽현을 끝까지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 눈빛엔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조금 전의 일격으로 생명이 위독한 건 아니었지만, 중상을 피할 순 없었던 것이다.
엽현의 표정은 점점 더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데려가지 않는다고 해서 복수를 하겠다고?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였더냐!”
외침과 동시에 엽현이 달려들었다.
이에 흰 여우가 재빨리 뒤로 물러나더니, 한 줄기 백광으로 변해 그대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를 본 엽현이 곧장 추격에 나서려는 이때, 이아가 소리쳤다.
“그쯤 해둬!”
엽현이 동작을 멈추고 이아를 쳐다보았다.
이에 이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만약 또다시 귀찮게 굴면 그땐 소백이 알아서 처리하겠대.”
이 말에 엽현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또 까불기만 해봐! 꼬리로 목도리를 만들어 버릴 테니까!”
“…….”
“가자!”
일행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길을 걷는 내내 엽현은 손안의 검을 꼭 쥔 채로 냉랭한 기운을 풍겼다.
게다가 그가 들고 있는 검은 청삼남의 검이었다.
이아가 엽현을 흘끔 쳐다보며 말했다.
“이봐, 너무 화내지 마.”
“화 난 거 아냐.”
이때, 엽현이 문득 정면을 쳐다보았다.
“우리… 날아서 가자.”
이 말에 아목렴이 미간을 찌푸렸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오?”
“어차피 조심해서 간다 한들 저들은 우리 위치를 뻔히 알고 있소. 그럴 바에야 빠르게 돌파하는 게 낫지 않겠소?”
아목렴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맞는 말이구려.”
엽현은 곧장 검을 타고 날아올랐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멀리 커다란 호수가 보였고, 그 옆에는 과연 사당 하나가 고즈넉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청삼남이 말했던 신묘인 듯했다.
이때, 아목렴이 엽현 곁으로 날아와, 신묘를 내려다보았다.
“저곳이 그대가 찾고 있던 곳이오?”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목렴은 신묘 주변도 살펴보았다.
건물 주변은 광활한 공터였고, 가장 가까운 산도 몇 리는 떨어져 있었다.
특이한 점은 신묘 앞에 커다란 조각상이 서 있다는 것이었다.
“갑시다!”
엽현의 말에 아목렴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이 막 이동하려는 이때, 산 밑에서 노호성이 울려 퍼졌다.
“대담하구나! 감히 이런 식으로 우리를 무시하다니!”
이 순간, 엽현이 지상을 향해 빛처럼 쏘아져 내려갔다.
잠시 후, 검명 소리가 산맥 전체에 울려 퍼지더니, 피 묻은 머리 하나가 구름까지 솟구쳤다가 천천히 지상으로 추락했다.
이때, 엽현이 일행 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의 검은 붉은 피로 적셔진 상태였다.
“계속 이동합시다!”
일행은 엽현을 따라 속도를 올렸다.
이번에는 그 누구도 시비를 걸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은 그 호숫가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들이 지면에 발을 디딘 순간, 호수가 갑자기 들끓기 시작했다.
엽현이 시선을 옮긴 이때, 호수 안에서 허영 하나가 튀어나왔다.
“웬만하면 더 이상 다가오는 것을 권하지 않는다.”
엽현이 눈앞의 허영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째서 못 들어간다는 거요?”
“여긴 금지구역이기 때문이다!”
금지구역!
엽현이 신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뭐, 위험한 것이라도 있는 거요?”
“날 자세히 보거라!”
이에 엽현이 허영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나 역시 멋도 모르고 금역에 들어가려 했다가 봉인이 되고 말았다.”
“아니, 안에 도대체 뭐가 있기에 그런 것이오?”
“그건 나도 모른다.”
“모른다고?”
허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직 네 부친만 알고 있을 거다.”
“아버지를 만난 적이 있소?”
“물론이지! 당시 그가 이곳에 와서 신묘 안에 들어갔다 나온 것까지 똑똑히 지켜보았다.”
엽현은 갑자기 호기심이 들었다.
저 안에는 도대체 뭐가 있는 걸까?
이때, 허영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젊은 친구, 나를 좀 꺼내줄 수 있을까?”
이 말에 엽현이 다시 허영을 쳐다보았다.
“네가 날 구해 준다면 널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할 것이다. 내 영혼을 걸고 맹세한다. 만약 거짓일 시 벼락을 맞고 죽을 것이다!”
허영이 말을 마친 순간, 호수 표면에 잔잔한 물결이 일었다.
그가 한 맹세가 하나의 인과로 체결되었다는 의미였다.
“어떻게 하면 그댈 구할 수 있소?”
“간단하다! 네 곁에 있는 소녀가 나서면 된다!”
이아!
엽현이 이아를 바라보자, 이아가 고개를 저었다.
“소백이가 하는 편이 더 빨라.”
이 말에 소백이 씩 웃더니 코를 벌렁거리며 숨을 들이켰다.
순간, 사방에 존재하던 영기가 소백을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때, 호수를 뒤덮고 있던 무언가가 한풀 벗겨지면서 뒤이어 중년 남자 하나가 호수 바닥으로부터 공중으로 솟구쳤다.
크게 숨을 고른 중년인은 상쾌한 표정으로 엽현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구해줘서 고맙구나!”
엽현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대가 지금 떠난다 해도 나는 어쩔 도리가 없소.”
이에 중년인이 고개를 저었다.
“남자는 한 입 가지고 두 말하지 않는다.”
엽현은 뭔가 고민하는 듯 하더니 이내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였다.
“삼 년! 삼 년만 날 도와주시오. 그 다음부터 그대는 자유의 몸으로 돌아갈 것이오. 어떻소?”
엽현의 제안에 중년인이 다시 한번 포권을 취했다.
“고맙구나!”
협상을 마친 엽현은 다시 신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문득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혹시 저것도 함정은 아니겠지?’
바로 이때, 신묘의 대문이 열리면서 중후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소주(少主),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소주!?
순간, 엽현의 눈이 반짝였다.
설마 자기를 말하는 걸까?
그렇다면 이건 정말로 청삼남이 남긴 ‘유산’인 걸까?
순간, 엽현은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