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260
260화 정말 이걸 몰라 보는 거야?
엽현은 너무 황당해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몰라? 정말 몰라본다고?’
취선루의 영패 중 가장 높은 등급인 검은 영패를 몰라보다니.
엽현이 멍하니 있는 틈을 타, 노인의 명령을 받은 보위들이 엽현에게 접근했다. 바로 이때였다.
“잠깐!”
소리친 것은 엽현의 곁에 있던 여인이었다. 그녀가 손을 뻗자 노인이 운선 아래로 던져버렸던 영패가 다시 천천히 운선 위로 모습을 드러내더니 마침내 그녀의 손바닥 안에 안착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여인에게로 쏠린 가운데 여인은 검은 영패를 바라보며 손을 떨고 있었다.
이때, 노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얘야! 지금 뭐 하는 짓이냐!”
여인이 노인의 말을 무시한 채 엽현을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 이것은 취선루의 흑색 영패가 맞습니까?”
“맞소.”
엽현의 대답에 여인이 깊은 탄식을 한 후,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노인이 황급히 다가와 그녀 손에 있던 영패를 낚아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잠시 후, 노인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검은 영패?!
노인은 이 영패를 알아볼 리가 없었다. 그는 평생 동안 검은 영패가 있다는 말만 들었을 뿐, 실제로 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검은 영패는 취선루 최고 등급의 영패였다. 이 영패를 소유한 사람들은 모두 재력은 두말할 것도 없고 그 신분도 어마어마하다.
그런 지체 높은 자들을 일개 운선 관리인 노인이 만나 볼 수나 있었을까? 노인의 머리로는 검은 영패를 가진 취선루 회원이 자신의 운선을 타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엽현은 귀빈실이 아닌 일반 객실에 머물고 있지 않은가!
노인이 엽현을 바라보았다. 그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이 느, 늙은이가 보는 누, 눈이 없어서 귀하를……”
이때, 엽현이 손을 휘저어 노인의 말을 막았다. 곁에 있던 여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부터 이 운선은 그대가 관리하도록 하시오.”
이에 여인이 손을 크게 내저었다.
“아, 아닙니다. 저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내가 볼 때 그대는 잘해 낼 것이오.”
이때, 곁에 있던 노인이 뭐라 말하려고 했으나 엽현이 운선 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대는 내려가 보시오.”
그 말 한마디에 노인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엽현에게 두들겨 맞은 남자를 데리고 운선 아래로 퇴장했다.
“저… 공자… 이 운선은……”
“내가 목숨은 살려주겠다만, 그대 숙부와 오라비는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는 데다, 자만하기 그지없소. 보통 사람이라면 몰라도 저런 자들이 운선 관리직이 된다면 언젠가 많은 사람들에게 큰 화를 입힐 것이오.”
여인이 심사숙고한 뒤,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공자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럼 가서 일 보시오.”
“저…….”
여인이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
“저는 막연(莫連)이라 하옵니다. 공자께서 필요하신 것이 있다면 언제든 분부만 하십시오.”
그렇게 막연은 엽현에게 고개를 숙여 보인 후 자리에서 물러났다.
운선 위에서 엽현은 두 손을 뒤로 한 채 생각에 잠겼다.
호계맹에서 엽령에게 준 시간은 삼일이었다. 이제 내일이면 약속한 날이 다가온다.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운선은 오늘 밤 중토신주에 도착하게 될 것이니, 별일이 없다면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엽현이 절박한 심정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엽령!
그는 북한종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들이 엽령을 호계맹에 내준다면…….
어쨌든 우선 엽령을 만나는 것이 급선무였다.
동생에 한해서는 그는 그 누구에게도 기대를 걸 수 없었다. 자신이 직접 나서야만 했다.
운선이 순조롭게 천운도를 지나치던 바로 그때였다. 공중에서 한 장의 거대한 그물이 펼쳐지더니 순식간에 운선 전체를 뒤덮으며 내려왔다.
그와 거의 동시에 엽현이 탄 운선 사방에서 여섯 척의 검은 운선들이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해적들이다!”
운선 위에서 누군가가 소리치자 엽현에게 쫓겨났던 노인이 황급히 갑판으로 올라왔다.
검은 운선들을 발견한 노인은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때 화려한 장포를 입은 한 남자가 엽현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남자가 아래쪽의 사람들을 쳐다보며 입을 열려 할 때, 엽현이 소리쳤다.
“꺼져라.”
순간, 운선 위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 엽현을 바라보았다. 공중에 떠있던 남자의 표정 역시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내, 내게 꺼지라 했느냐?”
그러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까 했는데, 생각이 바뀌었어. 그냥 죽어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엽현이 손가락이 남자를 향했다. 그리고는!
푹-!
한 줄기 검광이 남자의 미간을 뚫고 지나갔다.
천천히 운선 위로 떨어지는 남자의 시체.
장내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엽현이 다시 한번 손가락으로 일 획을 긋자, 한 줄기 검광이 날아가 운선을 붙잡고 있던 그물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러자 엽현이 놀란 토끼 눈을 뜨고 있던 막연을 향해 소리쳤다.
“계속 전진하시오! 절대 멈추지 말고!”
그의 명령에 운선은 이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여섯 척의 운선이 엽현이 탄 운선을 막아섰다. 그와 동시에 십여 명의 무인들이 엽현이 탄 운선으로 날아들었다.
하나같이 만법경 강자들이었다.
이를 본 운선 위의 모든 사람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엽현이 타고 있는 운선에는 고작 두 명의 만법경 강자들만이 타고 있었다.
이때 관리인 노인이 황급히 상대를 향해 포권을 취하며 소리쳤다.
“여러분, 이 운선은 취선루의 소유이니, 부디 취선루의 얼굴을 봐서……”
바로 이때, 엽현이 공중으로 솟구쳤다. 짧은 비명과 함께 운선 위로 머리통 하나가 떨어졌다.
이를 시작으로 십여 개의 머리가 마치 낙엽 마냥 힘없이 운선 바닥에 떨어졌다.
엽현이 얼어붙어 있는 막연을 향해 소리쳤다.
“전진! 전속력으로!”
다시 운선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이내 갑판 위에는 엽현 혼자 남게 되었다.
방금 전, 엽현에게서 흘러나온 살기가 너무나도 무시무시했던 탓에 모두가 겁을 먹고 운선 안으로 숨어버린 것이었다.
이때, 막연이 엽현의 등 뒤로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이미 신분이 들통 난 것 같습니다.”
이때, 그녀는 이미 엽현의 신분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운선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 또한 엽현의 정체를 알아챈 상태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엽현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현재 청주에서 이름이 알려진 검수는 단 한 명. 엽현뿐이었다. 게다가 엽현이 취선루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그가 흑색 명패를 가지고 있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신분이 들통났다고?’
엽현이 막연을 향해 가볍게 대답했다.
“상관없소.”
막연이 고개를 끄덕인 후 별말 없이 돌아섰다.
다시 홀로 남은 엽현은 품 안에서 나무 인형 하나를 꺼내 들었다. 머리를 양 갈래로 귀엽게 딴 것이 영락없는 엽령의 모습이었다.
“걱정 마… 오빠가 있으니, 아무도 널 건드릴 수 없어…….”
엽현이 감상에 젖은 사이에 운선은 속력을 더욱 높여 날아갔다.
세 시진 후, 운선이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했다.
이때, 갑판 위에 올라온 막연은 엽현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갔구나…….”
바로 이때, 운선 관리인 노인이 갑판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갑판을 한 번 둘러 본 노인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막연에게 물었다.
“검수는 어디 있느냐?”
“이미 떠났습니다.”
노인이 다시 한번 주위를 경계하며 말했다.
“아직 멀리 가진 못했을 것이다. 곧바로 추격하거라!”
말을 마친 노인이 막연과 함께 사라졌다.
한편, 갑판 바로 밑, 팔짱을 낀 엽현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역시나 호계맹이었군, 소문이 이리도 빠르다니……”
순간, 엽현이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지금의 그는 스스로 모습을 보이지 않는 한 누구에게도 발각되지 않았다.
* * *
운공성(雲空城).
운공성은 중토신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성이었다. 실질적 소유주는 호계맹이었다.
일억 명의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이 운공성에서 매년 호계맹이 벌어들이는 세수는 족히 최상급 영석 일억 개를 상회할 정도였다.
운공성은 다른 성들과 달리 지면에서 팔백 장(丈)가량 떨어진 공중에 위치해있었다. 호계맹은 당시 이 성을 짓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바가 있다.
운공성을 다녀온 사람들은 마치 구름 속에 떠있는 것 같았다는 표현을 했다.
엽현은 운공성에 들어오기 위해 최상급 영석 열 개를 지불해야 했다. 이는 통행세와 같았다. 이렇게 걷은 통행세만도 족히 최상급 영석 수천만 개에 달했다.
이를 보자 엽현은 다시 한번 자신이 얼마나 가난한지 깨달았다. 나는 피땀흘려 상대를 죽여가며 납계에 보관해둔 영석을 챙기는데 거대 세력은 통행세로만 최상급 영석 수천만 개씩 벌어들이고 있었다.
엽현이 도착한 이 날은 성 전체에 초롱을 달고 모두가 경사스런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이날은 바로 운공성의 소성주 육헌명이 북한종의 성녀를 맞이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이날을 축하하기 위해 전국 수많은 세력들이 사절단을 파견했다. 성안은 그야말로 사람들의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물론 그들이 온 것은 육헌명 때문이 아니라 그의 숙부인 육 존주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함이었다.
성주부 내의 한 밀실. 밀실 안은 여인들이 내는 교태와 신음소리로 어지러웠다. 특히, 여인들의 교성이 울려 퍼질 때마다 문 앞을 지키던 두 호위들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때, 왼쪽에 서 있던 호위가 다른 호위에게 조용히 말했다.
“오늘 같은 경사가 있는 날마저 성안에 여자를 불러들이시다니… 만약 이 사실이 북한종 귀에 흘러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하하 북한종이 소성주에 대해 모르겠는가? 다 알고서도 어쩔 수 없이 혼인을 허락한 걸세. 뒤에 육 존주가 버티고 서 있는데 그들이 어쩔 수 있겠는가? 성녀가 시집을 오고 나면 앞으로 고생문이 훤할 걸세!”
“자자, 이쯤 하자고. 어차피 우리가 혼인하는 것도 아닌데, 뭔 상관인가. 괜히 누가 우리가 한 말을 엿듣기라도 한다면 우리 목은 없는 걸세!”
그들이 대화를 마쳤을 때, 온갖 교성으로 가득했던 전 내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이때, 호위 한 명이 조용히 전음을 날렸다.
“보아하니, 소성주가 또 땀 흘리며 재미를 보고 있나 보구만, 흐흐…….”
밀실 안쪽. 그들의 말대로 소성주는 벌거벗은 채로 땀을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긴장해서 흘리는 식은땀에 가까웠고 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마에서 시작해서 흘러 내려온 땀 한 방울이 턱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가 뚝 떨어졌다. 땀이 떨어진 곳은 그의 목 언저리를 받치고 있던 차가운 칼날 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