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powered Sword RAW novel - chapter 101
광황제의 추격대로부터 도주할 때 도, 암살자들의 습격으로 의식을 잃 었을 때도. 언제나 저 등에 기대어서 목숨을 구하고, 스스로가 짊어진 것 의 무게를 되새겨왔다.
“리안 전하야말로 이 세상의 빛을 인도하는 자, 용사로서 가장 적합한 인물이십니다!”
그 필사적이기까지 한 절규에, 엘라 한이 응답했다.
“헛소리.”
온기라고는 한 점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
엘라한은 금속과 같이 둔탁해진 눈
동자로 그를 노려보면서, 무지함 역 시 죄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기 때문에, 부끄 러움을 모르고 당당하다.
“당신들이 그저 신탁의 날을 기다 리고 있을 때. 용사님께선 봉인도 안 풀린 성검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구 하셨습니다.”
용사라고 해서 불사신이 된 것은 아니다.
불완전한 성검은 그저 잘 만든 무 기에 불과하다.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이 세상으로
나아가, 스스로의 부와 명예보다 타 인의 생명을 우선시했던 자.
그 행적이야말로 용사의 증명이며, 자격이었다.
“제게 있어서 용사님은 단 하나, 레 온님분이십니다.”
그녀가 섬기기로 한 사람은 그런 영웅이었다.
“그분에게 구원받았던 생명 모두를 대신하여, 이 자리에서.”
그렇기에, 용서할 수 없다.
“—단죄를.”
한 마디의 선전포고와 함께 엘라한
이 움직였다.
풀플레이트 메일.
2이eg 이 넘어가는 갑옷을 입었음에 도 그 움직임은 질풍과도 같아, 길버 트의 동체시력을 아득히 초월했다.
눈속임을 쓸 필요도 없다.
전속력으로 돌진해서 주먹을 짧게 한 방.
꽈아앙!
그 타격을 검면으로 막은 길버트가 튕겨나갔다.
오랜 경험으로 발달된 직감, 꾸준한 수련으로 잘 닦아놓은 혈관이 아니
었다면 한 방에 끝났다.
다 삼키지 못한 핏물이 입꼬리를 타고 흘러내려, 노기사의 수염을 붉 게 물들였다. 바스타드 소드 역시 그 중간지점부터 움푹 들어가, 미스릴 합금의 내구력을 의심스럽게 했다.
‘아니, 이 성녀가 너무 강한 것이 다.’
길버트는 알고 있었다.
소드마스터.
인간의 틀을 뛰어넘은 강자들. 그 초월적인 힘의 파편을 한 번 겪어봤 기에, 성녀가 그들에게도 뒤떨어지지 않는 괴물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승산은 없다. 그는 이 자리에서 처 참하게 죽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전하. 당신께서 제위에 오르시는 순간을 보고 싶었습니다 만.’
망집에 흐려졌던 눈과 마음이 선을 넘어버렸다.
그 과오를 깨닫는 순간, 길버트의 탁한 눈동자가 맑아지며 수십 년을 방황했던 경지에 빛이 찾아들었다.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소드마스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 는, 찰나의 기연.
“감히.”
엘라한은 그 순간을 노린 것처럼 손을 찔러넣었다.
푹
흉갑을 종잇장처럼 꿰뚫은 손이 그 대로 가슴팍을 파고들어, 등 뒤에서 튀어나왔다. 갈비뼈 몇 대가 끊어지 면서 지독하기 그지없는 통증이 온 몸 곳곳으로 퍼진다.
더 말할 필요도 없는 치명상이다.
깨달음의 순간을 놓친 길버트가 두 눈을 부릅뜨고서 파르르 떨다가, 이 내 실신하듯이 축 늘어졌다.
“한 번 쏟아버린 물을 주워담을 수 없듯이, 과오에는 필히 그 책임이 따 라야하는 법입니다.”
그의 몸통에서 손을 봅•아낸 엘라한 이 말했다.
“뒤늦게라도 잘못을 뉘우쳤던 것은 좋았습니다만, 한 마디 사죄도 없이 결실을 취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길버어어어어트―!”
충신의 단말마를 본 리안이 검을 봅아들고서 덤벼들었다.
부친보다 더 오랫동안 그를 돌봐온
사람이었다.
그 안에서 끓어오른 분노가 두 눈 을 가렸던 좌절감을 태워, 투구 안쪽 의 성녀를 힘껏 노려보았다.
키잉.
투명한 오러로 불타오르는 검이 내 달린다.
‘빛’ 속성의〈오러소드〉.
클라이드 황실의 비전검술까지 더 해진 검은 그 잔상마저도 따돌리고 가속해, 몇 개의 환영을 만들어내며 엘라한의 급소 네 군데를 겨냥했다.
머리 끝까지 치밀어오른 분노로 벽 을 넘었다. 그 성취감을 느낄 새도
없이, 리안은 전속력으로 검을 내질 렀다.
쩡!
그렇게 내질렀던 검이 산산조각났 다.
“환검(幻劍)은 자기보다 수준 높은 상대에게는 안 통합니다. 속도는 제 법 괜찮았지만, 분노에 눈이 먼 상태 라서 그런지 그 궤도가 너무 정직했 어요.”
“•••닥쳐!”
“ 예?”
겉잡을 수 없는 분노와 무력감에 휩싸인 채, 리안은 부러진 검 자루를
쥐고 아우성쳤다.
“여신의 지팡이를 자처하면서 아무 런 망설임도 없이 목숨을 짓밟다니! 당신 같은 살인귀가 성녀일 리 없 어! 길버트가 먼저 무례를 저질렀다 지만, 가신이 범한 죄는 그 주인에게 책임을 물어야하는 게 아닌가!”
의부(義父)와도 같은 사람을 잃어버 렸다.
그가 조금만 더 빨리 정신을 되찾 았어도 말릴 수 있었겠지. 그렇게 하 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길버트를 살 해한 성녀에 대한 분노가 한 움큼 남아있던 이성을 찍어눌렀다.
하지만 엘라한은 그 말에 심드렁한 얼굴이었다.
“착각하지 마세요.”
그녀는 땅 위에 쓰러진 길버트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잘 보시죠. 멀쩡하게 살아있으니 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어, 어 엇?!”
그제서야 길버트를 다시 본 리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슴 한복판 에 뚫린 구멍은 다 메워져있고, 쏟아 진 핏자국만 좀 남아있을 분이지 호 흡 또한 별 문제가 없어보였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상식을 초월하는 사태에 멍한 표정 이 된 리안을, 엘라한은 한심하다는 듯이 내려다보았다.
“스스로의 죄를 뉘우치는 자에게 자비 있으리. 여신교전에 기록되어있 는 문구 중 하나입니다.”
전투태세를 푼 그녀의 투구가 해제 되어, 갑옷 위로 흐르던 빛이 옅어지 면서 은색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은 모습이 실로 압도적이었다.
만약 길버트가 마지막까지 그 잘못 을 뉘우치지 않았더라면, 엘라한도
그를 치유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생의 최후에 이르러서야 그 는 반성했다.
성녀로서 한 번 기회를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반성은 어디까지나 죄를 뉘우치는 것. 당연한 일에 보답을 바라서는 안 됩니다. 제가 깨달음의 순간을 멈춘 것 역시 그 이치에 따랐을 분. 억울 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엘라한은 한 치의 가책도 없이 당 당하게 가슴을 폈다.
그리고 갈 곳을 잃어버린 분노와 자책감, 돌아오기 시작한 좌절감으로
혼란스러워하는 리안을 바라보았다.
길 잃은 자에게 이정표를.
여신교전의 문구를 하나 더 생각해 낸 그녀가 입을 열었다.
“리안 황자님.”
그 부름에 이끌리듯이 리안의 눈동 자가 움직였다.
“당신은 클라이드 제국의 황제와 용사, 두 입장 중 하나만 선택하라면 무엇을 고르시겠습니까?”
“그건….”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 는 질문이었다.
리안이 잠시 망설이는 순간, 엘라한 은 더 기다려주지 않고 그 다음 질 문을 내뱉었다.
—클라이드가 이 세상을 위협하는 악의 근원이라면?
—제국민과 그 이외의 사람들에게 일체 차등을 두지 않으실 수 있으십 니까?
—황위를 되찾는 것보다도 우선해 야할 일이 많다면?
리안은 그 어떤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
스스로의 모순을 깨달은 그가 두 눈을 질끈 내리감았지만, 엘라한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이 왜 용사로서 부적격한지 아시겠습니까?”
무언의 긍정.
침묵하는 리안의 귀로, 엘라한의 설 교가 홀러들어왔다.
“클라이드 제국이라고 해도 이 세 상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용사는 빛 을 인도하는 자, 세상을 구원하는 자. 국경과 지위에 사로잡힌 자가 그 대업을 수행할 수 있겠습니까?”
“폭군에게서 잃어버린 황위를 되찾 는 것도, 그 후에 제국의 태평성대를 이룩하는 것도 분명히 선한 일이겠 지요. 그러나.”
그녀는 두 주종에게서 등을 돌리면 서 단언했다.
“그건 용사가 할 일은 아닙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엘라한은 공터 를 떠났다.
바스락바스락.
무성하게 자란 잡초가 으스러지는 소리. 그 소음도 얼마 안 가서 들리
지 않게 되었다.
아카데미의 뒷산 공터에는 그렇게 둘만 남겨졌다.
의식을 잃고 나동그라진 길버트와 깊은 생각에 빠진 리안.
이 우연한 만남이 어떤 변화를 불 러올지는, 아직 그 누구도 알 수 없 는 일이었다.
“•••안 되겠는데.”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연 레온이 말했다.
“역시 좀 그렇지?”
카렌도 그 말에 수긍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게 잰 것도 아니지만, 크기 에 비해서 너무 좁아. 이 주변에서
시작된다면 우리들도 치고 빠지기가 힘들걸.”
“이틀 전에 본 대나무숲은 장애물 이 너무 많았고.”
“시야가 너무 탁 트여있는 곳은 일 방적으로 노려질 분이니, 장애물도 어느 정도는 필요한데 말이지.”
“후, 까다롭네에一.”
벌써 며칠이나 허탕을 친 탓에, 카 렌의 얼굴에도 피로감이 좀 떠올라 있었다.
드레이크의 토벌을 결정한 날로부 터 보름째.
그들은 아직까지도 결전지를 찾아
서 숲을 헤매고 있었다.
‘이 절벽도 그리 나브지는 않지 만… S十랭크의 마물 상대로 타협해 서는 안 돼.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 갔던 일이 큰 변수가 될 수도 있으 니까.’
인간 종족의 태생적인 힘은 저 드 레이크에 비해서 너무나도 열등하 다. 두 날개로 바람보다 빠르게 날 수도 없고, 발톱으로 강철을 찢어버 릴 수도 없으며, 꼬리를 휘두르거나 숨을 토해 두꺼운 성벽을 무너트리 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그 열등함만큼의 지혜를 모아야했다.
발톱 대신에 손가락으로 병장기를 만들고, 브레스를 토하지 못하는 입 으로 마법주문을 외웠다.
[근력, 체력과 같이 지력(智方)도 전투능력을 구성하는 힘의 한 종류 다. 그걸 도외시하는 놈들은 다 머 저리에 불과해.]엘시드가 평상시보다 더 험한 말투 로 역설했다.
[마물 상대로 정정당당한 싸움을 논하거나, 스스로가 점한 우위를 내 쳐버리는 놈들은 그 자리에서 죽어 도 싸다. 지혜를 포기해버린 인간은 원숭이와 별 차이가 없지.]‘오늘따라 말이 좀 험한데?’
[사실이니까.]그래도 레온의 지적 덕분에 냉정함 을 되찾았는지, 엘시드는 한층 가라 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략전술 (Tactical Strategies) 의
중요성에 대한 것이었다.
일신의 무력으로 적을 쓰러트리는,
군(軍)에 종사해본 적이 없는 기사나 마법사들은 잘 모르는 문제였다.
사막지대, 초원지대, 늪지대, 해안 지대, 산악지대.
그 환경에 따라서 병종(兵種)의 유 불리가 뒤집히고, 승리의 여신이 제 표정을 바꾼다는 것을 말이다. 좁은 길목에서라면 300명의 병사로도 만 단위의 대군을 저지할 수 있으며, 불과 13척의 군선으로도 133척의 적함을 박살낼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내〈보법〉도 지 형지물을 이용한 전술의 하나라고 볼 수 있겠지. ‘무술’과 ‘전술’은 그 범위에서 구분될 분, 근본적인 이치
에는 별 차이가 없어.]
팔다리를 움직이듯이 병사들을 운 용하고, 자세를 취하듯이 진형을 구 축한다. 발을 내디딜 때와 같이 선 봉대를 전진시켜, 적의 허점을 찌르 듯이 기병대를 돌진시킨다.
동방의 옛 서적에서는 용병술과 작 전술뿐만 아니라 무기술 또한 병법 (兵法)으로 통칭했다던데, 그 이유가 바로 엘시드의 설명과 다름없었다.
[발을 움직여서 활로를 찾아내듯이, 스스로가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지형 을 구분하는 것 또한 무예의 영역이 다.]그의 충고를 새겨들은 레온이 피식 미소지 었다.
‘엄격하구만, 스승님.’
[그러니까 투덜거리지 마라, 제자 님.]두 사람이 그렇게 투덕거리는 동 안, 레온보다 앞서 나갔던 카렌이 되돌아왔다.
성검의 봉인이 풀리면서 네 개의 성흔까지 받은 그였지만, 민첩함과 은밀함만큼은 그녀를 이길 수 없었 다. 마스터를 한 걸음 남겨둔 암살 자라는 것은 그러한 존재였다.
〈어둑서니의 윤무〉도 그 성장세에
크게 한몫했겠지만.
“용사님! 드디어 찾은 것 같아!”
“음?”
생각지도 못한 희소식에 이끌려, 레온은 잰걸음으로 그녀가 본 장소 로 이동했다.
지금까지는 다 어중간한 감이 없지 않았으나, 카렌이 저리 확신하는 걸 보니 괜찮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어디 한 번 가보자.”
두 사람이 숲을 가로지르자 화들짝 놀란 마물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때 아닌 소동을 불러일으켰다.
고작 보름만에 이 일대의 포식자로 서 각인된 그들이었다.
위험도 A랭크의 마물들조차 레온 과 카렌을 피하듯이 경로를 변경하 고, B랭크 이하에 이르러서는 그럴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대가리를 땅 에 박고서 지나치기만을 기다렸다.
이 일대의 터주, 사이클롭스를 쓰 러트린 레온과 카란은 더 이상 기어 오를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여기야! 어때? 잘 찾아왔지?”
“오…”
가파른 길을 걸어올라가, 카렌이 가리키는 방향을 본 그가 저도 모르
게 감탄성을 토했다.
협곡 (Canyon) 이 었다.
마차 한두 대쯤은 너끈히 돌아다닐 수 있는 넓이의 샛길이 구불구불 갈 라져있고, 미로와 같이 복잡하게 얽 혀있어서 잘못 들어서면 빠져나오기 어려워보였다.
밑바닥부터 절벽 위까지의 높이도 적절했다.
500미터가 좀 넘어가는 걸로 보이 는데, 드레이크가 아래로 내려올 순 있겠으나 자유롭지는 않을 정도였 다.
엘시드의 평가를 들은 레온이 장난 스럽게 되물었다.
‘100점이 만점이라면 몇 점 정도 야?’
[80점쯤? 잘 쳐줘서 85점일까.]‘어라, 생각보다 안 높은데. 90점은 나올 줄 알았더니.’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이 협곡 은 드레이크와의 결전에 적합했다. 놈의 비행능력에 기반하는 낙하공격 이 어렵고, 혹여 브레스를 뿜어내더 라도 쫓기 어렵게 도망다닐 수 있었 다.
[바보냐. 100점 만점은 인위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