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powered Sword RAW novel - chapter 86
꾸라졌잖아.]
“으아아아악! 생각나게 하지 마!”
스스로의 추태가 떠올랐는지. 레온 은 침상 바닥에다 얼굴을 처박고서 아우성쳤다.
타이탄족은 그 육체 자체가 무엇보 다 훌륭한 무기다.
검합에 몰입하다가 그 사실을 잊어 버린 대가로, 레온은 다 이긴 싸움을 발길질에 헌납하고 말았다. 발로 걷 어찬 거인도 당황했을 정도로, 럭키 펀치나 다름없는 결말이었다.
“애초에 저 체급으로 기술을 쓴다 는 것부터가 반칙이라고, 도대체 누
가 저 괴물들한테 무술을 가르쳐준 거야?”
몇 달간의 수련으로 막 자신감이 붙으려던 참인데, 오늘의 연속대련을 경험하니 그 마음이 절로 꺾인다.
무예의 수준에서는 몇 단계나 앞서 있는데 싸움을 시작하면 대등하거나 그가 불리하다. 레온은 불합리하기까 지 한 육체의 격차를 열한 번이나 실감해야했다.
드물게도 그의 입에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그런데.
대답을 기대하지 않고 한 말에, 엘
시드가 갸웃거렸다.
[어라, 내가 너한테 말 안 했냐?]“ 뭘?”
[300년 전의 일이지만, 거인들한테 처음으로 무예를 가르친 게 나였다 는 거.]“•…”뭐?”
생각지도 못한 소리에 레온의 입이 딱 벌어졌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타이탄족에게 무예를 가르친 게 성 왕 로드릭이었다니?
도서관의 어떤 책에서도 본 적이 없었고, 어느 누구에게도 들어본 적 이 없는 이야기였다.
물론 엘시드를 쥔 이후로 그런 종 류의 이야기를 들은 게 한두 번도
아니었지만, 그때마다 놀라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저명한 역사가들도 알 수 없는 비사(秘史)였으니까.
레온도 당사자가 한 말이 아니었다 면 의심부터 했을 만큼, 로드릭의 이 름값은 실로 무거운 것이었다.
[지금이야 알아서 잘 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말귀를 못 알아먹어서 엄청 귀찮았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엘시드는 옛 감상 에 잠겨있었다.
[여신, 그 푼수만 아니었어도…』
“응? 여신님이 거기서 왜 나와?”
[왜 나오긴, 걔가 나한테 떠넘겨버
린 일이니까 그렇지.]
엘시드는 딱히 감출 것도 없다는 듯이 그 비사에 얽혀있는 이야기를 술술 털어놓았다.
[타이탄족의 기원에 대해서는 알고 있겠지?]“아, 여신님한테 기원해서 지혜를 받았다는….”
[그래, 그 이야기는 일단 사실이다. 거인왕 그놈이 살려달라 빈 것도 그 렇고, 그놈 말고는 다 빡대가리였던 오우거들을 좀 똑똑하게 만들어준 것도 그렇고. 이곳 산맥의 심층부에 있는, 차원의 균열을 수호하는 사명도 뭐 맞는 말이지.]
하지만, 하고 운을 뗀 엘시드가 이 를 갈아붙였다.
‘‘•••설마.”
[바로 그 설마라고!]예상되는 전개를 읽은 레온이 식은 땀을 흘리자, 그 반응을 기폭제로 한 엘시드가 분통을 터트렸다.
그 감정에 공명하는 성검이 웅웅
떨릴 정도였다.
[망할 년! 몸만 큰 애새끼 수십 명 을 맡겨놓고 잘 부탁해〜는 개뿔이! 용사가 무슨 보육원장인 줄 알아!]아닌 게 아니라 예상 그대로였다.
지혜의 축복은 어디까지나 그 지성 을 일깨우는 것분이었고, 학습해야할 지식을 그냥 채워주는 게 아니었다.
300년도 더 된 일이었지만 엘시드 의 발작은 격렬했다.
여신에게 몇 번이나 부려먹히면서 쌓아온 원한이 큰 건지. 성철쇄기사 가 듣는다면 모독죄로 화형시키다못 해 땔감으로 쓸 장작이 모자랄 지경
이었다.
레온은 그 아우성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아직 목소리도 못 들어본 여신에 대한 인식을 수정했 다.
‘좋은 분이시지만 사람을 좀 험하게 굴리시는구나.’
생전의 로드릭조차 학을 뗄 정도라 면 웬만한 사람들은 임무 한 번도 감당하지 못할 게 틀림없었다.
용사로서의 미래가 크게 걱정되는 이야기였다.
[후, 빌어먹을. 그렇게 사람을 부려 먹을 줄 알았으면 용사고 성검이고
안 받고 살았을 텐데. 마왕의 불사성 이야 백 번 천 번 찢다보면 언젠가 붕괴했을테고.]
그에게 참살당한 마왕의 입장에서 는 참 다행이었다. 어쩌면 여신님도 그걸 알고서 자비를 베푼 게 아니었 을까?
[잡설이 조금 길어졌구만. 뭐, 아까 말했듯이 타이탄족에게 무예를 전수 해준 건 나야. 기초적인 신체단련법 과 병기사용법, 전술 이론만 정리해 서 가르쳐줬지.]“그〈지옥회관〉인가 뭐라던가 하던 시설도?”
[그건 내 기억에 없는데. 자기들이 알아서 만든 거 아니야? 강도가 좀 높긴 했지만 그럭저럭 쓸만해보였 고』
아무래도 헬스클럽은 타이탄족 고 유의 수련시설인 듯했다. 고문이나 다름없는 훈련을 수십 년이나 반복 하고, 그 의욕을 유지한다는 것부터 가 대단한 일이었다.
레온이 그 말에 납득하는 듯하자, 엘시드는 불평하느라 뚝 끊어졌던 이야기의 맥을 이었다.
[그래도 한 놈만큼은 제대로 가르 쳤다. 여신의 축복 없이도 지성을 일
깨운 놈이었으니, 그 자질은 인간 기 준으로 따져도 천재 수준이었고.]
“—거인왕.”
[그래.]엘시드는 한 마디로 수긍하면서 계 속 말했다.
[아마도 타이탄족의 무예 수준은 그놈이 다 높여놨을 거다. 나한테 배 운 것도 모자라서 수백 년을 갈고닦 았을 테니, 이미 마스터의 벽쯤은 뛰 어넘고도 남았겠지.]마스터의 경지에 달한 타이탄이라 니!
레온은 내심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그 강력함을 상상하자니 온몸에 절 로 소름이 돋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는 11차례의 대련으로 타이탄족 의 실체를 보았다.
강인하고 유연한 근육질에 거대한 체격, 타고난 강자이면서 무예를 이 해하는 지혜, 숙련도를 높이기 어렵 다지만 오러마저 터득하는 게 가능 한 잠재력까지.
‘인간 마스터 5명이 상대해도 이길 수 있을까…?’
오러로 신체강화밖에 못 하는 전사 들조차 레온과 호각으로 겨룰 수 있 었다. 하물며 오러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타이탄이라면 동급의 인간보다 몇 배나 강력한 게 당연했다.
거인왕(巨시E).
300년 전부터 그 힘을 쌓아왔을 타이탄족의 우두머리.
아직 만나보지도 못한 존재의 거대 함에 몸이 떨렸다.
[레온.]엘시드의 목소리가 그의 긴장을 풀 어주었다.
[당분간은 아까 전처럼 거인들과의 대련에 집중해봐라. 안 죽고 치열하 게 싸울 기회가 그렇게 흔하지도 않 으니까.]“거인왕하고 언제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게 뭔 상관이냐? 어차피 그놈하 고 네가 싸울 일도 없고, 싸워봤자 한 방에 맞아죽을 텐데. 촌장도 못 이기는 실력으로 컨디션을 정돈해봤 자 무슨 의미가 있다고.]“•••귀가 따갑네.”
하나같이 다 맞는 말이었지만, 혹독 하게 두들겨맞은 레온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듣기 괴로워도 엘시드가 한 말대로 였다.
지금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
로의 역량을 다듬는 것.
거인왕이 보관하고 있을 유산을 넘 겨받기 전에, 그 자격을 증명하는 것 이었다.
그리고 타이탄족의 마을에서 자격 은 곧 힘을 의미했다.
* * *
후웅!
칼날과 함께 뿜어져나온 풍압이 머 리칼을 훑는다.
세 치 간격으로 검을 피해낸 레온
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상대방의 간격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
연격(連擊)에 휘말리는 것만큼은 피 해야했다.
지난 며칠간 타이탄들과 대련하면 서 감을 꽤 잡았지만, 한 번 스치기 만 해도 위험한 것은 여전했다. 인간 과 타이탄의 힘 차이는 그렇게나 큰 것이었다.
“큭! 잡힐 듯 말듯하면서 용케도 빠 져나가는군!”
또다시 레온을 놓친 쌍검의 거인, 드루고가 성난 표정으로 그를 추격 했다. 바질리스크의 척추뼈로 만든
쌍검은 그 무딘 생김새와 달리 날카 롭기 그지없었다.
드루고가 한 번 쌍검을 떨칠 때마 다 바람이 썩썩 갈라진다. 연격의 짜 임새가 허술했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더 정교했어도 진작 궁지에 몰렸으 리라.
레온은 그 허점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
‘쌍검을 다루는 것치고는 너무 공격 적이야.’
두 자루의 검을 사용하는 무예, 쌍 검(雙劍)은 그 살상력과는 별개로 수 비적인 면이 강했다.
실제로 잘 알려져있는 쌍검술의 대 부분은 두 자루를 공방의 역할로 나 눠, 한 자루로 막고 한 자루로 치는 식으로 다루는 게 기본이었다. 설령 두 자루를 함께 사용한다고 해도 공 격에 치중하는 유파는 극히 드물었 다.
무엇보다 세간의 상식과 달리 쌍검 은 그 궤도가 한 자루를 다룰 때보 다 단조로웠다.
‘두 방향에서 동시에 공격할 수 있 다는 점은 위력적이지만, 반대로 말 하자면 그 외에는 별 메리트가 없 지.’
레온은 이미〈안법〉으로 드루고가 휘두르는 쌍검의 빈틈을 찾은 지 오 래였다. 그저 간격의 차이 때문에 쉽 게 들어갈 수 없을 분이며, 그렇게까 지 어렵지도 않았다.
몇 분 전부터 그는 냉정하게 포석 을 깔아두었다.
맞을 듯하면서 한 끗 차이로 피해 내는, 그 요행처럼 보이는 회피야말 로 드루고를 유도하는 함정이다.
‘슬슬 오겠군.’
드루고의 두 눈이 흥분으로 크게 확장된 게 보였다.
잔뜩 고양된 투지는 강력한 무기임
과 동시에 냉정함을 잊게 만드는 마 약이었다. 노련한 전사들은 그 경계 를 잘 알고 힘을 조절하지만, 드루고 는 아직 경험이 부족했다.
그래서 레온이 판 함정에 보란듯이 걸려들었다.
“ 여기냐一!”
거의 동시에 두 번의 참격이 들이 닥친다.
수직베기와 수평베기.
십자로 교차하는 참격은 그 안에 사로잡힌 표적을 갈기갈기 찢어발긴 다. 드루고가 자기 나름대로 비장의 기술이라고 생각하는 일격이었다.
한 번 사로잡히면 피하기도 어렵고, 레온의 완력으로는 두 번의 참격을 감당하지 못한다.
승리를 확신한 드루고의 눈이 번들 거리는 순간,
‘여기로군.’
레온은 두 칼날이 겹쳐지는 순간을 반 박자 앞질러, 참격의 교차지점 너 머로 몸을 던졌다.
“아닛?!”
태풍의 눈, 참격의 공백지대를 간 파당한 드루고가 경악성을 내질렀 다. 인간 사이즈를 상대로 고전해본 적이 없었기에 알 수 없었던 약점이
었다.
그러나 드루고는 그 급한 성격만큼 이나 투지도 맹렬했다.
스스로의 실책을 깨달았을 때. 그는 당황하거나 뒷걸음질을 치는 것보다 먼저 박치기를 시도했다.
엘시드도 그 대응에 내심 감탄했다.
십자베기가 빗나갔을 때, 무방비해 진 품을 그냥 내주는 게 아니라 반 격까지 시도하다니.
수 읽기는 어설펐지만 전투감각이 아주 뛰어났다.
레온의 실전경험이 아주 조금만 부 족했더라면, 그 박치기에 걸려서 땅 에 처박혔을지도 몰랐다.
빠악!
박치기까지 완벽하게 피한 레온이 그의 경추를 후려쳤다.
칼날이 아닌 힐트(Hilt)의 타격이었 지만, 베려고 했다면 목을 떨어트릴 수 있는 순간이었다.
드루고 역시 그 사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큭, 졌다.”
인간이라면 그대로 실신했을 텐데,
드루고는 손에 쥔 검을 늘어트리면 서 패배를 인정했다.
이걸로 7승 3패.
열 번째 대련을 승리로 마무리한 레온이 었다.
‘목덜미에 박힌 타격은 아무 느낌도 없었나보네.’
그는 대련을 이기고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혀를 찼다.
검 자루, 힐트는 단단하고 무거웠기 에 둔기로도 쓸 수 있는 부위였다. 그걸 제대로 얻어맞고도 노 대미지 라니, 타이탄족과 싸울 때 둔기만큼 무의미한 무기도 없으리라.
체자레가 휘둘러대던 철구 정도면 또 모를까, 어설픈 망치 따위로 때려 봤자 마사지밖에 안 될 것이다.
“드루고가 졌다! 이래서 쌍검층은 안 된다니까!”
“흐하하! 설마 저 십자베기를 돌진 해서 깰 줄이야! 타이밍이 어긋났으 면 네 토막으로 썰렸을 텐데!”
“전사 레온이 그 정도로 물러설 리 가 없지! 암!”
언제나와 같이 대련장소를 둘러싼 거인들이 환호했다.
벌써 일주일도 넘게 이 대련을 계 속해왔다.
그 사이에 레온에게 제법 호감이 붙었는지, 거인들은 이제 친구라도 된 것처럼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치 켜세웠다. 그와 한 번이라도 싸워본 거인들은 더더욱 그러했다.
수십 년이나 똑같은 삶을 거듭해온 타이탄족이다. 외부에서 온 전사와의 싸움은 그들에게 있어 짜릿한 자극 이었다.
“좋아, 그 다음은 나다! 삼지창으로 상대하지!”
“무슨 개소리냐! 내 차례다!”
“뭐라고!? 한 판 해볼테냐, 아룰!”
“못할 것도 없지! 덤벼라!”
레온이 말리고 말고 할 틈도 없이 두 거인이 격돌했다.
다른 거인들도 그 추잡한 싸움에 낄낄거릴 분, 제지하는 일 없이 부추 길 따름이었다. 타이탄족에게 있어서 싸움과 대화는 큰 차이가 없다.
그렇기에 논쟁은 곧 투쟁이나 마찬 가지였다.
“하하, 개판이구만.”
레온이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풍 경에 코를 문지르는데, 그 뒤로 다가 오는 거인이 한 명 있었다.
그의 존재감을 느낀 레온이 뒤를 돌아보았다.
“촌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전사장급의 거인이자 이 마을의 촌 장, 발칸이었다.
한층 더 우락부락한 근육을 자랑하 는 그가 주위를 한 차례 둘러보더니, 제 딴에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안 그래도 두 거인의 싸움 때문에 잘 들리지도 않았다.
“•••조용히 날 따라오게. 그분께서 자네를 부르셨다네.”
그의 전언을 이해한 레온의 낯이 굳어졌다.
발칸이 ‘그분’이라고 할 만한 존재는 하나분이었다.
거인왕의 부름!
타이탄 산맥까지 찾아온 목적을 달 성할 때가 다가왔다. 먼 옛날, 로드 릭이 맡기고 간 유산을 넘겨받을 때 가.
거인왕.
그 실체가 대부분 은폐되어있는 타 이탄족과 달리 거인왕의 존재는 잘 알려진 전설과도 같다. 성왕 로드릭 시절부터 대륙 전역에 그 힘과 위명 을 떨쳤으며, 산맥 안쪽에 틀어박히 고 난 다음에도 심심치 않게 풍문이 나돌았다.
가라사대, 주먹질 한 번으로 구름 을 찢어발겼다더라.
가라사대, 발길질 한 번으로 절벽 을 무너트렸다더라.
소드마스터의 전력을 다한 검격으 로도 불가능한 일이지만, 거인왕이라 면 혹시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을 정 도였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는 말이 괜한 게 아니었다.
30만의 대군을 이끌고서 쳐들어왔 던 제국이 패퇴했던 것도, 만신창이 가 된 드래곤이 타이탄 산맥 내부에서 도망쳐나왔던 것도 엄연한 사실 이었다.
물론 자세한 내막까지는 알 수 없 었으나, 거인왕이 상식을 초월한 존 재라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이쪽일세.”
레온은 그 부름을 받자마자 촌장, 발칸의 뒤를 따라나섰다. 아쉽게도 카렌은 그와 동행할 수 없었다.
거인왕이 부른 것은 어디까지나 그 하나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