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Life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9
9 화
“3번 물건은 어떻게 됐습니까?”
“그 녀석들이 채 갔습니다.”
카우프만은 그 녀석들이 누구냐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대신 얼굴을 와락 구기며 리스트에서 3번 목록을 삭제 했다.
한국의 건설 기업으로 기업 자체의 수익성도 눈여겨볼 만하지만,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 물건이 대박이 었다.
그 건설 기업에서는 재개발 택지로 예정된 대부지를 선점해 두었고, 한국 이 IMF를 극복한다면 제 1순위로 재 개발을 시작할 택지가 바로 바로 거기 였다.
“3번 물건만큼은 은밀히 작업 하라 고 그리 말했건만.”
“제 책임이 아닙니다. 그룹 회장님께 서도 이 나라 권력자들에게 얼굴을 비 춰야 할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게 아니잖아요. 민간에서 다뤄지는 물건들을 다 놓치고 있는 게
문제 아닙니까. 이러다가 손가락만 빨 게 생겼어요.”
카우프만은 너무 답답한 나머지 알 콜 생각이 간절해졌다.
전일 인베스트먼트.
녀석들의 이름을 본 건 이 나라,한 국에 들어와서 였다.
그 전에는 녀석들의 존재도 몰랐다.
알아본 결과 이 나라에서 부동산 시 장을 조속히 개방한 까닭도 전일 인베 스트먼트의 로비 때문이 었다.
거기에서 그쳤으면 진심으로 박수 쳐 줄 마음이 있었다.
모두의 관심이 태국과 싱가포르 그
리고 홍콩에 쏠려 있었을 때.
전일 인베스트먼트만큼은 이 나라에 선 진입해서 정권과 거래를 트는 등, 투자 회사로서의 뛰어난 면모를 보였 다.
그런데 그들의 욕심은 생각 이상이 었다.
그들의 레이더망에 걸린 물건들은 값을 두 배 주고라도 사 갔다.
돈으로는 경쟁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돈 외의 재료로 승부를 봐 야 하는데,부동산 시장을 조속히 개 방시킨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그들 전일 인베스트먼트는 이 나라 정권과
공생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다.
그래서 카우프만은 전일 인베스트먼 트에 대해 이렇게 의심하고 있었다.
이 나라의 6,70년대를 장악하였던 독재자 박(Park).
그 박의 숨겨져 있던 비자금이 지금 튀어 나온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이해 못 할 몇 가지 질문들에 답이 나온다.
“회장님이 오셔야 합니다. 정리가 필 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 까?”
“고려해 보죠.”
“고려가 아닙 니 다. 반드시 오셔 야 합 니다. 그래서 이 나라 정권이 듣고 싶
어 하는 말 좀 들려주시고, 전일 인베 스트먼트에 대한 통제도 요구하시고 항의도 하셔야 합니다. 전일 인베스트 먼트는 자본력으로 이 나라 시장을 독 점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 점을 공격 해야 합니다.”
카우프만은 생각에 잠겼다. 팀원들 의 요구는 당연했다.
본래 시장에 흘러나오는 대다수의 물건들은 민간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전일 인베스트먼트가 규칙을 바꿔 놓았다.
전일 인베스트먼트의 그 한국인 이 사 이름이 무엇이 었더라?
패밀리네임이 독재자 박과 같았다.
그가 주도해서 바꿔 놓은 ‘고액 부동 산 매입,선 신고제’는 사실 전일 인베 스트먼트가 모든 물건에 관여할 수 있 도록 만들어 주었다.
완전한 정경유착이다.
카우프만이 짜증나는 건, 왜 자신들 이 먼저 진입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 때문이었다.
현재 전일 인베스트먼트가 누리고 있는 입지는 블루스톤 그룹과 자신의 성과여야 했었다.
“조나단도 들어왔지 않습니까. 회장 님이라고 못 들어오실 게 뭡니까.”
조나단.
심각하게 부러운 원숭이의 이름이 툭 튀어나왔다.
카우프만은 여전히 매입 리스트에 시선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서류 속의 글자들이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 다.
“이러면 대후도 뺏깁니다. 제 보고서 확인 안 하셨습니까?”
“우리 진정하고 차분히 생각해 봅시 다. 현 상황에서 우선순위들이 뭡니 까.,,
카우프만이 팀원들 전체에게 물었 다.
대답들이 한결같았다.
그룹 회장의 조속한 방한으로 이 나 라에 들어와 있는 다른 투자 회사들과 함께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 하나 와.
전일 인베스트먼트처럼 이 나라의 권력에 줄이 닿아 있는 자들을 고용해 야 한다는 것 하나.
대책 회의는 점점 과열되었다.
종국에는 전일 인베스트먼트와 이 나라 정권과의 묘한 관계를 세계에 알 리고,전일 인베스먼트가 쥐고 있는 달러의 출처까지 공론화시켜야 한다 는 말까지 나왔다.
나가도 너무 나간 말들.
소수 부자들의 돈일 게 뻔한 핫머니 를 건드리는 건 업계의 금기다.
그 문제를 공론화시키면 다치는 건 비단 전일 인베스트먼트뿐만이 아니 었다.
월가의 엘리트들 중에서도 엘리트들 인 그들이 그렇게까지 치달은 것은 지 천에 널린 먹잇감을 두고도 손을 못 대고 있기 때문이었다.
카우프만은 안달이 난 팀원들의 얼 굴에 대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 다.
“언론계로 이직하고 싶은 분이 참 많
군요. 우리답게 좀 갑시다. 우리답게.”
카우프만이 말했다.
“우리 팀 일은 아니지만.”
“말씀해 보세요.”
“위에 결재를 받아서 진행해 볼 건이 있습니다.”
“뭔가요.”
“우리 블루스톤 그룹과 조나단 인베 스트먼트와의 동맹입니다. 현금 유동 률로는 조나단 인베스트먼트만한 곳 이 없습니다. 이 나라에서 가장 바라 는바 아닙니까.”
“어제 마짐 조나단이 서울로 들어왔 지요. 그런데 조나단이 우리와 만나
주겠습니까? 나는 회의적 입니다만.”
“조나단도 상황 파악이 끝났을 겁니 다. 이대로라면 조나단도 손만 빨다 돌아가는 수밖에 없어요. 그도 당황하 고 있을 겁니다.”
“홈…… 꼭 회장님을 모시지 않아도 되겠군요. 조나단이라면 이 나라 정부 에 마담으로 내세울 만하니까.”
“그렇죠.”
“하면 그렇게 진행해 봅시다.”
카우프만과 팀원들은 다시 열의에 불타올랐다. 모두들 최고 실적을 쌓을 수 있는 기회의 땅에서 맨손으로 돌아 갈 수는 없다고 다짐했다.
그때 였다.
호텔 로비에서 그들의 방으로 연락 이 왔다.
< 조나단 이라는 분께서 찾아 오셨습니 다.〉
일주 건설의 최 사장으로부터 공사 가 순조롭게 진행 중이란 연락을 받았 다.
한겨울에 진행되고 있는 공사임에도 불구하고 눈이 내리지 않는 날씨가 주
요했다.
대후 그룹은 칼날 같은 세무 조사가 끝나고 워크아웃에 돌입했다.
금융 당국과 채권단에 정권의 입김 이 미치면서, 99년에 맞이할 워크아웃 이 1년 앞당겨진 것이다.
역사에 있던 대후 그룹 사장단 퇴진 식 같은 거창한 행사는 없었다. 총수 일가를 제외한 자들에 한해 그들의 자 리는 보전되었고, 앞으로도 내쳐질 계 획은 없었다.
마침 적당한 때에 핸드폰이 울렸다.
< 소식 들으셨죠?〉
〈인수 시기는 언제입니까?〉
< 어려운 단어를 배우셨네요. 병풍이 뭔 지 아시나요?〉
< 그럼요. 청와대 집무실에서 본 적이 있 어요. 그리고 부채 배분은…….〉
그때 쉬는 시간 종이 쳤다. 요즘 들 어 계속 들고 다니는 핸드폰은 교복 안주머니에 들어가기에 부족함이 없 어 좋았다.
핸드폰 크기가 계속 줄어들다가, 작 년 10월 경 PCS 시대가 열리면서 본
격적으로 휴대하기 편해졌다.
화장실 칸에서 나오자,나를 멀뚱하 게 쳐다보는 녀석들이 기다리고 있었 다.
나는 모르지만 이 녀석들은 내가 누 구인지 알고 있다.
“선,선후야. 방금 영어, 너였어?”
“핸드폰도 있어?”
“나, 1학년 4반. 우리 같은 반이잖 아.,,
내 침묵에 당황한 녀석이 황급히 내 뱉었다. 또 이상한 소문이 새로 생기
겠군.
겨울 방학과 봄 방학 사이.
몇 주간 다시 등교를 시작한 여기는 역시 번거로운 곳이었다.
그리고 번거롭기로는 하나가 더 있 다.
담임 교사로 있는 여자. 그녀가 하교 후,사무실로 가려는 나를 붙잡아 세 웠다.
여자는 웃음 띤 얼굴로 재잘재잘 쓸 데없는 주제로 말을 시작했다. 그녀가 최근에 시작한 운동 따위는 물어본 적 도 없고 관심도 없는 이야기 였다.
“선생님은 선후하고 친해지고 싶어
서 그래.”
이 여자 조금 이상하다.
원래 중학교 1학년 때 내 담임은 이 런 귀염상이 아니라 대머리 중년 남자 였다. 가발을 항상 의식해서 부자연스 러운 모습을 달고 살았던 그는, 지금 은 옆 반의 담임으로 있었다.
사소한 변화였고 어디서 나비 효과 가 발생했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 다.
“……저하고 친해지고 싶다고요?”
“관심이 많이 가지. 선후가 어른다워 서 솔직히 말할게. 선생님은 선후가 많이 걱정돼.”
“선생님. 절 보세요. 어디 가서 걱정 할 만한 일 당할 녀석입니까.”
“바로 그런 점들에 눈이 가겠지?”
그녀는 또 혼자 말하고 혼자 헤헤 웃 었다.
이십대 중반.
한창 때의 여자였다.
교사로서도 임용된 지 얼마 되지 않 아 열의가 있는 시기.
본인이 학생들 사이에서 성적 판타 지로 다뤄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던 사건이,이번 주초에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 일 없이 행동한다. 나 를 불러 놓고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라
는 강아지처 럼 굴고 있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을 일이다.
돌이켜 보면 비단 지금뿐만이 아니 다. 이 여자는 항상 내게 관심이 많았 다.
먼 복도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면 깜짝 놀라서 교무실로 돌아갔던 일도 여러 번 있었다.
확실히 나는 모두가 관심을 가질 만 한 녀석으로 되어 있긴 하다.
성인만큼 발달한 육체며, 동급생들 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 그렇다.
그런데 그것들을 감안해도 나를 향 한 그녀와 관심이 지나치다고 생각하
는건…….
무리가 아닐 것이다.
담임 여자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다. 그 말을 하기 위해서 시시콜 콜한 이야기를 계속 늘어놓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학원 가야 하니? 무슨 학원 다녀?”
“미안. 선생님이 너무 붙잡고 있지?”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 모르겠 습니다. 중요한 게 아니라면 이만 가 봐도 될까요?”
“잠깐만. 선후야.”
“예.”
“그러니까 선생님이 하고 싶은 말 은…… 학교도 좋은 곳이 라는 거야.”
“예?”
“네가 적응하기 어려운 건 당연한 거 야. 하지만 그거 아니? 친구들은 너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무서워하는 거 야.,,
이 여자,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
“그러니까 네가 먼저 마음을 열고 친 구들에게 다가서면,친구도 사귀고 학 교도 좋은 곳이라는 걸 알게 될 거야. 다음 학기에는 그렇게 하자. 선생님과
약속해 줄 수 있니?”
담임 여자는 열혈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말들을 뻔뻔하게 말했다.
미소를 유지한 채 그렇게 말할 줄 아 는 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 었다. 그녀는 그저 단순한 신임 교사였던 모양이다.
이 여자의 열의를 오해했었나.
“약속하는 거다!”
그녀가 나가는 내 뒤에 대고 다시 한 번 외쳤다. 여전히 환한 미소였다.
「차기 대통령은 어제 ‘대기업들은 3,4 개 많아야 5,6개의 핵심 주력 기 업을 남겨 놓고 나머지는 정리해야 한다’ 며 재벌 개 혁을 강력히 주장했다.」
차기 민주 대통령이 그렇게 우려하 지 않아도,시대의 흐름이 그럴 수밖 에 없었다.
대후는 물론이고 대현과 일성 또한
부도의 위기가 수차례인데, 그 아래 순위의 재벌 그룹들이야 제 허리에 달 라붙어 있는 지방 덩어리들을 쳐 내기 에 바쁠 뿐이었다.
그 날의 신문들.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국내 일간 지과 원문판 세계 일간지들을 전부 훑 어본다. 포브스지와 사설 뉴스레터들 도 함께.
전에도 말했지만.
내가 개입한 부분이 적지 않았다.
기존의 역사에서 달라진 부분.
1. 세계 투기 세력들이 아시아 금융
위기에서 오히려 큰돈을 잃었고 그 대 부분이 내 수중으로 들어왔다.
2. 우리나라의 금융,부동산 개방 시 일이 반년 일찍 앞당겨졌다.
3. 금융계에 조나단이라는 새로운 인 물이 출현했다.
내가 바꿔 놓은 역사들 중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작년 말에 있었던 사건이다.
흥콩발 충격에 기름을 부어서, 전 세 계의 주식 시장을 출렁이게 만들었다. 원래도 ‘제 2의 블랙 먼데이’로 불릴 사건을 더 키웠다.
지금까지는 내가 펄럭인 날갯짓이 두드러지게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 어디에서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튀어나올지 모를 일. 세계의 동향을 꾸준히 체크하지 않고서는, 오 히려 돈을 잃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것이 투자의 세계다.
그런데.
왜.
이 시절의 담임이 그 여자로 바뀐 걸 까.
왜?
담임 여자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 나질 않는다.
능력 치가 낮은 상태 라도.
한 사람을 미행하거나 조사하는 작 업 정도는,그래, 기본기다.
담임 여자의 이름은 우연희.
나이는 24세. 서울 출생. 2남 2녀 중 장녀.
현재 거처는 학교 부근의 3층 원룸. 동거 인 없음. 남자 친구 없음. 집안 재 산 규모는 평이한 반면 본인은 경제적 으로 낙후.
좋아하는 음식은 케이크. 미모와는
달리 자신을 꾸미는 데 관심이 없음. 사교 관계 미약.
여기까지가 담임 여자의 빈 방을 뒤 지고 알아낸 정보다.
여자의 방이라기보단 어느 청년의 방에 가까웠다.
거울도 없고 화장대도 없었다.
그녀의 몇 개 안되는 화장품들은 컴 퓨터 책상에 금년도 아버지와 찍은 사 진 한 장과 함께 가지런히 세워져 있 었다.
밀린 고지서 없이 청소 상태는 말끔 했으며,쓰레기통에는 콘돔 포장지나 임신 확인 테스트기 따위는 보이지 않
았다.
전화기 옆에 놓인 수첩에는 당연히 적혀 있어야 할 친구들의 전화번호가 없었다.
그녀는 속옷에도 신경을 쓰지 않았 다.
대형 마트에서 5개들이 세트로 파는 속옷들을 애용하고 있었다.
가장 보고 싶은 것은 그녀의 앨범이 었다.
그런데 그것을 옷장 위 구석에서 찾 았다.
사진들은 앨범에 꽂힌 상태가 아니 라 상자 속에 쓰레기처럼 겹겹이 방치
되어 있었다.
그녀의 추억거 리가 아니 었다.
그녀가 담긴 사진은 없고 다른 사람 의 사진들뿐.
흥미로운 건 사진에 담긴 시선이었 다.
어느 것 하나 사진속의 대상에게 허 락을 받고 찍은 게 없었다. 그래서 사 진은 장애물에 가로막혀 있거나 흔들 려 찍힌 게 많았다.
사진에 찍힌 날짜로 보면,대체로 성 장 과정 중의 또래들을 찍어 왔다.
사진 량은 적당히 많았다.
해마다 대상을 옮기며 꾸준히 관찰
한 기록이라 할 수 있었다.
그나마 변태적 성 도착증 따위로 연 결되지는 않았다. 피사체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신체의 특정 부위를 찍은 게 아니라 얼굴을 담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찍고 싶었던 건 피사체의 표 정 이 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그것만으로 이미 기벽(•病)이다. 정상인의 행동이 아니었다.
요즘 그녀의 관심이 내게로 쏠려 있 는 건 이 때문이 었나?
나는 이 기벽의 대상이 된 것인가? 사진 상자를 본래 자리에 두고 어딘
가에 있을 내 사진들을 본격적으로 찾 기 시작했다.
내가 찍힌 사진들은 카메라 가방 안 의 사진관 인화 봉지 속에 모여져 있 었다.
시스템상으로, 튜토리얼이라고 정의 된 시간대.
정확히는 나도 사진으로만 확인했던 초등학교 졸업식이 주 무대였다.
평화에 세상에 찌들어 감각이 무뎌 졌다고 해도, 누군가의 시선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97년 초는 전업 운동선수들만큼의 능 력치를 쌓았으며 성장도 그러했다.
당연히 사진 속의 나는 그녀를 똑바 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 뒤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 다.
아마도 그때의 나는 담임 여자를 대 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다.
초등학교 졸업식에는 많은 인파가 있었고, 내 쪽으로 그녀의 카메라가 우연히 향했다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다분했으니까.
하지만 카메라는 정확히 나를 찍고 있었다.
나는 그때 그녀에게 발견된 것이다.
졸업식 이후로의 사진은 없었다.
그녀도 내가 예민하다는 걸 눈치첸 모양인지,사진 대신 인화 봉지에 몇 개 문장들로 내 정보를 기입하는 걸로 도촬 방식을 바꿨다.
내 이름과 우리 집 주소 그리고 배정 된 지금의 중학교 명.
사람은 외모만으로는 알 수 없다.
그녀가 그런 사람이 었다.
누가 이 여자에게 이러한 기벽이 있 을 거라고 생각했겠는가. 심지어 그녀 는 귀여운 외모를 무기로 삼지도 않았 다.
카메라를 몰래 들이대는 것보다,우 연을 가장한 인연이 그녀에게는 효과
적이었다.
동성인지 연하인지를 떠나서 말이 다.
문득 담임 여자가 안타까워졌다. 이 런 사람의 말로는 좋지 않다.
지금은 미모 덕분에 어떻게든 정상 인 속에서 정상인들답게 살아가고 있 으나,시간이 흐르며 미모가 시들고 그녀의 기벽이 더욱 강해질 때면 그녀 의 기벽은 주변에 탄로 날 수밖에 없 다.
예컨대…….
그녀의 한 장뿐인 가족사진으로 관 심을 돌렸다.
다른 형제들과 어머니는 사진 안에 없고, 아버지 한 분만 우연희 옆에 어 정껑하게 서 있었다. 학교에서는 잘 웃고 다니는 우연희도 거기에서는 무 표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진을 항상 눈에 뜨이는 컴퓨터 자리에 올려 둔 것은, 벌써부터 그녀의 외로운 미래를 예정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쯤에서 조사를 끝내 기로 했다.
흔히 찾아볼 수 없는 경우지만 결론 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담임 여자의 기벽이 다른 상대에게 로 옮겨질 때까지 조용히 있는 게 답
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오래된 약 봉지를 찾기 전까 진.
「평화 정신건강의학과의원」
물론 SSRI(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계통의 약은 다방면에 처방될 수 있다.
우울증과 불안증에 이익을 볼 수 있 다. 그런데 조현병과 같은 과대망상증 에도 처방된다.
“설마……
팔선의 최고 본거지에 침투.
그들의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하는 데 성공했던 적도 있었다.
하물며 담임 여자의 자취방이나 동 네 정신과 병원을 뒤지는 일은 손전등 과 쇠꼬챙이 하나만 가지고도 할 수 있는 F급 작업이다.
더욱이 침투 다음에 컴퓨터 보안 시 스템을 뚫는 과정도 없었다.
의약분업이 시행되지 않았으며,진 료기록들은 창고에 서류로 보관되던 시절이었다.
침투해야 할 곳이 3차 진료 기관인 대학 시설이라고 해도 딱히 다르지 않 았을 일.
손전등 불빛이 정확히 그녀,75년생 우연희의 차트를 비췄다.
설마 했던 게 사실로 드러났다.
그녀는 편집증 때문에 이 정신 병원 을 찾은 게 아니 었다.
초진은 그녀 가 중학생 일 때 였다.
「병명: 통합실조증(統合失調症)」 「소견 : 위 환자는 환각,망상 등의 기 이 한 행동으로 인해 사회 활동과 교우 관계 그리고 가족 관계에 있어 큰 어려움을 겪
고 있음.」
「진료 내용:
* 가족력 없음. 환청 없음.
* 호소하는 환각은 문자-한글-의 형태 로 불시에 나타남. ( 위 환자가 주장하는 환각이 발생 시기는 보통 사교 도중이라 고 하나,호소함에 일관성이 없음.)
* 전자오락에서 다뤄지는 개념들이 환각 의주요인임.
* 전자오락을 즐기지 않는다고 하나,전 자오락이 대중문화로 떠오르고 있기에 접 근 경로가 다분함.
* 환자의 가장 큰 망상은 타인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데 있음. ]
「처방 : 1차,통합실소증의 위약(僞
藥). 효과 없음.
2차,통합실소증의 진약(眞藥).
효과 없음.
3차,진약과 개별 상담. 효과 없음.
4차,진약과 가족 상담. 효과 없음.
5차,SSRI 피하 신경 주사.
약간 효과 있음.
6차,SSRI 피하 신경 주사.
다소 효과 있음.
7차,SSRI 피하 신경 주사.
많이 효과 있음.
8차,통합실소증의 위약(僞藥),
많이 효과 있음.」
통합실소증은 이 시절에 조현병 따
위를 일컫는 명칭이고, 위약은 보통 신약 임상 실험이나 이런 정신과에서 쓰이는 가짜 약이다.
담임 여자의 처방 기록은 8차 이후로 부터 바뀌지 않았다.
꾸준히 병원에서 가짜 약을 처방받 다가 몇 년 전부터는 그것마저도 그만 두었다.
이 멍청한 여자야. 병원에 가긴 왜 가. 가족들에겐 또 왜 알려서는!
그녀가 겪었을 일과 고통이 빤히 보 였다.
처방 기록이 알려 주는 스토리는,몹 쓸 주사까지 맞고 강제 입원 위기까지
처하자 병원과 가족에게는 낫고 있다 고 거 짓말을 하는 데까지 였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눈곱만큼도 효과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의 환각과 망상은 처 방 약 같은 것으로 사라지는 가짜가 아닌,진짜니까.
“이렇게 만나나. 사전 각성자를
그것도 귀하디귀하다는 정신계 힐러 의 특성을 띄운 각성자.
허나 사전 각성자 모두가 팔악팔선 처럼 절대자로 군림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 중 적지 않은 이가 능력을 개발
하기도 전에 스스로 무너졌거나 혹은 던전 속에서 죽었다.
내가 우연희라는 이름을 듣지 못한 이유는 아마도 그 때문일 거다.
우연희는 자살하거나 던전에서 죽을 팔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