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rmacy RAW novel - Chapter 64
64화.
64화
가흔이 눈을 크게 뜨는 순간 툭 후크가 뒤에서 풀어졌다. 지후는 스웨터와 속옷을 한꺼번에 위로 끌어 올렸다. 품이 큰 스웨터가 쉽사리 몸에서 벗겨지고 머리끈도 덩달아 풀어졌다. 동그란 맨가슴을 내려다보며 지후가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 예쁘기도 하지.”
가흔이 손을 들어 가슴을 가리자 허벅지에 팔을 두르고는 아이처럼 가흔을 번쩍 안아 올렸다. 가흔이 흠칫 놀라면서 몸을 붙이자 맨가슴이 지후의 뺨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순간, 지후는 눈앞이 아찔해졌다. 가흔의 머리가 지후보다 훨씬 위로 들렸다. 가흔은 균형을 잡으려 한 손은 지후의 어깨를 짚고 다른 손으로는 가슴을 감쌌다.
“가리지 마. 손 내려.”
지후가 움직이며 몸이 흔들리자 가흔이 상체를 바싹 기울이며 반사적으로 손을 내려 지후의 양어깨를 붙잡았다. 놓치지 않고 지후가 입을 벌려 가슴을 크게 물었다. 가흔이 튕기듯이 몸을 움직였다. 흡입이 깊어지자 견딜 수가 없는지 물기가 남은 지후의 머리에 턱을 대어 문질렀다. 지후의 어깨를 잡은 손에는 바짝 힘이 들어갔다. 그럴수록 지후는 더 갈증이 일었다. 코와 입으로 들어오는 살내음에 어지러워 호흡을 잃을 지경이었다. 부드럽게 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몸이 통제를 벗어났다. 능숙하게 잘 해내고 싶었는데 벌써 긴장감으로 몸이 굳고 단전 뒤편부터 뜨겁게 달아올랐다. 번갈아 가슴을 물자 가흔이 으흑, 울듯이 소리를 냈다.
가흔을 침대에 눕히고 지후가 셔츠를 벗어던졌다. 완벽하게 짜여진 근육이었다. 올려다보는 가흔의 눈길을 읽었는지 지후가 희미하게 웃었다.
가흔의 맨가슴에 지후의 살갗이 닿았다. 지후가 움직일 때마다 탄탄한 근육이 느껴졌다. 울어서 부은 눈에 입을 맞추고 거칠게 빨려 아릿한 가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입술은 관자놀이에 머무르다 턱을 미끄러져 목덜미, 그리고 다시 가슴 위로 돌아왔다. 부드럽게 혀로 굴리며 팔 하나를 등 뒤로 넣어 좀 더 밀착시켰다.
가흔이 가슴에 머무르는 입술에 정신이 팔린 사이 바지가 벗겨지고 지후의 손바닥이 허벅지 부드러운 살결을 쓸어내렸다. 가흔은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배꼽 주위를 핥다가 입술이 둔덕 위로 내려왔다. 다시 위로 쓸어 올라갈 때 가흔은 몸속 깊은 곳까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지후가 트레이닝 팬츠를 벗고 몸을 겹쳤다. 팔을 등 뒤로 넣어 가흔을 안았다. “가흔아.” 부르는 목소리에 눈을 떴다. 뜨거움을 품고서 지후가 가흔을 바라보았다. 결합하는 순간 가흔은 정수리까지 밀려드는 감각에 몸을 떨었다.
“아파 ” 겨우 물었지만, 지후는 난생 처음으로 경험하는 강렬한 자극에 이마를 찡그렸다. 가흔이 고개를 젓자 지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릿한 통증이 먼저 그리고 뒤이어 민지후의 체온이 가흔의 몸속 깊이 번져 나갔다. 시야를 가득 채운 남자의 상체는 크고 강인하고 건장했다. 한계까지 빠듯하게 벌어지는 느낌에 가흔은 목을 뒤로 젖히고 숨을 멈추었다.
“가흔아.”
속삭이는 부름에 숨을 천천히 들이켰다. 지후는 가흔의 이마를 쓸고 쇄골을 훑어 내렸다. 목덜미에 입을 맞추며 애원하듯 속삭였다.
“조금만, 가흔아. 조금만 더.”
가흔이 가느다랗게 숨을 내어 쉬었다. 어떻게 더, 생각했지만 한계를 지우며 지후가 완전히 들어왔다. 참았던 신음이 짧게 터졌다.
몸이 흔들리고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봄 하늘이 시야를 덮고, 분꽃 이파리가 요정처럼 팔랑거렸다. 더 이상은 안 된다고 정말 한계라고 생각하며 가흔은 지후의 눈을 마주하였다.
이런 눈으로 여자를 볼 수 있는 남자였구나.
소름이 돋을 만큼 색정적인 눈이었다. 아름다운 남자가 터질 것 같은 욕망을 억누르고 가흔에게 맞추어 주느라 이마에 땀이 배어났다. 가흔은 손을 들어 젖은 이마를 눌러 주었다. 지후가 가흔의 손을 잡아 깍지를 끼웠다.
“이번에는 멈추지 못할 것 같아.”
지후가 애써 태연한 목소리를 만들었다.
절정에서 가흔은 카메라의 점멸하는 붉은빛을 그리고 뒤이어 터지는 플래시를 보았다.
가흔아,
내가 너를 구해 줄게.
어린 안소니의 목소리가 가슴을 가득 메웠다. 가흔은 울음을 터트리며 지후를 끌어안았다.
격정이 한차례 지나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지후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하는 무안함이었다. 가흔은 등을 보인 채로 일어났는데 지후가 뒤에서 손을 뻗어 허리를 감았다.
응 , 돌아보는 가흔을 가볍게 밀어 도로 눕히고 지후가 뒤에서 몸을 붙였다. 순식간에 몸이 다시 구속되었다. 다리를 먼저 누르고 팔을 들어 가슴 위로 손을 올렸던 것 같다. 처음엔 지후의 팔을 잡아떼어 내려 했는데 지후의 손등 위로 손이 닿는 순간 가만히 닿은 채로 멈추었다. 지후의 맨살이 닿는 몸 전체가 너무 따스했다. 움직이지 못하도록 누르는 무게감은 마치 불안하게 기울어지던 가흔의 세계의 중심을 잡아 주는 것만 같았다.
뒷목덜미에 지후가 깊게 입을 맞추었다. 땀에 젖은 피부를 핥으며 이미 긴장하여 곤두선 가슴을 쓰다듬었다. 가흔이 으응, 낮게 소리를 흘렸을 때 몸이 휙 돌려지고 두 번째의 결합은 예고 없이 시작되었다.
아파.
가흔이 지후의 가슴을 두드렸다. 지후가 귀에 대고 속삭였다.
“미안해.”
그러면서도 더 깊이 파고들었다.
아, 탄식을 뱉으며 지후가 드문드문 거친 숨을 내쉬며 속삭였다.
“너무 좋아서 도저히 떨어질 수가 없어.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무슨, 가흔이 눈을 크게 뜨자 지후가 입을 맞추며 찡그리듯 웃었다.
“서툴러도, 용서해 줘. 가흔 씨.”
가흔이 붉게 달아오른 남자의 얼굴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팔을 뻗어 등에 손을 가볍게 올렸다. 안간힘을 다해 버티느라 잔뜩 긴장한 근육과 그 사이로 젖어드는 땀 위로 손가락을 미끄러뜨렸다.
“괜찮아요. 어떻게 해도 난 너무 좋을 거 같아.”
지후가 이마를 맞대고 웃었다.
“용기가 나네.”
뺨에서 귀로 입술이 쓰다듬듯이 움직였다. 귓바퀴를 쓸어내리고 목덜미에 자잘하게 입을 맞추었다. 마치 부드러운 꽃이파리처럼 간질이며 내려간 입술이 몇 번이고 정성스레 가슴을 핥고 부드럽게 삼키길 반복했다.
가흔이 지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팔을 쓰다듬고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근육이 잡힌 가슴을 만졌다.
“멋지기도 하지.”
했던 말을 돌려주듯이 말하자 지후가 고개를 숙여 정점을 깨물었다. 통증보다 더 강한 열기가 그물처럼 가흔을 뒤덮기 시작했다. 허리를 약간 들어 올리자 지후의 손이 엉덩이를 받쳤다. 강하고 단단한 진입이 서서히 시작되었다. 가흔은 힘들게 호흡했다.
“조금……, 버거워요.”
지후가 하아, 떨림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숨을 내쉬었다. 난감해하며 어쩔 줄 모르는 지후가 너무 좋아 가흔은 심장이 뻐근해졌다. 눈앞이 흐릿하게 젖었다.
“그래서 좋아요. 너무 좋아.”
지후의 눈동자에서 불꽃이 튀었다. 불씨는 가흔에게 옮아와 몸을 태울 듯 뜨거워졌다.
너무 좋아. 민지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이렇게 감정이 부풀다간 언젠가 몸과 마음이 동시에 뻥 터져 버리지 않을까 두려울 만큼,
민지후, 나의 안소니…….
***
지극히 화려하고 상업적인 공간이었다. 천장에 수없이 많이 붙어 있는 조명들이 망막을 강하게 자극하였다. 수술실의 밝고 담백한 흰빛에 익숙해진 눈이 노랗게 퍼지는 조명을 받아들이며 급격히 피로해졌다.
승준은 가죽 소파에 조금 더 몸을 밀어 넣고 서빙한 차를 한 모금 삼켰다. 승준의 맞은 편 벽에는 높은 천장까지 닿을 만큼 큰 사이즈로 제작된 패널에서 패션쇼 장면을 반복하여 노출하고 있었다. 색을 의도적으로 빼고 해상도를 거칠게 송출하여 전체적으로 희끄무레한 푸른빛이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여자 모델들이 런웨이를 걸어 앞으로 나왔다. 마치 승준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걸어 나오는 듯 점점 모습이 커지다가 화면에서 얼굴이 잘리며 사라져 갔다.
“오빠, 이거 볼래 이거. 저번에 내가 지하철에서 도둑맞았던 거. 그거 업그레이드 버전이네. 훨씬 더 예쁘다. 어때, 이 모양이 나아 아님 이거 ”
승지가 체인이 달린 자그마한 백을 두 개 들고서 승준의 눈앞에 디밀었다.
“똑같아.”
뒤에 서 있던 수현이 웃으며 말했다.
“왜 똑같아요. 다르지. 승지랑 내가 두 개까지 범위를 좁혔으니까 승준 씨가 선택해 줘요. 우린 계속 봤더니 다 예쁘기만 해요.”
승준이 고개를 들었다. 백은 쳐다보지 않고 승지의 눈만 보며 말했다.
“오른쪽.”
승지가 “그으래 ” 하며 양어깨에 하나씩 걸고는 방향을 휙휙 돌려가며 거울에 비추어 보았다. 승준은 승지의 모습이 성가셔 화면만 쳐다보았다. 다시 같은 모델의 캣워크가 시작되었다.
두 시간 전, 점심을 먹자며 수현이 전화를 걸어왔다. 승준은 가흔의 답을 기다리며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내려놓고 무기력하게 일어서 약속 장소로 향했다. 병원을 나가는 동안 마주친 후배들이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얼굴이 창백해 보인다는 말도 하였다. 몸이 안 좋냐고 물었는데 실은 어디가 안 좋은지도 알 수 없었다. 목소리가 좀 잠긴 것 같았는데 늘 피로감에 젖은 몸은 한두 군데씩 정상이 아니었다.
호주머니를 뒤져 한 알 남은 소염진통제를 삼켰다. 수현이 점심 장소로 강남 지하철역과 연결된 백화점을 말했는데, 백화점에도 식당가는 있을 테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승준이 오기 편한 곳으로 선택했나, 하고 생각했었다.
승준을 기다리는 동안 쇼핑을 하겠다던 수현에게 백화점 정문을 들어가며 메시지를 보냈다. 수현이 매장명으로 답했다. 안내원에게 한 차례 묻고 백화점 에스컬레이터 근처에 세워진 안내판과 맵을 보고서 매장을 찾아 들어갔더니 승지가 있었다.
승준을 보며 승지가 활짝 웃었다.
“오빠, 수현 언니가 나도 밥 사 준다고 했어. 그런데 매장 구경만 하려고 했는데 꼭 하나 사 준다잖아. 나 그때 도둑맞은 이야기했거든.”
승준은 기가 막혀 얼굴을 잔뜩 굳히고 승지에게 다가갔다. 수현이 승준을 막아섰다.
“여기 어머니도 자주 오시는 곳이에요. 내가 골라 주면 더 편할 테니 승준 씨 안에 들어가 있어요.”
수현은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에 예민하였다. 매장 직원들 앞에서 어떤 작은 잡음도 만들지 말라는 경고로 들렸다.
“매니저님.”
수현이 직원 중 한 명을 향해 천천히 단어를 끌며 말했다. 긴장할 때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상태를 숨기기 위한 습관이었다.
“남자들은 여자들 쇼핑 재미없어 하잖아요. 안쪽으로 안내 부탁드려요.”
승준은 매니저가 이끄는 대로 소파에 앉았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아 배가 고팠지만 차와 같이 서빙된 쿠키는 건드리지도 않았다.
승준이 참여한 논문이 통과된 이후부터 수현이 가장 흥분했다. 아버지를 설득하는 건 시간문제라 큰소리쳤다. 아니, 아버지가 먼저 승준 씨를 탐낼 것이라 하였다.
서진국 병원장은 움직임이 없었지만 서병원의 부원장, 수현의 어머니가 승준을 불렀다. 부원장실에 앉아 수현의 어머니는 냉정한 눈으로 승준을 살폈다.
“축하해요. 같은 의사로선 놀랍고 대단하다 칭찬하고 싶고, 서병원을 이끄는 사람으로선 탐나는 인재예요. 그런데 내 딸 남편으로는.”
부원장이 품위 있는 웃음을 보였다.
“그래요, 미남이네요.”
승준은 고개를 숙였다.
“병원장님은 구체적인 사정은 모르세요.”
그 말은 부원장은 모두 알고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