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63
63화 자동차 촬영
“뮤즈?”
[축하드립니다. 첫 뮤즈가 탄생했습니다.] [뮤즈와의 친밀도에 따라 받는 영감도가 달라집니다.] [뮤즈는 1000일 동안 지속되며 기간이 만료되면 재설정이 가능합니다.] [현재 뮤즈는 총 1명중 1명이 등록되었습니다.]순간적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아아악! 이게 아닌데. 이렇게 충동적으로 정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는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다. 해답지처럼 보이는 게 바로 앞에 있고 답은 모르겠고 하니까 말이 나온 것 같다. 와,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이 애가 내 뮤즈로 확정되는 건가? 무슨 말부터 해야 하지?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
“전 음악가가 아닌데요?”
그런데 에브리아는 이런 말을 하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아, 완전히 의사가 전달이 안 되는 내 능력에 찬사를 보내자. 난 내 작업을 같이할 모델을 말하는 거였다고 그녀에게 변명했고 그렇게 이 일은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난 미친 듯이 뮤즈에 대해서 다시 검색하기 시작했다. 현실의 뮤즈는 연인일 수 있지만, 영화 쪽은 달랐다. 영화 관련해서 뮤즈와 비슷한 페르소나는 높은 확률로 동성일 가능성이 높은데 이 이유가 자신의 내면세계를 대변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상 유명한 뮤즈와 예술가의 관계를 봐도 동성이 꽤 존재했고 이성일 경우도 평생 플라토닉한 관계를 유지한 경우도 많았다. 한 마디로 그녀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거다.
“여기 좀 와볼래? 뭐 좀 같이 생각해보자.”
어느 정도 머릿속이 정리가 된 난 에브리아에게 말을 했고 그녀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몇 가지 아이디어 같은 게 떠올랐다. 이게 영감인가? 아니 근데 생각보다 확하고 오는 건 없다. 난 뮤즈를 정하면 무슨 대단한 작품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런 건 아닌 거 같다.
말하자면 소소한 아이디어가 자꾸 생각이 난다고 할까?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난 며칠 뒤에 있을 촬영을 위해 일부의 뜻만 통하는 그녀와 얘기하고 또 얘기했다.
***
마침내 촬영 날이 됐다. 촬영은 총 이틀에 걸쳐서 찍을 예정이었다. 난 장현호 감독에게 촬영에 필요한 인원과 소품 같은 것을 말했다. 솔직히 이번 사진이 메인으로 쓰일 것 같지는 않다. 이런 건 광고팀에서 많이 도와줘야 할 것 같은데 순전히 나한테 모든 것을 맡겼으니··. 아마 장현호 감독도 말은 그렇게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을 것 같다.
“혹시 장현호 감독님하고 친척이세요?”
“아닌데요.”
여자 스텝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물어 난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스텝은 의심쩍은 듯 중얼거렸다.
“그런 소문이 돌아서요. 장현호 감독님이 누구한테 굽히고 들어가는 스타일이 아니신데 이번 일은 모든 게 다 길승우 작가님한테 맞춰주고 있잖아요. 그래서 저희 스탭들끼리 얘기하던 중에 누가 먼 친척이라고 하더라고요.”
난 스텝의 말에 대꾸할 말이 없이 그냥 웃기만 했다. 술을 한 번 같이 마신 사이이긴 하지만 전혀 아는 사이가 아니다. 전화번호도 최근에 알았고··. 그런데 왜 이렇게 편의를 봐주는 줄 모르겠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전, 감독님 밑에 일하는 도현지라고 합니다. 장현호 감독님과는 일한 지 3년 됐고요. 오늘 길 작가님이 요구하시는 거 무조건 들어주라는 말을 듣고 오게 됐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악의는 없어 보이는데 말이 너무 많다. 옆에 달라붙어 이것저것 열심히 물어보며 챙겨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보인다.
“근데 오늘 모델 요청할 때 보니까 외국 모델분을 직접 데리고 오셨는데 유명하신 분인가요? 처음 봐서요.”
“저기, 같은 소속사 모델입니다.”
“아아 같은 소속사 분이시구나. 좀 있다가 갑자기 아이돌 데뷔 같은 거 하는 건 아니죠? 연습생 챙겼다고 나중에 말 들을지도 몰라서요.”
“그런 건 아니에요.”
첫 단추를 잘 끼워야 촬영이 성공적으로 끝날 것 같다. 내 뮤즈에게 처음으로 받은 영감치고는 부족한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된다. 받은 영감이라는 게 화장대였다. 나만의 공간이라는 의미로 화장대를 가져다놓고 그곳에서 화장하는 모습을 찍기로 했다. 물론 배경을 자동차와 화장대와 어울리게 해서 말이다.
난 사물을 찍는다는 것에 대해 선생님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뭘 찍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야. 어떤 마음으로 찍는지가 중요한 거지. 승우야, 넌 이번 사진을 어떤 마음으로 찍고 싶은 거지?”
“일단은 광고 사진이니 사람들에게 자동차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찍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그 마음에 집중하고 길을 찾아라. 네가 찍고 싶어 하는 사진은 드러나게 하고 싶은 것이지. 사람들에게 잘 인식이 되려면 감각을 이용해.”
“감각이요?”
“사람들을 감각을 이용해서 환경의 변화와 상황을 감지하지. 감각을 이용하면 뇌리에 깊게 박히게 만들 수 있단다.”
선생님의 말씀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게는 너무 어렵다. 일단은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찍는 방법 밖에는 없다.
“배경은 합성이죠? 지금 겨울이고 하니까 화사한 이미지를 찍을 장소가 없긴 하겠네요.”
“네, 흩날리는 꽃잎을 배경으로 찍고 싶은데 지금 상황이 불가능하니까요.”
커다란 실내 촬영장엔 특수효과를 넣을 블루스크린이 마련되고 자동차와 화장대, 그리고 그곳에 앉은 에브리아가 보였다.
“자동 보정.”
특성 ‘빛의 마술사’도 장착하고 아이템도 썼다. 일단 사진을 찍어보니 현장의 중요함이 큰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보정을 해도 원판이 이상하다면 안 좋게 나올 확률이 높은 것이다. 처음 자동차 촬영을 하면서 망설였던 것은 조명 문제였다. 자동차 라이트, 옆문, 백미러같이 반사가 안 되는 부분이 없기 때문에 내 실력으로는 힘들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조명은 괜찮나요?”
현지 씨가 물었다. 다행히 이번에 촬영을 하는 스튜디오는 자동차 광고사진 촬영만 전문으로 하는 외부 스튜디오였다. 덕분에 조명 문제는 이곳의 스텝 분들의 노력으로 커버가 가능했다. 난 심호흡을 하고 셔터를 눌렀다.
“에브리아, 멈추지 말고 움직여. 직접 화장을 하는 것처럼.”
이번 컨셉은 화장하고 있는 에브리아의 모습에 그녀의 옆에 자리한 자동차를 투영시키는 것이었다. 인물을 통해 주위 상황을 표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해내야 했다.
“립스틱 칠하는 건 좋은데 입술 좀 얌전히 하고, 시선은 좀 더 왼쪽으로. 좀 더 자연스럽게.”
마침내 기다리던 문구가 눈앞에 튀어나왔다. 난 촬영을 멈추고 결과물을 스텝들과 함께 바라봤다. 이미 준비해 놓은 배경이 있어서 부족하게나마 합성을 하자 사람들의 반응이 좋다.
“괜찮은데요? 좋은 사진 나올 것 같아요. 배경을 좀 더 손보면 완벽하겠는데요.”
“왠지 모델이 차를 의인화한 느낌이 나네요. 아? 그게 의도라고요? 그런 느낌이 나요.”
“유리로 만들어진 화장대를 준비해 달라고 했을 때는 왜 그런가 했었는데 이유가 있었네요.”
일단은 잘 넘어간 것 같다. 내가 에브리아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자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다음은 가족에 대한 사진. 장현호 감독님의 말에 의하면 하형민 작가님은 개를 통해서 가족을 표현했다는데 난 그 흉내를 내기는 힘들 것 같다.
“의인화 좋아하시나 봐요. 사람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 가족 테마 자동차 사진이라··.”
“자동차들이 각자 특징이 있더라고요.”
이번 컨셉은 자동차들끼리의 소풍. 사람은 나오지 않고 푸른 들판에서 자동차 세 대가 주차되어 있다. 파라솔이 놓여 있고 돗자리 위에는 많은 음식이 놓여 있다. 오디오도 놓여 있고 커다란 공도 놓여 있다. 하지만 사람은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것처럼 보이고 또 어떻게 보면 사람의 위치를 차가 대신하고 있는 거로도 보인다.
“자 시작합니다.”
난 셔터를 눌렀다. 사람이 없이 하는 촬영이라 쉽게 끝날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음식 위치 좀 바꿔 주세요. 생각보다 색 대비가 잘 안 되네요.”
“안 되겠다. 저 김나는 스튜 같은 것 좀 치워주세요.”
겨우 괜찮은 사진을 몇 장 찍고는 결과물을 확인했다. 난 손톱을 물어뜯으며 사람들에게 물었다.
“어때요?”
“괜찮긴 한데··, 사진만으로는 모르겠네요. 광고 카피가 괜찮은 게 붙으면 좋을 것 같기는 한데.”
“JR의 가족차 같은 느낌으로 문구 집어넣으면 사진과 같이 해석될 여지가 있으니 좋을 것 같기는 합니다. 우리에게는 좋은 사진이네요. 생각할 여지가 많으니까.”
겨우 한 단계 넘어간 것 같다. 부담을 가지지 말자고 속으로 계속 생각을 해도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두려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마지막 촬영은 쉽게 가기로 했다. 자동차의 스타일에 관한 테마. 난 후면을 찍기로 했다.
“흐음, 스타일에 대한 테마인데 왜 후면을 찍는 거죠?”
도현지 스텝이 다가와 물었다.
“일단, 제가 자동차에 대해 잘 아는 게 없어요. 자료를 많이 보긴 했는데 대체 어떤 스타일을 주제로 잡을까 생각하니까 답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에, 좋은 고백은 아니네요. 누구보다 차를 잘 아셔야 할 텐데. 근데 왜 후면을 찍는지에 대한 설명은 해주시지 않으셨어요.”
“음, 아까하고 비슷한데 인물을 생각하고 주제를 잡았어요. 인물의 뒷모습은 거짓말을 하지 못하거든요.”
“그래요? 어떤 점에서요?”
“사람은 자신의 얼굴로 표정을 짓고 손짓을 하고 몸짓과 발걸음으로 자신을 표현하지만 뒷모습은 방치되어 있어요. 그 방치된 뒷모습이 어떻게 보면 되게 진실해 보이거든요. 실제로 뒷모습만 전문으로 찍는 사진작가들도 많아요. 그래서 전 차의 뒷모습을 찍어서 보이지 않는 곳까지 괜찮다는 면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어둑어둑한 조명에 인공 비가 위에서 떨어지고 있다. 이 배경도 나중에 합성할 예정이었다. 난 야외 촬영을 하고 싶었지만, 온도가 낮아 물을 뿌리다가 얼 가능성이 커 실내 촬영으로 돌린 것이었다.
물방울이 차를 적시고 붉은 후면등이 켜져 있다. 난 빛 번짐을 일부러 사진에 담았다. 비 오는 날 사람이 보는 눈과 흡사한 장면을 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오랜 시도 끝에 겨우 만족할만한 사진이 나왔다.
***
일을 끝내고 온 장현호는 오늘 길승우 작가의 촬영 현장에 따라간 도현지를 불렀다. 그녀의 안목은 장현호가 인정할 정도였기 때문에 일부러 그녀를 촬영 현장에 내보낸 것이었다. 그녀가 도착하자마자 장현호는 그녀에게 물었다.
“어땠어?”
“뭐랄까 그분 스타일 특이하던데요. 그림으로 치자면 동양화 느낌이랄까. 뭐 있잖아요. 공백이 많아서 이리저리 생각해볼 수 있는 거리를 만들어주는 사진을 찍더라고요.”
“좋아, 나빠? 내가 그 사람이 찍은 사진으로 윗분들 설득할 수 있겠어?”
“그러니까 사진만으로는 힘들지도 몰라요.”
“왜? 이상해? 형편없어?”
장현호의 말에 도현지가 그를 빤히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감독님이 더 이상한 것 같아요. 뭘 그렇게 안절부절이세요.”
“잘 찍었으면 좋겠거든. 그 구닥다리 사진 포스터 취소하고 다른 걸 넣고 싶어서 길승우 씨를 불렀어. 그런데 이게 순전히 내 안목이란 말이지. 그냥 과자 광고 보고 필 받아서 요청한 건데 내가 너무 무리한 것을 주지 않았나 싶어서.”
“확실히 그 사람, 자동차에 대한 이해력은 부족해요. 하지만 사진 자체는 나쁘지 않았어요. 음, 오히려 좋다고 해야 하나? 확실히 감독님이 선호할만한 사진을 찍더라고요.”
말을 마친 도현지는 오늘 찍은 작업물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장현호는 컴퓨터의 모니터를 뚫어지라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여자 테마는 좋네. 난 스타일 테마도 괜찮아. 뒷모습은 꾸미지 않다는 문구는 길승우 씨가 생각한 거야?”
“맞는다고 해야 하나, 아니라고 해야 하나. 그분이 그런 생각으로 사진을 찍었다고 해서 제가 넣었어요. 문구는 이거 비슷하게 가면 될 것 같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전 가족 테마가 마음에 들더라고요. 뭔가 재치 있어서.”
“된 거 같다. 야, 애들 불러서 사진 좀 보정하고 사진에 넣을 문구 생각해보자. 이 기회에 JR 광고 관련해서 내가 좀 가지고 와야겠어.”
장현호는 길승우의 사진을 보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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