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 Me Up! RAW novel - Chapter 162
163. 모자이크 워(2)
짙은 혈향이 바람을 타고 흘렀다. 일반인이라면 절로 코를 움켜쥘
만한 비린 냄새. 그러나 우리는 아 무렇지 않게 흘려버렸다. 이 정도에 질질 짤 때는 지났다.
’흐음.’
나는 바퀴 밑을 내려보았다.
박살 난 쌍두마차 아래에는 푸른 액체가 걸쭉하니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푸른 액체는 뜨거운 김을 뿜어내 는 병사의 피와 섞이면서 보랏빛으 로 변해 출렁거렸다. 그 옆에는 알 갱이가 된 유리 파편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마력 물약이야. 수백 병은 되겠는 데.”
카티오가 손가락에 액체를 묻히더 니 말했다.
그 시선이 한창 혈투가 진행되고 있는 전장으로 향했다.
“저쪽으로 옮겨지고 있던 거 같아. 마법사들의 마력 보급을 위한 게 아 니었을까?”
“그러고 보니……
제나가 오른쪽으로 눈길을 돌렸 다.
나도 따라서 보았다. 하늘을 각양 각색으로 물들이고 있던 마법의 빛 이 희미해져 있었다.
’보급을 끊기 위함인가.’
마법을 사용하는 측은 주로 교단 군인 것 같다.
진행 방향이 좌측에서 우측이었으 니.
‘기본적으로 병력이 반절 이하. 마 법사의 숫자도 적은 데다가,진형도 붕괴됐군.’
나는 전장 구도에 대해 간단히 평 을 내렸다.
한 마디로.
‘답이 없는데.’
우리가 마력 물약들을 부숴버린 탓에 마법 포격이 곧 끊기겠지만, 대세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 같았다.
여전히 교단군은 압도적인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처음 소환됐을 때, 이미 패퇴전의 양상이었던 것이다.
“전쟁에 관여한다고? 힘들 거 같 은데. 아무리 우리가 일당백이라지 만,수천 명을 상대로는 수레 앞의 개미 아닐까?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잖아. 다른 멤버를 불러와도 비슷할 거고.”
,,그럴 수도 있지.”
바스락.
나는 발밑의 유리 조각을 밟아 부 쉈다.
‘정보가 더 필요하다.’
임무의 클리어를 기다렸다.
복귀한 뒤 정보를 가다듬을 필요 가 있었다.
내 방의 공략 데이터와 대조하 면…”.
[띠링!]
[임무 유형이 변경되었습니다.] [임무 유형 一 불명]
[목표 – 알 수 없음.]
낯선 메시지가 떠올랐다.
갑작스런 임무 유형의 변경.
……끝이 아닌 것 같은데요?” 제나가 머리를 배배 꼬았다.
키샤샤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위를
보았다.
“불명? 이건 무엇이냐. 알 수 없다 고 나와 있는데.”
나는 마차 바퀴에서 일어났다.
임무의 끝이 아니다. 탐색 유형이 아닌데.
‘딱히 신경 쓸만한 건 안 보인다 만.’
암석과 초원,고지대와 저지대가 어지럽게 섞여 있는 필드.
필드 중앙의 전장을 제외한다면 눈에 띄는 오브젝트나 임무와 관련 된 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있었다면 우리가 방금 처리한 이 보급 부대 들.
모두가 나를 보고 있다.
지시를 기다리는 것이다.
’귀찮게 됐군._
정보가 감춰져 있다.
불명이라니.
‘임무 목표를 알아서 찾으라는 건 가.’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오빠,어떻게 해요?,,
“여길 조금 더 둘러봐야지. 어쩌겠
냐.”
나는 소매를 탁탁 털어낸 뒤 벨트 에 칼집을 고정시켰다.
“준비해라. 좀 더 높은 곳에 올라 갈 거야.”
때마침 길 저편에 완만한 언덕이 있었다.
처음에 올랐던 언덕보다 높으면서 시야각이 넓다. 전장의 상황을 한눈 에 살필 수 있을 것이다. 이러니저 러니 해도, 이번 임무에 저쪽의 전 투가 깊이 관여되어 있단 점은 확실 했다.
채비를 갖춘 우리는 즉각 두 번째 언덕에 올랐다.
언덕을 오르는 와중에도 전투는 시시각각 진행되고 있었다. 보병대
의 전열이 붕괴됐고,지휘관으로 보 이는 듯한 고위 장교들이 속속들이 낙마하며 죽어 나갔다. 오른편에 휘 날리는 깃발의 수가 급격히 적어졌 다.
언덕 꼭대기에 오르자,전황이 더 욱 확실해졌다.
‘밸런스가 심하게 안 맞는데.’ 교단군은 압도적인 병력 숫자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
정면의 보병대로 밀어붙이면서,
후위의 기병대를 출진시켜 옆면을 친다.
회전(會戰)을 상징하는 정석이자
황금 전술. 망치와 모루였다.
’저기 지휘관이 꽤 우수하군.’
훈련 상태도 괜찮고.
수천 명의 병력이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달리 말하자면,반대편 병 력들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
투쾅!
공중에서 맴돌던 거대한 화염구가 병력 한복판에 직격 했다.
중앙에 있던 병사들은 시체도 못 건진 채 소멸했고, 근처에 있던 놈 들은 운이 더 안 좋았다. 쌩으로 불 타올랐으니. 마법 포격. 이것 또한
교단군의 작품이었다.
“저기에 갈 수 없는 거,확실하
죠?”
“궁금하면 시험해봐.”
제나가 곧장 전장 방향으로 화살
을 쏘았다.
회전하며 나아가던 화살촉이 투명 한 벽에 가로막혀 조각났다.
“맞네요. 그냥 볼 수밖에 없군요.” 제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활을 등
에 걸쳤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보 는 것밖에는.
물론 이런 상황에서는 상황을 지
켜보는 게 최선이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수십 분이나 전투
를 관람했다.
’현실감이 없군.’
멀리서 보니 그렇겠지만.
마치 판타지 영화의 대규모 전쟁
CG를 관람하는 것 같다.
딱히 지루한 느낌은 들지 않았고,
영화관에 온 느낌마저 들었다. 팝콘이나 콜라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가장 재밌는 게 싸움 구경이라잖 아.
“어라?
한참을 보던 도중,제나가 눈을 깜 빡였다.
“왜 그래?”
“손이 잠깐 희미해진 것 같았는데 요. 이봐요,이렇게!”
제나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반투명해진 팔뚝이 햇빛을 투과하 고 있었다.
“이거,그거 맞죠! 대기실에 돌아 간다는 신호. 예전에 탐색 임무에서 이런 일이 있었는데!”
”맞아. 그런 일이 있었지.”
희미하게 기억이 났다.
6층이었나. 탐색 임무를 진행했을
때,복귀 전의 신호로 몸이 투명해 진 적이 있었다.
제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휘유, 다행이네. 꼼짝없이 갇히는 줄 알았어요.”
“궁사,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돌아간다는 거예요. 저쪽의 싸움 이 끝나면 복귀하는 것 같은데요?”
제나가 전장을 가리켰다.
오랜 시간이 지나 전투도 종전에 접어들었다.
후퇴하던 병력들은 뒤에서 난입한 군세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한 채 떼 죽음을 당하는 중이었다.
,,어,그러니까……
“강한 인간이다.”
키샤샤가 송곳니를 드러냈다. 짐승의 눈이 후방을 향하고 있었
다.
나도 안력을 집중했다.
바로 알 수 있었다. 후퇴 병력을
급습한 그들은 드넓은 전장에서도 명백히 눈에 띄는 존재들이었다. 평 범한 말보다 배는 커다란 흑마를 타 고,전신을 가린 칠흑색 플레이트 메일을 입은 채 대검을 휘두르는 저 들은 한 기,한 기가 전차와도 같았 다.
‘저놈들은……;
본 적 있다.
싸운 적도 있었다.
15층의 호위 임무, 후반부에서 입
구를 틀어막고 있던 흑기사.
수십 기의 흑기사들이 퇴로를 막
은 채 병력을 구석으로 몰아넣고 있 었다. 인간을 초월한 움직임. 같은 입장으로서 알 수 있다. 저들은 우 리와 동류였다.
그 숫자, 약 삼십.
‘어디서 나타났지?’
처음에 볼 때만 해도 없었던 거 같
은데.
“저놈들은 싸울 맛이 나겠군.”
벨키스트가 히죽 웃었다. 흑기사단은 병력의 퇴로를 막은
채 일방적인 학살을 벌이고 있었다. 병사 몇 명이 반항했지만,곧 개미
처럼 짓밟혀 바스라 졌다. 전방으로 는 밀려 들어오는 교단의 군세. 결 과는 정해졌다. 전멸이었다.
‘대체 뭘 보여주려는 거지?’
나는 손목을 살폈다.
투명한 젤리처럼 변한 살갗을 빛
이 뚫고 지나갔다. 몸이 점차 희미 해지고 있었다.
복귀의 전조였다. 제나 말대로, 저
들이 완전히 전멸하면 우리도 대기 실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제나,키샤사!”
“네?”
“말해.”
“전장을 좀 더 유심히 봐줘. 눈에 띄는 게 있다면 바로 알려라. 느낌 이 안 좋아.”
두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해.’
마스터의 직감이랄까, 연계 퀘스 트라 해도, 굳이 이렇게 시간을 끌 필요는 없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나도 부지런히 살폈지만,거리가 꽤 멀다.
전체적인 흐름은 알 수 있어도 세 부적인 것은 보이지 않았다.
심안의 힘으로도 여기까지였다. 하지만 제나와 키샤샤는 다를 것. 유의미한 보고를 받을 수 있을 것이 다.
“한,’
백마를 탄 채 검을 휘두르던 장군 이 죽고, 병력이 사 분의 일로 줄어 들었을 때,키샤샤가 입을 열었다.
“찾았나?”
“그때의 인간 암컷이야.”
“무슨 소리냐. 인간 암컷이라니.” “나를 귀찮게 굴었던 암컷을 찾았
어. 인간을 살려달라느니 뭐라느니. 당시의 인간 여자가 저기 있다는 말 이다.”
키샤샤가 전장의 우하단을 가리켰 다.
나는 가느다란 키샤샤의 손끝을 따라갔다.
눈길이 향한 곳에는 수십 명의 흑 기사와…….
“오빠?!”
정신이 들었을 때,나는 언덕 아래 를 뛰어 내려가고 있었다.
“어디 가는 거냐!”
“한, 막혔다고 했잖아!”
“그럼 거기서 기다려!”
나는 토해내듯 외친 뒤 속도를 올
렸다.
손은 이미 벨트의 칼집에 닿아 있 었다.
’재가 왜••••••?’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생각을 잇는 와중에도 걸음이 점
차 빨라졌다.
전력 질주.
전신의 힘을 뿌리까지 끌어모아 달려나갔다.
채찍 같은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이해할 수가……;
언제는 이해할 수 있었나.
나는 이를 악문 채 뛰었다. 멀게만 느껴졌던, 영화 속의 한 장
면으로만 여겨졌던 전장이 확대되 고 있었다.
창칼 소리. 진한 혈향. 피륙음. 처 절한 비명.
그 속에서.
“프리아!”
나는 목청을 높여 외쳤다.
투명한 벽과 어깨가 부딪힌 것은 그 다음이었다.
나는 부서질 듯한 통증을 삼키고 는 자세를 되돌렸다.
“대답해라! 프리아시스! 프리아!” 전장의 소음에 목소리가 묻혔는
지,그녀는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사,살려……!”
“항복할게유,항복! 항복! 제에바 알……!”
근처에 있던 병사들이 짚단처럼 죽어 나갔다.
구걸도 애원도 소용없었다. 반항
은 더더욱. 흑기사들은 기계처럼 그 들의 목숨을 거두었다.
그 포위진 안에서, 프리아시스 알 라그나가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비단 같던 은발이 먼지와 피로 더 럽혀졌고,하얀 얼굴은 땀과 흙으로 번들거렸다.
차려입은 약식 갑옷은 곳곳이 찌 그러든 채였다. 반쯤 부러진 검을 오른손에 쥔 채, 프리아는 발악하듯 부르짖고 있었다.
“항복이라 하지 않았더냐!”
나의 목숨을 주겠다! 그러니 이
들은 살려 보내라! 너희들이 원한 것은 나의 목숨이 아니었더냐!”
흑기사들은 일절 대답하지 않았 다.
확. 잘린 목에서 된 뜨거운 피가 프리아의 가느다란 목을 더럽혔다.
“너희들은 대체 누구인가? 왜 나 를 이다지도 못살게 구느냐! 나는 단지……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
황금빛 눈동자가 일그러지더니, 프리아의 목소리에 울먹임이 섞였 다.
“어째서……
쾅!
나는 전력으로 벽을 걷어찼다.
그러나 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뭐냐.’
의미를 알 수 없다.
“야! 들리냐!”
“이놈들,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 냐! 순순히 죽어주지 않아!”
마침내 전장에 남은 것은,프리아 한 명.
수십 명의 흑기사가 그녀를 둘러 싸고 있다. 그 밖에는 수백 명의 보 병 1열이. 다시 그 밖에는 보병 2열 이. 또다시 3열이.
다 죽었군.
프리아는 고개를 숙인 채였다.
“이 몸은 황가의…… 백성을 이
끌……
< 죽여라.〉
흑기사의 면갑 바깥으로, 끓는 듯 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마녀를 죽여라.〉
<더러운 마녀를 죽여라.〉
<마녀를. 마녀를. 마녀를.〉
<죽여. 아파. 죽여라. 아프다.〉 서른 명의 흑기사가 일제히 말했
다.
마치 합창을 하듯이.
“……하아.”
나는 칼집에서 손을 내렸다.
길어봐야 거리는 5m. 하지만 눈앞
의 종잇장과도 같은 벽을 도저히 넘 을 수가 없다.
방법이 없다는 것쯤은,마스터였 던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알려다오. 내 어디에 잘못이 있다 는 것이냐.”
<더럽혔다. 우리의 긍지를.〉
<우리가 사랑한 세계를. 팔아넘
겼다.〉
<너만 없었다면.〉
뭔 개소리지.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프리아시스가 핏발 돋은 눈으로
외쳤다.
“무슨 뜻인가? 내가 무엇을 팔아 넘겼다는 것이냐! 대체 누구한테!”
흑기사들은 답하지 않았다. 살점과 내장, 피가 끈적하게 묻어
있는 대검을 들어 올릴 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나직하게 외쳤다. “꼬맹이.”
드디어 프리아의 시선이 움직였 다.
큰 외침은 아니었으나,이목을 끌 수 있었다.
체념과 절망으로 물들어 있던 황 금색 눈에 불이 켜졌다.
“……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끝났으니까. 몸이 빛에 휩
싸이고 있었다.
‘해줄 말이 없는데.’
안녕 인사도 그렇고.
잘 죽으라고 하기도 애매하지. “살아있었구나. 다행이야.”
그런 나에게 프리아는 눈물 섞인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무수한 칼질 속에서, 프리 아의 몸은 형체도 없이 토막 나 사 라졌다.
[스테이지 클리어!] [‘한(★★★)’,’제나(★★★)’,’키 샤샤(★★★★)’,레벨업!] [보상 -30000G, 망령의 파편 (하급)] [MVP – ‘키샤샤(★★★★)’] [띠링!] [알림 一 남은 기회는 4번입니 다!]시공의 틈으로 돌아왔다.
키샤샤를 빼면 다들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거리가 멀긴 했어도,그간 임무의 주요 인물이었던 프리아가 죽은 건 똑똑히 봤을 테니.
남은 기회는 4번.
힌트가 없진 않았어.
마지막 메시지가 내게 확신을 주
었다.
’루프 (Loop).’
나는 시공의 틈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