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25)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26화
뜻밖의 인연(2)
“좋은 말로 할 때 튀어나와, 이 빌어먹을 자식아.”
붉은 단발을 가진 여인이 위협적인 목소리로 읊조렸다.
마치 분노한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사나운 기세.
“응? 뭐야?”
강우는 자신을 향해 갑작스럽게 분노를 쏟아내고 있는 그녀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대답에 붉은 단발 여인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돋아났다.
“뭐긴 뭐야, 이 트롤러 새끼야!”
난폭한 외침과 함께 그녀의 손이 강우를 향해 뻗어졌다.
넓게 편 손을 보니 뒤통수라도 한 대 세게 후려갈길 생각인 모양.
강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의 공격을 피했다.
“어?”
자신의 공격이 허공을 가른 것을 본 붉은 단발 여인의 입에서 당황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는 살짝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강우를 노려보았다.
“이게!”
-후웅! 훙!
강우는 자신을 향해 연이어 휘둘러지는 손바닥을 모두 피했다.
상반신만 움직여 공격을 피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곡예를 펼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슨….”
자신의 공격이 모두 빗나간 것을 본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경악에 찬 표정을 지은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강우 또한 믿기 힘들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빠르다.’
자신을 향해 휘둘러지는 그녀의 손을 바라보며 강우는 딱딱하게 표정을 굳혔다.
빨랐다. 아니,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마치 살아 있는 뱀이 달려드는 것처럼 미묘한 곡선을 그리며 휘둘러지는 그녀의 일격은 기술적인 면에서 생각해도 경이로운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강해.’
강우는 의자 밖으로 몸을 빼내며 침착한 표정으로 그녀를 살폈다.
이제까지 그가 지구에서 본 존재들 중에 단연코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에 비하면 조덕현이나 다른 플레이어들이 하찮게 여겨질 정도.
‘아마.’
지금의 자신보다 강할 수도 있다고, 강우는 생각했다.
서로 전력을 드러내며 싸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마력과 강우를 위축하게 만들 정도의 움직임을 보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너 뭐야?”
상대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게 된 것은 강우만이 아니었다.
상반신만을 움직여 자신의 공격을 피한 강우가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거리를 벌리자 붉은 단발의 여인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목소리를 낮췄다.
“어디 길드에서 보낸 놈이야? 설마 미르 길드 쪽 놈이냐?”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어디서 시치미를 떼?”
그녀는 거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너 같은 놈이 어떤 길드에도 들어가 있지 않다고?”
그녀는 자신의 손을 피한 강우의 움직임을 떠올렸다.
물론 그래봤자 게임으로 인한 시비이니 죽일 생각으로 공격을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그녀의 공격은 아무 길드에도 속하지 않은 어중이떠중이가 피할 수 있는 수준은 절대 아니었다.
“꼭 길드에 들어가 있어야 하는 법이라도 있나?”
“…….”
“오히려 내 쪽이 더 궁금한데. 넌 누구지? 왜 갑자기 시비를 거는 거야?”
“아니, 그걸 말이라고…!”
“보아하니 아까 그 채팅으로 욕했던 놈 같은데.”
“당연하지! 그 상황에서 어떻게 욕을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있어?!”
그녀는 눈에 불을 켜며 소리쳤다. 방금 상황은 속세에 초탈한 현자라도 키보드를 집어던질 만큼 분노할만한 상황이었다.
강우는 그녀의 격한 반응에 어깨를 으쓱였다.
‘중간에 가만히 있어서 그런가.’
라면을 먹느라 하고 있던 게임을 멈춘 것을 떠올리며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중간에 게임을 멈춘 건 사과하지. 게임 도중에 라면이 와서 말이야.”
“그 이전의 문제다, 이 망할 트롤러야!”
“응? 뭐야, 설마 막타를 치면 돈이 오른다는 걸 몰랐던 거야?”
“아니! 그 문제가 아니잖아!!”
그녀는 답답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강우는 정말로 그녀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반응을 본 붉은 단발의 여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설마 너 처음 게임하는 거야?”
“그래. 이번이 첫판이야.”
“아…. 하아.”
붉은 단발의 여인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이마를 쓰다듬었다.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빌어먹을 스타트 패키지.’
신규 유저를 늘리기 위해 만든 패키지 때문에 그녀가 피를 본 것이다.
“그래서… 진짜 이 게임을 몰랐던 것뿐이라고?”
“맞아.”
“으….”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게임 자체에 대해서 몰랐다고 하는데 계속 화를 내기도 애매했다.
“근데 진짜 너 누구야? A급 이상 플레이어 중에서 너 같은 놈이 있다고 한 번도 보고받은 적 없는데.”
“그야 A급 플레이어가 아니니까.”
“네가 A급도 아니라고?”
붉은 단발의 여인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럴 리가.’
아직 전력을 다해서 전투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그가 보여준 움직임은 도저히 A급 이상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헛소리 하지 마. 네가 A급이 아닐 리가….”
“자, 여기.”
강우는 자신의 플레이어 자격증을 펼쳐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아직 C급 플레이어 자격증이 나오지 않은 탓에 그의 등급은 D급이라고 적혀 있었다.
“D급…?”
강우의 플레이어 자격증을 확인한 그녀는 무슨 악질적인 농담이라도 들었다는 듯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D급에 그런 움직임이 가능해?”
그녀는 복잡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사실 그녀가 지금 확인한 것은 그의 움직임뿐이었다.
즉, 어디까지나 기술만 놓고 봤을 때 상대방을 A급 이상이라고 추측한 것에 불과했다.
‘아무리 그래도 D급이면 완전 초짜 플레이어잖아.’
노련한 전사와도 같은 움직임을 지닌 존재가 D급이라는 것에 그녀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럼, 더는 볼일 없는 거지?”
“아….”
강우는 그런 그녀를 뒤로 하고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지구로 귀환한 이후 처음으로 얻은 소중한 휴식시간이었다.
쓸데없는 시비에 휘말려 아까운 시간을 버릴 수는 없었다.
“잠….”
붉은 단발의 여인이 당황한 표정으로 강우를 향해 손을 뻗었다.
강우는 그런 그녀를 무시한 채 성큼성큼 PC방 밖으로 걸어 나갔다.
“…….”
홀로 남겨진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PC방의 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플레이어 자격증에 적힌 ‘오강우’라는 이름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도저히 D급 플레이어로는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보여준 플레이어.
‘힘을 숨기고 있는 건가?’
어떤 범죄를 저질러서 얼굴과 신분을 세탁한 것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것도 이상한데.’
신분 세탁을 한 범죄자가 대낮에, 그것도 플레이어 관리소 근처에 있는 PC방에 유유자적 놀러올 리가 없었다.
“아니면….”
그녀는 가늘게 뜬 눈으로 강우가 있던 자리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자리는 자신의 공격을 피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깔끔했다.
말 그대로 상반신의 움직임만으로 자신의 공격을 모두 피했다는 의미.
‘엄청난 재능을 가진 천재이거나.’
결국 전투 센스는 사람마다 상대적인 것이었다.
진짜 천재라면, 몇 번의 전투만으로 탁월한 움직임을 보일 수 있었다.
실제 이런 의심을 품고 있는 그녀 또한 남들과는 격이 다른 재능으로 순식간에 강자의 반열에 올라선 케이스였다.
‘누구일까.’
그녀는 강우라는 인간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았다.
정확히는 그가 진짜로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플레이어가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만약 그게 맞는다면.’
그녀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만약 그녀가 생각한 대로라면, 그는 지금 답답한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비장의 카드가 될 수도 있었다.
‘확인해 봐야겠어.’
그녀는 품속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달칵.
[레드로즈 길드 인사관리팀 팀장 박현우입니다.]“현우야, 나 연준데.”
[아, 예. 무슨 일이십니까 길드장님?]“좀 조사해 줘야 할 플레이어 한 명이 있어서.”
[흠…. 전에 그 악마숭배자 건인가요?]“아니, 그건 아니야.”
[알려주시면 바로 조사하겠습니다.]“지금 바로 길드 사무소 쪽으로 갈게.”
전화를 끊은 그녀는 오강우에 대해서 계속 떠올리며 몸을 돌렸다.
그때, 그녀의 눈에 ‘패배’라는 단어가 띄워져 있는 게임 화면이 다시금 들어왔다.
“아….”
강우와의 대화로 잠시 사그라졌던 분노가 다시금 차올랐다.
그녀는 거칠게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확인 버튼을 눌렀다.
-띠링.
[실버 승급전이 실패하였습니다.]“아아아아아악! 역시 저 개자식 다음에 걸리면 가만 안 놔둘 거야!”
붉은 단발의 여인, 차연주는 ‘브론즈’라고 표시된 자신의 랭크를 바라보며 분노에 찬 절규를 흘렸다.
* * *
“후우.”
PC방에서 나온 강우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방금 PC방에서 만난 붉은 머리칼의 여인을 떠올렸다.
‘강했어.’
교전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공방의 교환이었지만 그 짧은 교전만으로 강우는 대충 상대의 경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강우가 전력을 다해도 과연 이길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대였다.
‘아마 지겠지.’
강우는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농밀한 마력을 떠올리며 표정을 굳혔다.
3차 각성을 하고 안드라스 길드에서 예상밖의 수확을 얻으며 그는 어지간한 플레이어에게는 지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아직 한참 모자랐던 거야.’
지나친 자신감은 방심을 불러일으키고, 그런 방심은 결국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뒤통수를 찌르게 마련이었다.
“내일부터 또 바쁘게 움직여야겠군.”
강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 하루 이것저것 경험해 보며 푹 쉴 생각이었지만 방금 전의 일로 그런 생각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차라리 다행이야.’
강우는 자신감이 확신으로 변하기 전에 그녀를 만난 것을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 * *
다음날.
우편으로 C급 플레이어 자격증을 받은 강우는 바로 C급 게이트가 있다는 목동으로 향했다.
블록처럼 늘어져 있는 단지 아파트 사이로 휑하니 비어 있는 공터가 보였다.
“어디 보자… 목동 C급 게이트라.”
강우는 스마트폰을 열어 목동 C급 게이트에서 출몰하는 몬스터를 확인했다.
“오크랑 트롤이 섞여서 나오는군.”
오크는 리자드맨과 같은 D급 몬스터지만 상위 게이트에서도 등장하는 것 같았다.
강우는 몬스터들의 정보를 확인하며 입구로 들어섰다.
입구로 들어서려는 군복을 입은 병사가 다가와 제지했다.
“오늘은 C급 플레이어 5인 이상 파티가 아니면 출입하실 수 없습니다.”
“…왜죠?”
“안에서 트롤족장이 나타났거든요. 보스 몬스터가 출몰하는 기간에는 솔로 플레이 금지입니다.”
“…….”
트롤족장.
C급 게이트에서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보스 몬스터로 B급 게이트에서부터 등장하는 정예몬스터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흠.”
강우는 가볍게 턱을 쓰다듬으며 게이트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무리할 이유가 생겼군.’
C급과는 격이 다른 보상을 가진 B급 보스 몬스터.
이 기회를 가만히 놓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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