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206)
206화
콰직.
도끼로 수박을 깨는 소리와 함께 피에 물든 뇌수가 사방으로 퍼진다.
“으윽…….”
그 끔찍한 모습에 수용소 간부들이 신음을 토해 낸다.
하지만 누구 하나 눈앞의 남자를 제지하는 이가 없었다.
적어도 이곳 ‘헌터 수용소’에서만큼은 그가 곧 신이요 법칙이었으니까.
“어…… 뒤졌네.”
가축이 죽은 것만도 못한 반응을 보이는 거구의 사내.
사내는 몬스터의 가죽을 대충 두른 복장에, 절반쯤 벗겨진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늘어뜨려 괴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의 오른손에는 피로 번들거리는 대형 도끼가 들려 있었다.
사내는 그 도끼에 붙은 끔찍한 액체들을 혀로 핥으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참나. 요즘 끌려오는 새끼들은 나약하기 짝이 없단 말이야. 저런 새끼가 어떻게 A랭크냐? 헌터 디바이스도 아닌 일반 도끼날에 대가리가 갈라지는데.”
“저…… 소장님.”
한참을 망설이던 간부 하나가 조심스럽게 사내에게 물었다.
“사상자가 이번 달만 벌써 다섯 명째입니다.”
“그런데?”
“그…… 협회에서 좀 더 평화적이고 섬세한 계도를 요청한다는 공문이…….”
“흐하하하하하하!”
그 발작적인 웃음에 간부가 찔금 뒤로 물러섰다.
“어이 춘식이. 세상에 이것보다 더 섬세한 계도가 어디 있어?”
“네, 네?”
“여기 널브러진 새끼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너도 알잖아? A랭크 헌터가 일반인을 주먹으로 패서 죽이고, 강간하고, 독편까지 밀수입을 했어. 저 새끼 명찰 색깔이 뭔지 확인해 봐.”
피로 물들어 버린 죄수의 명찰은 붉은색으로 반짝거렸다.
하지만 그의 명찰이 빨갛게 보이는건 비단 피 때문이 아니었다.
집행 날짜를 기다리고 있는 사형수.
그의 명찰은 원래부터 붉은색이었던 것이다.
“저런 구제불능의 쓰레기를 어떻게 ‘계도’한다는 거지? 저런 놈은 부처님이 와도 구제를 할 수가 없다.”
“…….”
“유일한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해. 더 이상 죄를 짓지 못하도록 머리를 쪼개 버리는 거지. 그것보다 평화적이고 섬세한 방법이 있나? 흐하하하.”
모처럼 손맛을 봐서 그런지 사내는 더없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간부는 마음속으로 사내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어차피 죽게 될 녀석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건 형을 집행하는 게 아니라 단순한 살육 행위에 불과하다.
정해진 날짜는 아직 일주일 전이고, 또다시 일어난 살육 때문에 간부는 협회에다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자동 응답기 같은 회신을 받게 될 것이다.
이번 달에 사망한 수감자 수가 몇이고, 섬세하고 평화로운 계도를 요청한다고.
눈앞의 남자, 헌터 수용소 소장 황덕수는 그들의 요청을 벌레만도 못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가 아니면 이곳 헌터 수용소를 통제할 만한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참에 한 명 더 처리해 볼까? 지금 남아 있는 사형수가 몇이지?”
다음 대상자를 찾는 황덕수의 얼굴은 총책임자가 아니라 살인귀가 더 어울려 보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황덕수가 있기 때문에 수감자들의 태도가 고분고분한 것도 사실이었다.
조금이라도 불온한 모습을 보이면 개처럼 뚜드려 맞거나 대가리가 쪼개지기 일쑤다 보니, 불량한 헌터들조차 몸을 사리는 것이다.
수감자들은 팔에 차고 있는 구속구보다 황덕수와의 ‘대련’을 더 무서워했다.
그와 대련을 시작하는 순간 구속구는 사라지지만, 마찬가지로 황덕수 또한 손속에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협회에서 헌터 수용소를 방치에 가깝게 내버려 두는 이유.
광기에 물든 수감자들이 온순한 양으로 변해 버린 이유.
그건 모두 황덕수의 순수한 ‘강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일부에서는 황덕수가 이미 ‘초월급’의 반열에 오른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황덕수는 그런 호칭에는 딱히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의 관심과 목적은 오직 헌터 수용소뿐.
몬스터가 아닌 인간을 합법적으로 두들겨 패고 죽여도 되는 곳은 이곳뿐이었다.
헌터 수용소에서는 협회장이 아니라 대통령이 와도 황덕수의 승낙을 받아야 한다.
이곳에서는 그가 곧 법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소장님.”
“어, 그래. 사형수 리스트 가져왔냐?”
마치 맛있는 음식 메뉴를 기다리는 듯한 얼굴로, 황덕수가 눈을 빛냈다.
그러나 간부가 가져온 소식은 황덕수의 기대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소장님을 뵙겠다는 분들이 찾아왔습니다.”
“음?”
황덕수는 꽤나 의외라는 듯 자신의 까칠한 턱을 쓰다듬었다.
‘이곳에 손님이 찾아온 게 몇 년 만이지?’
오죽하면 협회 사람들조차 ‘좀 와서 현황을 보라’고 해도 차일피일 미루기 일쑤였다.
사실 일반적으로는 헌터 수용소를 오기 싫어하는 게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일반 죄수들도 아니고 범죄를 저지른 ‘헌터’들이 모인 곳이 아니던가.
게다가 그 소장이라는 놈은 수감자 헌터들도 학을 뗀다는 광인이었다.
한국에서 인정하는 유이한 치외법권 중 한 곳이 암시장이라면, 나머지 한 곳은 바로 이곳 헌터 수용소였다.
“그래?”
모처럼의 손님이라 그런 것일까.
사형수 한 명의 머리를 쪼개 놓고도 만족하지 못했던 황덕수가 마침내 대련장에서 내려왔다.
“재미있는 놈들이어야 할 텐데. 이제 막 손맛이 올라오려는 참이었거든.”
“아마도…….”
“?”
간부가 자세를 낮추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조심스레 피력해 냈다.
“지루하지는 않으실 것 같습니다.”
“호?”
손님도 손님이지만, 저렇게 장담하는 간부의 모습도 무척이나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다.
호기심이 동한 듯 황덕수가 자신의 피 묻은 도끼를 대련장 바닥에 꽂았다.
쿵.
“빨리 가서 낯짝을 보고 싶구나.”
황덕수가 피 묻은 입술을 혀로 핥으며 거칠게 걸음을 옮겼다.
과연 누가 이 지옥의 소굴에 자처해서 찾아온 걸까.
묘한 기대감이 황덕수의 가슴을 들뜨게 만들었다.
* * *
‘뭐야, 이건?’
온몸에 피 칠갑을 한 황덕수가 나타나자, 천해선과 잉센은 똑같은 생각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나오라는 소장은 안 나오고 웬 인간 백정 같은 놈이 떠억하니 나타났기 때문이다.
특히나 잉센은 피 냄새에 섞인 특별한 냄새에 절로 인상을 구겨 버렸다.
“헌터 수용소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핏방울이 말라붙은 입꼬리가 스윽하니 올라간다.
물론 그 피의 주인은 황덕수가 아닌, 사망한 사형수의 것이었다.
‘상또라이라고 하더니 과연…….’
황덕수를 바라보는 천해선의 눈가에 이채가 서린다.
자신을 헌터 수용소의 소장이라 밝힌 남자는, 이곳에 가둬진 모든 헌터들보다 더 위험한 분위기를 풍겼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인가. 아니면 원래부터 검은 놈인가.’
평범하지 않은 죄수들을 다루느라 포악해진 건지, 원래 저런 놈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가 쉽지 않겠다는 건 확실해 보였다.
“수용소에 오신 소감이 어떻습니까. 천해선 헌터님.”
마치 어린 학생에게 견학 온 느낌을 물어보는 투였다.
실제 황덕수가 천해선을 본 첫인상도 그 정도 수준이었다.
범죄자 헌터들을 단속하고 실시간으로 처벌하는 이곳은 밝은 세상과는 완전히 딴판인 곳이었다.
“음…….”
천해선이 사무실과 황덕수를 번갈아 보더니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미용실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
황덕수의 패기 넘치는 얼굴이 순간적으로 멍하게 변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다가.
나중에는 이게 나에게 하는 소리인가 싶었던 것이다.
실제 황덕수의 머리는 숱이 없어 듬성듬성했고, 쓸데없이 길어서 괴기한 이미지를 풍겼다.
황덕수를 보는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지만, 목이 달아날까 두려워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
한데 이 스무 살이나 될까 싶은, 아직 소년티를 다 벗지도 못한 사내가 황덕수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것이다.
‘요놈 보게…….’
차라리 센 척을 했다고 하면 귀엽게라도 봐 줬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천해선은 일부러 태연한 척하는 걸 넘어, 자신 앞에서 농담 따 먹기나 하고 있었다.
협회 관리자들조차 사시나무 떨듯 두려워하는 이곳을 말이다.
정말로 아무런 위압감이 들지 않는 건지.
아니면 필사적으로 아무렇지 않아 보이려 하는 건지.
수많은 범죄자들의 속을 꿰뚫어 본 황덕수였지만 도대체 감이 오지 않았다.
되려, 외국인으로 보이는 안경 쓴 대머리의 반응이 더 전형적이었다.
“다들 한 가닥 하는 헌터들일 텐데, 이렇게 관리가 잘되어 있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소장님의 리더십이 훌륭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만…….”
“흐흐흐. 이곳의 계도 방식은 다른 교도소와 조금 다르거든요.”
“다르다면……?”
“궁금하면 한번 체험해 보시겠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계도를 하는지 말입니다.”
그 도전적인 모습에 잉센은 조금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죽어요.”
옆에 있는 천해선이 비실 웃으며 말렸다.
황덕수가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농담입니다. 농담. 설마하니 수용소를 찾은 손님들을 험하게 대하겠습니까. 하하하.”
“아뇨. 여기 이 남자한테 당신이 죽는다구요.”
“……?”
황덕수가 또다시 멍한 얼굴이 되었다.
사람은 원래 익숙함의 동물이고,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이런 도발을 당해 본 기억이 없는 남자였다.
그러니 타이밍이 한 박자씩 자꾸 늦는 것이다.
화를 내는 타이밍에 대해서.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귀청을 때리는 웃음소리가 사무실을 가득 매운다.
어느새 황덕수의 얼굴은 말 안 듣는 죄수를 대면했을 때처럼 변해 버렸고, 옆에 있는 간부는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어쨌거나 협회에서 보낸 손님이 아니던가.
분위기가 험악해질수록 수용소의 입장에서는 좋을 것이 없었다.
“아무래도 천해선 헌터님께서는 수용소 소장인 이 몸의 능력을 의심하고 계신 듯합니다만.”
“네. 맞아요.”
황덕수의 관자놀이에 미세한 진동이 일어났다.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르면 나타나는 반응이었다.
“그렇다면 직접 확인해 보시지요. 영계 탐사까지 진행한 분이신데, 그런 분께 공인을 받으면 저도 일하기가 편할 것 같습니다만.”
“좋아요.”
마치 이런 이야기를 해 주길 기다렸던 것처럼 즉각적인 반응이 튀어나왔다.
옆에 앉은 잉센도 쓴웃음을 짓고는 있지만 딱히 말리는 기색은 없어 보였다.
“그전에 저희 용건을 먼저 말씀드릴게요.”
“말해 보시죠.”
황덕수가 이를 드러내며 대답했다.
“표혁규 감독관을 풀어 주세요.”
“표혁규라.”
귀에 익은 이름이었다.
황덕수는 몇 차례 그의 프로필을 열람한 적이 있었다.
협회 소속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곳과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평범하고, 약한 헌터였기 때문이다.
“배정대 부회장의 허가를 받고 왔어요. 이사순 회장을 살해한 유력 용의자로 지목됐지만, 어제부로 혐의를 벗어날 수 있게 됐거든요.”
“흐흐흐.”
황덕수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이곳 헌터 수용소를 괜히 치외 법권이라 부르는 것이 아니다.
일단 한번 수감 되면 풀어 주고 말고는 전적으로 황덕수의 마음에 달려 있었다.
설령, 그자가 무죄라고 해도 말이다.
“배정대 회장이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던가요?”
“했어요. 이깟 종이 쪼가리로는 설득하기 힘들 거라고.”
“흐하하하하하하하.”
다시 한번 황덕수가 크게 웃었다.
그리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제 보니 처음부터 작정을 하시고 왔군요. 그렇지요?”
“설득을 못 하면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 법이죠.”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니까.
천해선은 굳이 뒷말을 붙이지는 않았으나, 그의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황덕수는, 처음으로 천해선의 대답에 만족해했다.
“좋습니다. 대련장으로 모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