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376
눈에 차는 가디언이 없었다.
은하는 미래를 바꾸기로 결심하고 그를 위한 파티를 조직하려고 할 때 제일 먼저 이 문제에 봉착했다.
앞으로 내가 상대해야 하는 놈들은 개인이 아니라 다수야.
다수를 상대하려면 가디언의 힘을 무시할 수가 없어.
고등아카데미를 졸업하는 시기에 몬스터들이 서울을 침공한다.
따라서 같은 시기에 졸업하게 될 가디언이나 현역으로서 뛰고 있는 가디언을 파티에 들여야 했다.
전자로는 온태양의 가디언이었던 이천서가 있었다. 후자는 지금도 열렬히 활동 중인 선기준이 있었다.
다만 전자는 방어에 특화된 나머지 돌격력이 상당히 떨어질 것이었다. 이천서에게는 분명 재능이 있으나, 그 재능은 다른 가디언 유망주들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 후자는 거부감이 들었다.
기준 아저씨는 안 돼.
선기준에게는 이제 나이가 있다. 이전 삶에서는 죽는 날을 기다리며 노쇠한 몸을 이끌며 전투를 했지만, 이번 삶에서는 그가 자신을 혹사해 전투를 치를 이유가 사라졌다.
은하는 선기준이 행복해지는 것을 바랐다.
무엇보다 그의 성격상 이전 삶보다 그가 강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브루노 아저씨가 있기는 한데….
이천서, 선기준 다음으로.
은하는 이번 삶에 알게 된 사람인 브루노도 가능성의 여지에 두었다.
보기와 다르게 그는 딜러가 아니라 가디언이었다.
옛날에 줄리에타의 말을 듣자하니, 그는 이탈리아의 발렌타인 패밀리를 지탱하는 기둥 중 하나였다고 한다.
이탈리아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트레디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무의미한 가정이었으나.
하지만 그의 실력이 십이좌에게도 미치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었다. 신서영 또한 브루노의 힘을 상당히 높게 평가했다.
브루노 아저씨라면 내 말은 뭐든 들어주려고 할 테지만…, 안 돼.
브루노에게도 나이가 있었다.
그리고 은하는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었다.
몇 년 전, 브루노가 이탈리아 대사 알버트 마이론과 전투를 치른 후로 약해져가고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는 강했으나, 아마도 몬스터들이 서울을 침공하는 날에는 죽음을 각오해야 할 터였다.
설사 전장에서 살아남는다고 해도, 그 후에 줄줄이 일어나는 재앙에서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리라.
그리고 무엇보다 그도 선기준처럼 그를 위한 삶을 살기를 바랐다.
그러니까 이천서는 무조건 들이고, 이천서와 대등한 실력을 가진 애들 몇몇을 더 들여야 해.
나중에 부족한 애들이 생기면…, 그때는 후지기수를 볼 수밖에 없어.
끝내 은하가 내린 결론이었다.
031기 중에 가디언 유망주를 찾아, 우선적으로 그들을 포섭하기로.
이후 매년 후지기수들을 살피면서 가디언들을 충당하기로.
안타깝게도 플레이어 포지션 중에 사망률이 가장 높은 포지션은 바로 가디언이었다.
기본적으로 전위에서 몬스터들을 막으려 하는 그들은 위험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못 보던 얼굴이네. 혹시 이번에 편입한 거야?”
“어어…, 응! 나는 이천서라고 해! 만나서 정말 반가워!”
그렇기 때문에 은하는 제일 먼저 이천서에게 접근했다.
의외로 이천서는 그를 알고 있었고 그에게 호의를 품고 있었다.
은하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고.
물론, 은하 역시 이천서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르는 일이었지만.
☆
“체중을 하체에 실어. 안 그러면 나중에 대형 몬스터하고 충동할 때 뒤로 날아가 버리고 말 거야.” “그래? 알았어. 이렇게 하면 될까? 은하 네가 도와주니 정말 다행이야. 솔직히 기존 031기 애들하고 달리, 나 같은 편입생은 기초가 제대로 다져져 있지 않으니까.”
“기초야 지금 배우면 되는 거고…, 고등아카데미에 입학하면 처음부터 다시 배우게 될 거야. 걱정 마.” “응, 고마워!”
중등아카데미 3학년은 집중적으로 자신이 선택한 부문에 대해 강의를 받게 된다.
가디언 부문 – 초급 방패술.
가디언을 찾기 위해 가디언 부문을 전공부문으로 선택한 은하는 역시나 생각했던 대로 이천서를 만날 수가 있었다.
이천서는 온태양의 친구였던 만큼, 남을 대하는데 스스럼이 없었다.
카에데 걔는 그렇게나 힘들었는데, 역시 온태양 파티 분위기 메이커라 할 만하네.
기존 031기 학생이나 편입생들은 뜬금없이 가디언 부문을 택한 그를 어렵게 여기고 있었건만.
은하가 한 번 말을 붙인 것만으로, 이천서는 그의 옆을 떨어지지 않고 재잘재잘 말을 걸어왔다.
교관이 가르치는 내용보다 오히려 은하가 일러주는 내용에 더 관심을 보이기까지 했다.
“방패! 머리 위로!”
“”””방패! 머리 위로!!!!””””
한편, 교관이 기합 소리를 내면서 새로운 동작을 선보였다.
그동안 연습을 하고 있던 학생들은 악 소리를 내지르며 무거운 방패를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교관이 방패를 내리란 지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악을 쓰며 방패를 들고 있어야 했다.
체력이야 있는 게 당연하고….
의외로 나름 악도 있는 것 같네.
은하는 자신의 옆에서 방패를 든 이천서를 곁눈질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들이 방패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이천서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면서 방패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제법 끈기가 있었다.
“방패! 앞으로!”
“”””방패! 앞으로!!””””
교관이 다음 동작을 펼쳤다.
학생들이 머리 위로 들었던 방패를 가슴 앞으로 쭉 뻗었다. 추가적으로 오른쪽 발을 앞으로 내딛으면서.
자연스레 허리가 구부정하게 되고, 허리에 부담이 가는 자세가 되었다.
은하는 아무렇지 않게 방패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으, 은하야…. 너는 안 힘들어?”
“나는 괜찮아.” “여, 역시 아카데미의 잠룡!” “…그건 또 어디서 들은 거야?”
이천서가 이를 악물며 물었다.
은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사실, 그는 교관이 나눠준 방패가 아니라 벽해수가 만들어준 방패를 사용하고 있었다.
보기와 달리 가벼운 방패였다.
그것을 모르는 이천서는 순진하게 그를 대단하다 치켜세우고 있었고.
“…역시 노은하야. 진짜 대단하다. 가디언 수업은 지금까지 전혀 듣지 않은 걸로 아는데….”
“쟤는 어떻게 뭐든 다 잘하지?”
“근데 쟤는 누군데 아까부터 계속 은하 옆에 붙어 있는 거야? 하…, 정말 부럽네.”
잠시 휴식시간이 있었다.
은하는 멀리 떨어져 있던 학생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무시했다.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재잘재잘 말을 거는 이천서도 적당히 대했다.
솔직히 자꾸 말을 걸어서 슬그머니 짜증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본 것 같은데 은하 네 주변에 친구들이 많던데…, 나 좀 소개해주면 안 될까? 내가 편입생이라서 친구를 사귀기가 너무 힘들거든. 괜찮으면 네가 나중에 자리 좀 만들어주라.” “…나중에 생각해볼게. 근데 아까 편입생 애들이랑 친근하게 대화하지 않았어?” “…어? 가, 같은 편입생 신분이라 어울려 다니는 것뿐이야. 나하고는 좀 맞지 않는 것 같아서…. 하하, 은하야, 나 이것도 알려줘!”
은하는 이천서를 쳐다보았다.
이천서가 움찔했다.
“왜, 왜?”
“…아냐.”
은하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한순간이었지만 이천서의 생각을 파악했다는 듯이.
은혁이가 더 낫네.
분위기 메이커를 한다는 점에서.
은하는 순간적으로 이천서로부터 최은혁을 떠올렸다.
두 사람은 성격이 닮은 듯했지만, 자세히 보면 전혀 닮지 않았다.
이천서는 계산적이었다.
계산적이지 않은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있겠느냐고 하냐마는.
이천서는 감출 줄을 몰랐다.
회귀 전에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아직 어려서 그런 건가.
아니면 학기 초라서 친해지기 위해 적극적으로 다가오고 있는 건가.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사람.
은하는 싫어하지 않았다.
자신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선에서.
아마 해가 되지는 않으리라.
온태양이 선택한 가디언이었기에, 일단 이천서를 믿어 보기로 했다. 가디언 인재가 부족한 마당이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도 했다.
안 되면 고쳐먹으면 되는 거지.
은하는 쩝 입맛을 다셨다.
가디언도 문제였지만 스나이퍼도 문제는 문제였다.
다행히 고등아카데미에 믿을 만한 재능을 가진 이가 입학하기 때문에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휴식을 종료한다! 그럼 지금부터 멘토, 멘티끼리 모여서 연습을 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하겠다!”
“교관님! 제 멘토는 네비게이터라 이 수업에 없는데요!?”
“이천서는 나와 따로 연습을 한다! 이런 기회, 흔치 않다는 거 알지?”
“…….”
“그러면 멘토, 멘티끼리 집합!”
“”””집합!!!!””””
어느덧 휴식시간이 끝이 났다.
그는 교관에게 개인교습을 받게 된 이천서를 뒤로 하며 자신의 멘티를 찾고자 했다.
강시형.
이름만 알았지 아직 얼굴도 모르는 학생이었다.
은하가 기억하기로, 이전 삶에서는 아카데미에 재학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모든 학생을 기억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동업자라면 어떤 이유에서든 전선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으리라.
그런데도 그를 본 적이 없다는 건 둘 중 하나였다.
이른 나이에 죽었거나.
미래가 바뀌어 들어오게 됐거나.
자리에 가만히 서 있던 은하는 곧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학생을 발견했다.
그러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 안녕하세요!”
“…나이도 같으니까 반말로 해.”
“어, 어어어, 그럴게!”
어리바리해 보이는 소년.
은하는 자신을 보고 뻣뻣이 굳은 남학생을 바라보았다.
아주 방패에 숨겠네.
키가 몹시 작았다.
정하양과 비등할 것 같은 키.
아직 성장기라고 하나 앞으로 과연 얼마나 클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다.
그러는 상태에서 소년은 상당히 큰 방패를 손목에 차고 있었으니.
아무래도 떨이를 받은 듯했다.
방패의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그러면 잘 부탁해! 저…, 나부터 해도 될까?” “그래, 너부터 해.”
“응! 그러면 잘 봐줘!”
은하는 떨떠름하게 답했다.
강시형이 큼지막한 방패를 쥐고서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그러고는 힘겹게 방패술을 펼쳤다.
은하의 눈에는 강시형의 방패술이 꼭 방패를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방패에 휘둘리는 것처럼 보였다.
왜 이렇게 인재가 없냐.
은하는 긴 한숨을 흘렸다.
☆
이제는 나이가 있었다.
언젠가부터 단련을 게을리하면서 살이 찐 브루노는 자신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는 한 가정의 가장이었으니까.
“아자! 아자! 아자! 호잇!”
“그래, 그렇게 하는 거야.”
가끔 앨리스그룹 회장 민준식에게 의뢰를 받고서 활동하거나, 때때로 은하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뿐.
그 외에 특별히 하는 일이 없던 브루노는 시간이 나는 틈틈이 아들 어베니어를 가르치고는 했다.
그가 기억하기로, 얼마 전만 해도 뒤뚱거리며 섰던 게 엊그제 같건만, 어느새 어베니어는 주먹을 내지를 수 있을 만큼 성장해 있었다.
감개무량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조그마한 아이가 기합을 지르면서 통통한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으니.
“한 번 더.”
“하나, 둘!”
어베니어, 7살.
유치원에서 신나게 놀고 온 아이는 그날도 브루노와 훈련을 했다.
훈련은 별 게 아니었다.
브루노가 큼지막한 두 손을 펼쳐, 어베니어가 주먹을 지르게 하는 게 전부였다.
마치 캐치볼을 하는 것처럼.
어베니어는 얍얍 소리를 내지르며 두 주먹을 번갈아가며 움직였다.
그러다가 문득 장난기가 샘솟은 듯싶었다.
“보리, 보리─!!”
보리 보리 쌀.
허나 어베니어의 공격은 아쉽게도 브루노에게 먹히지 않았다.
“─쌀.”
“아빠 너무해애애!”
실력이 녹슬었다고 하나.
브루노가 고작 7살 남자아이에게 질 리가 없었다.
큼지막한 손으로 조막만한 주먹을 잡아낸 브루노가 훗 하고 웃었다.
반면에 어베니어는 발을 구르면서 입술을 삐죽였다.
“브루, 좀 져
주면 어때서 그래?”
“그러면 니어가 싫어하더라고.”
“하여간…. 승부욕이 강한 건 대체 누굴 닮은 건지….”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고 있던 중인 줄리에타가 키득거렸다.
앞으로 넘어온 금발을 뒤로 넘긴 그녀는 사랑스럽다는 듯이 아들과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러던 그때.
“아빠! 다시! 다시!”
“그래, 알았다.”
“이번에는 안 질 거야!”
어베니어가 소리친 것이다.
브루노가 손을 놓자, 어베니어가 냉큼 자신의 주먹을 가져갔다.
반동으로 엉덩방아를 찧었음에도 씩씩하게 일어나서는 주먹을 빙빙 휘둘렀다.
“처음에는 주먹─.”
이상한 구호.
최근에 본 만화에서 나오는 대사인 것일까.
아니면 가위바위보라도 하자는 것일까.
그는 아들의 귀여운 행동을 보며 조금 전과 같이 두 손을 펼쳤다.
“보리! 보리─!”
페이크였다.
보리 보리 쌀이었다.
쓴웃음을 지은 브루노는 날아드는 조그마한 주먹을 받아내기로 했다.
했는데─.
“─쌀!!”
“……!?”
브루노는 보았다.
어베니어의 주먹에는 위험천만한 마나가 맺혀 있었던 것을.
어베니어가 어렸을 때부터 마나를 다룰 줄 알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 그가 순간적으로 보인 마나는 너무나 위험했다.
위험해.
직감이 소리치고 있었다.
그냥 받아내서는 안 된다고.
브루노는 거의 반사적으로 주먹을 받아내는 손에 체내 마나를 감쌌다.
치이이이
어베니어의 마나가 외부로 새어서 폭발이 일어나지 않도록.
브루노는 한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음에도 어베니어의 공격을 모두 받아냈다.
어베니어의 주먹은 지르는 도중에 마찰이라도 일으킨 것인지 불길이 맺혀 있었다.
지금은 브루노의 손 안에서 서서히 꺼져가고 있었지만.
여하튼 그만큼 강력한 주먹이었다.
“브, 브루! 괜찮아!?”
줄리에타가 빨래를 내팽개치고서는 달려왔다.
브루노는 불이 꺼진 아들의 주먹을 잡은 채로 멍하니 있었다.
손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니어야, 이건 대체….”
줄리에타가 황급히 브루노의 손을 살피고는 한숨을 쉬었다.
한편, 브루노는 어베니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만한 마법을 만들 생각을 한 것이냐고.
브루노는 아들의 재능에 전율하고 있었다.
“─아빠 대단하다!”
그러나 어베니어는 모르겠다는 듯 다른 소리를 늘어놓기만 했다.
그러고는 그의 무릎에 올라타서는 눈을 반짝였다.
눈에서 아버지에 대한 동경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방금 그건 어떻게 한 거야!? 어? 손이 막막 빛났잖아!”
“그건….”
“필살기 이름이 뭐야!?”
임기응변에 불과했다.
그런데 어베니어는 브루노가 펼친 마법이 술식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오히려 브루노가 보았을 때 아들이 내지른 정권 마법이 더 대단하다고 여겨졌건만.
“나도 하고 싶어! 손에서 빛이 막 나게 하고 싶다구! 이름이 뭐야?”
어베니어가 방방 뛰었다.
브루노는 난처해했다.
아들이 이름을 가르쳐달라고 하니, 그는 아들의 동심을 부수지 않고자 적당한 이름을 지어낼 수밖에 없었다.
“…갓 핸드….” “갓 핸드!? 와! 너무 멋지다! 역시 우리 아빠야!”
“하하….”
순간 한국으로 망명을 왔던 날에 어쩌다 우연히 보게 된 축구 만화가 떠올랐다.
브루노는 아들의 시선을 피했다.
그 아들에 그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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