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375
요새 중등아카데미가 어수선했다. 새 학년, 새 학기라고 해도 예년과 같지 않은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특히 중등아카데미의 최고 학년인 031기는 기존 세력과 신흥 세력이 화합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기존 031기였던 학생들의 눈에는 새로 편입한 이들이 죽은 친구들의 자리를 차지한 것처럼 보였으리라.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다고 하나, 가슴은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더군다나 중등아카데미에 재학하는 학생들은 대다수 모종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기존에 구축되어 있던 이해관계가 대격변을 겪고 있기도 했던 것이다.
“에휴…, 나는 요새 하양이가 제일 부럽더라고. 아니면 우리 그룹에도 수빈이 같은 애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아?”
류연화가 졸업했다.
더는 아침 훈련을 성실하게 하지 않게 된 은하는 훈련을 거르고서는 이른 아침에 강의동 옥상에 올라와 있었다.
이 위치에서는 아카데미를 한 바퀴 구보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찬찬히 훑어볼 수 있었기에.
그런데 선객이 있었던 것이다.
“하…, 기껏 숨이 트이나 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너무한다. 내가 내 세력 좀 만들겠다는데 왜 주변에서 견제를 해오는 거야?” “그만큼 네가 견제를 해야 할 만큼 위험한 사람이 됐다는 뜻이지.” “나도 알아. 내가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는. 근데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니까.”
영원그룹의 직계 유도준.
바닥에 주저앉아서는 난간 사이에 발을 집어넣고 난간에 머리를 기댄 유도준이 연신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보니 은하는 어쩔 수 없이 그의 온갖 투정을 들어주어야 했다.
아침을 챙겨오기를 잘했다.
은하는 난간에 등을 기대고 그에게 기숙사 식당에서 싸온 샌드위치를 건넸다.
유도준이 머리 위로 손을 뻗어서는 에그 샐러드 샌드위치를 받았다.
“샌드위치가 다네? 아하, 빵에다 딸기잼을 바른 거구나. 이거 괜찮네. 어디서 났어?” “기숙사 식당에서 싸 달라고 하면 싸주던데?”
“나도 가끔 부탁해야겠다. 은하야, 나는 네가 부럽다. 샌드위치를 먹을 여유가 있는 네가 너무 부럽다.”
“그만 투덜거리고 그냥 샌드위치나 먹으시지.”
저 멀리서 구보를 뛰는 학생들의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기합 소리가 큰 것을 보니 아마도 올해 입학한 1학년인 것 같았다.
그들의 함성을 뒤로하면서 은하는 샌드위치를 입에 넣었다.
빵과 빵 사이에 낀 에그 샐러드가 손등을 타고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혀로 손등을 핥은 그는 곧 눈살을 찌푸렸다.
도준이 샌드위치를 반으로 나눠준 은혜도 모르고 말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시리우스그룹은 분란 자체가 아예 없었다면서? 새로 편입한 학생들이 저희들끼리 수군거렸던 이유가 고작 어떻게 하면 노은하 심기를 건들지 않는 거였다니….”
“안 되겠다. 샌드위치 내놔.”
“그럴 줄 알고 지금 다 먹었지.”
“에휴….”
유독 시리우스그룹의 파벌만이.
아카데미에서 신흥 세력의 갈등이 일어나지 않았다.
초반에 갈등이 있었던 것처럼 보인 이유는 저희들끼리 조용히 정보를 교환하다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나도 모르겠다.
신흥 세력의 갈등이 없었던 데에는 노은하, 자신이라는 인물이 한몫을 했다.
그에 대한 소문이 워낙 퍼졌기에, 시리우스그룹의 후원을 받는 이들은 괜히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자 몸을 바짝 움츠린 것이다.
현재 아카데미에는 시리우스그룹의 직계도 재학하고 있지 않는 데에도, 은하는 직계가 가지는 위엄 이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증거로 그가 간담회에 갔을 때, 안에 있던 사람들은 약속한 것처럼 큰 소리로 맞아들이기까지 했다.
결국 노은하란 공포로 신진 세력이 대동단결한 것이다.
웃픈 일이었다.
은하는 정작 시리우스
모임에서는 가만히 있기만 했는데도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오, 저기 우리 기수가 지나간다. 파랑이 형이랑 은혁이 주변에 모인 애들이 많네?”
그때 유도준이 길목에 새로 접어든 학생들을 가리켰다.
031기의 남학생들이었다.
선두에서는 목민호와 갤럭시그룹의 방계가 신경전을 벌이면서 경주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신경전과 관계없이 파랑은 031기의 아인들을 챙기면서 달리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하지.
중등아카데미에 재학하는 아인이 얼마 없는 마당에 바보 형의 위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으니까.
속칭 노은하 사단.
아카데미 관계자들이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말이었다.
척 듣기에는 촌스러운 소리였으나, 아카데미 내에서 노은하 사단이라는 말은 계속해서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었다.
또한 노은하 사단이라고 불리우는 학생들이 유망주로 분류되었기에.
그러다 보니 같은 유망주라 해도, 노은하 사단에 속한 유망주가 더욱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3학년으로 올라가며 그들이 개인적으로 엮어온 인연이 인맥이 되고, 새로 파벌이 생겨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들 자신이 알게 모르게.
“보기 좋네. 안 그래도 아인들은 거의 대놓고 무시를 당해서 살기가 갑갑했을 텐데, 저렇게 파랑이 형이 챙겨주니 즐거워하는 것 좀 봐.”
“이 높이에서 그게 보여?” “은하야, 나 눈 좋다? 네 팬티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고 있다니까. 아까 바지 위로 올라온 거 보니까 제법 비싼 데서 주고 산….”
“네가 이십오야? 좀 닥치라고.”
“하…, 내가 이렇게 산다.”
그중에서도 파랑과 서나는 상당히 비정상적인 위치에 있는 셈이었다.
두 사람은 아인이었다.
고등아카데미라면 모를까, 각 반에 아인이 한 명 있는 중등아카데미는 아인들에게 그리 좋은 교육환경은 아니었다.
그런데 진파랑과 진서나가 누구도 험하게 대할 수 없는 권위와 인망을 손에 넣었다.
중등아카데미에서 학생들에게 종종 핍박을 받고 살아가던 아인들에게 두 사람의 존재는 선망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노은하 사단에 속해 있는 진파랑과 진서나의 주변에 있는다면 다른 학생들로부터 괴롭힘이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었으니.
언젠가부터 아인들은 두 사람에게 비호를 받게 되었다.
중등아카데미 내에서 아인에 대한 시선이 다소 달라진 것이다.
서나는 똑 부러져서 저 아인들에게 휘둘리지 않을 테지만….
파랑이 형이 조금 불안한데.
은하는 조용히 혀를 찼다.
중등아카데미에 얼마 없는 아인도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면서 그 안에 두 개의 파벌이 공존하고 있었다.
하나는 진서나를 중심으로 가급적 아카데미에서 눈에 띄지 않으려고 조용히 생활하는 온건파.
또 다른 하나는 진파랑을 중심으로 아카데미에서 쾌활하게 생활하고자 때로는 위험천만한 일도 벌여대는 강경파.
온건파야 서나가 알아서 하겠지만, 기세등등하고 있는 강경파는 앞으로 어찌 될지 알 수 없었다.
진파랑이 사람을 관리할 수 있는 성격은 결코 아니었으니까.
회귀 전에 그는 라 불렸다. 그런 이명을 받은 데에는 복합적인 원인이 있기야 했지만, 그가 결국 이용당했다는 측면에서는 라 불려도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 여기서 한탄하고 있는다고 뭐가 변하겠어…. 나는 이제 그만 강의실로 내려가 있을게.” “아, 잠깐만.”
유도준의 말이 맞았다.
한탄해서 뭐하겠는가.
결국 싫어도 해야 할 일인 것을. 영원그룹의 회장이 되겠다는 염원을 버리지 않는 이상, 그는 모진 길을 걸어야 했다.
그것은 은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은하는 강의실로 돌아가려는 그를 붙잡았다.
“왜?”
“내가 예전에 줬던 아티펙트, 아직 가지고 있지?” “그…, 뭐냐…. 작년에 종평 때문에 나한테 준 반지? 그거 보호마법이 새겨져 있다 해서 비상시에 대비해 이렇게 가지….”
셔츠 안쪽에 손을 집어넣어 반지를 엮은 목걸이를 보여준 유도준.
은하는 그것을 홱 낚아챘다.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로 인해 유도준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야! 줬다 뺏는 게 어디 있어!?”
“너한테는 이제 필요 없잖아.”
“친구야, 내가 비상시에 대비한다 말을 했잖니. 어?”
“나중에 비슷한 걸로 만들어줄게.”
“에휴, 알았다. 단, 류연화 선배가 보호마법을 걸어준 아티펙트로.”
“요새 많이 바쁜 것 같아서 아마 힘들 거야. 일단 말은 해볼게.” “그래…, 말은 해본다 이거지. 하, 기대하지 않는 게 낫겠네. 그래서? 그건 어디에다 쓰려고.”
도준은 그간의 경험을 통해 은하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결국 체념한 그는 화제를 돌렸다.
그러자 은하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해수 형한테 주려고.” “해수 형? 공방에 있는 그 형? 야, 척 보기에 건강하게 생긴 그 형보다 연약하게 보이는 내가 아티펙트를 가지고 있는 게 맞지 않냐?”
“너보다 그 형한테 더 필요해서.”
더는 알려줄 필요가 없다는 듯이.
은하는 유도준의 말을 잘랐다.
그러고는 곧 목걸이에 꿰인 반지를 아무 짝에나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사람 일이란 모르는 거니까.
작년에 흐른 피가 세상 사람들에게 아직 잊히지 않았건만.
굳지 않은 피 위로 다시금 피가 떨어지고 말 것이다.
아니, 떨어지게 ‘할’ 것이다.
☆
중등아카데미의 교관의 입장에서는 3학년에 갑작스레 편입학 학생들이 아카데미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신경을 기울여야 했다.
그런데 그들은 중대한 사실을 하나 간과하고 있었다.
편입한 학생들에게 집중한 나머지, 친구들을 죽음으로 잃은 031기를 배려하지 못했던 것이다.
죽음에 대한 기억은 뿌리 깊다.
그들이 겉으로는 괜찮게 지내도, 속으로는 왕창 썩어 있는 법이다.
아카데미는 그것을 간과한 결과, 기존 031기 학생들은 새로 편입한 이들에게 상실감과 박탈감을 느끼고 그들에 대한 반발심을 품게 됐다.
게다가 제아무리 중등아카데미에서 편입한 031기 학생들을 배려한대도, 그들 개개인의 마음까지 배려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031기에서 시작된 기존 세력과 신흥 세력의 신경전은 032, 033기수에게까지 퍼지며 현재 대격변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때가 돼서 교관들은 통감했다.
자신들의 실책을.
“그러니까 어떻게든 031기를 위해 융화책을 내놓아야 한다니까요?” “기존 031기들이 불만을 가진 건 우리가 편입한 아이들을 편애하고, 이례적으로 들어온 아이들이 그동안 아카데미에 만연하고 있던 문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게다가 아카데미는 실력만 좋으면 극단적으로 범죄 아니면 무슨 짓을 벌이더라도 묵인되니까요. 편입한 애들이 실력행사를 하려 하는 것도 그동안 실력으로 상하관계가 정해진 031기 애들 눈에는 아니꼽게 보일 만도 하겠죠.”
실력지상주의를 내세운 아카데미는 학생들의 경쟁을 부추겼다.
그리하여 1학년부터 입학해 현재 3학년이 된 031기 학생들은 은연중 서로에 대해 순위를 매기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느닷없이 3학년에 아무 고생도 하지 않은 편입생들이 들어온 것이다.
편입생들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 기존 학생들과 경쟁을 벌이려 했고.
어느 정도 자신의 위치를 선점하고 중등아카데미에서 최고 학년이 된 기존 031기 학생들이 불만을 품을 만도 했다.
“하지만 경쟁은 어쩔 수 없는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이야 문제가 되도, 내버려두면 알아서 정리가 되겠죠.”
“그래서 저는 이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031기 학생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계기? 어떤 계기?”
작년, 중등아카데미의 교관이 된 이국종.
그는 교관들에게 의견을 내놓았다.
교관들의 이목이 쏠리고, 이국종은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았다.
“그러니까 멘토, 멘티제를 만들자 이 말인 거지?”
“기존 학생들이 편입생들을 도와서 아카데미 생활에 적응하도록 하는 겁니다. 그걸 계기로 서로를 이해해,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나쁘진 않네. 기존 031기를 멘토, 편입생들을 멘티로 만든다라….”
교관들은 머리를 맞댔다.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왜 이런 방법을 처음부터 떠올리지 못한 것인지 후회되었다.
그랬다면 현재 상황이 조금이나마 나았을 것을.
그러나 후회하기엔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교관들은 멘토-멘티제를 만들고자 031기 학생들의 명부를 종합했다.
재학생 137명, 편입생 163명.
1:1로 편성한다고 하더라도 제법 편입생이 남을 것 같았다.
따라서 교관들은 기존 031기 중에 2명의 멘토가 되어줄 만한 이들을 물색했다.
일단 성적순으로 짜르기로 했다.
“노은하는…, 커트겠지?” “”””커트.””””
한 교관이 노은하의 생활기록부를 집어 들며 운을 뗐다.
나머지 교관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써 노은하의 눈치를 보게 될 편입생 한 명을 구원할 수 있었다.
“하양이는 당연히 1명 더 주고…, 은우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서나는 어떨까요?” “서나는…, 그래. 한 명 더 주는 게 낫겠네. 아인들은 아인들끼리 묶어. 괜히 문제 일어날 수 있으니까.”
사람은 아인을 천시했다.
일반인은 아인을 증오했다.
플레이어는 아인을 하대했다.
아인은 사회적 약자였다.
그러나 그들이 있기 때문에 세상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차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3학년 총괄 감독은 그걸 알았기에 혹시라도 일어날 문제를 방지하고자 아인끼리 멘토와 멘티를 편성하도록 지시했다.
얄궂게도 아인을 지키기 위해서, 아인을 따로 떨어뜨려놓은 것이다.
그래도 진서나와 진파랑이 있으니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겠지.
게다가 교관들은 마음속으로 이미 진서나와 진파랑이 문제가 생겨도 어떻게든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도 했다.
솔직히 두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031기는 아인에 대한 차별의식이 다른 기수보다 현저히 적었다.
“그럼 편성을 대충 이렇게 하고…, 더 할 건 없나?”
“이것 말고 이번 주 중으로 포지션 배정 결과 공지를 해야 해요.”
멘토-멘티 편성이 얼추 끝났다.
기지개를 편 총괄 감독은 그밖에 할 일이 없는지 찾았다.
그러자 한 명이 손을 들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중등아카데미 3학년은 플레이어로서 포지션을 선택하고, 포지션에 특화된 강의를 중심으로 수업을 들어야 했다.
고등아카데미는 인원이 많다지만, 중등아카데미는 수가 적었기 때문에 거의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부문을 배정받을 수 있었다.
“올해는 편입생들 때문에 좀 늦은 감이 있다고 하지만…. 뭐, 알아서 수업 선택은 잘했겠지.”
“네, 어찌 보면 기존 031기 애들은 수가 적은 나머지 어느 부문에서도 빵꾸가 났다고 하더라고요.”
“허허…, 참 안타까운 일이네.”
교관들은 조금 전과는 달리 가볍게 어깨를 들썩였다.
이국종은 눈치껏 막내 교관을 불러 포지션 배치 결과를 가지고 오도록 시켰다.
잠시 후, 막내 교관이 숨이 차서는 결과서를 가지고 왔다.
교관들이 몰려들었다.
“어디 보자, 플레이어 부문의 꽃인 딜러에는 누가 지원했으려나.” “딜러가 꽃이라뇨…! 꽃은 당연히 캐스터죠!”
교관들이 서로가 전공하는 부문을 높이 평가하며 싸웠다.
그들의 말다툼에 끼지 않은 채로, 총괄 감독관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각 부문을 선택한 학생들의 이름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가 손가락을 멈췄다.
“이거 결과 잘못 나온 거 아냐?” “네? 그거 맞는데요?”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무슨 문제 있습니까?”
총괄 감독관은 눈살을 찌푸렸다.
입으로 말하기도 아팠다.
그는 교관들 중에서 제일 목소리가 큰 교관에게 결과서를 넘겼다.
이국종 교관이었다.
난데없이 결과서 1장을 받은 그는 교관들의 이목을 받으며 결과서를 읽어야 했다.
“가디언 부문이네요. 어디보자…, 가디언 부문을 지망한 학생은─.”
이국종은 태연하게 읊조렸다.
그러다 최상단에 적혀 있는 이름을 확인하고는 숨을 삼켰다.
“”””…….””””
교관들도 숨이 멈췄다.
그들의 시선이 이국종에게 향했다.
이국종은 정말 이것이 사실인지, 고개를 결과서를 향해 들이밀었다.
글자는 변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말을 이어야 했다.
“─노은하.”
아무도 예상 못한 결과였다.
☆
그날, 저녁.
은하는 벽해수의 공방을 찾았다.
아직 종평이 시작되지는 않았기에 도준에게 ‘받은’ 반지를 그에게 건넬 필요는 아직 없었다.
하지만 은하는 벽해수에게 볼일이 따로 있었기에 겸사겸사 반지를 전해주기로 했다.
“근데 형, 정말 공방에서 사는 건 아니지?”
“안 살아, 안 산다고. 네가 저번에 공방에서 씻지도 않고 살지 말라고 떽떽거려가지고 집에 가서 편하게 씻고 자고 있거든? 가서 잠만 자고 오기만 하지만….”
“그러다 몸 망친다. 조심해.” “내 몸이 얼마나 건강한데….”
벽해수는 수건으로 땀을 닦아서는 피식 웃었다.
이전 삶과 다르게 벽해수는 굉장히 건강했다.
돈과 명예가 그를 정력이 넘치도록 만든 것이다.
은하는 그가 보기 좋으면서도 가끔 외팔이 벽해수의 기억이 튀어나와 그에 대한 걱정을 떨칠 수 없었다.
“그래서? 이걸 나한테 준다고?”
“어. 항상 차고 다녀. 위급할 때는 반지에다 체내 마나를 불어넣고.”
“내가 만든 거라 효과가 어떤지는 잘 아는데…. 이걸 왜 나한테 주는 거야?”
“형한테 필요할 것 같아서.”
두꺼운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집은 벽해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은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걸 어떻게 말하겠어.
형한테 필요할 것 같아서.
은하는 그 말로 대충 얼버무렸다. 그에게 자세한 내막을 말하고 싶지 않았기에.
한편, 아무것도 모르는 벽해수는 그러려니 하며 받아들였다.
아무 의심도 품지 않고.
“그래, 이리 좋은 걸 주겠다는데 감사히 받아야지 어쩌겠어. 고맙다. 잘 쓸게.”
“정말 위급할 때만 써야 해. 그거, 다시 만들기 힘든 거 알지?”
“알아. 내가 만들었다니까, 이거.”
은하는 장난스럽게 강조했다.
아마도 공방에서 사는 벽해수에게 위급한 일은 종평이 있을 때 외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은하는 이곳에 온 목적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벽해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뜬금없이 그런 톡을 보내서 재료를 급히 수배하기는 했는데….”
자리에서 일어난 벽해수가 몇 가지 재료를 챙겨왔다.
그는 원형의 나무 방패를 들어서는 은하의 왼쪽 팔목에 가져다댔다.
나무 방패가 상당히 컸다.
“좀 잘라야겠네.”
“큰 것도 사용할 수 있어. 어차피 진지하게 사용할 것도 아닌데 뭘.”
“그럴 거면서 왜 나한테 방어구를 만들어달라고 한 거야?”
벽해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방패를 다루는 딜러도 있었지만, 그가 알기로 은하는 속도를 중시한 딜러를 지망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은하의 부탁을 듣자하니 그가 부탁하는 방패는 딜러가 아닌 가디언을 위한 방패였던 것이다.
“네가 부탁해 만들기는 하겠는데, 도대체 네가 가디언 전용의 방패를 어디에다 쓰려고?”
벽해수가 진심으로 궁금해했다.
숨길 필요도 없었다.
은하는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말을 꺼냈다.
“3학년부터는 부문 하나를 정해서 전문적으로 배우게 되잖아.” “그래서?”
“가디언을 선택했지.”
“…….”
참으로 담담한 대답.
벽해수가 무언으로 답을 요구했다.
이번에도 은하는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발품 좀 팔아야 할 것 같아서….”
“어이구….”
가디언 부문을 선택했을 이천서와 친해질 겸.
겸사겸사 새로 편입한 학생들 중에 마음에 드는 가디언은 없는 것인지 찾아보기로 했다.
벽해수는 가디언을 구하기 위해서 직접 가디언 수업을 듣겠다고 하는 괴짜는 너밖에 없을 거라며 그에게 핀잔을 주었다.
☆
그리고 다음날, 중등아카데미에서 멘토-멘티 제도가 발표되었다.
노은하 사단의 멘티-멘토 현황은 다음과 같았다.
멘토
부문
멘티
김민지
레인저
자희라
채준열
노은하
가디언
강시형
목민호
딜러
김병국
유나경
멘토
부문
멘티
배수빈
캐스터
박다예
유도준
네비게이터
오민식
정하양
네비게이터
한은혜
가디언
이천서
진서나
텔레파시스트
랑이
바둑이
진파랑
텔레파
시스트
아리에스
치이
최은혁
딜러
유준혁
안요나
호시미야 카에데
레인저
제갈은솔
차은우
서포터
강예슬
레인저
윤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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