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지옥 어디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거위는 역월(逆月)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이것이 거위와 관련된 가장 이상한 일이다. 왜냐하면, 도무지 역월이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달을 거스른다니……?
역(逆)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든 간에 역월이 왜 거위를 지칭하는 말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아주 가끔 단어 자체는 살아남았으나, 그것의 본래 의미는 죽은 경우가 있다.
역월이 그렇다.
세상의 누군가는 역월의 의미를 기억할 수도 있겠으나 일단 나는 모르겠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거위 한 마리를 손질하는 동안에 역월의 의미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상상했으나 마땅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약재로 쓰였기 때문에 의학 용어일 수도 있다.
거위 고기의 효과는 다양하다. 일단 고기 자체에 독성이 거의 없는 데다가 먹는 것만으로도 곤충에게 당한 독이나 오염된 물을 마시고 생긴 독도 어느 정도 해독할 수 있다. 그리고 대체로 고기의 성질이 서늘해서 체내의 과한 열을 가라앉힐 때도 좋다.
그러니까 내 상태로 따지자면.
광증과 화병을 어느 정도 억제하고 싶을 때 먹으면 좋은 것이 거위 고기다. 그런 의미에서 역월이란 이름은 강호인들이 붙였던 게 아닌가 싶다.
아님 말고.
나는 손질한 거위를 꼬챙이에 끼워서 모닥불에 천천히 구웠다. 이 와중에 빙공에 당해서 뻣뻣하게 굳어 있는 살수들은 계속 재채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춥냐?”
“…….”
“혹시 여기서 거위의 이름이 왜 역월인지 아는 사람? 없어?”
“…….”
“없는 모양이군. 있으면 살려줄 생각이니까 생각나면 말해라. 너희 중에 공자님 말씀 공부한 사람? 그 왜 세 명이 길을 가면 한 명은 스승이라며. 배울 게 있다는 뜻이겠지? 역월에 대해서 내게 가르침을 내릴 스승이 있으면 입을 열어라. 스승을 죽일 수는 없지.”
나는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거위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소금이 없어서 밋밋하긴 한데 그래도 먹을 만하다.”
와들와들 떨고 있는 살수들은 전부 따뜻한 모닥불 앞에서 거위 고기를 뜯고 있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살수들과 눈을 마주치면서 말했다.
“맛있다. 맛 좋다. 살살 녹는다. 녹아.”
“…….”
“생각해 보면 너희도 역월 같은 놈들이야. 사람을 죽이는 기술을 힘겹게 수련해서 살수가 되었는데 정작 사람을 왜 죽여야 하는지는 다들 까먹었지? 옛날 살수들은 그렇지 않았다. 죽일 이유가 마땅했기 때문에 목숨을 걸었겠지. 반면에 너희는 그런 거 모르잖아. 위에서 시킨다고 사람을 죽이다니……. 역월의 의미가 사라졌듯이 너희가 오늘 이 자리에서 전부 뒤져도 아무도 너희를 기억하지 못할 거다.”
나는 고기 살점을 싹싹 발라내면서 먹었다.
“나도 너희처럼 살수이긴 하다. 그러나 생각이 다르고 그릇이 달라. 돈 때문에 죽여대지 않았다. 약자에게 돈을 갈취하고, 몸을 빼앗고, 상납금을 받고, 이상한 논리로 사람들을 노예처럼 부리고 있어서 죽였지. 나는 누가 시켜서 살수가 된 사람이 아니야.”
나는 마지막 살점을 입에 넣었다가 뽁― 소리와 함께 다리뼈를 입에서 뽑았다.
“다 먹었네.”
굳어 있는 살수들의 상태를 점검하다가 잔월지법을 한 대씩 더 때려 넣었다.
탁, 탁, 탁, 탁, 탁, 탁!
“끄흐으으윽!”
나는 봇짐 상인의 신음에 깜짝 놀라서 놈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깜짝이야. 이 새끼야. 살수가 이 무슨 추태야? 주둥아리 안 다물어?”
둘러보니 다들 얼어붙은 눈물과 콧물이 눈과 코 주변에 들러붙어 있었다.
나는 다른 살수들에게 고자질했다.
“이 비명 지른 봇짐 상인이 말단이냐? 군기(軍氣)가 빠졌네. 상급자가 못 가르쳤으니 윗놈들이 지법 한 대씩 더 처맞아.”
나는 비명 지른 놈을 제외하고 잔월지법을 한 대씩 더 찔러넣었다.
탁, 탁, 탁, 탁, 탁!
“좋았어. 일위도강에 이처럼 못난 살수가 나오면 안 되지. 그나저나 근처 객잔에 가서 술 좀 사 올까 하는데, 그사이에 도망갈 사람 손?”
내가 손을 든 채로 살수들의 표정을 살폈다.
“없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입이 있는데도 대답을 안 하겠다는 말이지. 알았어. 너희는 뒤졌다.”
성큼성큼 호숫가로 걸어가서 양손의 장풍으로 얼어붙어 있는 살수들에게 호숫물을 끼얹었다.
“뒤져랏!”
철퍽! 철퍽! 철퍽!
성난 파도, 분노한 파도, 거침없는 파도가 살수들을 덮쳤다.
나는 살수들의 창백한 표정, 절망에 빠진 표정, 곧 숨이 넘어갈 것 같은 표정을 바라보다가 웃었다.
“멍청한 놈들이네. 대답한 놈은 모닥불에 세워 놓으려 했는데. 일단 기다려라. 술 좀 사 올게.”
나는 경공을 펼쳐서 객잔으로 향했다. 옥수산장으로 향했을 때 술 마시고 싶은 곳을 눈여겨봤었던 상태. 차 한 잔 마실 시간 정도가 걸린 다음에 두강주 세 단지와 마른안주를 넉넉히 사서 호숫가로 돌아왔다.
나는 속삭이는 살수들의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넉넉하게 사 왔다. 넉넉하게. 나 빼고 무슨 대화했냐?”
살수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와, 진짜 오늘 나 누구랑 얘기하냐. 혼잣말하니까 목이 탄다. 목이 타. 목이 탈 때는 술이 최고야. 술은 두강주, 안주는 마른안주. 하하하하.”
“…….”
“에이 씨.”
나는 불길이 약해진 모닥불에 땔감을 더 집어넣은 다음, 마른 풀떼기와 갈대로 대충 만든 방석에 앉아서 살수들을 구경했다.
술 한 잔 마시고, 안주 씹고.
안주 씹다가, 술 한 잔 마시고.
“캬……. 농부는 아까 죽었고. 나무꾼 죽고, 사냥꾼 죽고, 학사 죽고, 낫은 얼어 죽고, 노인장 죽고. 아, 속 좁은 놈도 죽었구나. 어부, 봇짐 상인, 웃통, 검객, 못생긴 놈. 이렇게 다섯 명이 살았네. 어? 낫 든 놈 아직 살아있구나. 그럼 여섯 명.”
낫을 쥔 채로 굳어 있었던 놈이 눈을 떴다.
나는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얘들아, 지금 자면 안 된다. 졸려도 참아. 잠들었다가 눈 뜨면 염라대왕이 어떻게 오셨냐고 물어보거나, 지옥 어디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할 거다. 일단 이자하 때문에 왔다고 전해. 대왕께서 나 때문에 고생이 많으시네.”
나는 두강주를 마신 다음에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니, 얘들아. 말이 통해야 신나게 갈구지. 나 오늘 뭐 하는 거냐? 한심하다. 한심해.”
나는 두강주를 들고 일어나서 못생긴 살수에게 다가갔다.
“야…….”
나는 왼손으로 못생긴 살수의 턱을 붙잡은 다음에 눈을 노려봤다.
“내 눈 똑바로 봐. 죽이기 전에.”
살수와 눈을 마주친 다음에 말을 이어나갔다.
“네가 살수라서 내가 싫어하는 게 아니야. 네가 못생겨서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내 말 알아들어? 네가 생각이 없는 살수라서 내가 싫어하고 증오하는 거다. 생각 좀 하고 살아. 왜 사는지……. 왜 태어났는지. 왜 병신 같은 놈들이 네게 이런 짓을 시키는지. 그게 정말 의미가 있는 일인지…… 생각해 봤어? 의심해 보란 말이야.”
나는 못생긴 놈과 한참을 눈을 마주쳤다.
“…….”
“살수야, 나를 이해해달라고. 나도 너희와 같다. 내가 하는 일이 살수나 다름이 없단 말이야. 다만, 죽일 놈을 죽여야 하는 거야. 남의 말을 듣는 게 아니라고. 하오문주 이자하가 네게 술 한 잔 올리마. 마셔라.”
나는 못생긴 살수의 주둥아리를 왼손의 악력으로 벌린 다음에 두강주를 마시게 해줬다.
꼴꼴꼴…….
두강주가 못생긴 살수의 목구멍으로 꿀렁대면서 넘어갔다.
“맛이 어때? 좋아? 단언컨대, 다른 놈들은 지금 널 부러워할 거다. 하오문주와 술을 나눠마시다니 영광이지. 암.”
나는 두강주를 마시면서 내 자리로 돌아왔다.
“너희들 그거 아냐?”
“…….”
“나 점소이였던 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웃었다.
“아, 그건 몰랐겠지. 나를 아무리 조사했어도 그건 몰랐을 거다. 내가 괜히 문파 이름을 하오문으로 한 게 아니다. 밑바닥 인생들이 모인 문파라 이 말씀이야. 너희와 나는 별 차이가 없어. 홀로 일어난 사내인가, 아니면 남의 명령만 수행하다가 오늘처럼 허망하게 죽는 인생을 살았는가. 그 마음가짐의 차이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묻는다.”
“…….”
살수들을 향해 두강주를 슬쩍 들어 올렸다.
“한 모금, 마실 사람?”
이놈들, 마지막으로 협박해서 죽일 거라는 말을 예상했을 것이다.
‘응. 아니야.’
나는 살수들을 회유했다.
“본진을 불라는 말이 아니다. 너희 대장이 누구인지 알려달라는 말도 아니야. 아무 의미 없이 다시 한번 물어보마. 두강주 마실 사람?”
이때 어부의 입술이 쩍―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나, 한 모금 주시오.”
“좋다.”
나는 일어나서 어부에게 다가갔다. 놈의 턱을 살짝 들어 올린 다음에 두강주를 마시게 해줬다.
“입 여느라 고생했다. 정말 과묵한 놈들이로군. 너희가 어떻게 훈련을 받았는지 눈에 그려진다.”
나는 제자리로 돌아와서 살수들을 바라봤다. 이제야 나는 이놈들의 얼굴이 눈에 익었다.
“이야, 어느새 달이 떴네. 좀 있으면 호수에 달 비치겠다. 경화수월(鏡花水月)이야. 너희는 이런 생각 해본 적 있어? 달은 왜 이렇게 쓸데없이 아름다울까. 저 달빛 봐라. 밤에 일하는 사람들 넘어지지 말라고 저렇게 떠 있는 거 아닐까. 아니면 바느질하는 사람들 손 조심하라고 떠 있거나. 어쩌면 외롭고 고독한 사람들 가끔 눈 마주치라고 떠 있거나.”
“…….”
“아니야? 어쨌든 너희 같은 놈들이 사람 죽이는 거 구경하겠다고 떠 있는 분은 아니시다. 그게 내 결론이다. 네 명이 아직 술을 안 마셨는데 너희는 죽는 게 낫겠다.”
나는 왼손에 두강주를 들고 오른손에는 섬광비수를 쥔 다음에 검객에게 다가갔다.
검객이 다급하게 입을 열자, 입술에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술 한 모금 주시오.”
나는 섬광비수를 검객의 목에 댄 다음에 대꾸했다.
“왜 그렇게 빨리 말해? 내가 혼자 얼마나 떠들었는데.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칼 들어간다.”
검객이 굳어 있는 상태에서 비명을 내질렀다.
“술! 살려줘. 술!”
나는 검객의 눈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술 마실 거야?”
“예!”
“알았다. 검객끼리 정이 있어야지.”
나는 섬광비수 대신에 두강주를 살수의 목구멍에 넣어줬다.
“마셔라. 두강주다. 나머지 죽을 사람은 말을 하지 마.”
나는 나머지 세 명에게도 선택을 강요했다.
“술 마실래 죽을래. 대답 없으면 그냥 죽이고.”
두 놈은 술을 마셨는데 낫을 사용하던 놈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네가 냉겸이라는 놈이지? 안 마실 거야?”
“…….”
나는 냉겸의 몸에 잔월지법을 때려 박은 다음에 놈의 멱살을 잡아서 호수로 가차 없이 집어 던졌다. 비명에 이어서 풍덩 하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냉겸이 호수 아래로 가라앉았다.
나는 아직 살아있는 살수들에게 고했다.
“다섯 명 남았다. 이제부터 서로 눈치들 봐라. 대화가 잘 통하는 한 놈만 살려놓을 생각이다. 나머지는 호수에 가서 야간 수영 좀 하든가. 물고기 밥이 되든가 알아서 하고. 도저히 못 버틸 것 같은 놈은 죽여달라고 내게 부탁해. 죽여주마.”
나는 살아있는 다섯 명에게 다시 냉월지법을 때려 박은 다음에 내 자리로 돌아와서 가부좌를 틀었다.
“살수 여러분들, 누가 이기는지 해봅시다.”
“…….”
나는 눈을 감은 채로 읊조렸다.
“내가 먼저 죽을지, 너희 일위도강 우두머리가 먼저 죽을지. 명상에 잠겨보도록 해. 미리 말해주자면 나는 너희 수장보다 약한 사내가 아니다. 나는 운기조식 좀 해야겠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조금씩 강해지는 사내, 그것이 나다. 어제는 너희 수장보다 내가 조금 약했을지 몰라도 내일은 내가 더 강할 거야. 이유가 뭔지 알아?”
나는 심호흡을 한 다음에 결론을 말했다.
“안 알려 줌.”
월영무정공의 운기조식을 달빛 아래서 시작했다.
강물에 달그림자 내려앉은 밤.
무정한 달빛이 살아있는 살수들과 나를 비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