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19
19. 비와 강철의 사나이(2)
내가 사용하던 주력 병장기를 지금 얻을 수 없다. 그러니 그때까지 대체할 수 있는 주력 병장기를 구해야 하는 처지다. 이를 금철용 아저씨가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사실은 그가 만들지 못해도 좋다.
금철용이 손잡이만 좋은 병장기를 만들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가치 있는 일에 도전하는 장인이 되길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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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철용이 비를 구경하면서 내게 말했다.
“쉬운 일은 아니군.”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그렇게 단단한 철을 구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서. 자네 말마따나 만년한철을 구하면 만사가 해결되는 일이지만. 강호인들이 공청석유를 얻는 것만큼이나 힘든 것이 만년한철을 구하는 것이네.”
“그렇습니다.”
“그러나 무게까지 무거운 것이라면 흑시(黑市)를 살펴봐도 될 것 같군.”
흑시는 흑도의 고수들이 병장기를 구하는 곳을 총칭하는 말이다. 경매하는 곳도 있고, 제작해서 파는 곳도 있었다. 금철용이 흑시를 살펴본다는 것은 만들어진 도검을 구입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철을 구하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나는 여기서도 입을 다물었다.
병장기를 만드는 것은 오롯하게 철방을 오랫동안 운영한 금철용의 몫이었지. 내가 간섭할 일이 아니었다.
다만 금철용이 정말 내가 만족할 수 있는 병장기를 만들어내면 그 또한 내 복이고, 금철용의 운명이었다.
그간 강호의 고수들이 무서워서 훌륭한 병장기를 자의대로 만들지 않았던 모양인데 내가 그 금기를 깨줄 생각이었다.
어차피 용두철방에 일이 생기면 내가 보호해줄 생각이다.
금철용이 내게 물었다.
“생각해 둔 이름은 있나?”
나는 병기의 이름을 즉시 대답했다.
“병장기의 이름은 광인(狂刃).”
미칠 광(狂)에 칼날 인(刃)이다.
금철용이 병장기의 뜻을 읊조렸다.
“미친 칼날인 셈인가? 그렇다면 병기의 모양은 상관없다고 했으니 인은 상대방을 찢어 죽이겠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겠나?”
“대충 그런 뜻입니다.”
“혹시 직도(直刀)로 만들어줘도 되겠나? 기교를 부리지 않으려면 직도가 가장 적당한데 말이야.”
직도는 말 그대로 칼날에 휘어짐이 전혀 없는 곧은 칼을 말한다.
“직도(直刀)면 더욱 좋습니다. 남자는 직진(直進)이니까요.”
내 뜻밖의 개소리에 금철용이 나를 잠시 노려보다가 말했다.
“그렇게 하지. 직도로 만들어주겠네. 그 이름은 광인이 될 것이고, 이 금철용의 부러지지 않는 신념이 담기게 될 것이네.”
나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조용히 듣고 있는 장득수가 한마디를 보탰다.
“광인이라… 무시무시한 이름이네요.”
금철용은 자신이 만들어야 할 병기를 상상하면서 물었다.
“기한은?”
“기한은 장인(匠人)이 정하는 것이지 의뢰자가 정하는 게 아닙니다. 떼를 쓴다고 장인이 만족할 만한 완성품이 나오겠습니까. 언제든 상관없습니다.”
사실 금철용이 장인이었던 적은 없으나, 나는 장인으로 대우할 생각이었다.
금철용이 턱을 쓰다듬었다.
“그것도 맞는 말이네. 재료를 구하는 것도 기간을 예측할 수 없으니 말이야. 내가 어느 날 자네를 불러서 그 광인을 선물하겠네. 그런 의미에서.”
“예.”
금철용이 빈 그릇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국수는 오늘 자네가 사야겠군. 오늘도 잘 얻어먹었네.”
“가난한 점소이한테 얻어먹기 있습니까?”
금철용이 어림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자네는 점소이가 아닐세. 언제부터 아니었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오늘은 하오문의 문주님에게 얻어먹는 거로 하세.”
그릇을 닦고 있었던 장득수가 궁금하다는 것처럼 물었다.
“하오문? 하오문이 뭡니까. 자하가 만들었어요?”
내가 대답해줬다.
“득수 형.”
“왜?”
“형도 하오문이야.”
장득수가 놀란 표정으로 대꾸했다.
“어? 내가? 언제부터 가입됐지?”
“내가 아는 사람은 이미 다 가입된 셈이지.”
“아하.”
“그런 의미에서 문주에게는 항상 국수를 공짜로 제공할 수 있도록. 알아들었나?”
장득수가 두 눈을 호랑이처럼 부릅뜨더니 정색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손님, 왜 이러십니까?”
“…….”
하여간, 일양현의 사내들에겐 잘 안 통한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전낭에서 돈을 꺼내서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문득 내 시선이 가장 먼저 춘양반점의 바깥으로 향했다. 이어서 금철용과 장득수도 내 시선을 따라서 바깥을 주시했다.
빗속에 사내들이 서 있었다.
금철용이 걱정스럽다는 것처럼 말했다.
“음, 빗속의 불청객이군. 물론 자네의 적이겠지? 나는 죄를 짓고 산 적이 없어서 말이지. 기루에도 얼씬하지 않았으니.”
장득수의 눈빛도 대번에 착해졌다.
“도와주고 싶어도 전 싸움 못 합니다. 손 다치면 장사 못 해요.”
그러면서도 장득수는 가장 날이 예리한 식도의 위치를 눈으로 확인해뒀다. 어쨌든 춘양반점으로 저들이 쳐들어오면 식당 주인도 칼부림을 할 생각이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말했다.
“저놈들이 날 찾아왔다는 징후가 있소이까?”
이때, 바깥에서 놈들이 춘양반점을 향해 말했다.
“이자하…… 거기 있는 거 안다. 바깥으로 나와라.”
장득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주님, 나오시랍니다.”
손님에서 문주로 격상된 내가 장득수를 바라보자, 장득수가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조심하십시오.”
금철용도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줬다.
“문주, 조심하시게. 나는 비만 오면 허리가 아파서……. 고질병일세.”
나는 허리에서 채찍을 풀어내면서 일어섰다.
“나한테 맡기십시오. 이 새끼들이, 비 오는데 귀찮게.”
금철용은 내가 가게를 나서자, 장득수에게 말했다.
“이 새끼들이라는 말이 어쩐지 우리한테 하는 말로 들리는군.”
장득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아니야?”
“예.”
“왜?”
“제가 형이잖아요. 자하는 그런 놈 아닙니다.”
“강호는 무공 강한 놈이 형이다.”
“그럼 어르신도 자하 동생이에요?”
“득수야, 나이 차이가 십 년 이상 나는 것도 무공으로 따질 셈이냐? 적당히 좀 넘어가자.”
“예.”
* * *
바깥으로 나가서 비를 맞고 있는 쥐새끼들을 바라봤다.
딱 한 명만 고수의 분위기가 감돌았다. 전신을 피풍의로 감싸서 두 눈만 겨우 내놓고 있는 대머리 사내였다.
아니나 다를까, 홀로 피풍의를 입고 있는 대머리 사내가 입을 열었다.
“저 비실비실한 놈이냐.”
다른 사내들이 대답했다.
“예.”
나를 바라보는 피풍의를 두른 놈의 눈빛이 그야말로 살벌했다.
“이놈들 말로는 네가 감히 흑선보의 능지석을 죽였다던데 사실이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능지석이라 들어본 것 같은 이름인데.”
물론 자하객잔 근처에서 내 손에 죽은 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쥐새끼들을 살펴보자 아는 얼굴이 제법 있었다. 시화루에 있는 무인들이었다. 그 말은 조삼평의 다른 수하들이라는 뜻이다.
나는 피풍의를 두른 사내에게 물었다.
“비를 맞고 있는 대머리께선 능지석의 사형이신가.”
“나는 흑선보의 위선우다.”
나는 위선우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별호가 하나 떠올랐다.
‘위선우라면 환도쌍귀(環刀雙鬼)였네.’
이것은 무슨 운명일까.
하오문주 시절에 내게 덤볐다가 죽는 놈들이 환도쌍귀다.
위선우와 구양수라는 사형제들이 환도쌍귀로 불리는데, 이들이 흑선보 출신이라는 것은 지금 알았다. 어쩌면 흑선보가 크게 결속력이 없는 세력이어서 이후에 흑선보를 빠져나오게 된 것일 수도 있었다.
어느 날, 장보도를 두고 큰 분쟁이 일어났을 때 흑도와 백도의 고수 사 오십 명을 하룻밤에 몰살한 살인귀들이 환도쌍귀다.
물론 환도쌍귀는 내 손에 죽었고, 그때 장보도가 가리키던 장소의 보물도 역시 내 것이 됐었다.
위선우가 피풍의를 풀어내자, 얼굴이 제대로 드러났다.
내 손에 죽었던 놈이 젊은 얼굴로 찾아와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물론 근처에 구양수가 숨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나는 채찍을 쥔 채로 말했다.
“시화루 놈들은 들어가라. 휘말려서 뒤지기 싫으면.”
위선우는 나를 죽일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서 떨거지들에겐 시선도 주지 않았다. 시화루의 떨거지들이 슬그머니 물러나더니 제법 떨어진 곳에서 자리를 잡았다. 싸움의 결과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위선우가 물었다.
“애송이, 능지석은 왜 죽였나?”
나는 간략하게 대꾸했다.
“내 집을 불태운 죄.”
위선우가 히죽 웃었다.
“죽일만한 이유였군. 덕분에 너도 죽겠지만.”
“세상일이 마음대로 되더냐? 네 머리카락처럼 마음대로 되는 일이 별로 없을 것이다.”
위선우의 이마에 힘줄이 불끈 솟았다.
“네 놈 주둥아리부터 찢어야겠구나.”
이 순간, 하늘이 번쩍였다.
위선우와 내가 서로의 얼굴을 또렷하게 확인하는 순간, 우리는 동시에 히죽 웃었다.
위선우는 두 자루의 환도를 붙잡은 채로 자세를 취했다. 놈은 혼자 싸울 때보다 구양수와 합세해서 합공을 펼칠 때 더 강해지는 놈이다.
환도쌍귀에겐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는 이들의 도법을 잘 알고 있다.
환도쌍귀뿐만이 아니라 무림맹과도 여러 차례 분쟁을 일으켰기 때문에 실력이 뛰어난 고수일수록 내가 아는 사람일 확률이 높았다.
지금은 내게 천옥으로 만들어 낸 금구소요공의 힘과 전생의 경험까지 있다.
그 때문에 이 모든 것은 비 내리는 날의 유희였다.
“위선우, 네가 굳이 명을 단축하는구나. 너는 나를 만나지 않으면 천수를 누릴 관상인데 말이야. 안타까운 일이다.”
전생의 운명을 언급한 말이었으나, 알아들을 방도가 없는 위선우는 내 말에 코웃음을 쳤다.
“미친 새끼.”
“예리하군.”
그 사이에 빗줄기가 더욱 굵어졌다.
쏴아아아아아……!
위선우가 군데군데 고여 있는 빗물을 튕겨내면서 맹렬하게 달려왔다. 내 채찍이 날아가자, 미끄러지는 자세로 채찍을 피한 위선우가 두 자루의 환도를 휘두르면서 거리를 순식간에 좁혔다. 기본적으로 채찍을 든 상대를 어떻게 죽여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몸짓이다.
거리를 벌리지 않을 생각이었던 것.
반대로 나는 횡으로 이동하면서 채찍으로 타격을 줄 수 있는 거리를 확보했다.
잠시 위선우와 나는 원을 그리듯이 움직이면서, 주도권을 가지려는 전초전을 이어나가는 도중에 우리는 비에 흠뻑 젖었다.
나는 움직이는 와중에 고여 있는 빗물을 튕겨내듯이 밟아서 일부러 위선우의 이동 경로에 뿌렸고, 위선우는 부지런하게 환도를 휘둘러 칼의 넓은 면으로 빗물을 튕겨냈다.
전초전에 임하는 내 전략은 위선우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높은 확률로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을 구양수가 모습을 드러낼 테니까 말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일부러 방어에 치중했다.
그사이에 세 차례나 연속으로 하늘이 번쩍이고, 먼 하늘에서 천둥이 울렸다.
어디선가 철벅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느닷없이 차성태가 직도를 쥔 채로 도착했다.
나는 차성태가 도착하자마자 경고했다.
“대기해. 고수다.”
“예.”
차성태가 짤막하게 대꾸하더니 여태까지 쓰고 있었던 안대를 벗었다. 폭우가 쏟아지고 있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던 것.
나는 위선우의 공격을 막아내는 와중에 어쩔 수 없이 차성태에게 말했다.
“근처에 한 놈 더 있다. 조심해라.”
차성태가 움찔 놀라더니 세차게 쏟아지는 빗줄기 사이를 이리저리 노려보면서 직도를 강하게 붙잡았다.
“알겠습니다.”
잠시 후에 차성태가 말했다.
“시화루의 떨거지들밖에 없는데요?”
차성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비가 쏟아지는 공중에서 검은 물체가 빙글빙글 돌면서 날아왔다.
“어?”
이어서 두 자루의 칼날이 좌우로 펼쳐지면서 시커먼 얼굴빛을 가진 구양수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위선우에게 합세했다.
차성태는 잔뜩 놀란 표정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와 씨발, 진짜 있었네.”
나는 오랜만에 구양수의 얼굴을 보자마자 웃음이 흘러나왔다.
“흐흐.”
환도쌍귀가 모두 등장했으니 힘을 아낄 필요가 없었다. 당장 채찍에 염계를 휘감았다.
빗줄기 속을 성질 더러운 뱀처럼 움직이던 채찍에 붉은빛이 감돌았다.
구양수가 조심하라는 것처럼 짤막하게 내뱉었다.
“사제, 힘을 숨긴 고수다. 조심해라.”
“예.”
위선우와 구양수가 좌우로 찢어지더니, 나를 양측에서 포위하는 구도로 쌍도를 각기 휘둘렀다. 내 공력을 확인하자마자, 싸움을 길게 가져가려는 의도로 선택한 진영이었다.
채찍은 회수하는 과정이 다른 병장기보다 느리므로 환도쌍귀의 대처는 적절했다.
이제 한 놈이 내 채찍을 두 자루의 환도로 얽어매고, 다른 놈이 등 뒤에서 기습하는 구도를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나는 환도쌍귀의 생각을 읽으면서 수중전(水中戰)에 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