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291
291화. 목표는 하오문주다.
나는 수적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에게 다가갔다.
“무슨 자신감으로 우리 하오문주를 괴롭히러 왔나. 사도 놈이 시키더냐?”
수적 대장은 무표정한 얼굴로 처음 보는 도법을 펼치면서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냉기를 휘감은 쌍장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쾌도로 냉기를 십자 형태로 벤 수적 대장이 전진하면서 내 눈앞까지 칼을 들이밀었다.
뒤가 없는 공격적인 도법이었지만 멍청한 행동이었다.
빙공을 뒤집어쓴 채로 내게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뒤로 슬쩍 물러나자, 대장 놈이 빈손을 휘둘렀다. 놈의 소매에서 한 자루의 칼날이 쇄도했다.
나는 목검을 뽑아서 비수를 쳐내고, 대장 놈의 칼도 쳐냈다.
여기까진 적이지만 훌륭한 공격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대단한 고수라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저 살기가 매우 짙고, 수적 무리에서 두각을 나타낼 정도의 움직임이랄까.
나도 일단 쾌검을 펼쳤다.
초식이나 위력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로 오로지 빠르게만 휘두르는 쾌검.
수적 대장의 도법에 발악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전생에 저런 식으로 싸웠기 때문에 비슷하게 대응하면 곧 밑천이 드러난다는 점을 알고 있다. 실력 격차가 크면 이런 발악도 소용이 없다.
검에 빙공을 주입해서 놈의 발악을 저지하고, 염계를 주입해서 물러나게 만든 다음에 반대로 내가 돌진해서 찌르기만으로 예닐곱 번의 점을 찍었다. 수적 대장의 동작은 처음보다 현저하게 느려진 상태였다.
이런 와중에도 세 번의 찌르기를 쾌도로 튕겨낸 수적 대장은 나머지 공격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서 목, 가슴, 어깨로 직접 검을 받아냈다.
푹! 푹! 푹!
전부 목계 검기가 주입된 찌르기였다.
검의 움직임보다 뒤늦게 터진 비명을 내가 다시 검으로 가차 없이 끊어냈다.
푸악!
수적 놈의 몸에서 붉은 선으로 시작된 핏물이 점점 먹물처럼 퍼지더니 그대로 고꾸라졌다.
나는 색마를 바라봤다.
여전히 백색의 돌풍에 휩싸인 채로 미친놈처럼 장력을 쏟아내고 있었다.
‘흥분했네. 멍청한 놈. 적이 얼마나 더 있을 줄 알고.’
나는 날뛰고 있는 색마의 용맹함을 내 공적으로 가로챘다.
“대단하구나. 하오문주.”
나도 나를 칭찬한 적은 드물어서 말이 어색했다. 그 와중에도 색마가 내 말에 대답했다.
“닥쳐!”
색마가 혼자 싸우게끔 내버려 둔 다음에 다수를 상대하고 있는 귀마를 지원했다.
선착장 근처에는 불빛이 부족해서 내 공격에는 전부 기습 효과가 더해졌다. 주로 병장기를 붙잡고 있는 팔, 팔뚝, 어깨, 손을 잘라내면서 이동했다. 이미 수적 대장의 빠른 몸놀림에 영향을 받은 터라 내 동작도 점점 빨라지고 있어서 멈출 수가 없었다.
죽이지 않고 신체를 자르면, 비명이라는 효과를 얻는다.
효과는 단순하다.
적의 기세가 떨어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항복하는 놈들이 없었다.
우리의 수가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일까.
당장은 이유를 알 수가 없어서 나는 집요하게 팔을 끊어내면서 빠르게 움직였다.
수가 많은 터라 일일이 죽이는 것도 힘들었다. 이제 번화가에서도 선착장에서 퍼지는 비명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흐느낌이 겹쳤다.
순식간에 백여 명이 넘는 수적이 죽거나 다쳤을 무렵에서야…….
공포가 효과적으로 전염된 모양인지 여기저기서 병장기를 버리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검마와 귀마도 전쟁터의 심리는 아는 고수들인지라 도망가는 놈들을 더욱 잔인하게 죽여댔다.
이제 우리는 겨우 네 명이 아니라, 적들이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네 명이 되었다.
이들도 선착장에서 이렇게 지옥도가 펼쳐질 줄은 몰랐을 것이다.
어느 순간 수십 개의 병장기가 바닥에 떨어지더니 파도가 출렁이듯이 살아있던 놈들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전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 질렸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제야 검마와 귀마도 공격을 멈췄다.
몇 차례 악에 받친 색마도 서너 명을 더 때려죽이다가 주변이 고요해진 것을 깨달았는지 공격을 멈췄다.
검마가 제자에게 말했다.
“몽랑아.”
“예, 사부님.”
“조금 더 냉정하게 싸워라. 너무 흥분했다.”
“알겠습니다.”
우리는 얼추 반 시진 만에 백여 명을 도륙한 상태. 나는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낸 다음에 집어넣었다.
검마가 항복한 자들을 둘러보면서 냉정한 어조로 말했다.
“다 죽이는 게 맞다.”
나는 항복한 놈들에게 물었다.
“사도의 행방을 아는 놈은 살려주마. 열을 세는 동안에 뾰족한 답이 없으면 그냥 죽어라. 하나, 둘, 셋, 아홉, 열.”
“문주님!”
“왜?”
“살려주십니까!”
어조를 들어보니 극도로 흥분해서 아무 말이나 지껄이고 있었다.
“사도 어디 있어?”
소리를 버럭 내질렀던 놈이 갑자기 미친놈처럼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걸 저희가 어떻게 알아요. 하하하하.”
나는 놈에게 다가가서 머리카락을 붙잡은 다음에 면상을 구경했다. 눈빛에 절망과 발악, 분노, 공포가 잔뜩 뒤섞여 있었다.
놈에게 물었다.
“네가 아는 게 대체 뭐야? 왜 이렇게 살았어?”
사내가 반말로 대답했다.
“그걸 알면 내가 이렇게 살았을까?”
“맞네.”
이들도 가까이서 얼굴을 보면 누가 하오문주인지는 아는 모양이었다.
“저세상에 가서 수적 놀이를 마저 해라. 거기에도 배가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잠시만.”
나는 머리카락을 붙잡고 있는 손에 백전십단공을 휘감아서 머리채를 뒤흔들었다.
“끄아아아아아악!”
일부러 뇌기를 주입했기 때문에 비명이 점점 밤하늘에 울리다가 어느 순간 뚝 끊겼다. 왼손에 타들어 간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흩날렸다. 나는 손바닥에 입김을 불었다.
“시끄럽게 죽네. 염병할 새끼, 또 나를 조롱할 사람? 조롱과 목숨을 맞바꾸다니 좋은 마음가짐이야. 병신 같은 새끼들.”
여태 색마가 하오문주인지 알고 덤볐던 놈들이 그제야 나를 여기저기서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눈빛을 전부 받아냈다.
“어, 그래. 나야 나. 내가 나다.”
이때 시커먼 강물 너머에서 묵직한 뿔피리 소리가 들렸다. 부우우우― 하는 뿔피리 소리가 겹치더니 먼저 도착했던 십여 척의 배보다 덩치가 큰 배들이 몰려왔다.
잘 보이지가 않아서 강물 위의 어둠이 출렁이는 것처럼 보였다.
뱃머리에서 내공 섞인 음색이 들렸다.
“……하오문주는 선착장에 있나?”
투항했던 자들이 대답했다.
“이곳에 있습니다.”
“잘했다.”
큰 배에 있는 고수가 이번에는 다른 것을 물었다.
“하오문주 죽이려는 자들도 도착하셨는가?”
이번에는 우리의 뒤편에서 대답이 들렸다.
“지금 도착했네.”
선착장 둘레에 번화가의 불빛을 등진 적들이 천천히 몰려와서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무림맹의 단혁산이 말했던 정체불명의 강호인들인 모양이었다.
이제 무릎을 꿇은 채로 먼저 항복했던 자들의 눈빛이 다시 살아났다. 운이 좋으면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이 희망의 불씨를 지핀 모양이다.
나는 일단 적을 살피는 것보다 사대악인의 표정을 확인했다.
“…….”
여기저기에 서 있던 사대악인들이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약속을 한 것처럼 웃었다.
그러니까 이 웃음은 우리가 동시에 공유하는 속마음이 반영된 웃음이었다. 어차피 쉽게, 순조롭게, 계획대로 싸울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애초에 우리는 동호에서 마주치는 적을 모조리 죽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왔기 때문이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앞뒤로 많이도 몰려왔네.”
번화가 쪽에서 등장한 놈들은 어쩐지 수적과 분위기가 달라서 사도제일인의 수하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전부 불빛을 등지고 있어서 어느 세력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적들이 한참 늘어났기 때문에 나는 무릎을 꿇고 있는 자들의 틈바구니에서 나를 소개했다.
“여러분, 내가 하오문주다.”
나는 일부러 손을 들어서 내 위치를 확인해줬다.
내가 친절하게 소개했음에도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대신 배를 타고 등장한 수적과 육지에서 등장한 우두머리가 나를 무시한 채로 대화를 나눴다.
“배에서 내리게. 동시에 치는 게 낫겠군.”
“그럽시다.”
나는 무릎을 꿇고 있는 자들을 둘러보다가 품에서 신호탄을 꺼내 끝에 달린 줄을 잡아당겼다.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공중으로 솟구친 신호탄이 이내 펑― 소리와 함께 어두운 밤하늘에 축포를 터트렸다.
신호탄의 장인이 만든 것일까.
반짝이는 불꽃의 형상을 상상을 더 해서 바라보자 한 자루의 검이 밤하늘을 밝히고 있었다.
커다란 선박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림맹.”
나는 검을 뽑은 다음에 사대악인을 둘러봤다.
“잘 쉬었나?”
세 사람이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검마와 눈을 마주친 다음에 말했다.
“죽이자고.”
나는 검마와 동시에 움직여서 항복한 자들부터 가차 없이 도륙했다. 어차피 사방에서 포위망이 좁혀들면 일어나서 싸울 놈들이었다. 한 박자 늦게 사태를 깨달은 귀마와 색마도 근처에 있는 투항자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애초에 죽고 죽이는 문제라서 방심할 이유도 없고, 자비심이랄 것도 내게 없었다. 나는 주변에 있는 수적을 눈에 보일 때마다 죽이면서 배에서 내리는 적과 번화가에서 밀려드는 적을 확인했다.
이런 와중에도 사도제일인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에 나는 내심 탄복했다. 문득 나는 근처에 있는 놈들을 죽여대다가 번화가에서 등장한 적과 마주쳤다.
“…….”
어둠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문주, 그간 별일 없었나? 건강해 보여서 반갑군.”
나는 주변에서 눈치를 보다가 도망치려는 놈의 목을 날린 다음에 대답했다.
“추명 동지, 왔는가?”
“소식 듣고 어렵지 않게 찾아왔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손은 좀 어때?”
“걱정해주니 고맙네. 조금 불편한 정도일세. 그리고 내게 동지라는 말은 쓰지 말게. 자네와는 뜻이 달라.”
“섭섭하네. 조금만 편협함을 벗어나면 우리 모두 형가의 뜻을 이어받은 사람들인데. 법가는 확실히 나랑 어울리지 않아.”
법가의 병력이 점점 늘어나더니 번화가의 불빛을 어둠으로 막아서고 있었다. 오늘따라 달빛이 왜 이렇게 인색한 것일까.
제대로 싸우는 게 힘든 날이었으나.
어차피 곧 죽을 놈들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나는 추가로 늘어난 수적은 세 사람에게 맡기고 혼자서 법가의 병력을 향해 걸어가면서 말했다.
“실명서생 일은 미안해. 이렇게 집착하는 것을 보니까 우애 좋은 사형제거나 친형제였던 모양이네.”
어디선가 추명서생이 대답했다.
“사과는 직접 만나서 하시게.”
“그래도 명색이 서생인데 일대일이야? 아니면 개판으로 덤빌 셈인가.”
추명서생이 웃었다.
이제야 나는 추명서생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일월광천을 준비할 생각이었다. 문제는 추명서생의 동작이 빨라서 바로 반격을 받을 위험이 있었다. 결국에 항복했던 놈들 사이를 누비면서 일월광천을 준비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찰나에 법가의 병력 뒤쪽에서 내공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왜 이렇게 병력이 많은가?”
“잘 모르겠습니다.”
“보고한 것보다 훨씬 많지 않은가.”
“아마 파악했던 불명의 무인들이 전부 문주의 적이었던 모양입니다.”
“대단하군.”
나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기분이 좀 이상해졌다.
감정이라는 게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이라는 것은 분명 내 것일 텐데, 내 뜻대로 조절할 수가 없었다.
황당하면서도 마음 어딘가가 꽤 무거웠다.
내 애매한 감정은 말로 표현하는 것이 힘들었다.
법가 병력의 일부가 뒤를 돌아서 적을 확인했다. 번화가에서 도착한 내 지원군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포위망 바깥에 포위망이 있고, 적 너머에 아군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 포위한 상태였다.
추명서생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식객들께서 힘내주시오. 문주가 죽으면 크게 보답하리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때, 또다시 법가의 병력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어찌 된 일이야. 내가 이렇게 존재감이 없나?”
“어두워서 그렇습니다.”
“그래? 불을 밝혀라.”
군데군데 서 있는 내 지원 병력이 횃불을 밝히기 시작하자 서서히 주변이 밝아졌다.
나는 동호특작대의 우두머리로 온 사내에게 먼저 예의를 갖추지 않을 수 없었다.
“대주님, 오셨소.”
나는 추명서생을 중앙에 둔 채로 내 후원자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다. 특작대주가 내 말에 대답했다.
“문주.”
“예.”
“두 번째로 합을 맞추는군. 이번에는 내가 조금 더 힘을 내보겠네.”
농담을 건네기가 어려운 상대라서 할 말을 찾는 게 꽤 어려웠다.
“선배, 다치면 내가 욕을 먹소.”
특작대주가 껄껄대면서 웃었다.
“무엄한 말이야.”
나도 웃으면서 대답했다.
“준비되셨으면 갑시다.”
“가자.”
나는 특작대주가 움직이는 것을 보자마자 목검을 쥔 채로 법가의 병력으로 돌진했다.
전방에서 마주친 최초의 적을 베는 순간에 후방에서 굉음이 터졌다. 공중으로 시커먼 복장을 한 무인들이 튕겨 나가고 있었다. 맹원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흘러나왔는데 지극히 차분했다. 전부 상황을 파악하는 정보 전달의 목소리였다. 그 속에는 호위에 극히 신경 쓰라는 당부의 말도 섞여 있었다.
나는 법가의 병력을 혼자서 뚫었다.
어쩐지 번화가에서 등장한 불빛을 향해 나아가는 불나방이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아서는 자들은 얼굴도 보이지 않았고.
흔히 볼 수 없는 실력만이 검을 통해 느껴졌다.
평소에 보기 힘든 고수들이 다수 섞여 있었으나 어쩐지 나는 검을 휘두를수록 용기와 기백이 뒤섞여서 끓어올랐다.
내가 뭐라고…….
이런 도움을 받나 싶기도 하고.
무림맹이라면 당연한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잠시 후 나는 법가의 병력을 돌파하듯이 전진한 다음에 적들의 한 가운데에서 무림맹에서 온 사내와 눈빛을 교환했다. 달밤에 등장한 호랑이 같은 사내가 대부분 일검에 적을 도륙하다가 내게 말했다.
“다친 곳은 없나?”
“멀쩡합니다.”
“호흡을 일정하게 유지하게. 적이 많아.”
“확인.”
나는 사내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법가의 병력을 향해 목검을 휘둘렀다.
내 근처에서는 특작대주 임소백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