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292
292화. 득도하면 밥도 먹을 수 있다.
전생의 경험과 현생의 기연 때문에 나도 보는 눈의 수준이 높아졌다. 그런 눈으로 특작대주를 볼 때마다 찰나의 동작이 인상에 남았다.
임소백과 병장기를 부딪친 사내들은 마치 어린아이가 넘어지듯이 쓰러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임소백은 찰나의 순간에 어디를 치면 상대가 나가떨어지는지 아는 모양이었다.
말이 쉽지, 검을 휘두르면서 매번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적들은 병장기를 쥔 채로 튕겨 나갈 때가 많았고, 어떤 때는 젓가락이 부러지듯이 허망하게 병장기가 쪼개지면서 핏물을 뿌렸다.
볼 때마다 신기했으나.
검마도 대처하는 게 힘들었던 맹주의 육전대검이라서 당연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여간 특이한 검법이었다.
임소백은 돌파 진형의 선두에 서 있었는데, 누군가가 임소백을 후방에서 기습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특작대가 맹주의 후방을 차지한 채로 눈에 보이지 않는 사각(死角)을 채웠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겉으로 보기엔 맹원이 오히려 맹주보다 더 잘 싸우는 것처럼 보였다.
검마와 싸울 때도 그랬지만.
임소백의 육전대검은 화려함이라는 게 전혀 보이지 않는 단순함으로 걸러진 검법이다.
오죽하면 그의 수하들이 더 고수처럼 보이겠는가?
임소백은 선두에서 법가의 병력을 검으로 꿰뚫고, 이후의 상황은 특작대원들이 달려들어서 마무리했다. 손발을 맞춰본 세월이 십 년은 넘는 것 같은 합공이었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추명서생이 데려온 법가의 병력에는 낯설면서도 다양한 고수들이 많이 섞여 있었는데, 임소백은 고수들만 골라서 무자비하게 도륙하면서 전진했다.
이를 무엇이라 해야 할까.
돼지통뼈로 배를 채운 든든함이랄까.
순간, 내 뒤에서 단혁산을 비롯한 특작대원이 따라붙더니 내게 들릴 정도로만 읊조렸다.
“문주님, 저희가 보조합니다.”
나도 특작대주처럼 내 후방을 지켜주는 지원군을 얻었다. 많진 않았지만 나는 두 명의 후방 지원자가 이렇게 큰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눈으로 익혀뒀던 임소백의 돌파 진형을 나는 그대로 따라 했다.
생각해보니까 이럴 때는 또 독고중검이 제격이다.
이제야 검마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일전에 옥수산장에서 겪은 패배가 검마를 여태껏 자극했던 게 아닐까. 나는 임소백이 엄청나게 잘 싸우는 것을 보면서 검마처럼 자극을 받았다. 싸우면서도 상념에 빠질 때가 있는데 지금이 그렇다.
무림맹이 전장에 뒤섞인 상황이라 일월광천은 선택할 수 없는 절기가 되었다. 나는 목계를 주입한 목검으로 임소백처럼 전장을 돌파하려 했으나 걸리는 적마다 고수였다.
‘염병할…….’
서너 명을 죽이고 나서야 추명서생이 독이 바짝 오른 채로 고수들을 긁어모으듯이 데려온 것임을 알아차렸다. 대여섯 명을 처리한 다음에 일곱 번째로 만나게 된 놈은 심심할 정도로 특색이 없는 사내였는데 나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슬쩍 웃었다.
“네가 소문의 하오문주로구나.”
나는 사내의 검을 쳐내면서 대답했다.
“누구세요?”
심심하게 생긴 놈이 당황하는가 싶더니 이내 무자비한 검법을 펼치면서 속도를 끌어올렸다. 일전에 내가 죽였던 도살자와 맞붙어도 밀리지 않는 속도였다.
검을 쳐내면서도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호에도 유행이 반복되기 마련인데 요새는 쾌검이 유행인가?
내가 이놈의 검을 일일이 쳐내다가 반격까지 펼치자, 심심했던 놈의 표정에도 감정이 담겼다.
“헛소문은 아니었네.”
싸우면서 떠들기 좋아하는 놈이 종종 있는데 이놈이 그렇다. 하지만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
“뭐라고 중얼대. 병신 같은 놈.”
부딪쳤던 검이 달라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을 때, 나는 놈과 좌장을 부딪쳤다.
퍼억!
순간 내 뒤에서 튀어나온 단혁산이 심심한 사내의 목을 베면서 앞으로 이동했다.
나는 소름이 돋았다.
정말 무자비하게 훈련을 받는 자들이라서 일대일이라는 강호의 도리가 통하지 않았다.
이렇게 보면 마교와 가장 흡사하게 싸우는 자들이 무림맹인 셈이었다.
이기기 위해서 서로를 닮은 것일까.
심심한 사내는 죽어가기 직전에 놀란 표정을 짓다가 쓰러졌다. 내 움직임이 한 호흡 정도 느려졌다고 생각했는지 뒤에서 보조하던 맹원이 다그치듯이 말했다.
“문주, 집중해야지.”
웬 놈이 반말을 하나 싶어서 쳐다봤더니 임소백 맹주보다 서너 살은 많아 보이는 노강호가 법가의 무인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이때, 익숙한 목소리가 온갖 감정이 담긴 어조로 나를 불렀다.
“하오문주.”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추명서생이 돌풍에 휩싸인 검을 휘둘렀다.
카앙!
나는 추명서생의 검을 막자마자, 손목이 고통을 호소하는 것을 느꼈다. 손아귀에 힘을 북돋운 다음에 추명서생과 어우러졌다.
추명서생이 비웃었다.
“무림맹까지 데려오다니 영악한 놈.”
나는 저 말을 웃어넘겼다. 데려온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맹주까지 싸우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나는 맹주의 위세를 빌릴 생각이 없어 입을 다문 채로 검을 휘둘렀다.
내가 손목이 저릴 정도면 추명서생은 뚫렸던 손바닥이 고통스러울 터였다.
싸운다는 것은 인생처럼 고통의 연속이다.
추명서생은 목계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적수여서 목검에는 염계를, 좌장으로는 월영무정공의 장력을 쏟아냈다.
추명서생과 내가 맞붙자…….
주변에 있던 자들이 아군과 적을 막론하고 조금 떨어졌다.
추명서생의 검에서도 궤적이 불분명한 칼날 같은 검풍이 계속 뻗어 나오고.
나도 냉기를 퍼트리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을 터였다. 순식간에 십여 초를 주고받다가 나는 내 의복 일부가 찢어진 것을 확인했다. 치명상은 피했으나 검풍에 옷이 찢어지는 것까진 어쩔 수 없었다. 검을 휘두르는 도중에 내가 물었다.
“추명 동지, 사도는 보았나?”
호흡이 불편해서 말을 길게 할 수가 없었다. 추명서생이 나를 죽이기 위한 검을 휘두르면서 대답했다.
“보지 못했다.”
“이긴 사람이 사도까지 죽이는 게 어때.”
“어째서.”
나는 잠시 추명서생의 검을 쳐내느라 대답하지 못했다. 돌풍 속에서 우리가 만들어낸 불꽃이 피어올랐다가 이내 찢어졌다.
내가 목검에 백전십단공의 뇌기를 휘감자, 파지지직― 하는 요란한 소리를 경계한 추명서생이 수비로 전환했다. 그제야 나도 말할 기회를 얻었다.
“내 방문을 봤을 텐데.”
“봤지.”
“고아를 그렇게 취급할 거면 법이 무슨 소용인가?”
추명서생의 표정이 씁쓸하게 변하더니 내 말에 대꾸했다.
“……좋다. 찾아서 죽여주마.”
나는 웃으면서 추명서생의 검을 쳐냈다.
“좋아. 그래야 내 동지지.”
“나는 너와 가는 길이 달라.”
“네가 나를 미워하고 죽일 수는 있어도.”
나는 염계를 휘감은 목검을 대각선으로 내려친 다음에 말했다.
“법은 공평해야지.”
우리는 입을 다문 채로 싸웠다. 대화를 포기하자 서로의 공격이 훨씬 더 무겁고 위험해졌다.
추명서생은 갑자기 무언가를 해방한 듯이 전신에서 기파를 쏟아냈다. 낯빛이 더욱 살벌해졌다. 주변 상황이 유리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는지 승부를 빠르게 결정짓자는 태도였다. 추명의 검법을 굳이 표현하자면 공수가 균형 있게 치밀했다. 마치 공부 잘하는 수재가 기초부터 탄탄하게 수련해서 일정 경지에 도달한 느낌이랄까.
더군다나 서생들의 특징처럼 온갖 검법을 수집해서 집대성한 무학을 익혔을 터였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여러 가지 검법을 모조리 끄집어냈다. 매화검법이 턱도 없이 막히고, 오랜만에 꺼내든 무극중검 중에서는 기를 압축하는 단검식(短劍式)을 주로 펼쳤다. 그제야 나는 무극중검과 독고중검이 모두 중(重)의 묘리를 담았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인지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단검식으로 기를 압축해서 목검을 무겁게 만든 다음에 독고중검의 묘리로 공격을 펼쳤다. 그런데도 추명서생을 압박하거나 몰아붙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모든 공격을 받아낼 수 있는 내공과 경험이 추명서생에게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다간 주변의 수적과 법가의 병력이 검마와 임소백에게 모두 몰살당해도 나는 추명서생과 겨루고 있을 것 같았다.
방법이 없으면.
만들어서 대응한다.
추명서생이 사도를 죽이겠다고 결심했을 때부터.
자하신공이 펼쳐질 가능성은 사라진 상태.
그렇다고 내가 죽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검에 기를 압축하는 단검식을 맹주의 육검대검으로 해석했다.
모방은 무공 창안의 어머니다.
아님 말고.
내가 파악하고, 검마와 토론했던 육전대검은 보잘것없는 장검을 부러뜨리지 않기 위해서 기를 주입했던 긴 시간이 하나의 절기로 발전한 사례다.
내 표현대로 좋은 검을 사용할 수 없었던 가난한 무인의 검법인 셈이다.
가난하면 내가 또 강호 어느 곳에 가도 빠질 수 없는 거지새끼라서 육전대검을 흉내 내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나는 목검에 단검식을 주입하고, 또 주입하고, 끊어치듯이 밀어 넣어서 압축시킨 다음에 칼날에 휘감은 기를 유지했다. 그러니까 이것은 육전(六戰)이 아니라 삼전(三戰) 정도가 되는 절기다.
내가 이것을 왜 힘겹게 준비했느냐?
나도 모른다.
하지만 목적은 있다. 타점도 생각해뒀다.
나는 평소대로 싸우면서 추명서생과 검을 맹렬하게 부딪치는 기회가 올 때마다 삼전대검을 추명서생의 검에 욱여넣었다.
내 손목도 부러질 것 같았지만.
받아치는 추명서생의 얼굴 표면도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와, 검이 무겁다는 게 이런 매력이 있을 줄이야?
강호의 유행이 쾌검인 모양인데 나는 반대로 중검의 매력에 푹 빠졌다. 쾌검과 중검을 조합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일대검호가 아닐까?
공자라는 사내가 조문도석사가의(朝聞道夕死可矣)라고 씨불였던가.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뜻으로 알고 있는데.
검객은 다르다.
아침에 검을 깨달으면 저녁밥도 먹을 수 있다.
순간, 나는 깨달았다.
저녁이 있는 삶이란 깨달은 검객에게만 주어진다는 것을.
너무 나갔나?
돌풍과도 같은 추명서생의 공격이 너무 화려해서 이를 방어하고 있는 내 머릿속도 찬 바람이 몰아쳤다.
다행인 것은 여전히 무림맹의 화려한 조명(照明)이 나를 감싸고 있다는 것.
나는 단검식이 익숙해졌을 때 삼전을 또다시 재해석했다. 삼전의 묘리를 기억한 채로…….
일검에 목계를 주입해서 갈무리하고.
이검에 추명의 검을 쳐내면서 염계를 주입했다.
두 가지의 기를 압축한 채로 맹렬하게 다가오는 추명의 검을 부러뜨리겠다는 기세로 백전십단공의 뇌기를 주입했다.
여태 들을 수 없었던 괴음이 검과 검의 충돌에서 터졌다.
찰나에 툭―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검을 쥐고 있는 추명서생의 손등에서 핏물이 솟구쳤다.
순간, 나는 추명서생의 얼굴을 향해 염계대수인을 펼쳤다. 불그스름한 장력이 퍼지기 직전에 추명서생이 좌장이 불길을 틀어막듯이 도착했다.
콰아아아아앙!
검을 쥔 손과 장력을 쏟아내는 손이 교차한 상태.
추명서생은 나와 똑같은 자세로 대응하면서 눈을 부릅떴다.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나는 추명서생과 아주 오랫동안 눈빛을 교환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순간, 우리는 동시에 웃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명서생이 내게 말했다.
“그사이에 더 성장했구나. 문주.”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이 강해져야 해.”
맞잡은 손은 어떻게 조절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렸다. 어쩌면 친구 다음으로 가까운 자들이 바로 내 적들이다.
손을 맞댄 채로 내공을 겨루고 나서야 추명의 무학 본질이 정순한 내공을 바탕으로 검을 익힌 것임을 알았다.
우리는 검으로도 버티고 있었다.
눈동자를 아래로 살짝 내려보니 추명서생의 손등에서는 핏물이 계속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일전에 내게 뚫렸던 상처가 온전하게 아물기도 전에 삼전대검에 터져나간 상태였다.
그럼에도 추명서생은 굳건하게 버텼다.
우리 주변은 신경 쓰지 않았다. 추명의 수하가 달려들면 무림맹이 나설 테고, 반대 상황의 비열한 짓은 무림맹이 하지 않을 터였다.
덕분에 우리는 온전하게 무력을 겨룰 수 있었다.
누가 죽어도 후회없는 싸움이었다는 것은 추명서생의 눈빛과 내 마음이 알고 있었다.
추명서생이 이를 악무는 와중에도 웃었다.
피가 많이 빠져나가면 기력 자체가 줄어드는 것일까. 줄어들고 있는 기력으로 과도하게 내공을 소모한 모양인지 이제 웃고 있는 추명서생의 입에서도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것은 내 승리다.
그러나 내 마음은 어찌해서 이런 승리에도 기뻐하지 못하는가?
나는 내키는 대로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추명서생에게 큰 기대 없이 물어봤다.
“……동지, 다시 살아보겠나?”
추명서생이 낮게 깔린 웃음을 내뱉었다가 대답했다.
“모욕적인 말은 이제 서로 하지 말자고.”
나는 추명서생과 눈을 마주쳤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옳다.”
추명서생을 죽일 수는 있어도 그의 자존심을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나는 빠져나간 핏물 때문에 흐트러지고 있는 추명서생을 밀어낸 다음에 최후의 한 수를 펼치도록 배려했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추명서생의 마지막 수법을 받아내고 싶었다.
밀려났던 추명서생이 치켜든 검에 회색빛의 돌풍을 휘감고 수직으로 내려쳤다.
동시에 나는 백전십단공을 극성까지 주입한 목검으로 일전에 깔끔하게 포기했었던 뇌검식(雷劍式)을 펼쳤다.
검기가 뇌우(雷雨)로 변한다는데 내가 이걸 어떻게 하나?
지금은 할 수 있었다.
목검에서 뻗어 나간 벼락이 추명서생의 돌풍을 찢어발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