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361
361화. 내 탓을 하더라고
경공을 펼쳐서 달리는 와중에 구덩이가 너무 넓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사는 처음부터 반대편에 있었기 때문에 따라잡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추격을 잠시 멈춘 다음에 구덩이를 바라봤다.
“…….”
내가 만든 작은 지옥에 교도들의 잔해와 흙먼지가 뒤섞여 있었다. 구덩이를 보고 있으려니 누가 더 악인이냐는 질문에는 쉽게 답할 수 있었다.
물론 나다.
그래서 어쩌라고?
나는 평소와 다른 웃음이 흘러나왔다. 웃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웃음은 물론이고 표정도 억지스러웠다.
광명우사의 말이 내 급소 어딘가를 찌른 모양이지?
나는 잠시 급소가 찔린 마음을 가라앉힌 채로 구덩이 건너편에서 홍목한 일행을 학살하는 색마를 바라봤다.
예전에 봤던 것보다 훨씬 잘 싸우는 것 같아서 도울 필요가 없었다.
가부좌를 튼 다음에 구덩이를 쳐다보면서 죽은 놈들을 배웅했다. 손으로 흙을 긁어서 움켜쥔 다음에 구덩이에 뿌렸다.
“……잘 가라. 누군가가 개미떼를 밟아도 너희처럼 깨끗하게 소멸하진 않을 거야. 재수가 없었지. 나랑 싸우면 대체로 그렇게 된다. 마교도 예외는 없어.”
제왕들과 서생, 천악의 마음까지는 제법 빛이 내리쬐는 곳으로 돌렸지만, 그에 대한 반대급부가 생긴 것처럼 광명우사는 비인(非人)의 길을 걷겠다고 선언했다.
이것을 어찌 막겠는가?
사실 검(劍)은 막을 수 있지만 마음이 변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교주가 검마의 발걸음을 되돌릴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광명우사가 내 탓을 하고.
그것 때문에 학살이 벌어진다면, 내 탓도 있겠지. 교도들을 학살했기 때문에 저들에게 복수의 명분을 준 셈이랄까. 광명우사가 지랄하는 것보다는 복수의 명분을 줬다는 게 매우 불쾌했다.
다만 임소백과 무림맹이 멀쩡하다.
곳곳에 서생들이 숨어 있고, 제왕들도 멀쩡한 강호다. 큰 흐름이 올바른 방향으로 이어진다면, 나 혼자서는 막지 못할 일들도 다른 자들이 해결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마음을 다스렸다.
이 강호에는 협객들이 있다.
협객이 아니더라도 선을 넘지 않으려는 자들이 있다.
만약, 지금 당장 내가 천하제일의 무공을 가졌더라도 광명우사의 비틀린 마음에서 비롯된 일을 막을 수 없다면…….
그래서 더더욱 제자들을 배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에는 협객이 가장 강하다고?
그것은 맞는 말이다.
천하제일고수도 해내기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도 협객들은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성자가 말한 협객은 단 한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었던 셈이다.
늙어서 죽을 때까지 임소백이 혼자서 뛰어다닐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나는 다시 흙을 움켜쥔 채로 구덩이에 뿌렸다.
“잘 가라. 시키는 대로 살던 놈들아……. 불쌍한 새끼들.”
여태 색마가 날뛰는 것을 보아하니 홍목한 일행도 제법 강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어느새 합류한 귀마가 육합검을 휘두르자, 상황이 빠르게 정리되고 있었다.
어느새 등장한 검마가 내 옆에 앉더니 나를 쳐다봤다.
“……다친 곳은?”
나는 검마를 쳐다봤다가 앓는 소리를 내뱉기 싫어서 손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심마(心魔)를 해결하는 중이라는 손동작이다. 맏형이 무슨 의미로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다음에 나처럼 구덩이를 쳐다봤다.
“누가 왔더냐?”
“차남, 양 대공, 광명우사.”
검마가 한숨을 내쉬었다.
“용케 버텼구나. 잘했다.”
“잘한 거 맞아?”
검마가 미간을 좁히더니 내 눈을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이 이상 어떻게 더 잘한단 말이냐?”
“음.”
검마는 구덩이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이 절기를 쓰지 않았다면 우리가 합류하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야. 제자 놈이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쳤다고 하니까, 둘째는 날벼락치고는 소리가 너무 크다고 했다.”
나는 검마를 쳐다봤다.
“그래서?”
검마가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 셋이 무작정 달렸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로.”
나는 그제야 웃음이 흘러나왔다.
“우사를 놓쳤어. 아, 아니군. 양 대공과 차남도 놓쳤지.”
“놓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우사도 바닥을 내보인 적 없었던 사내야. 단순히 놓쳤다는 이유로 네가 이렇게 울적해 할 리가 없지. 우사가 뭐라고 하더냐?”
어쩐 일인지 맏형은 상황을 얼추 다 이해하고 있었다. 맏형에게 우사의 말을 전달했다.
“내 일월광천에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모양인지 비인의 길을 걷겠다고 하더군. 내 탓이라고 하면서 말이야.”
검마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우사도 평정심을 잃을 때가 있구나. 그따위 말을 하다니. 하지만 신경 쓸 필요 없다.”
“왜?”
“인제 와서 비인의 길을 걷겠다는 것은 염치가 없는 발언이지. 오래전부터 그렇게 강해졌던 사내야. 사라졌다가 나타나면 어느새 기도가 달라져 있었다. 나도 알고 교주도 알았지만, 굳이 묻진 않았다. 나는 우사를 어느 정도 알아. 백응지에서 올 지원군을 피할 생각으로 도주하고, 동시에 너를 끌어낸 다음에 한적한 곳에서 반격했겠지. 차라리 쫓지 않은 게 잘한 일이다. 경계심이 많은 놈이라서 혼자 추격전을 벌일 수도 있겠지. 심마는 누구에게나 온다. 우사도 예외는 아니야.”
“사실 따라갈 기운도 별로 없었어. 어쩐지 나보다 힘이 더 남아도는 것 같더라고. 일월광천의 여파도 제법 잘 견뎌내고.”
색마와 귀마가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다가왔다. 귀마가 오자마자 내 얼굴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다친 곳은? 안색이 병든 닭처럼 안 좋구나. 닭만 먹어서 그런가?”
나는 귀마의 농담에 혼자 웃었다.
색마는 피가 잔뜩 묻은 묵가비수 두 자루를 내게 내밀었다.
“뭐가, 네 것이냐? 손잡이에 하오문주라고 적든가. 아니면 그냥 미친놈이라고 적든가. 구별이 안 되잖아. 미친놈아.”
둘 다 똑같은 묵가비수인데 내가 어찌 알겠는가?
“아무거나 줘.”
색마가 묵가비수 한 자루를 내게 던졌다. 나는 비수를 받은 다음에 칼날에 묻은 피를 옷소매에 닦았다. 당연하게도 사대악인에게 신호를 남기려면 섬광비수보다는 묵가비수가 알아보기 쉬웠을 터였다.
우리는 잠시 가장자리에 나란히 앉아서 깊은 구덩이를 구경했다.
색마가 검마에게 말했다.
“사부님, 교에 인재가 확실히 많나 봅니다. 제법 강했습니다.”
검마가 고개만 끄덕이자, 귀마가 말했다.
“구덩이가 왜 이렇게 크냐? 보고 있는데도 안 믿기네. 셋째의 마음에도 구멍이 뚫렸나?”
귀마의 말에 색마가 고개를 내밀더니 나를 쳐다봤다.
“원래 뚫려 있지 않았나? 아님 말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뚫려 있었지. 이 구덩이처럼 크진 않았지만.”
나는 세 사람에게 부탁하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하루만 쉬자.”
색마가 대답했다.
“이틀 쉬어도 된다. 할 일도 없는 놈이.”
“우사가 비인의 길을 걷겠다고 하더군. 어디서 사고를 칠지는 모르겠지만 뒤쫓아야지. 찾을 수 없더라도 찾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헛걸음이라도 해야 해. 마치 형체가 없는 악(惡)을 뒤쫓는 느낌이야.”
색마가 말했다.
“셋째, 상태가 안 좋은데요?”
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안 좋았으니 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예.”
귀마가 손을 내밀더니 구덩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와, 저기 봐라. 사람 손이 솟아있다. 죽었겠지? 가볼까?”
귀마의 말이 끝나자마자 모래가 허물어지듯이 움직이더니 팔 하나가 힘없이 쓰러져서 아래로 굴러갔다.
검마가 내게 물었다.
“왜 이렇게 빨리 복귀했느냐? 적어도 일 년은 수련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사람이 닭만 먹을 수는 없지. 닭이 분노할 거야. 이제 천악과는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농담할 수 있는 사이가 됐어. 그 정도면 됐어. 내가 괜히 더 나댔다간 평소처럼 헛소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적절한 시점에서 그냥 물러난 셈이야.”
나는 그제야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문득 우리 넷은 동시에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이 번쩍였다. 먼 곳에서 먹구름도 몰려오는 중이었다. 이어서 일월광천이 아닌 벼락이 어딘가에 떨어지더니 빗방울이 한두 개씩 떨어졌다. 내 감상 때문에 사대악인이 비를 처맞을 이유는 없어서, 내가 먼저 일어났다.
“가자고.”
몇 걸음을 걷지도 않았는데 빗줄기가 굵어지더니 어느새 폭우가 쏟아졌다. 나는 사대악인과 나란히 걸으면서 쏟아지는 비를 처맞다가, 마음을 새롭게 다잡았다.
“……개새끼가 내 탓을 하더라고.”
“…….”
“내 탓인 걸로 하자. 찾아서 죽여야지.”
색마가 두리번거리다가 말했다.
“근데 어디로 가는 거야? 백응지가 아닌데.”
나는 계속 걸으면서 말했다.
“뒤쫓아야지. 가면서 쉬면 돼.”
내 단순한 계획에 먼저 맏형이 동의해줬다.
“좋다. 가자.”
색마가 중얼거렸다.
“사부님, 이렇게 무작정 걸어서 찾을 수 있을까요?”
검마 대신에 내가 대답했다.
“찾지 못하더라도 찾으러 가야지. 세 사람이 날 찾아낸 것처럼.”
색마가 중얼거렸다.
“아, 그런 거냐?”
그 다음에 우리는 아무말없이 빗속을 걸었다.
…광명우사는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걷다가 평소보다 자주 뒤를 돌아봤다. 폭우가 쏟아지고 있어서 오감이 평소와 달랐다. 길을 걷는 도중에 녹사의(綠蓑衣)를 팔고 있는 늙은이가 보여서 다가갔다.
“얼마인가?”
주름이 자글자글한 늙은 상인이 광명우사를 보면서 말했다.
“죽립까지 하시면 석 냥입니다.”
“석 냥? 왜 그렇게 비싼가. 공용 은자 석 냥? 비가 내린다고 바가지를 씌우는구나.”
늙은 상인이 놀란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철전 석 냥입니다.”
광명우사는 전낭 안을 뒤적거리다가 늙은 상인을 바라봤다.
“철전?”
“예.”
전낭에 철전은 없었다. 얇게 잘린 공용 은자 하나를 꺼내서 내밀자, 늙은 상인이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가져가십시오.”
광명우사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대답했다.
“왜?”
“거스름돈이 없습니다.”
광명우사는 늙은 상인을 노려보다가 물었다.
“너도 하오문이냐?”
“하오문이 뭡니까. 그냥 가져가십시오. 은자를 받을만한 물건은 아닙니다.”
광명우사는 머리에 죽립을 쓰고, 녹사의를 걸친 다음에 주변을 한차례 둘러봤다. 처마 아래서 쳐다보고 있는 상인들이 몇 명 있었다. 때마침, 길에서 시커먼 옷을 입은 강호인 두 명이 걸어오더니 늙은 상인에게 말했다.
“구 노야, 무슨 일이야?”
늙은 상인이 손을 내저으면서 대답했다.
“아, 아무 일 아닙니다. 여기 잔돈이 없으셔서.”
늙은 상인이 입을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로 광명우사에게 속삭였다.
“흑도 놈들이니 어서 가세요.”
“흑도가 있어?”
근처까지 다가온 흑의인이 광명우사를 쳐다봤다.
“뭐라고 중얼대는 것이냐?”
광명우사는 죽립을 내려서 눈빛을 가린 다음에 흑의인들을 위아래로 살피다가 결국에는 통용 은자를 꺼내서 늙은 상인에게 던졌다. 늙은 상인이 화들짝 놀라면서 말했다.
“아이고, 이렇게 안 주셔도 됩니다. 거스름돈을 제가…….”
“됐다.”
광명우사는 배를 채울 곳이 없는지를 살펴보면서 빗속을 걸었다. 딱히 들어가고 싶은 곳이 안 보여서 골목으로 들어가자, 예상했던 대로 뒤따라온 흑의인들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멈춰라.”
광명우사가 돌아선 다음에 죽립을 살짝 들어서 흑의인을 바라봤다.
“무슨 일인가?”
한 사내가 시답지 않은 소리를 내뱉었다.
“왜 남의 구역에 들어와서 돈 자랑이냐. 돈이 그렇게 많아? 많으면 적선 좀 해라.”
광명우사는 전혀 다른 말을 내뱉었다.
“……너희 문파는 전부 몇 명이냐?”
“뭐?”
“귀가 잘 안 들리나? 전부 몇 명이냐고. 안내해라.”
“미친놈인가?”
광명우사가 한숨을 내쉰 다음에 손가락을 가리키자, 한 사내의 귀가 별다른 소리도 없이 반듯하게 잘리면서 뒤쪽으로 날아갔다. 쏟아지는 빗물에 귀에서 터진 핏물이 뒤섞이면서 비명이 터지려는 순간, 광명우사가 다시 손을 휘두르자 이번에는 목이 날아갔다.
텅― 소리와 함께 동료의 목이 떨어지자, 옆에 있던 흑의인이 눈을 부릅 뜬 채로 동료의 목을 바라봤다.
“…….”
광명우사가 말했다.
“안내해라.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 그리고 시끄러운 것도 싫어하니까. 비명도 지르지 말고, 주둥아리도 다물도록 해. 앞장 서라.”
흑의인이 돌아서더니 비를 맞으면서 걸었다.
광명우사가 나란히 걸으면서 물었다.
“몇 명이냐?”
“팔십삼……팔십이 명입니다.”
“한놈이 방금 죽었으니 그래야지. 한 곳에 다 모여 있나?”
“그렇진 않습니다.”
“부르면 오겠지. 내가 돈이 많아 보여서 따라왔나?”
“예.”
“과연 흑도로구나. 흑도는 대부분 돈 때문에 죽곤 하지.”
흑의인이 물었다.
“그런데 누구십니까?”
광명우사가 흑의인을 바라봤다.
“나는 광명우사라 불리는데, 들어봤나?”
문득 걸음을 멈춘 흑의인이 창백한 낯빛으로 광명우사를 쳐다봤다.
“…….”
광명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본 모양이군. 죽음을 각오한 표정이야. 안내하지 않을 셈이냐? 어차피 물어보면 그만이다.”
흑의인이 짤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가 그대로 칼을 뽑았다. 시커먼 칼이 반쯤 뽑혔을 때, 흑의인의 팔과 칼이 동시에 땅에 떨어졌다.
광명우사가 오른손을 들었다. 손바닥에서 여러 갈개의 붉은 실선으로 된 장력이 뻗어나오더니 흑의인의 상반신을 뒤덮었다. 흑의인의 상반신이 녹아내린 것처럼 사라지더니, 나머지 신체가 흙탕물에 떨어져서 이내 빗물에 뒤섞였다.
광명우사는 다시 한 번 주변을 천천히 둘러봤다.
“…….”
발을 몇 차례 움직여서 시체를 흙탕물에 담그다가, 이미 골목에도 시체가 있어서 이곳에 오래 머무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하오문주가 따라오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척 불편한 상황. 한 곳에 오래 머물 수가 없다고 판단한 광명우사는 죽립을 눌러 쓴 다음에 다시 빗속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