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90
90화. 사내의 결심이 오성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검마는 아직 맹주와 겨루지 않은 상태.
맹주와 겨루고 나서 그 이후에 맹주의 입맹 권유를 받는 모양이다. 그것이 언제인지는 나도 알 수가 없다.
검마가 맹주와 겨루고 나서 수련을 한 다음에 또 다른 강자를 찾아갔다고 가정하면, 그때부터 검마의 소식이 끊어진 것이라 봐도 무방할 터.
목검으로 후려 패는 검마가 사라지고 나서 제자인 좌사 놈이 폭주했다가 색마로 몰리고, 교주를 죽이기 위해 입교를 했던 것이라면 얼추 상황이 정리된다.
사실 문답비무는 끝이 났다. 그러나 나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는 검마의 말에 바로 질문을 던졌다.
“후배가 얻은 특이한 무공 책자에 뇌검식이라는 경지가 적혀 있는데 선배께선 어떻게 생각하시오.”
검마가 슬쩍 웃었다.
내가 겸양 떠는 것도 없이 바로 무공에 대한 것을 묻자, 웃기기도 하고 신기한 모양이었다.
검마가 대꾸했다.
“뇌검식에 뭐라고 적혀 있든가? 설명이 있을 터인데.”
“검기가 뇌우로 변한다.”
“……끝인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나만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었군.’
검마도 살짝 당황할 정도로 간략한 내용이었으니, 대체 누가 무극검법을 배울 수 있겠는가.
하지만 검마는 내게 전후 과정을 더 물었다.
“뇌검식이 경지의 이름이라면 그 전이나 후는 무엇이지?”
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말을 해줘야 하는지 잠시 고민했으나 어차피 내가 가르침을 청하는 순간이다. 당연히 말을 하는 것이 옳다.
“단계가 나뉘어 있는데 순서대로 언급하면 장검식, 단검식, 만검식, 발검식 다음이 뇌검식이라 했소.”
“다음은?”
“목검식, 기검식, 무극식.”
잠시 고민하던 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체계적이군. 검을 익히다가 도달할 수 있는 경지에 이름을 붙인 것이고 동시에 검법을 복잡한 초식으로 생각하지 않은 것도 특이하군. 무극식은 아무래도 그 검법을 창안한 사람의 가장 강력한 절기라고 봐야겠지. 하지만 이렇게 핵심만 간단하게 구분하는 문파는 들어본 적이 없네. 최소한 일백 년은 거슬러 올라가는 시대의 고수 같군.”
“그럴 거요.”
목검에 맞아서 이마가 부어오른 좌사도 다시 평상에 얌전히 앉았다.
검마가 생각에 잠겨 있었기에, 나도 팔짱을 낀 채로 잠시 눈을 감았다. 우리 셋은 기성자가 던진 물음에 대해 각자 생각했다.
검마가 말했다.
“내 의견을 말해주겠네.”
나는 눈을 떴다.
검마의 말이 이어졌다.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니 참고만 하게. 뇌검식이라는 말에 구애될 필요 없네. 이 선배는 아마 극양의 내공을 쌓았을 것이다. 당연히 검기가 극성으로 치달아서 폭발하는 형태로 적을 공격했다면 그에 적합한 이름을 붙였을 테지. 기(氣)는 보통 자연의 모습과 흡사할 때가 많으니 형상에 따라 뇌검(雷劍)이라 부른 것이고. 하지만 반드시 뇌우처럼 보이는 검기를 사용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네. 이해했나?”
“이해했소.”
“목검식도 설명해주게.”
나는 바로 대답했다.
“장검식부터 뇌검식까지, 목검으로 펼칠 수 있는 경지.”
검마가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 마치 내 상태를 말하는 것 같군. 기검식은 그렇다면 목검 없이 기의 형태로 다루는 것인가?”
나는 영민한 사내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검마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중얼거렸다.
“목검이 끝이 아니로구나. 이 검법은 옛 천하제일인의 무공이라도 되는가?”
“그건 모르겠소. 구양무극의 검법이라 하던데 처음 듣는 이름이라서.”
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백도의 고수 같군. 내가 나중에 맹주에게 물어본 다음에 적절한 정보를 얻어내면 자네에게도 알려주겠네.”
검마의 말을 듣고 보니 나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맹주는 아마 알 것이다. 맹이라는 단체의 기록이 워낙 철저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경지가 뇌검식에 가로막혀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그저 내공의 문제다.
현재 천옥의 힘을 끌어다가 내공을 쌓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뇌검식은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나는 검을 깊이 익힌 적이 없고, 검으로 기를 다룬 적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 검기의 외형이 뇌우와 흡사하진 않을 것이다.
검마는 그것이 상관없다는 점을 내게 설명해줬다.
그러다 문득 나는 매화나무를 떠올렸다.
‘검기가 매화처럼 흩날리면 모를까…….’
매화와 뇌우는 우열을 가리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그저 사람의 성향에 따른 특징이 될 터였다.
결국에 무극검법의 뇌검식을 내 식대로 해석하면 매화검식(梅花劍式) 정도가 될 것이고, 이것을 다시 금구소요공의 염계와 조합하면 매화향(梅花香)이 될 터였다.
다만 그 검식의 위력이 벼락이 꽂히는 것만큼 강렬해야 의미 있는 초식이 될 터였다.
대화는 주로 검마와 내가 나눴으나 옆에 있는 좌사도 상념에 빠져 있었다. 그는 검을 사용하지 않으니 빙공을 토대로 사부와 내 말을 재해석하고 있을 터였다.
검마가 실로 오묘한 시점에서 이런 말을 꺼냈다.
“후배, 내 본명은 의미가 사라진 지 오래되어 사용하지 않네.”
무슨 말인가 했더니 내 정체를 밝히라는 말이다. 나는 검마에게 가장 중요한 정체를 밝혔다.
“하오문주 이자하요.”
“하오문은 자네가 만들었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검마가 제자에게 말했다.
“너는 앞으로 하오문에 속한 자들을 건드리거나 네 가벼운 언행으로 모욕을 주지 말도록. 문주와 분쟁이 벌어질 거다. 특히 여인은 더더욱 조심하고.”
좌사가 눈치를 보다가 대꾸했다.
“알겠습니다.”
검마가 턱을 괴더니 솔직한 표현으로 축객령을 내렸다.
“오늘 문주가 건넨 말 때문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겠군. 즐겁게 고민을 해볼 터이니 제자와 하오문주는 내가 혼자 있을 시간을 주게나.”
검마가 나를 바라봤다.
“문주, 우리는 또 볼 수 있겠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대꾸했다.
“선배와 나는 앞으로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소.”
시종일관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던 검마가 입매를 살짝 올렸다.
“또 보세.”
말투는 젊잖았으나, 격식을 따지는 유형은 아니었다.
검마가 일어나서 뒷짐을 진 채로 좌사에게도 작별을 고했다.
“너도 얻은 게 있을 테니 오늘은 얌전히 집에 틀어박혀 있어라. 네가 풍기는 술 냄새에 깨달음이라는 놈이 문 앞까지 찾아왔다가 도망을 칠 것이다.”
보아하니, 큰 틀에서 가르침을 주고 좌사가 홀로 깨닫는 방식의 스승과 제자처럼 보였다. 이런 방식의 교육이 가능한 것은 좌사가 이미 고수이기 때문이다.
셋 다 무뚝뚝한 사내들이라서 우리는 살가운 말도 없이 대충 헤어졌다.
하지만 나는 좌사와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당연하다는 것처럼 서로를 노려봤다.
좌사가 내게 가라앉은 어조로 말했다.
“촌뜨기, 운 좋은 줄 알아라. 사부님의 가르침까지 받다니.”
나는 좌사에게 대꾸했다.
“똥싸개, 누가 운이 좋았는지 확인해볼 테냐.”
이때, 집안에서 검마의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할 말이 있으니 똥싸개는 다시 들어오너라.”
좌사는 분위기를 달구다 말고, 급히 집으로 들어갔다.
“부르셨습니까. 사부님.”
싸울 상대를 잃은 나는 몇 번 입맛을 다시다가 어쩔 수 없이 돌아섰다. 숙소로 돌아가면서 나는 이내 똥싸개를 머리에서 지운 다음에 검마와 나눴던 대화를 복기했다.
당장 빙공을 얻진 못했으나, 대신에 검을 얻은 느낌이다.
나는 전생에 검을 자주 다루지 않았다.
검마의 기준에 따르면 특출난 무공이 없다는 게 아마 맞을 것이다. 남의 지적이 속이 쓰리다면 받아들이는 것이 맞다. 사실 가장 자신 있는 무공을 꼽으라면 광승이 내게 건넸던 정체불명의 봉, 부러지지 않는 신념을 지닌 채로 펼친 무공들이다. 하지만 그것은 봉이 미치도록 단단했기에 얻었던 이점일 것이다.
검마의 경지가 나보다 슬쩍 높아 보이는 것도 못내 불쾌한 상황.
하지만 회귀한 이후의 시간이 극히 짧았으므로 전체적인 무공 발전 속도로 보면 내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강해진 게 맞다.
고로, 서두르거나 남과 비교할 필요는 없다.
기성자의 의견 중에서 협객에 대한 것은 일부러 묻지 않았다.
검마는 걷고 있는 길이 다르다.
어쩌면 협객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길을 걷는 사내이기에 그가 마도의 한 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협(俠)에는 관심이 적고, 오로지 무(武)만 추구하는 사내.
이것이 어쩌면 굉장히 오래된 마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道)라는 것도 본래 어디서 어디까지가 범위라고 단정할 수 없는 법.
검마 정도 되는 사내가 자신을 마도라 칭했으면 그가 마도인 것이다.
다만 나는…….
누가 진정한 마도인지 가리기 위해 교주와 겨뤄봤다는 말이 마음에 쏙 들었다. 검마를 직접 만나고서야 그 말에 대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내라면, 저 정도는 되어야지…….
이런 생각이 가슴에서 내내 휘몰아쳤다.
***
검마가 평상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제자야.”
“예.”
“둘을 동시에 내보낸 것은 내 실수다. 괜히 또 한바탕할 것 같아서 다시 불렀다.”
좌사가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한바탕 했을 것 같습니다.”
“몽랑아.”
“말씀하십시오. 사부님.”
“나는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다. 네게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내겐 쉬운 일이 아니다. 본성이 사교적인 너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닙니다. 이해하고 있습니다.”
“근래 수련하는 것에 흥미를 잃었느냐?”
“벽을 마주하는 느낌이라 사실 그렇습니다.”
“수련하다가 벽에 막히는 것은 무공을 익히는 자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현상이다.”
“그렇겠지요.”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할 것이냐, 실은 그것이 강호인들이 말하는 오성(悟性)이다. 오성이 뛰어나다는 말을 그저 무공 습득이 빠른 것으로 착각하는 자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아. 천재적인 암기력, 분석력, 습득력, 이해력 같은 것은 오성이 아니라 그냥 똑똑한 것이다. 부모로부터 주어지는 선물과도 같은 것이지. 너처럼…….”
“…….”
“술 마시지 마라, 여인을 멀리해라,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다. 내가 너를 가르치는데도 스승 없이 강해지고 있는 네 또래의 하오문주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느냐? 너는 어렸을 때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과연 네가 이자하라는 녀석보다 오성이 뛰어난 것이냐?”
“오성까진 모르겠습니다.”
“아까 하는 말을 들었겠지. 저 녀석은 지금 무공을 새롭게 창안하겠다고 돌아다니고 있다. 하오문이 뭐 하는 문파인지는 모르겠으나 저놈의 목적은 일단 무공이다. 철저하게 준비되었을 때 교주를 죽이러 가겠지. 하지만 본인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더구나. 그때 저 녀석이 한 말을 기억하느냐?”
“예.”
“뭐였느냐.”
“중요한 것은 죽일 놈에 대한 살의를 품는 것이라 했습니다.”
“너는 여자를 품으면서 수련하고, 저 녀석은 살의를 품은 채로 수련을 하는구나. 일 년이 흐르고, 이 년이 흘러서 다시 저놈과 대문 앞에서 말다툼하고 신경전을 벌일 때. 네가 지금처럼 당당하게 하오문주를 대할 수 있을까?”
좌사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듣기만 했다.
“…….”
“제자야, 길게 보아라. 말장난이 아니라 네게 닥칠 미래를 생각하란 말이다. 네게 설사약을 먹인 놈이 너보다 훨씬 강해진다면 너는 그 부끄러움을 안고 어찌 살아가려고. 천재라 불리던 네가 그 치욕을 감당하겠느냐? 저놈이 갑자기 네 앞에 나타난 것은 복이다. 강호는 늘 그랬다. 맞수가 있어야 더 강해지는 법.”
“예.”
“오성이 뛰어나서 쉽게 강해지는 사람. 그게 너다.”
“예.”
“하지만 이자하가 너를 꺾는다면 그 오성이 무슨 소용이냐? 젊은 놈이 내게 기도를 감추겠다고 대화하는 내내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몇 차례나 한숨을 내쉴 뻔했다. 이런 조심성은 대체 누가 알려줬을까. 돌아가서 너도 고민해보아라. 일 년 후 이자하를 꺾을 방법은 무엇인지. 이삼 년 후 이자하는 어떻게 꺾을 것인지. 저 대책 없는 살의를 넘어서는 방법론은 무엇인지. 결국에는 그 마음가짐과 사내의 결심 자체가 오성이다.”
좌사는 평상에서 내려와서 검마에게 절을 올렸다.
“깊이 생각해보겠습니다. 사부님.”
“나도 깨달음의 단서를 붙잡기 위해 며칠 명상을 할 터이니 그리 알고.”
“예.”
“자세히 살펴보니 광기를 억누르고 있는 놈이니까 섣불리 싸우지 말도록. 촌뜨기라 부르면 똥싸개라는 말을 듣고. 문주라 불러줘야 선배라는 말이 나올까 말까 하는 성질 더러운 놈이다. 미친개는 건드리는 것이 아니다. 교주를 죽이고자 하는 놈이니 넓은 의미에서 아군이자 경쟁자로 여겨라. 그리고 너와 내가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세상에 몇이나 있겠느냐? 함부로 대하지 말아라.”
“예. 역시 미친개는 건드리지 않는 게 답이죠.”
“옳다. 우리 제자께서 또 이자하에게 미친개라고 하면 그쪽에서는 너를 발정난 개라고 하겠지. 물러가라.”
끝까지 사부에게 두들겨 맞은 제자가 울상이 된 채로 사부에게 고개를 깊이 숙였다.
“사부님, 못난 제자 물러가겠습니다.”
검마가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면 됐다.”
제자는 일어서자마자 한 차례 휘청거렸다가, 패잔병이 걷는 것처럼 다시 대문으로 향했다. 뒤에서 들려오는 사부의 한숨이 검 한 자루가 되어 제자의 마음을 재차 찌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