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thless Warrior RAW novel - Chapter 119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저 계부라는 사람의 폭탄선언에 발푸르기스는 충격을 받은 듯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본래 바이에른 선제후 가에는 삼형제가 있었다. 첫째가 요하네스, 둘째가 막시밀리언, 셋째가 빌헬름이다.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요하네스-발푸르기스의 친아버지.
마족인 아스비엘라와 결혼해 발푸르기스를 낳았다. 17년 전에 사망함.
*막시밀리언-발푸르기스의 숙부(叔父-작은 아버지).
현 바이에른의 선제후. 발푸르기스를 친딸처럼 키워왔고, 그녀를 후계자로 내정함.
*빌헬름-발푸르기스의 계부(季父-아버지의 막내아우. 의붓아버지를 뜻하는 계부(繼父)가 아님).
17년 전 반역의 주인공. 사망한 걸로 알려졌으나 다시 돌아옴.
이렇게 된다. 그러니까 저 빌헬름의 말에 의하면 현 바이에른 선제후는 자기 형을 죽인 친족 살해자란 소리다. 당연히 발푸르기스는 크게 반발했다.
“닥쳐라! 감히 그런 망발을!”
흔들리는 것도 잠시, 그녀는 분노로 검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바이에른 선제후는 그녀를 친딸처럼 아껴왔기 때문이다.
“역시 내 말은 믿지 않는구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걸 안다. 샤르티….”
부웅!
급기야 발푸르기스가 쌍검을 휘둘렀다.
“어이쿠! 이런.”
빌헬름은 그 공격에 놀란 듯 몸을 피한다. 하지만 그는 여유가 있었다.
“훌륭한 기사가 됐구나, 샤르티에. 작은 공주님 같던 네가 이렇게 자랐을 줄이야. 큰형님께서도 기뻐하실 거다.”
“감히 아버지를 그 입에 담아!”
나는 둘의 공방을 쳐다보면서 속으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비록 발푸르기스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검이라 하나 대단한 실력을 갖고 있다.
하르프하임 전투에서 페자무트에게 한 방 먹이고 도망가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빌헬름은 그런 발푸르기스를 느긋하게 상대하고 있었다. 마치 조카와 놀아주는 게 기쁜 삼촌 같았다.
“이런, 더 어울리고 싶지만 바빠서 말이지. 후일 다시 만나자꾸나. 조카야.”
“이대로 보낼 것 같은가!”
하지만 빌헬름은 발푸르기스의 검을 피해 그림자처럼 사라져버렸다. 정말 귀신같은 솜씨다. 곧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네 편이다. 샤르티에.”
그렇게 빌헬름이 사라지자 발푸르기스는 검을 놓고는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후우.”
그녀답지 않게 지쳐버린 듯했다. 투구의 틈새로 하얀 입김이 계속 흘러나왔다.
“후우, 후. 숙부님께서 그러실 리가 없지. 그 사악한 반역자가 이간계를 쓰는 게 틀림없다.”
발푸르기스는 숨을 몰아쉬면서도 애써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는 고개를 흔들더니 주변의 바위에 앉아 혼자 생각에 잠겼다. 머릿속이 복잡한 거 같았다. 그 사이 나는 아스비엘라와 얘기를 나눴다.
-아까 빌헬름을 보고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게 잘못됐을 수도 있다고 하셨죠.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정확한 건 아니에요.
17년 전에 발푸르기스의 친부인 요하네스가 죽었을 때, 막내아우인 빌헬름이 반란을 일으켰다. 세간에선 그가 선제후 자리를 노리고 야심과 함께 일어섰다고 했다. 아스비엘라 역시 그렇게 들었다고.
-하지만 늘 이상했답니다. 도련님은 다정다감하고 권력욕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어요. 느긋한 한량 같은 분이셨죠. 또한 큰형님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따랐답니다.
아스비엘라는 그런 빌헬름의 반역을 믿지 않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고 했다.
-당시 남편이 죽고 가문에서 제 입지는 급속히 줄어들고 있었어요. 원래 마족 출신인지라 선제후 가문의 치부로 여겨지고 있던 저였답니다. 그나마 아이를 낳아서 약간이나마 인정받았지만, 남편이 죽자 고립됐죠. 궁전에는 온갖 소문이 돌았어요. 마족과 혼인해 저주를 받았다던가….
요즘에는 신흥가문에선 마족과 결혼하는 일도 종종 생겼다. 하지만 제국의 명가에선 여전히 그걸 터부시하고 있다. 하니 15년 전의 바이에른 선제후 가에서 아스비엘라를 어찌 봤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저는 샤르티에와 내궁에 반쯤 유폐된 상태로 지내고 있었어요. 도련님의 소식을 듣고 안타까웠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죠. 당시에 저는 남편을 잃은 슬픔 때문에 정신이 없기도 했고요.
문제는 그 반역의 끝쯤에 바이에른 선제후 가에 불행이 닥쳤다는 거다. 가문에 지독한 저주가 내린 게 그때다.
-어떻게 그 저주가 내린 건지는 아무도 몰라요. 어느 날 도둑처럼 찾아왔죠. 심지어 어린 샤르티에까지 저주를 받았답니다. 당시에 선제후 가는 끝났다는 얘기가 돌 정도였어요. 모두 도련님이 죽어가면서 가문에 저주를 내렸다고 소곤거렸죠.
빌헬름이 반역에 실패하자, 죽기 전 자기 가문을 저주했다는 게 정설이다.
-그렇다면 빌헬름이 형언할 수 없는 암흑의 힘을 빌려왔다는 건데… 여러 가지로 미심쩍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도련님이 가문에 저주를 내릴 리가 없어요. 특히 샤르티에를 자기 자식만큼이나 예뻐하셨다고요.
-그렇습니까?
-늘 요람에 와서 작은 샤르티에의 볼을 손가락으로 콕콕 찔러보거나, 곁에서 책을 읽으며 아이를 봐주곤 했어요. 그게 제가 기억하는 도련님의 모습이에요.
이상하군. 그런 사람이 자기 조카까지 뒤집어 쓸 저주를 퍼부을 수 있을까?
-그래서 결국 스스로 희생하신 거군요? 딸을 살리기 위해.
-네….
당시 아스비엘라는 가문의 오점이었다. 하여 저주가 휩쓰는 와중에 그녀와 그녀의 딸에게 관심을 기울여 주는 이는 없었다고.
-다들 저와 딸이 차라리 죽었으면 하는 분위기였어요. 딸을 살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모두 하기로 했어요.
탁월한 마도 지식을 가진 그녀는 결국 그 저주가 형언할 수 없는 암흑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다.
-악은 악으로 다스린다고 하죠. 저주를 깨기 위해서 형언할 수 없는 암흑에 버금가는 존재를 찾아야 했답니다.
-그래서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였군요. 발버둥치는 죽음은 봉인되어 힘을 제대로 못 쓰니까요.
이 가여운 어머니는 딸을 살리기 위해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와 거래했다. 그 결과 내가 구해줄 때까지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에게 잡혀 고통 받고 있었던 것이다.
-딸을 구하면서 선제후 가문도 같이 구하셨군요? 원망이 크셨을 텐데요.
-괄시 받긴 했지만 그래도 그 사람의 가문인걸요. 그리고 내 딸이 살아갈 가문이었어요. 명가에서 딸이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은 모든 어머니가 같을 거예요.
결국 그녀의 바람대로 됐다. 작고 어린 샤르티에는 이제 바이에른의 후계자로 자라났다.
-하지만 장모님, 그 위험은 사라지지 않고 물러난 것일 뿐이었습니다.
-맞아요. 계절이 오는 것처럼 다시 찾아왔죠.
저주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억눌려 있을 뿐이었다. 지금 이대로라면 발푸르기스나 다른 선제후 가문의 친족들은 시한부 인생에 불과하다.
-장모님, 15년 전의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가문을 덮친 저주에 빌헬름의 반역까지요. 이번에는 이전과 다른 결말을 내야합니다. 불행을 반복하기 싫다면요.
-정말 걱정이 되네요.
현재 진실은 알 수 없다. 바이에른 선제후에 대한 얘기는 그저 모함일 수도 있다. 사실 그 서글서글했다는 도련님이 속이 시커먼 악당일지도 모른다. 섣불리 한쪽 편을 들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너무 심려하실 것 없습니다. 제가 이런 상황을 헤쳐 나가는데 전문가입니다.
지난 경험에 의하면 답이 잘 안 보일수록 판이 크더라.
-하긴 분명 은공이라면 뭔가 악랄한 방법으로… 아, 아니에요.
다 들렸습니다. 장모님.
-그나저나 따님은 안 만나보셔도 되겠습니까?
-오늘은 날이 아니에요. 놀라고 당황한 저 아이 앞에 15년 전 죽은 어머니가 갑자기 나타난다고 생각해 보세요.
역시 어머니구나 싶었다. 그리 애타게 만나고 싶어 했으면서 정작 딸 걱정이 우선이었다.
***
며칠 뒤, 바이에른의 가신단이 전부 모였다. 그간 마족들을 추국한 결과를 발표하고 앞으로의 결의를 다지기 위한 자리였다.
“모두 들으라!”
바이에른 선제후는 여전히 몸이 안 좋아보였지만 성난 곰처럼 으르렁댔다.
“과인이 직접 놈들을 추국한 결과, 역시 마왕 파르자의 사주로 밝혀졌다! 과인은 절대 그 마왕 놈을 용서할 수 없다! 반역자이자 내 부끄러운 아우인 빌헬름을 지원하는 걸로도 부족해, 과인의 궁을 습격하다니!”
여기저기서 분노에 찬 고성이 터져 나왔다. 바이에른 선제후는 가신들의 그런 반응에 만족해하며 외쳤다.
“반드시 암흑창공의 마왕 파르자를 토벌하겠다! 바이에른의 이름을 걸고! 우리는 충분히 그럴 힘을 갖고 있다!”
“와아아아아!”
가신들은 분노에 차 소리를 질러댔다.
“하여 과인이 바이에른의 모든 역량있는 가문에게 요청한다! 병사를 모아다오! 봄이 오면 반역자와 마왕의 무리를 과인이 직접 나서 쓸어버릴 터이니!”
“와아아아아아-!”
봄의 전쟁은 정말 격렬하겠구나. 나는 이미 대전쟁이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음을 직감했다. 원래 역사에선 3년 뒤 보헤미아 지역에서 모든 게 시작되지만, 이미 모든 게 달라졌다.
1615년 봄. 바이에른에서의 싸움이 대전쟁의 시작이 될 터. 그렇기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하기로 했다.
“비텐바이어 변경백!”
마침 그때 바이에른 선제후가 나를 불렀다.
“그대는 과인의 가신은 아니지만 이번 일에 분노를 느끼는 건 같으리라 믿네. 봄에 과인을 위해 깃발 가득한 군대를 이끌고 와주겠나?”
그 요구에 나는 허리를 살짝 숙여 예를 표한 뒤 단언했다.
“고귀하신 전하. 물론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제게 한 가지 요구 사항이 있습니다.”
내 말에 몰려든 가신 모두가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바이에른 선제후도 수염을 쓰다듬으며 그게 무엇이냐고 묻는다.
“니더바이에른 백작과 약혼을 요구합니다. 정식으로.”
이 요구에 가신단 사이에 파문이 퍼져나갔다. 나는 지금까지는 그저 나름대로 존중받는 손님에 불과했다. 발푸르기스와 정식으로 약혼한 사이는 아니며 그저 암묵적으로 인정받은 수준이었다.
즉, 공식적인 건 아무 것도 없었다. 하지만 진짜 약혼을 하게 되면 나는 바이에른의 권력 구도의 한 가운데 뛰어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바로 반대의 의견이 나왔다.
“전하. 비텐바이어 백작은 제국의 사방팔방에 자기 땅을 넓혀가는 야심만만한 자입니다. 만약 그를 사위로 맞아들이면 바이에른은 저 야심가의 속령 가운데 하나로 전락할 것입니다!”
어제까지 웃고 지내는 자들이 권력 구도가 지각변동을 일으키려 하지 입에 거품을 물고 나섰다. 물론 내게 호의적인 귀족들도 있었다. 곧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뜻은 단호했다.
“모두 들으시오! 분명히 선언하겠소! 약혼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봄의 전쟁에 본인은 단 한 명의 병사도 보내지 않을 것이오.”
황금연합은 무려 2만 5,000의 대군으로 자라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바이에른의 수도인 뮌헨의 턱밑에 주둔한 상태다.
만약 동맹을 맺지 못한다면, 단순히 아군을 놓치는 것 이상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원래 적과 아군은 종이 한 장 차이니까.
내 이런 태도에 바이에른 선제후도 꽤 놀란 얼굴이다. 발푸르기스의 표정은 투구 때문에 안 보이지만 그녀 역시 비슷한 감정이겠지. 설마 내가 이렇게 단호하게 약혼을 강행할 줄은 몰랐을 거다.
-은공. 무리수를 두는 거 아닌가요?
상식적으로 확실히 무리한 부분이 없지 않다. 하지만 내가 바보도 아니고 괜히 그럴 리가 없잖은가.
-이건 일종의 시험이기도 합니다. 만일 바이에른 선제후에게 좋지 않은 꿍꿍이가 있다면 절대 이 약혼은 이뤄지지 않을 겁니다.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겠죠. 제가 공식적으로 약혼자가 된다면 그녀에게 엄청난 힘이 실릴 테니까요.
요즘 내 위세는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니까.
-확실히 그렇군요. 바이에른 선제후의 의중을 살피기 좋은 방법이에요.
-그 외에 제가 그녀를 등에 업고 권력을 얻으려는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뭔가요?
-간단합니다. 지금 바이에른 선제후가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죠. 그러니까 그냥 은퇴시킬 작정입니다.
-네?
아스비엘라가 황당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장모님, 간단한 이치입니다. 만약 그가 배신자라면 실각시키는 건 매우 좋겠지요?
-그렇죠. 하지만 아니라면요?
-아니라도 별 문제 없습니다. 요즘 몸도 안 좋고 빌빌거리시는데 그냥 뒷방에서 좀 쉬시면 서로 좋잖습니까?
-…….
바이에른의 권력을 차지해야하는 내 간단한 이유에 아스비엘라는 말을 잃어버렸다.
-장모님, 권력이란 돈과 같습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죠. 뭐, 좀 넘치면 어떻습니까? 저야 손해 볼 거 없는데.
과연 가문을 배신한 게 바이에른 선제후인 막시밀리언이냐, 반역자인 빌헬름이냐, 그건 현 상황에서 알 수 없는 부분이다.
하면 내가 할 일은 간단하다. 그냥 둘 다 처리한다. 그렇게 위험을 제거하고 나서 시간이 나면 그때 생각해 보겠다.
-바이에른 선제후를 뒷방으로 물러나게 한 뒤에 빌헬름이 이끄는 반란군도 모조리 격파할 겁니다. 하나는 충직한 개고, 다른 하나는 양을 탐내는 늑대죠. 하지만 둘 다 송곳니를 가지고 있는 건 같습니다. 그러니 두 마리의 송곳니를 모두 뽑은 뒤에 누가 개고 늑대인지 자세히 살펴볼 생각입니다.
한참 뒤에 아스비엘라가 겨우 대답해 왔다.
-…은공께선 정말 양파 같은 분이네요. 알만하다 싶었는데 까도 까도 끝이 없군요.
-혹시 제게 실망하셨다면 안타깝군요. 하지만 장모님께 한 가지만은 약속드리겠습니다.
-그게 뭔가요?
제 방법대로 하면 발푸르기스는 절대 안전할 겁니다. 양 옆에 얼쩡거리는 게 개든 늑대든 모조리 때려잡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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