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220
220화
* * *
선실 3층. 바닥에는 스무 명이 넘는 납치범 병사들이 몸 어딘가가 으스러져서 널브러져 있다.
추가 사상자를 막기 위해서인지 네 명의 스칼러 검사가 진을 치고 스톤을 막는다. 검사는 갑옷이 찌그러진 걸 제외하면 멀쩡하다. 스톤은 스칼러에게 호되게 당했는지 전신에 시뻘건 줄이 죽죽 그어져 있다.
피도 아주 옴팡지게 흐른다. 스칼러의 검격이 그의 피부를 뚫고 근육층까지 베었다는 증거였다. 스톤도 최소한의 지능은 있는지 눈이나 목, 손목의 동맥 등을 방어하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후우! 후우!”
“히, 힘내! 조금만 더 버텨!”
구출한 병사들은 마치 팔랑크스 진형을 연상케 하듯이, 스톤을 방패 삼아 뒤에서 기회를 노리다가 창을 콕콕 찌른다.
마나 유저 중~상급 정예군의 찌르기는 납치범 측 검사에게도 위협적이기에 무작정 돌진하지 못한다.
사실 그리 위협적이진 않지만, 좁은 복도라는 환경이 스톤 측의 전술에 힘을 실어주었다. 복도가 두 배만 넓었어도 병사들은 다 죽고 스톤만이 남아 스칼러에게 포위당했을 것이다.
어쨌든, 스톤을 사이에 두고 만들어진 기묘한 대치상황. 내가 끼어들려 하지만, 납치범 병사들이 3층 입구부터 쫙 깔려서 지나가기도 힘들다.
‘아까 내려간 새끼는 안 말리고 여태 뭐 하는 거야?’
사사삭!
나는 마나를 역으로 돌려 천장에 등을 대고 달라붙은 뒤, 벽을 기어가는 거미처럼 앞서나갔다.
사실 편하게 ‘마하비검식이나 광검결로 뒤에서부터 전열의 스칼러까지 일격에 처치할까…….’하고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건 너무 사이코패스 같잖아?
내게 살인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고. 바로 지금처럼, 죽일 놈만 딱 죽이는 거다.
으드드득!
천장에 붙어서 이동하여, 후열 쪽 스칼러 둘의 뒷목을 붙잡고 든다. 둘이 무의식적으로 검을 위로 휘둘러서 내 손목을 베기 전에, 손에 힘을 주어 목을 으스러뜨린다.
“커어…!”
“크륵!”
“…치찬?”
“브아마르! 무슨 일이냐!”
스톤을 경계하다가 갑작스럽게 뒤의 동료 둘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지르자 스칼러 둘이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나를 본다. 몬스터에 대한 공포심이 뼛속까지 새겨져서, 선실에서도 횃불을 많이 켜지 못해 어둑어둑한 선내. 전면이 피로 물들고, 천장에 등을 대고 달라붙은 채로 양손을 뻗어 둘의 목을 움켜쥔 나를.
“치찬!! 뭐… 아히아으에에에에엙?!”
“빌어먹을 또 뭔… 우왁?! 왁왁왁왁?”
너희, 왜 그래? 스칼러 둘이 스톤도 잊은 채 나를 보고 기절초풍했다.
떨그렁!
검까지 떨궈? 뭐가 그렇게 무섭다고 저래?
검사만 놀란 게 아니다. 납치범 병사들도 난리가 났다.
무기를 떨구고 바닥에 대가리를 박는 놈,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놈, 심지어 오줌을 지리는 놈도 있었다. 녀석들이 겁에 질려 비명과 헛소리를 내질렀다.
“흐아아악!!”
“귀, 귀신이다!”
귀신 아니다.
“산신령이다! 산신령이 노했어!”
여기 바다다. 신령이 왔으면 바다신령이 왔지 왜 산신령이 오냐. 이유는 모르지만, 병사들은 현재 내 모습에 엄청나게 겁을 집어먹었다.
이대로 불필요한 싸움을 피하고 쉽게 가나 싶었더니… 우리 측 병사들도 미쳐 날뛰기는 매한가지였다.
“흐흐흑…! 어머니! 저도 곧 따라갑니다!”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줄줄 흘리며 무릎 꿇고 기도하는 피랄 연합체 측 호위병. 너하고 이런저런 얘기 해서 다 알거든. 너 엄마 안 죽었잖아.
“소문을 들은 적 있어. 바다에서 인간의 피를 뿌리면 해저를 떠도는 ‘어둠을 걷는 자’가 피 냄새를 맡고 위로 올라온다고. 저게 그 어둠을 걷는 자야. 우, 우리를 머리통부터 으적으적 씹어먹을 거라고!!”
이빨을 딱딱 마주치며 설명하는 경험 많은 삼십 대 후반의 선임병사.
아니거든. 몬스터 자극하니까 항해할 때 소란 피우지 말라는 격언이 위협적인 전설 형식으로 전승된 거거든.
“아니, 이것들이 왜 이래? 다 죽고 싶어? 야! 입 안 다물어?”
나는 예상외의 상황을 만나자 심히 당황했다. 설마 이 미친 마초남들이 천장에 달라붙은 인간 하나에 진형이 흐트러질 정도로 놀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야, 야! 다들 진정해! 입 다물라고!”
이쯤 오면 적군, 아군을 가리는 게 문제가 아니다. 나는 급히 이들을 말렸다. 안 그래도 피 냄새가 은은히 풍기는데 해양 몬스터를 자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둠을 걷는 자니 뭐니 하는 무시무시한 전설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배 위에서라도 지독하게 피를 본다면, 그 피가 선체에 흠뻑 스며서, 혹시라도 바다로 피 냄새가 전달되면 해양 몬스터의 이목을 끈다.
그때는 은신 마법진이고 뭐고 다 의미가 없다. 12년 전의 똥이 지르바 해적들을 죽이자마자 피를 닦고, 녀석들 시체를 탈출용 보트에 실어서 멀리 내보내 미끼로 쓴 적이 있지 않나.
인간의 시체를 미끼로 쓰는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르면서까지 신속한 사후 처리를 해야 해양 몬스터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그런데 이렇게 소리 지르면… 어쩔 수 없군.
“다 닥쳐!”
“읍……!”
착지하며 살기를 담아 외치자 그제야 입을 다문다.
쉬잇!
이목이 쏠리자 손가락을 세워 입술에 가져다 댔다. 그런 뒤, 밑을 가리켰다.
끄덕끄덕!
납치범들, 우리 측 병사들 모두가 얌전한 양이 되어서 고개를 끄덕인다. 바보가 아닌 한 내가 한 손짓의 의미를 모를 리 없겠지. 다들 어둠 속에서도 훤히 보일 정도로 안색이 새하얘진 채, 침만 꼴깍 삼켰다.
“히힣! 왔어? 나, 다 구했다? 잘했지.”
널 잊었구나. 바보 스톤.
뻑!
나는 스톤의 턱을 후려쳐서 기절시켰다. 얘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다. 스톤마저 침묵시킨 뒤 감각을 높게 세워 밑을, 정확히는 해저에 웅크리고 있는 괴물의 기척을 느낀다.
스윽! 스으윽~!
나의, 승천자의 감각이 소리친다. 배 밑바닥에 ‘무언가’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것들이 한밤의 적막을 뚫고 시끄러운 파동을 꽥꽥 전파하는 해수면의 건방진 것들에게 다가온다.
와, 이거 미치겠네. 원래 계획은 이게 아니었는데 귀신 봤다고 수십 명이 한마음 한뜻으로 소리 지르자 상황이 미쳐 돌아가기 시작한다.
‘오러를 이럴 때 써야지 언제 쓰냐.’
여기서 이렇게 바보 같은 이유로 죽을 순 없다. 나는 롱소드를 들어 오러를 피웠다.
백색 빛 무리가 퍼지자 아까와는 다른, 묵직한 탄성이 선실에 흘렀다. 나는 오러를 위시한 채, 검사 둘과 납치범 측 병사들에게 겨누며 작게 속삭였다.
“나에 대해 설명하마.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겠지만, 이번 화합에 힘없는 장인들을 납치한 걸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어서 따라왔다.”
“그, 그……!”
“닥쳐. 입 다물어. 너희 둘을 제외한 스칼러는 전부 죽었고, 마법사도 한 명 사망에 한 명은 두 다리가 잘려서 제압됐다. 알겠어? 다들 죽고 싶지 않으면 닥치고 내 말에 따라.”
“…….”
“그리고 너네. 게리소님하고 피랄 연합체를 중심으로 모여. 검사 둘을 포박하고, 조용히 위로 올라가. 시체는 전부 치우고 피 냄새 안 나게 잘 닦아.”
“…휴우!” 검사 둘이 반항을 포기한 채 얌전히 양손을 내밀었다. 우리 측 병사가 둘의 몸을 단단히 묶고, 납치범 측 병사들도 동료의 시체를 위로 치우고 피를 닦는다.
“아, 아까 이놈들 말리러 내려온 놈 어디 있어. 얼굴 기억하니까 좋게 말할 때 튀어나와.”
저 뒤에서 한 명이 쭈뼛쭈뼛 걸어 나온다. 나는 그 녀석의 턱도 후려쳐서 기절시켰다. 쓰러지는 녀석의 옷깃을 붙잡고, 근처 병사에게 건네주려는 순간…
후웅! 흔들!
무언가, 고래만 한 녀석이 바로 배 밑을 지나갔다. 은신 마법진 덕분에 정확한 위치를 포착하지 못한 걸까. 하지만 여파만으로도 배가 기우뚱! 흔들렸다.
“…….”
모두가 뻣뻣하게 그 자리에서 굳었다. 다시, 죽음과도 같은 침묵이 닥쳤다. 이제야 이들도 현 상황이 매우, 매우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어제의 적은 오늘의 동지라는 말이 지금처럼 잘 맞아떨어질 때가 없다. 납치범 측 병사도, 우리 측 병사도 몬스터라는 초월적인 위협 앞에서 인류애로 똘똘 뭉쳐 동료가 되었다. 그들이 고개만 삐그덕! 돌려 나를 보았다.
나는 낮지만, 구석구석까지 전파되는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다 시체 들고 조용히 갑판 위로 올라가! 어서!”
후다닥!
“야, 씨! 발소리 안 낮춰? 너 얼굴 기억했어! 너는 대가리 박고 대기하고 있어라!”
…살금살금!
“아… 저, 저, 저기, 억류된 장인들은 어떻게…….”
보로가 올라가다 말고 더듬대며 내게 물었다. 아무래도 내가 쟈기인 걸 모르는 모양이었다.
“자, 장… 장인들은 바로 밑에 있스, 습니…….”
왜 말 더듬어? 더듬는 거만 이상한 게 아니다. 입술을 씰룩대고, 코를 찌그러뜨리고, 눈가에 주름을 주었다가 풀면서 얼굴을 괴상하게 일그러뜨린다.
아, 나인 걸 눈치챘는데 덩치하고 외모가 달라서 신기한 거 반, 익스퍼트라서 놀라움 반이 더해져서 저런 표정을 짓는 거군. 나는 있다 설명해주겠다는 식으로 손을 내저은 뒤, 입을 열었다. 아니, 열기 전 생각했다.
장인들? 장인 데려와서 인원 세면 나하고 스톤 빠진 거 눈치챌 수도 있는데.
나는 고심 끝에 늑대들, 게리소님에도 피랄 연합체에도 속하지 않는 남쪽 대륙 영주의 병사들을 가리켰다. 그들이라면 우리와 데면데면하니 나와 스톤이 없는 걸 모르겠지.
“너희 넷! 신속하게 장인을 구출한 뒤 상황을 설명하고 조용히 데려와. 그리고 너도 말 꺼냈으니 따라가라.”
그러며 보로를 보며 똑같이 코와 눈가를 씰룩댄다. 알아서 나와 스톤이 빠진 걸 적절하게 넘기라는 뜻이다. 보로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 * *
일전에 개척 영주라는 특이한 풍습을 설명한 적이 있지 않나. 그것과 비슷한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몬스터를 앞뒀을 때이다.
몬스터 탓에 전쟁, 영지전 등의 ‘인간끼리의 대규모 다툼’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세상. 하지만 역사는 길고 세상은 넓다 보니 다툼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그 전투. 만약 당신이 대규모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에 있으면, 그 과정은 지구의 관점에서 본다면 꽤나 신사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역사책에나 교본에만 있던 포로 대우도 제대로 이루어지고, 약탈도 엄격하게 금지한다. 기사나 마법사 급 실력자가 잡히면 서로 웬만큼 감정이 상하지 않는 이상 몸 성히 풀어주기도 한다.
귀족들끼리의 커넥션이니 명예니 하는 이유가 아닌, 불필요하게 인류의 무력을 줄일 수 없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이유 때문이다.
또 몬스터와 관련된 풍습이 하나 더 있는데, 아무리 인간끼리 치고받고 싸운다 할지라도 ‘아, 이건 좀 심각한데.’ 싶은 몬스터가 등장하면 여태까지의 원한은 접어두고 협력한다는 점이다.
뭐, 인간이 주도하는 이상 모든 것이 이상적으로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협력한다는 것 하나만큼은 사실이다.
예시를 들자면, 전생의 웨일이 틴탑 항구에서 드레이크를 사냥하기 위해 흑마법사에게 속아 넘어간 약쟁이 용병을 쓴 일이 적절할 것이다.
왜 굳이 이것을 설명했는가. 그건 바로 그 일이 지금의 쟈기에게도 일어나서지. 왜긴 왜야.
“시체 모았나?”
“예! 모았습니다!”
“목소리 줄여! 이 등신 새끼들아! 피는 다 닦았고?”
“예…! 닦았습니다…!”
“그럼 이제……!”
그그극!
용골이 갈리는 끔찍한 진동이 배에 퍼진다!
정말 시간이 얼마 없다! 나는 피 냄새가 진동하는 곳으로 향하면서 포박된 스칼러 둘에게 말했다.
“너희! 기사야 뭐야? 여하튼, 이놈들 무인도로 납치할 생각이었지?”
“그, 그렇습니다.”
“말해! 무인도야 호룩스야! 어디가 더 가까워.”
“…무인도입니다.”
“오케이! 조타실로 가서 마법사 깨우고 전속력으로 전진해라!”
“알겠습니다.”
스칼러 둘이 병사들과 함께 조타실로 뛰어간다. 나는 그사이에 피 묻은 옷가지를 모은 곳에 도착했다.
피를 닦은 옷들. 수건인지 걸레인지 구별도 되지 않는 천 쪼가리와 병사들이 입은 옷, 상-하의와 속옷까지 총동원해서 피를 흡수했다. 나는 그것들을 염동력으로 들어 올렸다.
옷의 절반을 빼서 원뿔형으로 압축한다. 원뿔 밑면에 손잡이를 단 후, 그것을 붙잡고 선미(船尾)로 후다닥 뛰어간다. 도움닫기까지 해서 체중을 싣고, 최대한 가속도를 받은 후… 던진다!
에레스발다 탄(彈) 응용식 투창술!
푸화악! …퐁당!
거의 500미터 이상 날아간 옷가지가 바다에 빠지는 소리가 내 귓가에 잡혔다. 전력으로 던지면 이 이상 날릴 수 있지만, 일단 여기에 모여든 몬스터를 유인해야 해서 위험을 감수하고 가까이에 던졌다.
옷이 빠진 걸 확인한 뒤, 양손을 앞으로 내밀고 천천히 밑으로 내린다. 내 행동에 모두가 숨을 죽이며 온 정신을 밑에 집중했다. 침묵 속에 십여 초가 지난 시점.
퍼어엉!
고래. 진짜로. 찍고. 거짓말 안 하고.
고래만 한 상어. 지구식으로 예를 들자면, 메갈로돈이 돌고래처럼 해수면으로 펄떡 뛰어오른 게 달빛이 비치는 바다에 드러났다.
저 미친놈은 똥꼬에 추진제를 단것도 아닌데 30미터 이상 떠오르기까지 했다. 의기양양하게 피 묻은 옷을 입에 문 뒤에, 추락하는 이세계 메갈로돈.
푸와아아앙!
배면뛰기로 입수했는지, 포말이 비슷한 높이까지 올라온다. 울렁! 하고 4미터가 넘는 파도가 동심원으로 퍼져 나가는 게 우리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어욱! 억!”
“우욱!”
병사들이 이를 악물고 갑판에 엎드려서 달달 떨었다.
나는 효과가 있자 반 남은 옷가지를 뭉쳐서 원뿔로 가공했다. 이번에는 나선으로 홈까지 판다.
전신에 신체강화 초능력을 일으키고, 현재 내 근력, 마나량으로 원뿔 옷가지가 날아갈 궤도를 계산하여 허공에 가상의 선을 그린다. 그 선을 따라 초능력 격류를 수십 미터까지 생성시킨다.
에레스발다 탄(彈) 응용식 투창술!
쒜에엑!
회전하는 원뿔 옷가지가 소리조차 뚫고 날아간다. 초능력 격류에 가속도까지 받은 원뿔 옷가지는 2킬로미터 이상 날아, 내 귀에도 들리지 않는 거리까지 멀어진 후 바다에 빠졌다.
피 묻은 옷 따위로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 메갈로돈을 필두로, 피 냄새에 정신이 반쯤 나간 해양 몬스터들이 우르르 저 뒤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퍼버벙! 펑펑! 풍! 쿠과과과!
뭐야 이건?! 살아있는 폭탄이 이동하는 것처럼 해수면이 생난리를 부린다. 날치 무리가 펄쩍펄쩍 뛰는 걸 백 배쯤 과장하면 저런 장면이 나올까.
500미터나 떨어진 이곳까지 여파가 닥쳐오자 병사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고개를 박았다. 잠시 후, 소란이 잦아들자 한둘씩 고개를 들어 고요를 되찾은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다… 다 끝났나?”
납치범 측 병사가 소심한 어조로 혼잣말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절반 이상이 피 묻은 옷을 따라갔지만, 아직도 3분의 1 정도가 배 밑을 맴돌고 있었다.
다들 어떻게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을 때, 배가 서서히 가속한다. 목적지는 무인도가 있는 곳.
나는 추가로 마법을 써서 은신 마법진을 강화한 뒤, 해양 몬스터가 눈치를 챌라치면 시체를 한 구씩 바다 멀리 집어 던져 이목을 피했다.
덜컹!
“으으!”
드문드문 요동치는 배와 그에 맞춰 들려오는 병사들의 앓는 소리. 장인들도 상황을 눈치채곤, 조용히 구석에 엎드렸다.
흔들!
“으히이~!”
비명, 신음, 흔들림의 시간 속에서 이십 분 정도를 보내자 수평선 너머로 뾰족하게 솟은 돌덩어리가 솟아오르는 게 내 시야에 들어왔다.
저곳이 납치범의 본거지인 무인도였다. 나는 착잡한 얼굴로 무인도를 바라보았다.
‘원래 이럴 계획이 아니었는데.’
재빨리 머리통을 없애고, 병사들을 이용해 호룩스로 항로를 수정할 생각이었다. 그러는 김에 마법사를 조지면서 정보도 얻고.
하지만 인생이 어떻게 꼬였는지 적진의 아가리로 몸을 알아서 디밀게 됐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에이.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내 인생이 언제부터 계획대로 차곡차곡 일이 진행됐다고 실망하고 그러나. 일단 가자. 가서 난동을 부리면 뭐가 되도 되겠지.
나는 마음을 편히 먹고 납치범, 병사들을 한곳에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