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29
128화 불청객(3)
비천풍(飛天風).
백 년 전, 천하에서 가장 빠른 무인이자 초절정 고수로 이름이 드높았던 비천호리 북궁추산이 익혔다고 알려진 경공.
‘지금 보니까 이것도 북궁 딱지가 붙어 있네.’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며 진기를 더욱 끌어올렸다.
주변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과연 최상승의 경공답게 엄청난 속도를 자랑했다.
비천풍의 장점은 비단 속도뿐만이 아니었다.
효율 면에서 비천풍의 진가가 드러났는데, 비천풍을 익히면 한 줌 진기로 십 리를 나아갈 수 있었다.
속도와 연비, 두 가지 토끼를 잡은 신법을 이용해 장장 두 시진 만에 검각산 초입에 도착했다.
“후우…….”
잠시 숨을 고르며 산의 입구를 바라봤다.
달빛 하나 들지 않는 시커먼 입구.
곳곳에 깔려 있는 마기까지.
불길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였다.
마치, 나를 기다리는 범의 아가리 속을 보는 듯했다.
물론, 이제 와서 물러날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곧장 기감을 넓게 펼쳐 주변을 살폈다.
초절정에 오르고 나서 비약적으로 예민해진 기감에 수 명의 적들이 걸려들었다.
‘이쪽을 주시하고 있군.’
필시, 추적을 대비하기 위한 척후였을 터.
하지만 상관없었다.
몰래 잠입할 생각 따윈 없었으니까.
‘그럴 능력도 없고.’
그저 적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쿠웅!
전왕보를 밟아 한달음에 검각산으로 들어갔다.
낙엽 밟히는 소리와 함께 몸에 부딪힌 나무들이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느껴지는 적의 기척.
하지만, 놈들을 상대해 줄 시간 따윈 없었기에 더욱 빠르게 달려 나갔다.
쿠웅!
앞을 막아서는 적들만 처리하며 나아갈 생각이었다.
“흡!”
펑!
달려가는 가속도를 살려 뻗은 주먹이 적의 머리통을 수박처럼 부쉈다.
“저기다!”
동시에 날아드는 여러 개의 칼날을 무시하고 앞으로만 달려갔다.
툭.
어차피, 용린갑에 막힐 게 뻔했으니까.
“무슨!”
우득.
공격이 먹히지 않아 당황하는 놈에게 손을 뻗어 목을 부러뜨렸다.
피융!
곧장 날려 보낸 현철 못이 적의 미간을 뚫고 돌아왔다.
적의 머릿속을 구경하고 와서 그런지 던지기 전보다 조금 따뜻해진 것 같았다.
훙!
“……!”
그때, 쥐도 새도 모르게 날아온 검기가 내 뒤통수를 노려 왔다.
고개를 숙여 가까스로 피해 내니 다리를 향해 날아오는 도기가 보였다.
‘고수!’
지금까지 상대하던 놈들과 차원이 다른 절정고수들의 기습.
하지만 이 정도에 당할 내가 아니다.
콰앙!
경력을 담아 내지른 폭사경이 도기와 검기를 깨뜨렸다.
쿠웅!
그리고 펼친 전왕보.
적들을 무시하고 그대로 달려 나갔다.
한시라도 빠르게 포위망을 돌파하기 위함이었다.
휙휙.
희미한 달빛에 윤곽만 겨우 보이는 아름드리나무들을 피하며 달렸다.
사방에서 호각 소리와 고함이 울려 퍼지며 인기척이 나를 뒤따랐다.
그러기를 반 각여.
‘찾았다!’
주변에 퍼뜨렸던 기감에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장소가 느껴졌다.
대충 봐도 백여 명 이상.
그 말인즉슨.
여기서부터는 적의 머리통을 전부 부수며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파지직. 파직.
전신에서 새어 나간 경력이 주위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 * *
처음 무림에 환생한 날.
나는 절망했다.
전생보다 못한 삶을 살게 될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망에 빠져 있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미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으니까. 절망하는 것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집중하는 편이 나았다.
그렇기에 출세를 원했다.
이곳에서 만난 새로운 가족들을 보살피고 싶었다.
갑작스레 창궐한 역병에 가족들이 죽기 전까지 말이다.
혼자가 된 후에는 도시로 내려와 구걸을 하기 시작했다.
춥고 배고픈 나날이 계속되었지만 이를 악물고 살아남았다.
그러다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를 따라 구룡성으로 들어가 등천각에 입각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슨 생각으로 입각시켰는지 모르겠다.
길에서 주운 거지 꼬맹이 따윈 하인으로 부려도 충분할 텐데.
그 덕에 하루하루 피 터지게 무공을 배울 수 있었다.
손톱이 빠지고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에도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재미있어서? 강해지는 게 좋아서?
그런 배부른 이유가 아니었다.
개뿔도 없이 태어난 내가 할아버지가 베푼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팔 년.
우연히 찾은 박룡십삼투 덕분에 등천각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할 즈음, 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이 들려왔다.
흉수는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마도의 고수.
그에 맞서 힘없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홀로 나선 결과였다.
이름 높은 초절정고수답지 않은,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그때부터였다.
목표를 잃음과 동시에 무공에 흥미를 잃은 것은.
그래도 살아야 했기에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구룡성에서 도망처 잘 먹고 잘살겠다는 아주 세속적인 목표였다.
명예? 무공? 권력?
전부 다, 살아남는 데는 아무 소용 없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하지만, 지금.
콰직!
지속되는 전투 속에서 잘 먹고 잘살겠다는 목표 따위는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씨익.
적의 피가 얼굴을 적실 때마다 가슴속에 차오르는 열기가 살아 있음을 실감케 했다.
“내가!”
콰아앙!
내지른 폭사경이 앞에 있던 적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냈다.
“진무전이다!”
하아……. 하아…….
거의 한 식경 동안 이어진 전투.
거칠어진 호흡을 조절하기 위해 숨을 들이마셨다.
쓰읍.
주위를 가득 채운 혈향이 콧속 깊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으으…….”
두려움에 가득 찬 신음이 검각산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찌걱. 찌걱.
적들의 피로 인해 질척해진 흙바닥이 신발에 달라붙었다.
‘묘향이 선물로 사 준 건데…….’
“으아악!”
누군가가 고함을 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잡념이 섞여 흔들리는 칼날에 맞아 줄 생각은 없었다.
푹. 푸확!
손끝을 세워 놈의 울대를 끊어 내며, 살아 있는 놈들에게 말했다.
“너희 마도 맞냐? 왜 이렇게 대가 약해?”
“감히!”
“이익!”
그제야 움직이는 적들.
그리고 그 사이로 이전부터 눈여겨보고 있던 다섯이 스며들었다.
화아악!
은밀히 날아오는 검에 후끈한 기운이 어려 있었다.
십종 중 염종의 열양지력이었다.
콰직. 우드득.
“크륵.”
뜨거운 기운에 살이 익는 고통을 무시하고 놈에게 전룡십삼투의 주먹을 박아 넣었다.
가슴뼈가 우그러지는 소리가 나고, 놈의 신형이 무너져 내렸다.
“이놈!”
짧은 고함이 들려오며 으스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귀종의 암술이었다.
쑤엉!
현철 못을 날려 보내 소리를 지른 놈의 미간을 꿰뚫었다.
그 틈을 타 십여 개의 칼날들이 나를 노리고 쏟아져 들어왔다.
“흡!”
스거어어억!
미리 준비한 극사경을 펼쳐 놈들의 몸을 갈라 내니 다섯의 절정급 마도가 시뻘건 칼날을 휘둘러 왔다.
화르륵. 파아아.
염화마공.
염종의 독문 무공이자 그 어떤 무기에도 막대한 열양지기를 담을 수 있는 신공절학이다.
아무리 용린갑이 신병이기라 해도 결국 금속으로 만들어진 갑옷이다.
저 정도의 열양지력에 맞으면 내부 온도가 삽시간에 치솟을 가능성이 크다.
즉, 맞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쿵!
나는 놈들의 칼날에 어린 붉은 기운을 확인하자마자 곧장 전왕보를 펼쳐 뒤로 물러났다.
“죽어라!”
놈들이 이를 악물며 나를 쫓아왔다.
겨우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하는 거다.
물론.
쿠아아아!
처음부터 그런 기회 따위는 없었지만 말이다.
“헉!”
“으아악!”
이전 싸움에서 진일보한 전룡기가 열양지기를 잡아먹더니.
콰아아.
놈들을 향해 그대로 쏟아 내었다.
털썩.
시꺼멓게 그을린 시체들이 힘없이 쓰러졌다.
자신들이 쏟아 낸 열양지기에 그대로 당한 것이다.
“허억! 허억!”
하지만 나 역시 손해가 작지 않았다.
계속되는 전투로 체력이 떨어진 것은 물론이고, 방금 펼친 전룡기도 내공 소모가 극심했다.
챙챙챙. 쾅!
시선을 돌려 왼쪽을 바라보니 수십의 무인들이 금극을 지키며 십마련과 싸우고 있었다.
요상단을 씹어 먹으며 상황을 지켜봤다.
금룡당 쪽이 일방적으로 밀리는 싸움.
당연했다.
사람 수도 차이 나지만, 질적으로도 밀렸으니까.
만약 타격조가 호위하지 않았다면 진즉 전멸당했을 거다.
‘쉰 명쯤 남은 건가…….’
백 명이 조금 넘었던 행렬을 생각해 보면 벌써 반이나 죽은 것이다.
반면, 그들을 압박하는 적의 숫자는 백에 가까웠다.
중과부적의 상황이었지만.
‘믿는다.’
나는 내가 가진 것들을 믿었다.
싸우기 전에 죽음을 떠올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 없지 않겠는가.
파지직. 파직.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전왕기가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나는 주저 없이 전장 한복판으로 몸을 날렸다.
쿠웅.
“……?”
내 존재를 알아챈 몇 놈이 의문으로 가득 찬 눈빛을 내게 던졌고.
씨익.
나는 웃음으로 화답해 줬다.
뻥!
각법에 턱을 맞은 적의 머리가 몸에서 뜯겨 나와 하늘로 치솟았다.
적들의 시선이 내게 쏟아졌다.
쿠릉! 콰아아앙!
남은 내공을 쥐어짜서 폭사경을 터뜨렸다.
“으아악!”
포탄 터지는 소리와 함께 적들의 육체가 쪼개졌다.
“흡!”
대경한 적들 사이로 몸을 날렸다.
난전. 속칭 개싸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싸움 방식이었다.
날아오는 병장기들을 용린갑으로 받아 내고 적을 향해 투법을 박아 넣었다.
콰직. 콰직.
적들의 몸을 부수는 주먹.
푹푹.
내 몸을 스치는 칼날.
그리고.
스거어억!
그런 난전 사이사이 펼쳐진 극사경이 적의 몸을 갈라 내었다.
쿠웅!
적들이 잠깐 머뭇대는 틈을 타 진각을 내리찍으며 전왕보를 펼쳤다.
놈들의 눈엔 사라진 것으로 보일 터다.
목표는 금룡당을 두들기고 있는 적의 고수들.
약간이라도 방심했을 때 최대한 숫자를 줄여 내야 했다.
“헉!”
내 기척을 느낀 적이 몸을 돌리며 시뻘건 열양지기가 담긴 도를 휘둘러 왔지만.
펑!
내 손이 놈의 왼쪽 가슴에 닿는 것이 먼저였다.
“크륵.”
심장이 터지며 역류한 피가 오공에서 쏟아졌다.
“이노옴!”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
펑펑펑펑.
내공을 아끼기 위해 반은 몸으로 받고 반은 쳐 냈다.
“쿨럭.”
뜨거운 열양지기에 진기가 가닥가닥 끊기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샤아아.
어디선가 날아온 마기가 엄습했다.
사술로 이름 높은 귀종의 이십사욕계술이었다.
섬뜩함이 느껴지며 정신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전왕기가 미친 듯이 날뛰며 마기를 몰아내고 있었지만, 회복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적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쑤엉!
시뻘건 도기가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전룡기를 펼쳐야 하나?’
아니다.
남아 있는 적들을 생각하면 내공을 아껴야 했다.
어쩔 수 없다.
‘용린갑을 믿는다.’
으득.
이를 악물고 공격에 대비하던 그때.
“갈!”
금극과 그 휘하의 절정고수들이 튀어나와 적들을 격살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적들의 포위망을 뚫어 낸 것이다.
“괜찮나?”
앞을 막아선 등판에서 굳은 결의가 느껴졌다.
문득, 그를 두고 금자환에게 내가 뭐라고 떠들어 댔었는지 떠올랐다.
‘잃을 게 많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마음에 겁이 가득 차 있더라고.’
피식.
‘지랄.’
대체 무슨 건방을 떤 거냐.
이런 훌륭한 무인을 두고.
“괜찮습니다.”
“자네가 올 줄은 몰랐네. 덕분에 살았어.”
“정 고마우시면 돈으로 갚으십시오.”
“그러지.”
“많이 주셔야 할 겁니다. 제가 몸값이 꽤 비싼 사람이라.”
“평생 들어 본 적도 없는 돈을 주겠다.”
“호감도가 절로 치솟아 오르네.”
실없는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전왕기가 마기를 모두 몰아냈다.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의 상황을 살폈다.
서른의 금룡당원.
스물의 타격조.
전력의 절반 이상이 죽은 것이다.
반면.
‘많이 남았군.’
검각산에 얼마나 들어왔었는지는 몰라도 남은 적들은 건재해 보였다.
더군다나.
“저 노인, 누군지 아십니까?”
“염종의 일 장로다. 부끄럽지만, 내가 그를 막지 못한 탓에 이리 밀렸다.”
현산월과 동급으로 보이는 초절정고수까지.
“쉽지 않은 싸움이 되겠습니다.”
“각오하고 있다.”
“싸우기 전에 하나만 물읍시다.”
“얼마든지.”
“적룡당과는 대체 왜 싸우시는 겁니까? 부족한 거 하나 없으신 양반이.”
“그러게 말이다. 상대를 누르고 싶은 욕망이 나를 죽을 자리로 불렀구나.”
“돌아가면 사이좋게 지내십시오.”
“늙은이 하는 거 봐서.”
금극이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내 직접 일 장로를 처단할 것인즉, 필대와 종대는 무사들을 이끌고 나를 따라라.”
“아버지!”
“당주님!”
앞장서겠다는 말에 두 사람이 만류했지만, 금극은 고개를 저을 뿐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일 장로를 죽여야 싸움이 끝난다.”
그가 굳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도와주겠는가?”
“안 도와주면? 아들하고 부하들 싹 다 죽이시게요?”
피식.
금극이 내공을 실어 외쳤다.
“적들을 주살하라!”
최종 장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