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Farmer RAW novel - Chapter (171)
건우는 족장 얀과 무녀 라일라를 따라서, 부족 마을을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첫날을 제외하면, 마을 밖으로 나가는 건 처음이네.’
그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갸웅!
갑자기 가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가온이 작은 날개를 파닥거리면서 날아오고 있었다.
건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날아오는 가온을 품에 안았다.
“가온아. 여기는 왜 왔어? 불고기 먹고 있지.”
그 물음에 가온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갸웅!
건우가 구워 주는 게 아니라서 못 먹겠다는 뜻이다.
그 말을 들은 건우는 자신의 실수를 눈치채고는 아차 싶었다.
“아, 가온이는 내가 안 챙겨 주면 못 먹었지? 미안해. 자꾸 깜박하네.”
갸우웅.
가온은 건우의 사과에 다음부터는 꼭 신경 써 달라는 듯이 고개를 가슴팍에 비볐다. 그러면서 어딜 가냐고 물었다.
“엘프들도 농사를 짓는다고 하더라고. 구경 가려고 하는데, 가온이도 갈래?”
그 물음에 가온이가 두 눈을 반짝이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건우가 슬쩍 미소를 지으면서, 얀과 라일라를 돌아봤다.
“가온이도 같이 가도 될까요?”
그 물음에 둘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상관없습니다.”
“물론 괜찮아요.”
그렇게 두 사람의 허락을 받은 건우는, 가온을 안고 마을을 나섰다.
그러자 드러나는 마을 바깥의 풍경.
마치 외국에 있는 정글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별로 습하지가 않네.’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지구의 정글을 떠올렸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단 한 번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만큼, 정글 비슷한 걸 본 적도 없었지만…… 여러 매체를 통해서, 정글은 웬만하면 상당히 습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부족 던전의 정글은 생각 이상으로 쾌적했다.
‘여기서 그냥 엎어져 자도 되겠는데? 그리고 피톤치드라고 했던가? 그게 온몸으로 느껴지는 기분이야.’
건우가 그런 생각을 이어서 할 때였다.
뀽!
무척이나 익숙한 소리가 건우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가온이었다.
갸웅!
‘뀨뀽이다!’ 하고 건우의 품을 벗어난 가온은 소리가 들린 곳으로 순식간에 날아갔다.
하지만 곧 고개를 갸웃거렸다.
갸옹?
당연하지만, 수풀 속에서 발견한 것은 뀨뀽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 있던 것은 가온을 보고 오들오들 떨고 있는 야생의 뿔토끼였다.
‘야생 뿔토끼라…… 오랜만에 보네.’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야생 뿔토끼를 자세히 살펴봤다.
녀석은 던전 농지에 사는 뿔토끼들에 비하면, 날렵해 보일 정도로 말라 있었다. 눈매도 사나운 것이, 성질까지 고약해 보였다.
말 그대로 몬스터라는 느낌이었다.
‘생각해 보면, 뀨뀽이도 예전엔 저랬었는데…….’
그는 그러면서 던전 농지에 사는 뿔토끼들을 떠올렸다.
하나같이 둥글둥글, 순둥순둥.
아무래도 치열한 야생의 법칙에서 벗어나면서 생긴 차이일 것이다.
건우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가온이 흥미를 잃고서 다시 건우에게 날아와서 품에 안겼다.
그사이, 야생의 뿔토끼는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던전 농지의 뿔토끼들과는 다르게 은밀하면서도 날렵했다.
‘야생 뿔토끼를 보니까, 갑자기 던전 농지 뿔토끼들이 걱정이네. 너무 비만인 것 같단 말이지. 건강 때문에라도 운동 좀 시켜야 하나?’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하나같이 뒤뚱뒤뚱 걸어 다니는 뿔토끼들을 떠올렸다.
‘살을 빼면 또 아쉬울 것 같기도 하고…….’
그러길 한참, 건우는 뿔토끼 다이어트에 대한 것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라일라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곳에도 몬스터가 있었네요?”
그 물음에 그녀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뿔토끼 말고도 여러 종류의 몬스터들이 있어요. 그래서 마을 주변으로 결계를 쳐 놓은 것이고요.”
그 대답에 건우는 부족 던전의 마을을 떠올려 봤다.
결계가 쳐져 있다는 건 몰랐지만, 커다란 바위와 두꺼운 넝쿨로 견고하게 보호되고 있는 마을을 보면 확실히 외부 공격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마을을 그렇게 보호하고 있을 정도면…… 꽤 위험한 몬스터도 있다는 건가?’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주변 정글을 다시 둘러봤다. 아까와는 다르게 살짝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라일라가 건우의 불안감을 느낀 것인지 편안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농지로 가는 길에 위험한 몬스터는 없어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하, 하하. 역시 그렇겠죠? 위험한 몬스터가 있으면 농사를 짓기도 힘들 테니까요.”
“네. 저희도 그런 부분을 많이 고려해서 농사를 짓고 있어요. 주변에 가끔씩 출몰하는 몬스터들도 사냥하고 있고요.”
“아, 몬스터도 사냥하나요?”
“네. 부족에 위협이 되니까요.”
건우는 그렇게 라일라와 대화를 나누면서, 엘프에 대해서 조금씩 더 알아 갔다.
그러는 사이, 정글이 끝나고 엘프들의 농경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농경지는 살짝 낮은 지형에 있어서, 건우의 두 눈에 전부 들어왔다.
건우가 농경지를 보면서 입을 벌렸다.
‘이건…… 너무 개판인데?’
농경지 관리가 너무 안 되어 있었던 것이다.
* * *
건우는 정령들의 도움을 받아서 농사를 짓는다.
그 기간이 어느새 1년이 넘었고, 그사이 정령들도 농사에 상당히 숙달된 상태였다. 그런 정령들이 열심히 관리하는 건우네 밭은 깔끔 그 자체였다.
잡초가 거의 없어서 농작물들이 밭의 영양분을 독식했고, 해충도 실시간으로 처리하니 건강한 농작물이 자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긴 거의 야생이나 다름없는데?’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엘프들의 농지를 자세히 살피고 있었다.
엘프들은 전형적인 방목형 농사를 짓고 있었다. 농지 면적을 크게 차지하는 커다란 식물들만 제거하고 농작물을 자연의 법칙에 맡기는 형태였다.
‘하지만 방목도 너무 방목이야.’
잡초가 건우의 허리까지 올라온 것은 기본이고, 그 때문에 자라야 할 농작물들이 자라지 못하고 있었다. 넝쿨형 잡초가 농작물을 옭아매고 있는 모습이나, 독초가 자라나서 주변 농작물을 전부 죽인 곳도 드문드문 보였다.
방목형 농사를 지향하지 않는 건우였기에,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있자니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따로 있었다.
‘엘프들이 키우고 있는 농작물은 방목형 농사에 전혀 어울리질 않아.’
참고로 방목형 농작물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방목형 농사를 지을 때 키우는 농작물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병충해에 강하고, 잡초에 지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크는 종류의 농작물이 바로 그런 종류였다.
그 예로 가장 적합한 것이 옥수수였다.
옥수수는 여러모로 생존력이 강한 식물이다. 빠른 성장력, 높게 자라는 키, 척박한 환경에서 잘 자라는 것까지 고려해 보면 방목형 농사 대상으로 옥수수만 한 것도 없었다.
‘그 때문에 옥수수 씨만 대충 뿌려 놓고 추수만 하는 곳도 많지.’
물론 그렇게 키워진 옥수수는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시중에 나돌지는 않는다. 대부분 가축 사료로 사용될 뿐이었다.
‘아무튼 여기서 키우는 것들은 못 쓰겠어. 먹자고 하면, 못 먹을 것도 아니겠지만…… 상품성이 너무 없어.’
건우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미간을 모으고 있을 때였다.
얀이 건우에게 말을 걸었다.
“저희 밭을 본 소감이 어떠십니까?”
그 물음에 건우는 복잡한 표정으로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가볍게 한숨을 삼키면서 입을 열었다.
“참, 자연 친화적인 농사법을 사용하시는군요.”
대놓고 쓴소리를 하기엔 미안해서, 최대한 돌려서 말한 것이다.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얀이 눈치도 없이 멋진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군요. 혹시 저희들의 농사법이 필요하시다면…….”
“아뇨. 괜찮습니다. 농사법은 그냥 제가 쓰는 방식으로도 충분해요.”
건우는 재빨리 얀의 말을 끊으면서 자신의 의지를 확고히 했다.
그에 얀이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인은 자신의 지향점이 있는 법이죠. 장인의 고집, 이해합니다. 농사법은 더 이상 권하지 않겠습니다.”
“하, 하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가 매일 가서 농작물의 성장을 돕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지금 보고 계신 농작물만큼이라면, 한 달 만에 무리 없이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건우는 그 제안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소아에게 이미 도움을 받고 있는 만큼, 성장에 도움을 주는 것은 받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 도움을 지속적으로 받을 생각은 아니었다.
‘지력도 생각해야 하니까. 성장을 너무 빠르게 촉진시키면 식물에 무리가 가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지력이 남아나질 않을 거야.’
그는 그러면서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하겠다고 얀에게 말했다.
그 뒤로 건우와 얀은 농사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얀이 어떤 부분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면, 건우는 필요에 따라서 도움을 받을지 말지 정하는 모양새였다.
그 과정에서 건우는 자신의 귀를 의심할 만한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예전에는 농작물을 한 달에 한 번씩 수확했다고요?”
“네. 엘프들의 부흥기에 그랬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말에 건우의 턱이 쩌억 하고 벌어졌다.
“그럼, 땅이 버틸 수 있나요?”
“땅이 버틸 수 있냐니요?”
“그러니까, 그렇게 무리해서 식물을 키우면, 그 땅에 식물이 자랄 만큼 영양분이 충분하냐는 거죠.”
“음, 땅과 물, 빛만 있으면 식물은 어디서나 자라는 건데…… 영양분이라니, 이해가 잘 안 가는군요. 다만, 부흥기 때는 어느 순간 식물이 잘 안 자라는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가 오면 농지를 옮겼다고 문헌에 적혀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건우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딱 보아하니, 농사에 대한 연구를 활발하게 하진 않은 것 같구나.’
건우는 그러면서 슬쩍 자신이 밟고 있는 땅의 흙을 만져 보았다.
흙이 무척이나 고왔다. 부슬부슬할 정도로 말이다.
‘이건 거의 모래라고 봐야겠는데? 땅에 힘이 너무 없어.’
건우는 그러면서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본 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음, 문제라면 문제인데…… 그 이야기는 조금 나중에 다시 얘기 나눠 보는 게 어떨까요?”
“음, 알겠습니다. 뭔가 문제가 있는 모양이군요.”
얀이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끄덕인 순간이었다.
쿠웅.
미세한 울림이 건우의 발끝에서 느껴졌다.
“음?”
건우는 뭔가 싶어서 신경을 곤두세웠다.
쿠웅. 쿠우웅. 쿵!
그 울림은 점점 가까워지면서, 기세를 더하고 있었다.
‘뭐지?’
건우가 의문을 느낄 때였다.
얀도 건우처럼 뭔가를 느낀 것인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빨리 마을로 돌아가야겠습니다.”
그 말에 건우도 동의한다는 듯이 표정을 굳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농지를 돌아다니면서 놀고 있는 라일라와 가온부터 찾았다.
다행히 둘도 묘한 감각을 느낀 것인지, 다급하게 건우와 얀에게 돌아오고 있었다.
“땅이 울어요!”
갸웅!
그렇게 소리치면서 달려오는 둘.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그늘이 지는 듯하더니, 뭔가가 농지 위로 떨어져 내렸다.
콰아앙!
안 그래도 힘없는 땅이 거칠게 뒤집어지면서 비명을 내질렀다.
그와 더불어 떨어져 내린 거대한 것이 포효했다.
음무어어어어어!
듣는 사람의 사지를 단번에 마비시키는 듯한 어마어마한 포효.
소의 머리, 인간의 상체, 거미의 하체를 한 거대 몬스터가 등장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