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Farmer RAW novel - Chapter (222)
TV에 나온 사진에는 무녀 라일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가 사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척 낮았다.
한 학생이 셀카(셀프카메라)를 찍는 와중에, 라일라가 배경 부분에 살짝 걸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애매한 각도의 뒤통수만 나온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선이 자연스럽게 라일라에게 향했다. 얼핏 보이는 날카로운 콧날과 그림 같은 눈매, 무엇보다 뾰족한 귀가 시선을 강탈한 것이다.
TV에 나온 아나운서가 사진을 살피면서 입을 열었다.
―이 사진은 원주여고 학생이 셀카를 찍은 사진입니다. 뒤쪽을 잘 보시면, 묘령의 여인이 보이실 겁니다. 뒤통수만 찍혀서 신원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유독 뾰족한 귀가 눈에 띄어서 원주 엘프녀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그럼 댓글로 누리꾼들의 반응을 한 번 보실까요?
아나운서가 그렇게 말하자, 댓글로 보이는 자막이 화면을 빠르게 채웠다.
[정면 좀 보여 주세요!] [전신사진은 없나요?] [신기하다. 귀가 뾰족하네?] [음, 원래 귀가 저러신가? 그런데 하나도 안 이상함. 잘 어울림.] [엘프 코스프레인가?] [뒤통수만 봐도 예쁜 거 실화냐?] [나, 직접 봄! 그런데 실제로 보면 귀 안 뾰족하던데?] [나도 봤음. 핵이쁨! 세상 혼자 사는 비주얼임. 옆에 오징어 두 마리랑 같이 다니더라.]아나운서는 그런 댓글 자막을 하나하나 읽어 주었다. 그러다가 댓글 자막이 끝나자, 앞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보시다시피, 실제로 원주 엘프녀를 보셨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보면 평범한 사람들이랑 똑같은 귀를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몇몇 누리꾼들은 이 사진을 찍은 학생이, 보정을 하다가 실수로 귀를 늘린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 중입니다. 아무튼, 이것이 실수든 아니든 재밌는 이슈였습니다. 지금까지 투데이 오글오글이었습니다.
아나운서의 인사를 끝으로, 투데이 오글오글이라는 짧은 코너가 끝났다.
그러는 사이, 그것을 본 아이스 프린스 박예준이 얼굴을 닦으면서 입을 건우에게 물었다.
“방금 그 원주 엘프녀라는 사람, 라일라 씨 아닌가요? 그래서 건우 형님이 놀라셨구나?”
그 말에 건우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미안해. 갑자기 라일라 씨가 TV에 나와서 놀랐어.”
“그래도 제 얼굴에 마시던 물을 뿜으시다니…… 너무하셨습니다.”
“정말 미안.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건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슬쩍 박예준과 불의 꽃 박예란의 표정을 살폈다. 둘은 원주 엘프녀라 라일라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건우가 그런 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라일라 씨가 엘프녀라는데…… 어떻게 생각해?”
그 물음에 먼저 답한 것은 박예준이었다.
“백만 번 인정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저도요. 솔직히 같은 사람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예쁘니까요. 그리고 사진에 나왔던 것처럼, 귀까지 뾰족하면 정말로 엘프라고 착각할 것 같아요.”
두 사람은 엘프라는 종족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는 만큼, 엘프녀라는 말에 건우처럼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건우는 그것을 보고 자신이 너무 설레발쳤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안도감이 찾아왔다.
‘그래. 별일 없을 거야. 다들 합성이나 보정 실패 정도라고 생각하는 것 같으니까.’
그는 그러면서 이번 일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로 했다.
* * *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던 아침 식사 후.
건우는 오전 일과로 서리태 수확과 들깨 수확을 동시에 하기로 했다. 예전이었으면 엄두도 못 낼 작업량이었지만, 건우는 기어코 그것을 점심시간이 오기 전에 해내고야 말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와가 소환해 낸 정령들이 해낸 것이다.
“오늘, 고생 정말 많았어.”
―힝!
―무웅.
―핫핫!
―운~
건우의 말에, 별거 아니라는 듯이 날아다니면서 재롱을 떠는 정령들.
그 모습을 본 박예준이 흐르는 땀을 닦아 내면서 감탄했다.
“언제 봐도 대단하십니다, 건우 형님.”
“응? 뭐가?”
“정령들을 다루시는 능력 말입니다. 한둘도 아니고 수백이라니…….”
“내가 항상 말하지만, 나는 운이 좋은 것뿐이야. 대단한 게 아니라.”
“운도 실력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처음부터 이렇게 대단한 능력은 아니셨을 텐데…… 결국은 형님의 노력과 실력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에 이른 거 아니겠습니까?”
그가 그렇게 말하자, 건우는 대답하는 대신에 멋쩍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노력이라…….’
그는 그러면서 자신이 정령들에게 해 준 것이 있나 떠올려 봤다.
‘부려 먹은 것밖에 없나?’
건우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조적인 웃음을 지을 때였다.
건우의 어깨를 차지하고 앉은 진흙 찐빵이 말을 걸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마라. 너는 잘하고 있다.
그러면서 다시 입을 꽉 다무는 진흙 찐빵.
건우는 덕분에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면서, 진흙 찐빵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렇게 잠시 후.
건우는 베어 낸 서리태와 들깨들을 경운기에 실어서, 집 근처에 있는 비닐하우스까지 옮기기 시작했다. 비닐하우스에는 오전 일과 준비 때 미리 넓게 깔아 놓은 비닐이 준비되어 있었다.
건우가 그 위로 싣고 온 서리태와 들깨들을 넓게 펼치자, 라일라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질문을 던졌다.
“가져온 것들을 왜 펼쳐 두는 건가요?”
그 물음에 건우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대답해 주었다.
“말려야 하거든요. 그래야 콩하고 깨가 잘 털려요.”
그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서리태 콩깍지를 하나 들어서 보여 주었다.
“여기 보시면 콩깍지가 벌어지긴 했지만, 껍데기가 아직 질기잖아요? 안쪽의 콩도 부들부들하고…… 이 상태에서는 콩 털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말리는 거예요.”
“아하. 그렇군요. 그럼 깨도 그런 건가요?”
“네. 맞아요. 깨도 마찬가지예요.”
건우와 라일라는 그렇게 궁금한 점을 묻고 답하면서, 오순도순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렇게 잠시 후.
궁금한 것을 다 물어본 라일라가 건우와 떨어지자, 박예준이 슬쩍 다가와서 물었다.
“라일라 씨는 농사에 관심이 많으신가 보네요?”
그 물음에 라일라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곧 농사를 지을 것 같거든요.”
그녀가 그렇게 대답하자, 박예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농사를 지으신다고요? 연예인이나 모델 같은 게 아니고요?”
“네. 농사를 지을 거예요. 이건우 님의 농사 실력에는 따라갈 수 없겠지만……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정도로 농사를 짓고 싶어요.”
라일라는 그러면서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본 박예준은 묘한 표정을 지은 채, 한동안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러는 사이, 하와가 콩을 널어놓는 것을 마지막으로 모든 작업이 끝났다.
“하와!”
“다들 고생 많으셨답니다!”
“끝났다! 이제 밥 먹으러 가자!”
갸웅!
작업이 끝나자마자, 뿌듯한 표정으로 만세를 부르는 하와와 엘, 소아, 가온.
건우는 그런 아이들에게 다가가서 옷에 묻은 먼지를 한 명씩 털어 주었다.
“오늘도 다들 고생 많았어. 도와줘서 고마워.”
그가 그렇게 말하자, 아이들도 화답하듯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소아가 슬쩍 건우에게 안겼다.
“헤헤. 그럼 안아 줘.”
애교가 가득한 요구.
그 요구를 시작으로 다른 아이들도 건우에게 은근슬쩍 안기기 시작했다.
건우는 기꺼이 아이들의 요구를 들어주고서, 오전 일과의 끝을 알렸다.
그렇게 건우와 아이들이 가장 먼저 비닐하우스를 벗어났고, 라일라가 그 뒤를 따라붙었다.
“오늘도 끝났다. 뿌듯하다, 뿌듯해.”
뺙!
그리 외치면서 기지개를 쭉 펴는 박예란과 빙닭.
둘은 가볍게 하이파이브까지 하고서 비닐하우스를 벗어나려고 했다. 그러는 와중에 여전히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박예준을 발견했다.
박예란이 그런 그의 등을 가볍게 치면서 물었다.
“야. 뭔 생각을 그렇게 심각하게 하냐?”
“어? 심각한 건 아니고…….”
박예준이 그렇게 말하면서 정신을 차리자, 박예란이 다시 한 번 물었다.
“뭔데? 말해 봐. 누나가 들어줄게.”
그 물음에 박예준이 잠시 침음을 흘리다가 입을 열었다.
“나, 헌터 그만두고 농부로 전향할까?”
“뭐?”
박예란은 예상치도 못한 대답에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갑자기 왜? 미쳤어?”
“그냥, 건우 형님이 농사짓는 모습이 멋있기도 하고, 농사를 해 보니까 적성에 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박예준은 그렇게 대답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그 말투를 들은 박예란은,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너, 혹시…… 라일라 씨가 농사짓는다고 해서 그런 건 아니지?”
“응? 그, 그것도 한 이유기도 하고…….”
그가 그렇게 대답하는 순간이다.
짜악!
“악!”
“정신 차려, 멍청아!”
박예란이 박예준의 등짝을 시원하게 후려친 것이다.
하지만 응징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뺙!
빙닭까지 극대노하면서 박예준의 머리를 쪼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엇나갈 뻔한 박예준은 다행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 * *
건우는 점심을 먹고 난 이후, 박 남매와 빙닭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던전 농지로 향했다.
그렇게 던전 농지로 향하는 길.
하와와 아이들은 강렬한 햇살에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뛰어다니며 활동력을 증명해 주었다.
건우가 그런 아이들을 가볍게 다그쳤다.
“너무 막 뛰어다니지 마. 요즘 여기도 차가 꽤 다니니까.”
“하와!”
“조심히 뛰어다닐게요!”
“내가 마법으로 슝슝 날려 버릴게!”
갸웅!
마지막으로 여차하면 엄마를 부르겠다는 가온까지.
건우는 가온에게 그건 좀 참아 달라고 말하고서, 들뜬 아이들의 뒤를 차분하게 따라갔다.
그러다가 문뜩, 같이 걷던 라일라에게 물었다.
“오늘 아침에 그 사진은 어쩌다가 찍히게 된 건가요?”
“사진이요?”
“네. 아침에 TV에 나왔던 뒷모습 사진이요. 뾰족한 귀가 그대로 나왔잖아요? 어쩌다가 귀까지 찍힌 거예요?”
아까는 박 남매가 있어서 묻지 못했지만, 건우는 라일라의 귀가 사진에 찍힌 것이 무척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인지 저하 마법이 걸린 상태에서는 영상 매체에 인간처럼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엘과 소아의 사진을 찍다가 알게 된 사실이었다.
라일라가 건우의 물음에 얼굴을 살짝 붉혔다.
“사실, 어제 한 가지 실수를 했어요.”
“실수요?”
“네. 무녀로서 무척 부끄럽네요.”
라일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어제 있었던 일을 정확한 설명해 주었다. 그것은 생각 외로 별거 아닌 일이었다.
“인지 저하 마법의 지속 시간을 깜박하고, 마법을 제때 못 건 거라고요?”
“네. 시내 구경을 하다가, 깜박했어요.”
“그사이에 사진이 찍힌 거고요?”
“그런 것 같아요.”
건우는 뭔가 대단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에 비해서, 싱거운 답변이 나오자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가볍게 웃어 보였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지.’
건우는 그러면서 이번 일을 가볍게 넘기기로 했다. 박 남매가 보여 준 반응처럼, 별문제가 없을 거라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일은 생각보다 쉽게 돌아가지 않았다.
건우가 그것을 깨달은 것은 던전 농지에서 일과를 한창 진행할 때였다.
나이트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건우 님. 혹시 라일라 님의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걸 아셨습니까?
건우가 전화를 받자마자, 다급하게 묻는 나이트.
건우는 분위기를 읽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무슨 일이 있나요?”
―네. 아무래도 중국까지 그 사진이 퍼진 모양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건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중국에는 엘프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떠올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