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348)
【히든 룸의 ‘마스터’가 등장합니다.】
【마스터, ‘또 다른 멸망’으로부터 살아남으십시오.】
순간 떠오른 간단한 메시지.
그런데 살아남으라니.
이건 또 무슨 해괴한 규칙이란 말인가.
허나 잊힌 신들은 당황했다.
무언가가 나타났음은 알았지만, 그 이름이 ‘또 다른 멸망’임은 지금 처음 안 탓이다.
-멸망이라고?
-멸망이 왜 세계수의 던전에?
-천상의 무기가 어째서······?
비록 또 다른 멸망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멸망은 멸망이다.
그리고 그들은 ‘멸망’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 힘은 감히 신들조차 오시하므로.
투욱.
이윽고 등장한 ‘또 다른 멸망’의 모습을 본 잊힌 신들은.
-저놈이······ 멸망?
-한데, 무엇이냐. 저 어둠은.
-4대 악신. 그 이상이로군.
-하지만 아무리 거대한 어둠을 지니고 있다고 한들, 이미 잊힌 우리들을 어찌 할 순 없을텐데?
하나같이 당황했다.
그들이 알고 있는 멸망과는 전혀 달랐으니까.
게다가 이미 패배하고 잊혀져 이곳에 온 신들이다.
여기서 멸망이 무엇을 더 할 수 있단 말인가.
멸망의 임무는 오롯이 세계의 파멸에 있다.
신의 땅과 힘을 빼앗을 순 있지만, 신 자체를 소멸시킬 순 없다.
그건 오직 천상만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또 다른 멸망이 움직이기 시작한 즉시.
하나, 둘, 그들을 상징하는 상징물이 파괴되고 소멸하자.
······ 잊힌 신들은 깨달았다.
-네, 네놈은 멸망이 아니었구나!
-모든 것의 끝을 고하는 자······!
-종말. 종말이다!
-도, 도망쳐라!
도망치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는 사실을.
탐욕의 악마.
하나, 둘, 기사단원들이 눈을 뜨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콜로세움이 사라졌어?”
“잊힌 신은? 황금률의 드루이드는? 아니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그런데 황금률의 기사단도, 백왕의 기사단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겪은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냥 눈을 감고 떴을 뿐인데 모든 게 달라진 상황.
‘······ 패배했나.’
백왕은 자조섞인 미소를 지었다.
결과적으로, 패배한 것이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에 의하면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황금률의 드루이드를 상대로.
하물며 잊힌 신의 어둠에 잠식된 채 조종당했다.
‘굴욕적이군.’
하지만 패배한 사실보다 조종당한 기억이 더욱 굴욕적이다.
또한, 아무리 떠올려도 떠오르지 않는 내용이 있었다.
분명히 빌헬름을 보고, 오주력을 보았으며, 또 다른 무언가를 마주했을진대.
“으음······!!!”
백왕은 몸을 잘게 떨었다.
마치 강제로 가로막힌 느낌.
그러나 그때의 전율만큼은 남아있는 듯싶었다.
이쯤되자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 대체 놈은 뭐였을까.
황금률의 드루이드가 지닌 어둠의 양은 상상을 초월했다.
오주력에게서도 느껴본 적 없는 불길함의 집합체였다.
아마도 자신이 맡았던,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더없이 불쾌한 냄새는 바로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오주력의 기색과 냄새였다.’
그거 하나만은 기억난다.
놈에게선 오주력의 냄새가 났고, 심지어 영혼에서도 오주력의 기색을 느꼈다.
‘잡아먹은 게 분명하건만.’
그 원한을 갚아주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기엔 놈은 너무 정체불명의 존재였으니까.
이미 한 번 실패한 이상, 알비노와 라이가도 예의주시할 것이다.
두 번은 통하지 않으리라.
‘미안하구나, 오주력.’
백왕은 철저하게 은원을 지키는 자였다.
그리고 백왕은 아직, 오주력에게 갚아야할 빚이 있었다.
그것을 갚지 못했음에 백왕은 후회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단장님이 어디 가셨지?”
“서, 설마 잊힌 신을 상대로······.”
······ 황금률의 드루이드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에 황금률의 기사단도 모두 당황하는 중이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잊힌 신을 상대하다가 죽은 게 아닐지.
콜로세움 전체가 사라진 것도 그 영향이 아닐는지.
백왕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비록 직접 죽이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황금률의 드루이드께선 살아계신다.”
그때 알비노가 말했다.
어디에도 보이질 않는데, 살아있다니.
알비노는 주변을 둘러보며 재차 입을 열었다.
“황금률의 드루이드께 문제가 생겼다면 명예의 세계수 자체가 말라비틀어졌을 것이다.”
“······ 세계수도 멀쩡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만.”
쿠릉!
쿠우우우웅!
허드슨의 말대로였다.
세계수는 뿌리부터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세계수의 잔재들도 모두 말라 비틀어진 상태였다.
라이가가 말했다.
“······ 우리는 계속해서 계층을 나아간다.”
“단장님을 찾는 게 우선······.”
“찾을 필요 없다. 녀석이 우리를 놓고 먼저 간 것이니.”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 모두에게 신성이 부여됐다. 녀석이 ‘잊힌 신’에게 승리한 뒤 우리 모두에게 ‘잊힌 기사의 영혼’을 부여했다는 뜻이다.”
“아······!”
허드슨의 두 눈이 커졌다.
이후 상태창을 열고 ‘신성’이 부여된 걸 확인했다.
당황하여 기본적인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신성을 얻기 위한 품격은 500점.
오로지 잊힌 신에게서 승리해야만 도달 가능한 점수다.
말인 즉, 박현명이 승리하고 품격점수를 올린 뒤 혼자 먼저 떠나버렸다는 의미였다.
“왜 먼저 가신 걸까요?”
“다른 이유가 있겠지. 어찌됐든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움직여야한다.”
불가사의 업적을 마무리해야된다.
다른 기사단과 경쟁을하고, 뿌리까지 가야만 끝나는 시련이다.
결국 이 모든걸 끝내기 위해선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어, 라이가가 백왕을 바라보았다.
“계속할 텐가, 백왕?”
“······.”
“황금률의 드루이드는 너를 살렸다. 모두의 명예를 위해.”
“······ 나를 살렸다고?”
백왕이 복잡한 눈빛을 지었다.
죽이려 했건만, 그런 자신을 살렸다니.
“맞다. 백왕, 너를 살린 건 황금률의 드루이드다.”
폭군 그리즐 리가 증언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의 눈빛도 대동소이하였으므로.
“녀석이 너를 살린 이상, 나 역시 더 이상의 전투는 무의미하다 판단되는군. 그럼에도 싸우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으나······.”
라이가가 서슬퍼런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죽여버리겠다는 무언의 압박이다.
‘나를 살려?’
왜?
백왕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놈의 영혼까지 말살하려 한 백왕이다.
그럴진대 자신을 봐주고, 살려냈다.
오주력을 먹어치운 게 놈이 아니었단 말일까?
아니면 갑자기 죄책감이라도 들었나?
“이견이 없다면 우리는 떠나겠다.”
무언을 긍정으로 알아들은 라이가가 발을 옮겼다.
넓고 빠른 보폭으로.
별 일 아니라는 듯 말했으나, 내심은 불안한 것이리라.
빠르게 뿌리까지 닿는 것만이 이곳을 벗어날 유일한 방법이었다.
‘······ 어찌하여?’
그러거나 말거나.
백왕은 여전히 복잡한 눈빛으로 멍하니 있을 따름이었다.
*
잊힌 신들 사이에선 농담처럼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곳에 모인 ‘잊힌 신’이 모두 부활하면, 천상조차 위협할 수 있다는 이야기.
그들이야말로 ‘멸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멸망’을 겪어본 잊힌 신들은 허무맹랑하다며 일축했다.
-멸망은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진리와 같다.
-그것은 신의 눈으로도 볼 수 없고, 재단할 수 없는 무한(無限)의 극치다.
그들은 치를 떨었다.
다시는 생각하기 싫다는 듯 아예 고개를 돌려버렸다.
물론, 그들의 말에 반박하는 잊힌 신들도 있었다.
-정말로 멸망이 무한한 힘을 지녔다면 판게니아는 파괴되어야 하지 않았나?
-여신이 희생했다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닐 텐데?
쌍둥이 여신 ‘레아’의 희생으로 멸망은 판게니아 전부를 멸망시킬 수 없었다.
레아가 죽자 멸망의 파괴행위가 멈춘 탓이다.
땅 대부분은 심연에 가라앉았지만, 덕분에 다른 쌍둥이 여신 ‘피나’가 남은 대륙을 창공을 떠올려 존속하는 데 성공했고.
하지만 ‘멸망’의 힘이 진정으로 무한하다면, 멸망을 막는 건 불가능하다.
레아의 희생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당연한 의문이지만, 또 다른 반박도 즉시 나왔다.
-모두가 같은 멸망이 아니기 때문이다.
-‘천상’이 내보내는 멸망에는 종류가 있다.
-파멸, 절멸, 그리고 멸망.
-그들은 천상이 제시하는 일종의 형벌이지.
-또한 모두 같은 ‘멸망’으로 불리나, 쓰임새가 다르다.
-전부 세계를 파괴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후의 처리에 차이가 있노라.
-예컨대 파멸은 영혼을 부수고, 절멸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며, 멸망은 심연으로 몰락시킨다.
-이중 가장 지독한 형벌은 당연히 ‘멸망’의 형벌.
-가장 지독했어야 하건만, 판게니아를 대하는 ‘멸망’은 뭔가가 달랐다.
-······ 마왕을 낳았지.
-그럼, 마왕을 낳은 건 누구였을까?
-우리는 그것이 여신 레아라고 판단하고 있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다.
하지만 몇몇 악신들은 그게 아니고서야 멸망이 갑자기 멈출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애초에 그저 무기일 멸망과 여신이 함께한다는 건 상상조차 불가했으니.
-갑자기 ‘멸망’이 태도를 바꿔 여신과 함께했다고?
-소설을 쓰는군. 멸망에겐 그런 자의식이 존재하지 않아.
-오래된 신들이여. 이름을 잊고 기억을 상실하여 마침내 왜곡된 모양이구나. 쯧쯧.
-망각의 늪에 빠지는 건 필멸자들만 가능한 건줄 알았거늘.
잔뜩 비웃었다.
헛소리를 내뱉는 건 죄다 오래된 신들뿐이었으니까.
실제로 오랜세월 잊힌 채 존재하다보면 망각의 현상이 일어나곤 했다.
망각은 왜곡을 일으키고, 왜곡은 이상한 믿음과 신념을 갖게 만든다.
저들의 행태가 딱 그러했다.
애초에 저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마왕은 여신의 성스러움도 지녔어야 한다.
그래서일까.
더 이상 반박은 나오지 않았다.
이후 종결되는 듯싶었으나.
조용히 있던 가장 오래된 ‘잊힌 신’이 입을 열었다.
-···‘멸망’은 만들고 싶어했다.
-창세의 힘과 멸망의 힘을 합쳐 ‘종말’을 탄생시키고자 하였노라.
-허나, 실패한 것이다.
-그로 인해 멸망은 자신의 임무를 다하지 못한 대죄를 지었다.
-하지만 천상은 실패를 가만히 놔두지 않느니.
-새로운 멸망이 나타날 것이다.
-어쩌면, 이미 나타났을 지도 모르지.
멸망이 ‘종말’을 탄생시키고 싶어했다는 말.
하지만 모두 믿지 않았다.
멸망의 이야기를 전하던 오래된 악신들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가장 오래된 잊힌 신만이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그도 그럴게, 종말이란 신들 사이에서도 마치 신화나 전설처럼 치부되는 존재.
종말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의 종말을 뜻하며, 불멸을 꺼트리는 유일한 수로 여겨졌다.
불가능을 가능케하는 힘.
진리를 벗어난, 또 다른 진리.
바로 그것이 ‘종말’이다.
그들도 종말이 천상에 있을 것이라고 ‘예상’만 할 따름이었다.
멸망이 세계를 파괴하는 신이라면.
종말은 신을 파괴하는 신이다.
천상을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것이다.
하여 천상에서도 꽁꽁 숨겨둘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한데.
-종말이여······.
······ 나타났다.
종말이.
천상을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가장 오래된 ‘잊힌 신’은 가만히 무릎을 꿇었다.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에.
파멸도, 절멸도, 멸망도, 신의 상징물을 직접 파괴할 순 없다.
하여 그들은 신들의 이름을 빼앗고, 강제로 잊히게 만든다.
그렇게 억겁의 세월이 지나면 잊힌 신의 상징물은 퇴화하고, 사라지며 그때 비로소 신이 소멸하는 것이다.
그것이 유일한 신의 소멸 방법이었다.
그럴진대.
-아, 안돼!
-멈춰라!
-나, 나는 아직······!
-원통하다!
콰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