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386)
386. 황금의 정령.
심연.
그곳은 너무나도 어둡고 답답한 곳이었다.
하늘에 올라 진리를 엿보았으며, 온 세상을 떠돌며 만물을 오시하던 초대의 천마에겐 특히나 가혹한 장소가 바로 심연이었다.
‘세상의 멸망에 나는 무관심했다.’
그의 목적은 오로지 진리의 문을 다시 여는 것.
그리하여 원시천마의 힘을 흡수하고, 천상을 뒤집어엎으리라!
하지만 그의 원대한 계획은 ‘멸망’의 출현 이후 확연하게 달라졌다.
천산신교를 포함한 모든 영역과 신도들이, 심연으로 가라앉은 탓이다.
팔가의 오문개방은 하늘 위의 땅 ‘판게니아’에 남았으나, 나머지 반쪽인 천마신공은 심연으로 추락했다.
······ 영원히, 그의 목표가 이루어질 일은 없을 것이다.
그 두 힘이 합쳐져 완성될 일은 이제 요원하기만 했다.
멸망.
놈의 출현에 너무나도 무신경했기에.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이후 심연에서의 생활은 초대천마에게도 지옥과 같았다.
천마도에 봉인되어 있다고는 하나, 그는 자신의 기술을 익힌 ‘천마’의 정신을 공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게 심연에 가라앉은 이후로는 비좁은 땅덩어리에 안주할 수밖에 없었다.
정신은 오염되고, 육체는 변형되었으며, 닭장에 갇힌 닭처럼 발도 제대로 뻗지 못하는 생활이 너무나도 오랜 시간 계속되었다.
불멸하는 그의 자아조차 흩어질만큼.
‘멸망······ 놈만 나타나지 않았다면!’
원망이 쌓여갔다.
증오는 깊어졌다.
자신의 꿈을 짓밟은 존재.
다시금 만나다면 절대로 가만히 두지 않으리라.
절대로, 자신의 일이 아니라 생각하며 방관치 않으리라.
그렇게 쌓이고 깊어진 원한이, ‘신의 섬’에서 한차례 터졌다.
신의 섬은 ‘심연의 독기’가 존재치 않는, 심연에서도 몇 안 되는 공간.
왜 이러한 땅들이 심연에 존재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판게니아’와 연결될 수 있는 땅이라는 소문만 파다할뿐.
그러니 심연의 주인들이라면 반드시 갖고싶어하는 1순위의 땅이다.
신의 섬을 거머쥘 수만 있다면······.
적어도 더 이상 그의 자아가 무너질 일은 없을 터.
어쩌면, 소문마냥 이 땅을 발판삼아 다시 ‘판게니아’로 뻗어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꿈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벌레로군.
······ ‘놈’을 만나지만 않았다면.
멸망이다.
분명히, 멸망이었다.
그러나 놈은 자신을 벌레로 여겼다.
상대할 가치조차 없는 하등한 존재로 깔보았다.
그래놓고 기억마저 지워버렸다.
초대천마의 삶에서 이러한 무시는 처음 있는 일.
이 정도로 누군가에게 분노한 적도 단연코 처음이었다.
반드시 죽인다.
내가 소멸하는 한이 있어도 죽일 것이다.
그래서였다.
기억이 돌아오자마자, 자폭한 것은.
아무리 멸망일지라도 이 막대한 기운을 처리할 순 없을테니까.
자신의 꿈을 앗아가고, 가두었으며, 처참히 짓밟은 자에게 어울리는 죽음이다.
‘이제 여한이 없다.’
그러니 괜찮다.
이 또한 그의 목표 중 하나였으므로.
도리어 원한을 갚은게 더 만족스러웠다.
그를 무시한 자에게 철퇴를 내렸다는 사실에.
초대의 천마는, 천마도의 악신은 웃으며 자신의 소멸을 받아들였다.
*
외통수였다.
설마 놈이 자폭하리라곤 원시천마도 예상하지 못했다.
자신이 개방한 육문과 아수라파천무의 기운을 그대로 덮어썼다.
심지어 초대천마의 기운이 전부 폭사했으니, 죽음은 확정이다.
원시천마 본체였다고 해도 죽을 것이다.
문제는.
“움직여라, 13번째 열쇠여!”
······ 부활할 방법이 없다는 것.
원시천마가 들여다본 ‘박현명’의 가능성은 놀라울 정도지만, 란돌프와 달리 이 몸에 깃든 부활의 기조는 없다.
그나마 걸어볼만한 건 하나뿐이었다.
원시천마도 궁금해 미쳐버릴 것만 같은 ‘13번째 히든특성’말이다.
놈이 단순히 열쇠가 아니라면, 주인의 죽음을 방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런 빌어먹을······!”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여전히 ‘문’은 열려있으나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저 13번째 열쇠는 삶과 죽음에 영향을 끼치는 종류는 아닌 듯싶었다.
‘그럼 뭐지?’
무언가를 완성하려고 만들어진 열쇠가 아니었나?
완성을 위해선 박현명의 생존이 최우선 아닌가.
파랑새도 박현명을 지키고자 자신의 권능을 남겼다.
놈의 왼팔은 ‘모든 이적을 막아내는’ 능력을 지녔으므로.
하여, 원시천마도 당연히 파랑새가 박현명을 탐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 착각이었나?
아니면······ 그게 아니라면······.
“대체 이 안에 있는 게 뭐란 말이냐! 뭘 위해서 존재한다는 게냐······!”
마지막 가능성도 없어졌다.
저것이 육체의 삶과 죽음에 관여하지 않은 종류라면, 구태여 ‘문’에 들어갈 이유도 없다.
어떻게 빠져나온 봉인인데.
이대로 박현명이 죽으면, 원시천마도 죽는다.
박현명이 죽으면 란돌프도 죽으며 모든게 소멸하고 만다.
이 결과가 세계에 어떠한 여파를 끼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아, 안돼······!”
흩어진다.
박현명의 육체가 붕괴되어간다.
원시천마의 영혼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게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동시에, 그의 눈앞에도 글귀가 떠올랐다.
《‘박현명’이 사망했습니다.》
《Game Over》
이건 게임이 아니다.
단순한 놀이가 아니었다.
만약 정말 게임이었다면, 부활했을 테니까.
코인을 넣어 다시 재시작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박현명은 진실된 존재다.
그의 존재는 게임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한데, 박현명의 죽음조차도 어찌하여 ‘게임’의 결과로써 받아들여진다는 말인가!
《Game Over》
《Game Ove》
《Game Ov》
《Game O》
《Game》
그때였다.
글자가 하나씩, 삭제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어서 벌어진 일은 전혀 예상밖의 것이었다.
《Game E》
《Game En》
《Game End》
···끝.
무엇이 끝났다는 건가.
박현명의 죽음이 무슨 끝을 야기했나.
하지만, 이어진 일을 그는 알 수 없었다.
원시천마의 의식조차도 완전히 꺼져버렸으므로.
소멸.
영영, 사라진 것이다.
*
쿠르르르르릉!
세계가 흔들린다.
심연의 밑바닥에 있는 모든 게 덧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파티원’이 사망했습니다.》
《‘파티’가 해체되었습니다.》
《‘심연의 독기’가 침식을 시작합니다.》
바사라는 표정을 굳혔다.
방금 전, 13개의 히든 특성을 지닌 존재가 죽었다.
강림한 누군가와 싸우다가 죽은건지, 그게 아니라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곳은 단순한 심연이 아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그 시간동안 바사라가 이곳 심연의 지하공동을 상당부분 탐색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이곳은, 단순한 심연이 아니다.
아니, 심연조차 아니었다.
‘··· 찾았다.’
바사라가 지하공동의 끝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태양과 같은 빛을 뿜어내는 장식품.
그것을 손에 쥔 존재를.
이 모든 일의 발단이, 저기서 시작됐다.
저 존재가 저것을 욕심내었기에 이 사달이 일어났다.
칠군주 바사라는, 감정을 담아 상대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삼군주 마몬.”
“······.”
“당장 ‘황금의 정령’을 원래 있던 자리에 내려놓거라.”
“······.”
“그것은 네가 욕심낼 종류의 것이 아니다.”
곧이어 마몬의 눈이 그녀에게 향했다.
황금안을 한 채.
“··· 칠군주 바사라······.”
그녀의 정체를 간파했다.
하지만 제정신인 것 같지는 않았다.
원시정령의 군주, 마몬이 작게 웃었다.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을 돕고 있는 배신자. 마왕께서 아시면 통탄하시겠구나.”
“······.”
“아니, 통탄할 것조차 없다. 내가 마계의 주인이 될 터이니.”
“네놈, 미쳤구나.”
“이 정령의 힘은··· 아아, 황홀하다. 너무나도 황홀해. 이제 모든걸 알 것 같다. 네가 왜 ‘돌연변이 용신’으로 태어났는지도 말이다.”
“······.”
“알려줄까? 이세라, 그리고 바사라. 네놈들이 박해받던 운명의 원인을.”
이세라와 바사라는 처음부터 돌연변이로 태어났다.
그랬기 때문에, 용신들은 둘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바사라가 마계로 떠났던 이유이다.
헌데······ 돌연변이로 태어난 이유가 있단 말인가.
마몬의 미소가 짙어졌다.
“너희의 부모 말이다.”
“그만.”
“······?”
“별로 안 궁금하다.”
하지만 칠군주 바사라는 개의치 않았다.
정말로 안 궁금했으니까.
무슨 운명이었든, 그녀는 돌파했을 것이다.
지나간 일 따위에 연연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그런 존재였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넌 죽어야겠구나, 마몬.”
“하하! 그 모습으로 날 죽일 수 있겠나?”
“이 모습으론 힘들겠지.”
“그럼? 본체는 이곳에 못 들어올터인데?”
“누가 그러지?”
“······?”
그때였다.
쩌적-
공간이 찢기고, 열린다.
하지만 이곳은 심연의 밑바닥.
황금정령의 존재 안이다.
누가 감히 멋대로 들어올 수 있단 말인가.
불가하다.
위에는 몰라도, 이곳 아래 지하공동은 절대로 침범할 수 없다.
“······ 뭐?”
하지만 마몬은 당황하고 말았다.
공간을 찢고 나타난 존재 때문이었다.
이어, 나타난 존재는 마몬을 보더니 크게 웃어버렸다.
-캬캬캬캬캬!
*
쿠르르르릉!
그 흔들림이 시작이었다.
“브, 블랙 돔이······!”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지구의 모든 이들이 한곳을 바라보았다.
흔들림의 근원지, 블랙 돔을.
블랙 돔은 그 이름처럼 원형의 형태었으나.
지금은 마치 가시가 돋듯 미친 듯이 진동하며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곧 터질 풍선처럼.
“안에 들어간 사람들은 어떻게 된 거지?”
“서, 설마 전부 전멸한 건가?”
문제의 해결을 위해 보낸 탐색대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
그런데도 저런 현상이 일어났다는 건.
탐색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전멸했을지도 모른다.
‘······ 명예의 전당에서 모든 이름이 지워졌다.’
한국의 영웅연합 단장, 박태우가 인상을 찌푸렸다.
심연으로 들어가면 전당의 이름이 지워지는 건 당연하지만, 문제는 그런 게 아니다.
그들만 지워진 게 아니라, 전부 지워졌다.
명예의 전당에 있던 모든 이름이.
‘세계수 커뮤니티도 작동하지 않아.’
마치 세계를 움직이던 부품들이 작동을 멈추는 기분이었다.
하나씩, 하나씩.
그리고 이내 전부 멈춰버릴 기세로.
무언가 큰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건 단순히 정령의 탑이 무너져서 생긴 일이 아닌 듯싶었다.
“어?”
“여, 연합장님, 보이십니까?”
“이게 무슨······.”
그와 함께 전전긍긍하던 연합원들이 대뜸 큰소리를 내었다.
그들만이 아닌 모든 각성자들은,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를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 이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왜 이러는 건데?”
“뭐 아는 사람 있어?”
진짜 믿기지가 않았으니까.
이해도, 납득도 불가능했으니까.
그들의 눈앞에 떠 있는 메시지는 고작 한 줄.
단 한 줄에 불과했으나.
그것만으로도 모두를 혼란에 빠트리기엔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