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n Obsessive Servant RAW novel - Chapter (175)
11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졸지에 분노한 에드릭의 화풀이 대상이 된 크림슨은 울상을 지었다.
그러자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아리프가 물었다.
“혹, 선물 얘기를 하시는 겁니까?”
그나마 이쪽은 눈치가 늘었다.
아리프는 에드릭이 오늘따라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기까지 하며 귀의 액세서리를 자랑하듯 뽐내고 다닌 것을 모르지 않았다.
본래 걸리적거리는 걸 싫어하는 성미인 그가 이런 행동을 한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테다.
그리고 아리프는 분위기상 그 귀걸이가 지금 제가 한 질문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아닙니까?”
“……맞아. 선물 얘기다.”
에드릭이 심기가 불편한 얼굴을 하고서도 긍정하자, 곰곰이 생각에 잠겨있던 아리프가 말문을 열었다.
“목걸이나 귀걸이는 친분이 있는 사람들에게 주는 선물 아닙니까. 그런데 목걸이는 아이들이 사탕을 엮어 만든 종류도 있고, 귀걸이보단 조금 가벼운 의미로 주고받는 것 같습니다.”
“…….”
“귀걸이는 단순히 친분만 깊다고 주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어떤 의미든, 귀걸이가 더 특별하다고 생각됩니다.”
그 얘기를 들은 에드릭의 표정이 한결 풀렸다.
궁금증이나 짜증이 완벽히 해소되진 않았으나, 일리가 있긴 했다.
그래, 목걸이는 애들끼리도 쉽게 주고받는다만 귀걸이는 아니었다.
물론 아이들끼리도 가끔 귀걸이를 주고받는 경우가 있는 걸 알지만, 에드릭은 지금만큼은 그 사실은 모른 척 넘어가기로 했다.
어…… 잠깐. 그럼 귀걸이를 좋게 말하라는 거지?
한편 두 사람의 얘기를 숨죽여 들으며 눈을 굴리던 크림슨이 크게 동조했다.
“……그렇지! 나도 사탕 목걸이는 들어봤어도 사탕 귀걸이는 들어본 적 없어!! 목걸이보단 귀걸이지, 암.”
난데없이 크림슨까지 끼어드는 바람에 아리프의 말에 신뢰도가 약간 하락했지만, 에드릭의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그래. 목걸이보단 귀걸이였다. 개수로만 따져도 목걸이는 한 개, 귀걸이는 두 개 아닌가.
분명히 로벨이 자신에게 귀걸이를 준 마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때마침, 남편의 옷가지를 가지러 왔다가 소란을 엿듣던 틸리까지 다가와 동참했다.
“공작님. 혹시 귀걸이 뒤를 보셨나요?”
에드릭은 눈을 깜빡였다.
씻을 때도 빼놓지 않고 귀걸이를 착용했던 터라 뒤까지는 제대로 보질 못했다.
그런데 틸리의 뉘앙스가 미묘했다. 마치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는 듯한 눈치였다.
틸리라면 로벨을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한 명이라서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서둘러 귀걸이를 뺀 에드릭이 눈을 크게 떴다.
“……!”
E♥L
작게 열린 에드릭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크게 벌어졌다가 호선을 이루었다.
크림슨은 점점 새빨개지는 그의 낯빛 변화도 지켜보며 오늘 안주는 삶은 문어로 먹겠다고 결심했다.
“난, 오늘 이만 돌아간다.”
“예? 무슨 벌써 가신다는 겁니…….”
크림슨이 말을 제대로 잇기도 전에 에드릭은 서둘러 말에 올랐다. 그리고 거의 질주하듯이 덴카르트에 돌아갔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정령의 힘을 자제하는 그이지만, 오늘따라 참기가 어려웠다.
로벨이 보고 싶었다.
일 초라도 더 빨리 로벨을 봐야 이 애타는 마음이 진정될 것 같았다.
이윽고 도착했을 때 로벨은 멀리서부터 그의 기운을 느꼈는지 이미 정원에 나와 있었다.
그러고는 눈이 마주치자마자, 시선을 거두지 않으며 손에 든 꽃잎을 하나하나 뗐다.
“에드릭이 나한테 한 번 입 맞춘다, 두 번 입 맞춘다, 세 번 한다, 네 번 한다…….”
꽃잎이 여덟 잎 정도 바닥에 떨어졌을 때 에드릭은 성큼 다가가 말했다.
“왜 그거밖에 안 해? 모자라니까 더 해 봐.”
“그렇게 말하면 내가 못 할 줄 알고?”
로벨이 장난스럽게 웃더니 정원에 떨어진 꽃을 더 주웠다.
아홉, 열, 열하나, 열둘 입을 맞춘다…….
에드릭은 숫자가 늘어난 만큼 입을 맞춰주었다.
그러는 내내 서로의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다. 단순한 행위인데도 이렇게 지겹지도 않고 즐거울 수가 없었다.
“여보.”
나직한 부름에 그녀의 옷매무새를 정리해주던 에드릭이 고개를 올렸다.
그러자 그녀가 뺨을 꼬집으며 물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들떠 있어?”
에드릭은 역시나, 아내를 못 속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오늘따라 로벨도 들떠 보였다.
‘……처음으로 이 시간에 와서 그런가.’
에드릭은 그간 귀걸이 뒷면을 보지 못한 사실과 일찍 퇴근하지 못한 자신을 반성하다가,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마침 로벨을 기쁘게 할 핑계이기도 했다.
그녀는 전부터 은사슴을 보고 싶어 했고, 이번 사냥제의 승자에게도 단검이 주어지니까.
로벨이 좋아하겠지, 에드릭은 기대하며 답했다.
“사냥제 때문에.”
그런데 에드릭의 생각과 달리 로벨은 아주 오래전에 스치듯 했던 말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애초에 은사슴은 크게 중요치도 않았다. 그녀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늘 에드릭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들뜬 남편을 보고서 그녀는 한 가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그렇게 좋나?’
원숙한 눈매와 달리 아직 소년처럼 보송해 보이는 뺨에는 홍조까지 떠올라 있었다.
전에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업적을 이루고도 모자란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에드릭은 가끔 이렇게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고, 로벨은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사랑스러운 보물을 혼자만 독차지하는 기분이 들곤 했다.
그래서 로벨이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보는데, 에드릭이 열띤 얼굴로 말했다.
“기대해.”
그런데 에드릭은 그러느라 로벨이 무슨 할 말이 있다는 듯이 입을 달싹이는 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
그것이 바로 에드릭이 평생 두고두고 후회할 실수였다.
그걸 미처 모르는 에드릭은 이번 사냥제를 단단히 준비했다.
그 바람에 보좌관을 비롯한 다른 이들은 그가 덴카르트의 가주로서 명예를 드높이려 한다고 생각하며 기뻐했다.
하지만 크림슨만큼은 실상을 알고 있었다.
‘……이번에도 사냥제 우승자에겐 단검을 준다니, 로벨에게 주려나 보군.’
이번 사냥제의 시종으로는 크림슨이 동행하기로 했다.
원래라면 다른 시종이 가야 했으나, 이전에 로벨에게 떠넘겨 그녀가 다친 일도 있고 해서 그가 참석하게 되었다.
크림슨은 이 상황에 입맛이 썼다.
‘……뭐, 그래도 명색이 공작의 보좌관이니 황실에서 거절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긴 했는데 말이지.’
그래도 보좌관이라 시중은 안 된다고 거절하면 늠름하게 말하며 멋진 모습을 보여주려 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그렇게 크림슨의 씁쓸한 미소와 함께 사냥제의 날은 밝았다.
이날은 유독 날씨도 좋고 화창하여 다들 덴카르트 공작님이 제일 잘할 것이라며 기대했다.
“응. 그래.”
로벨은 응원하는 사용인들 가운데서 밝게 웃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를 발견한 크림슨은 고개를 갸우뚱하고 말았다.
‘흠? 로벨이 왜 저렇게 두꺼운 드레스를 입은 거지??’
뭐, 둘이 있을 때야 하는 얘기지만, 로벨은 요새는 드레스가 갑갑하다며 크림슨을 부럽게 바라보곤 했었다.
시종 시절에는 늘 셔츠에 조끼, 바지 정도만 입고 다닌 터라 코르셋이며 이것저것 불편하다고 하소연했다.
‘그런데 왜 저렇게…….’
사냥제는 특별히 화려한 차림으로 참석할 필요가 없어서 크림슨은 이상하다 싶었다.
‘……추위를 타나?’
어디 아픈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렇다기엔 안색이 밝아서 크림슨은 마음을 놨다.
다만 사냥제 숲에서 크림슨은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마넬라노 스텔 백작님께서 따라오는 건지 뭔지, 계속 붙어 다녔기 때문이다.
그걸 에드릭도 느꼈는지 싸늘한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그러나 쫓아내거나 무력을 행세하진 않았다.
‘……당최 사이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가 없군.’
그 와중에도 마넬라노는 에드릭을 자극하듯이 활을 쏘며 주변 사냥감을 잡아 들였다.
스텔 가문에서 배출한 최대 전사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게 명중에, 명중, 또 명중이었다.
에드릭은 그걸 무시하려 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초조해 보였다.
그래서 크림슨은 이상하다 싶었다.
‘……두 사람에게서 같은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오늘 에드릭이 준비시킨 고약한 약초 때문일까.
크림슨은 왠지 두 남자에게서 떫은 약초 냄새가 똑같이 난다고 생각했다.
그러는 도중에 마넬라노가 시종을 시켜 자루를 풀더니 무언가를 바닥에 뿌리기 시작했다.
‘……내가 족제비랑 뽑았던 풀떼기랑 같잖아?’
그걸 지켜보는 에드릭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크림슨. 준비한 자루를 풀어.”
“……예? 아, 예!”
뒤늦게 크림슨이 에드릭이 시켜서 가져온 풀을 바닥에 뿌렸다.
짤막한 잔디 위로 뿌려지는 풀은 스텔가의 주인이 준비한 것과 같아서 크림슨은 내심 놀랐다.
‘……뭐, 사냥감 미끼라도 되나?’
그런데 그 추측은 완벽히 맞았다.
풀을 뿌린 그들이 탐탁지 않은 얼굴로 반대편에 서 있는 사이, 은빛 털을 뽐내는 늘씬하고 우아한 사슴 한 마리가 다가온 것이다.
살아있는 은사슴을 처음 보고 충격에 빠진 크림슨과 달리, 마넬라노는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했다.
“왔군.”
삐딱한 미소를 지은 마넬라노가 활을 들어 시위를 당겼다.
아니, 당기려 했다.
사슴이 무언가에 떠밀리듯이 에드릭과 크림슨의 방향으로 달려오지 않았다면 말이다.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은사슴은 이대로라면 충돌할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크림슨은 갑작스러운 마차 충돌 사고를 당하는 것처럼 피하지도 못하고 눈만 휘둥그레 떴다.
‘……억?’
놀란 것은 자신만이 아닌지, 저 멀리서 욕설을 뱉는 마넬라노가 보였다.
“저 비열한 자식이!”
그 사이에도 에드릭은 활시위를 당겨버렸다.
살짝 올라간 그의 입꼬리를 바라보며 크림슨은 마넬라노의 표현에 깊이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