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130)
130화 칼스타인 (4)
가주가 진정으로 내게 바라는 게 무엇인가?
이 부분은 계속해서 의문이었다.
짐작 가는 게 있기는 한데, 확신할 단계는 아니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플랜B.
모두 앞에서 커밍아웃하는 계획을 짰다.
현 상황에서 가주가 가장 반기지 않을 일이니까.
‘암, 원래 견제는 상대가 하려는 걸 못하게 하는 거랬지.’
가주는 미샤가 각성에 성공한 일을 내외부에 비밀로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플랜B가 성사되기 전에 호다닥 얼굴을 내비쳤다.
그리고 바바리안식 대화를 이어간 결과.
마침내 포장되지 않은 본심을 들을 수 있었다.
“난 네가 그 물건을 사용한 걸 알고 있다.”
서리혼령 가락지.
히든피스를 발동 시, 빙하마수 스카디아와 확정적으로 계약을 맺을 수 있게 해 주는 넘버스 아이템.
‘부족장쯤 되면 알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지.’
애초에 이미 염두에 두고 있던 경우의 수였다.
‘그 물건’을 썼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면, 미샤를 남의 자식 취급을 할 이유가 없으니까.
다만, 가주 또한 확신의 단계는 아니다.
“그 물건이라니? 뭘 말하는 거지?”
나이 스물다섯의 적묘족 수인.
이 조건으로 스카디아와 자연 계약하게 될 확률은 거의 0%에 가까울 테지만…….
가까운 것과 0은 엄연히 다르다.
“흐음.”
그러니까 이렇게 떠보는 거겠지.
심증은 있어도 확증은 없으니까.
“자네, 연기가 어설프군?”
어설프기는 개뿔.
지금까지 몇 명을 속여넘겼는데.
“뭐라는 거냐. 알아듣게 말해라.”
“빙하마수 스카디아와 계약할 수 있게 해 주는 ‘그 물건’을 말하는 거네. 절대 모른다고는 못할 텐데?”
다 알고 있으니 거짓말 말라는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는 가주.
바바리안이 병신으로 보이나?
“그런 물건이 있다고? 그럼 왜 미샤에게는 주지 않았던 거냐?”
“아주 가치 있는 물건이니까. 내 자식도 아닌 자에게 줄 리 없지 않나.”
그 말을 듣자마자 무심코 미샤부터 확인하게 됐다.
예상대로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이었다.
다만, 달래주는 건 나중에 하기로 하고.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바바리안 연기를 이어 나갔다.
“가치 있는 물건? 그럼 더 이상한 거 아닌가? 그런 물건을 어떻게 내가 갖고 있을 수 있지?”
“글쎄, 어쩌면 자네가 자주 가던 그 마탑에서 우연히 얻었을지도 모르지.”
뭐야, 씨발.
진짜 다 알고 있는 건가?
나도 모르게 몸이 굳었다.
그래서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아예 가주를 노려보기로 했다.
“……내 뒷조사까지 한 건가?”
단순히 선 넘는 행동에 빡친 바바리안.
이거면 방금 행동이 그리 어색하지 않을—
“말했지 않나. 연기가 어설프다고.”
지랄, 나는 내 연기력을 믿는다.
나는 꿈쩍도 하지 않으며 짜증 난다는 듯 되물었다.
“그래서 그 물건이 뭔데? 뭐기에, 자꾸 이렇게 귀찮게 구는 건가?”
“그건 말해 줄 수 없네.”
“뭐?”
“자꾸 자네가 아니라고 하지 않은가. 외부에 알려져선 안 되는 물건이니까. 만약 인정한다면 그땐 나도 말해 주겠네.”
응? 뭐지?
가주의 말에는 모순이 없었다.
그냥 떠볼 뿐이라면, 그 물건의 이름까지 말해 주기 어려운 것도 당연하니까.
하지만…….
‘대체 왜 이상한 거지?’
위화감이 물씬 피어난다.
수도 없이 날 떠보려 했던 씹새끼들을 물리친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 물건이 진짜 있기는 한 거냐? 사실 다른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따라서 나는 다시금 되물었다.
그리고 모든 신경을 쏟아부어 가주를 유심히 관찰했다.
찰나의 망설임, 안면 근육의 변화. 시선은 어디를 향하며 목소리는 어떠한가.
“물론일세. 다른 목적이 뭐가 있겠나.”
전문가는 아니지만, 저 짧은 말을 뱉는 모든 순간순간을 의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보니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가주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
‘하, 그래 이거였구나.’
덕분에 마지막으로 갖고 있던 의문이 풀렸다.
떠보는 건 다른 식으로도 가능했을 텐데.
“솔직히 말해 주게. 이 아이가 걱정돼서 입을 다무는 거라면, 그 문제는 내가 해결해 줄 테니.”
어째서 가주는 이런 모순적인 말까지 하는가.
모두 설명이 된다.
미샤가 아니라 ‘그 물건’ 자체가 목적이었다고 한다면.
‘어쩐지 계속 ‘그 물건’이라고만 하더라니.’
이윽고 나는 확신했다.
가주는 서리혼령 가락지에 대해 알고 있었다.
딱 절반만큼만.
‘그런 물건이 있는 건 알지만, 정작 그 물건이 뭔지는 모른다는 거군.’
드디어 상황이 머리에 그려진다.
가주는 나를 저택에 초대했다.
미샤가 친딸인지 아닌지는 아무래도 좋았다.
애초에 자식에게 그리 열성적인 놈도 아닌 듯 보였으니까.
본 목적은 따로 있었다.
확정적으로 영혼수와 계약할 수 있는 물건.
만에 하나 정말로 내가 이 물건에 대해 알고 있는 거라면, 그걸 알아내고자 했다.
그야 수인에겐 가치로 환산하기 어려울 만큼 중대한 정보였을 테니까.
그래서 내 아킬레스건이라 판단한 미샤의 비참한 처지를 내 눈앞에 들이밀었다.
거래 혹은 협박 목적으로 쓸 생각이었겠지.
따라서…….
“전사의 명예를 걸고, 나는 그런 물건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아껴 왔던 회심의 수를 던진다.
내가 선정한 바바리안이 사기캐인 이유 1위에 빛나는, 바로 그 전사의 맹세.
“…….”
가주의 눈빛에 당혹의 감정이 깊게 새겨진다.
이를 확인한 나는 타이밍을 놓치기 전에 마지막 한 방까지 욱여넣었다.
“하지만 그 물건이 뭔지 반드시 알아오겠다. 그러니 기다려라.”
분노를 참듯이 읊조리며, 나는 가주의 표정을 확인했다.
그의 눈빛엔 진한 실망의 빛이 어려 있었다.
거, 연기는 지가 제일 못하는구만.
***
“오늘 나눈 대화는 전부 잊어 주게.”
가주의 통보를 끝으로 칼스타인가의 저택을 빠져나왔다. 미샤는 아까부터 멍한 표정이었고, 나도 굳이 말을 걸지 않았다.
안 그래도 생각할 게 있었으니까.
‘후, 그래도 최악까지는 안 갔네.’
칼스타인가의 초대를 들었을 때, 내가 흔쾌히 응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1. 미샤의 탈주.
만약 가주가 미샤를 대형 클랜에 넣으려는 거였다면 막아야 했다. 에르웬, 아이나르에 이어 겨우겨우 키워놓은 미샤까지 떠나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 아닌가.
2. 악령 의심 방지.
미샤의 각성에 얽힌 비밀을 가주가 안다면, 제대로 둘러대기 위해서라도 한번 방문할 필요가 있었다.
설마 반만 알고서 그것 때문에 날 불렀을 줄은 몰랐지만.
끼이이익.
정원을 지나치자, 우리를 알아본 문지기가 대문을 활짝 연다. 아까 그 빡빡이는 치료받고 쉬러 갔는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저쪽은 나를 알아봤을까?
“아, 안녕히 가십시오.”
눈이 마주치자 짧게 목례하며 배웅 역할까지 해 준다.
미샤가 어려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왔을 그 저택.
관리된 정원은 화사했고, 분수대는 화려하게 물줄기를 쏘아내며 반짝였다.
저택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묵고 있는 여관과 다르게 건축물은 고풍스러웠으며 웅장한 멋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저택을 둘러싼 음습한 악의는 변함없었다.
처음 이곳을 봤을 때처럼, 몬스터가 가득한 던전이라도 보는 듯한 기분.
새삼 실감이 됐다.
그래, 얘는 여기서 살아남았던 거구나.
그 오랜 시간 동안.
“고생했다.”
등을 툭 치며 말하자, 미샤가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다. 고생은 네가 다 했지…….”
음,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니었는데.
“그래도 제일 힘들었을 건 너 아니냐.”
나는 피식 웃으며 한 번 더 등을 쳤다.
“악! 아프잖냥!”
그래, 이제 좀 평소 같네.
“정신이 들었으면 이제 앞장서라. 나는 돌아가는 길 같은 거 모른다.”
“하, 진짜…… 나 없으면 어쩌려고 그러냥?”
“길을 모르는 곳에 안 왔겠지.”
“……맞넹.”
실없는 대화를 나누며 수인의 거리를 걸었다.
이곳저곳에서 화목한 모습이 보였다.
“아빠, 저기 아까 그 바바리안이에요!”
가족 단위로 나들이를 나오듯 돌아다니며 즐겁게 웃고 떠드는 수인들.
“비요른, 우리도 저거 먹장.”
“웬일로 밖에서 사 먹냐?”
“으음, 뭐…… 오늘 고생했으니까?”
이내 미샤와 함께 노점상에 들려 군것질을 사와 광장 벤치에 앉았다. 손에 들고 먹으면서 이동해도 문제는 없겠지만…….
잠시 쉬었다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니까.
“있잔냥, 비요른.”
“말해라.”
“왜 너는 한 번도 안 물어보냥?”
“뭐를?”
오가는 수인들을 보며 조용히 쉬기도 잠시.
미샤가 내게 한 가지 질문을 해 왔다.
“너는 궁금하지도 않냥?”
“그러니까 뭐가.”
“그…… 내가 진짜, 우리 아버지 자식이 맞는지…….”
뭔 소리를 하나 했더니 이거였구나.
나는 피식 웃으며 미샤를 바라봤다.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정작 질문을 한 미샤는 고개를 푹 숙이고 바닥만 보고 있었다.
“안 궁금하다.”
“정말? 하나도?”
“그래,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와, 너 정말 나한테 관심이 없구낭…….”
뭐래, 얘는.
나는 등짝을 치려다가 멈칫했다.
‘아프다고 하지 말랬지.’
만화처럼 머리라도 헝클어트려 볼까 싶었지만, 오글거려서 그만뒀다.
갈 곳을 잃고 다시 무릎 위로 올라온 손.
나도 딴 곳을 바라보며 미샤에게 말했다.
명색이 동료인데 오해는 풀어야지 않겠는가.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정말 중요한 게 아니라서 그런 거다.”
“응?”
“7등급 탐험가 미샤 칼스타인. 그게 너지 않나. 네 부모가 누구인지는 관계없다. 믿고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라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
“와아…….”
미샤가 신기한 말을 들었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그리고 헤실헤실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런 말은 어떻게 생각한 거냥?”
“……싸우자는 건가?”
그렇다면 다행이고.
이제 쉴 만큼 쉬었겠다 슬슬 일어나려는데 미샤가 내 소매를 잡았다.
“비요른.”
“왜?”
“이거 비밀인데 너한테만 말해 주는 거당?”
“됐고, 빨리 말해라.”
“나…… 사실 반푼이 맞당. 엄마가 말해 줬거든. 돌아가시기 전에. 정말로 미안하다고 하면서.”
아, 어, 음…….
뭐라 반응을 해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그냥 고개를 끄덕이기로 했다.
“……그렇군.”
“뭐야? 왜 안 놀라는 거냥?”
그야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이런 자세한 사정까지는 나도 몰랐지만.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지 않나.”
“으이구, 이 감정도 없는 바바리안앙!”
이내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성지를 떠나 도시에 들어섰고, 공용 승강장이 있는 곳까지 도착했다.
다만 표를 끊고 마차를 기다리던 때.
“아, 맞다. 그건 어떻게 된 거냥? 아까 아버지 앞에서 맹세를 했었잖냥. 그거 분명…….”
미샤가 말꼬리를 흐린다.
나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얘가 너무 편해져서인지, 아니면 가주 앞이라 생각할 게 많아서였는지 생각도 못 했다.
“그거…… 거짓말이었지?”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다 알고 있는 와중에 뭘 숨기겠는가.
그저 잘 수습하는 수밖에.
“그래, 거짓말이었다. 전사의 명예보다 네가 더 중요하니까.”
“……그게 정말이냥?”
“그래.”
미샤는 이후로 한참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초조함으로 가득한 시간이 이어졌다.
“…….”
“…….”
설마, 이상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이렇게 숨 막힐 바에는 내가 뭐라도 먼저 말을 걸어 봐야겠다 싶던 순간이었다.
“아!”
미샤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영문 모를 소리를 뱉더니.
“나, 집에 두고 온 게 있어서 다녀오겠당!”
“……뭐? 이제 곧 마차가 오는—”
“먼저 타고 가랑!”
쏜살같이 사라졌다.
……뭐지?
설마, 나 좆된 건가?
***
스륵, 스륵.
알브레니브 칼스타인.
서재에 앉은 그는 조금은 급한 손짓으로 책의 페이지를 넘겼다.
그리고 마침내 찾던 부분을 발견했다.
……………………………시 빙하마수 스카디아와 계약을 할 수 있다.
완전히 찢겨 나간 탓에 오직 하나의 문장만을 읽을 수 있는 설명문.
모든 의심은 이 책에서 시작되었다.
[유물 총해록 VI]이 책에는 수백 가지 넘버스 아이템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 설명이 절대 틀리지 않는단 것이다.
총해록이라는 책은 그런 책이니까.
가치를 논하는 것조차 무의미한 진리의 서.
‘만약 이걸 몰랐다면,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었을 것을.’
그 아이가 각성을 했다고 했을 때.
솔직히 말해서 기뻤다.
이제 가문의 치부를 숨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빙하마수 스카디아구나.]계약한 영혼수가 문제였다.
과연 이게 우연일까?
어딘가 모르게 찝찝함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몇 번인나 그 아이를 떠보았고, 이내 결론을 내렸다.
그 아이는, 자연스레 각성한 것이 아니다.
예상이 맞았다면 도움을 받았다.
아마도 비요른 얀델이라는 그 바바리안에게.
[비, 비요른과 관련된 일은 말할 수 없어요. 수, 수호신한테 맹세를 해서…….]다만 그 아이는 수호신의 맹세를 거론하며 해당 대화를 거부했다.
강제성이란 존재치 않으며, 전통이 희미해진 작금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는 그것일진대.
반항 한번 제대로 못 하던 아이가, 처음으로 그런 변명까지 해가며 거짓말을 했다.
이래서야 제대로 된 답변은 듣기 어려울 터.
[차라리 그 바바리안을 캐보는 게 낫겠군.]그는 추적의 방향을 돌렸다.
그러자 의심스러운 정황이 계속 드러났다.
그 바바리안은 알테미온 학파의 마법사와 친했다.
아루아 레이븐.
공교롭게도 그가 기억하는 인물이었다.
또다른 ‘총해록’을 얻기 위해서 돌아다니다 만난 경쟁자였으니까.
그때 한 가지 가설이 생겼다.
만약 그 마법사가 ‘유물 총해록’을 얻었다면?
그래서 그걸 보고 바바리안에게 알려 줬다면?
[훨씬 더 말이 되는군.]당돌했던 마법사 아가씨보다는 바바리안을 노리기로 했다. 조사 결과, 거의 부부처럼 지내는 관계인 듯하니 그 아이를 이용하면 한결 편할 듯했다.
하지만…….
‘정말로 자연 각성이었을 줄이야.’
맹세 같은 것에 믿은 게 아니다.
그 바바리안은 연기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정말로 모르는 표정이었고, 그 아이를 위해서 자신의 무지를 한탄하는 감정이 느껴졌다.
‘재밌군. 그 하찮은 피에도 재능이 있었다니.’
생각이 거기까지 이어졌을 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보좌관 베로스였다.
“미샤 칼스타인이 가주님을 뵙길 청하고 있습니다.”
“그 아이가? 어서 들여보내라.”
잠시 기다리자, 보좌관이 떠나고 그 아이가 들어왔다.
“저…… 아까 못 한 말이 있어서—”
“아, 그 문제라면 걱정하지 말거라. 약속은 지킬 테니까. 이제 그 누구도 널 우리 가문의 일원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은 없을 거다.”
이상하게도 그 아이는 반응이 없었다.
조금은 더 기뻐할 줄 알았건만.
그는 내친김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제 너는 내 딸이란 소리다.”
결핍을 느끼고, 애증을 느껴오던 그 아이가 가장 바라고 바랐을 말.
하나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왜 아무런 말도 없느냐?”
“그딴 걸 위해서 온 게 아니니까……!”
“뭐?”
불손한 말투에 저도 모르게 당황해 버렸다.
대체 뭐란 말인가 이 변화는.
적응할 새도 없이 그 아이가 정면으로 자신을 마주 봤다.
“아버지. 아니, 아버지도 아니징. 그거 아냥? 사실 우린 피 한 방울 안 섞였다는걸.”
“뭐?”
그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몰랐던 사실이어서가 아니라, 그게 이 아이의 입에서 나올 줄 전혀 예상치 못해서.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말해 줬당. 사실 난 칼스타인가의 핏줄이 아니라고. 이 말을 해주고 싶어서 왔당. 당신이 밉지만…… 불쌍하기도 하니까.”
정말 단 한 번도 상상 못 한 모습이어서일까?
저 당돌한 말에도 화가 나지 않았다.
그저 궁금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이냐?”
그는 미샤의 친부가 누군지 알고 있다.
미궁에서 죽으면 전부 해결될 문제라 여겼다.
하지만…….
“그 말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널 정말 가문의 일원으로 받아들였을 생각이었다.”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것이 주어졌는데, 왜 이 아이는 그것을 거부하는가.
“왜지? 왜 기회를 제 손으로 버리는 것이지?”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그 아이가 등을 휙 돌려 문으로 향했다.
다만 마지막에 심경의 변화가 있었을까?
고개만 빼꼼 돌려 그에게 말했다.
“그냥…… 그러고 싶었거든!”
그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