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168)
168화 대마경 (3)
탐험가.
미궁에 들어가 몬스터를 사냥하고 마석을 캐오는 직업군. 일반인들은 몬스터와의 전투가 이 직업군의 가장 큰 고충이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탐험가들에게 물어보면 전혀 다른 대답들이 나오죠.”
빛의 부재.
자고 싶을 때 자지 못하는 것.
사료 같은 식사와 쌓이는 성욕.
땀으로 찌든 몸과 더러운 잠자리.
“탐사 기간이 적은 저층에서는 그나마 덜해요. 하지만 상층 탐험가일수록 전투보다 이런 부분이 더 힘들다고 답하는 비율이 높았어요.”
“음, 그렇군.”
“네. 대형 클랜들도 7층부터는 한 번의 원정을 끝내면 도시에서 한 달은 휴식 기간을 가지는 게 일반적일 정도라고 하더라고요.”
일단 이 직업군에 속한 사람으로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22일 차 오후.
정확히 말하자면, 식사 시간이 되어 가방에서 육포를 꺼내 잡수려던 차에 이런 말을 해오는 저의가 뭘까.
얘가 목적 없이 이러지는 않을 텐데.
“원하는 게 있으면 그냥 말해라.”
본론을 말하란 눈빛으로 응시하자, 레이븐이 어딘가 결의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오늘은 좀 제대로 된 걸 먹죠. 육포 말고 불을 쓰는 요리로요.”
후, 그래 이게 목적이었구나.
누가 마법사 아니랄까 봐, 오늘은 좀 맛있는 게 먹고 싶다고 하면 그만인 것을.
나는 짧게 고민하고서 대답했다.
“좋다, 그러지.”
“아무리 얀델 씨가 리더여도 팀원들의 의사는 물어봐야 하는……. 네? 뭐라고요?”
“좋다고 말했다.”
“어, 정말요?”
거절당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레이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긴 자기도 억지 주장인 건 알았겠지.
이곳은 4층이 아니다.
거기서야 매일 요리를 해서 먹고, 어떨 땐 보존 마법을 걸어둔 고기까지 구워서 먹었지만…….
5층 대마경은 오픈월드 구조의 계층.
“진짜 그래도 돼요? 냄새가 퍼지면 몬스터들 때문에 제대로 먹지도 못할 공산이 큰데?”
“넌……. 대체 뭘 원하는 거냐?”
“아, 아니…… 생각해 보니까 마법으로 냄새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아서요.”
이제 보니 그냥 이 사실을 말하고 싶었던 모양.
아무튼, 요리를 해먹는 것으로 결론이 나자, 초조하게 대화를 엿듣던 아이나르가 입을 떡 벌렸다.
“이게 마법사……?”
말 몇 마디로 내 허락을 받아낸 게 인상 깊었던 듯한데…….
‘이제 5층이니 이쪽도 개선하기는 해야지.’
사실 안 그래도 생각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이제 총 탐사 기간이 한 달이나 되지 않나.
팀원의 스트레스도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사람이 예민해지면 별거 아닌 거로도 날을 세우게 되니까.
“그럼 칼스타인 씨, 부탁할게요. 물이라든가 불이라든가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시고요.”
“으음, 그럼 불 좀 키워줄랭?”
“이 정도면 됐나요?”
이내 우리팀 공식 요리사인 미샤가 레이븐의 도움을 받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메뉴는 고기를 잔뜩 집어넣은 토마토 스튜.
“오늘도 너무 맛있다!!! 미샤! 나중에 나한테 시집오면 안 되나?”
“무슨 소리예요. 아이나르 씨, 칼스타인 씨는 제가 데리고 살 거예요.”
“어, 맛있게 먹어 준 건 기쁜데, 둘 다 그건 좀…….”
말꼬리를 흐리며 나를 힐긋 바라보는 미샤.
“…….”
“…….”
참고로 식사하는 동안 나와 곰아저씨는 보초를 섰다. 셋이 그릇을 전부 비울 때까지 몬스터는 한 마리도 나타나지 않았다.
“흐음, 정말 냄새가 거의 안 나는군? 이게 무슨 마법인가?”
“공기 제어 마법이랑 연소 마법을 응용했어요. 냄새를 한곳에 모아서 불태워 버리는 거죠.”
“으음, 그렇군.”
곰아저씨는 5층에서도 사람다운 식사를 할 수 있겠다며 희희낙락했다.
이는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육포는 이제 정말 신물이 나거든.
“자, 그럼 어서 두 분도 드세요. 이제는 저희가 보초를 설게요.”
이내 우리 둘도 자리에 앉아 그릇에 스튜를 덜어 먹었다. 바바리안과 흑곰족 마초 아저씨답게 5분이면 충분했고, 이번에도 식사를 마칠 때까지 몬스터는 나타나지 않았다.
냄새 제거 마법의 효능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몬스터 수가 줄었단 말이지.’
며칠 동안 느낀 것인데, 5층의 몬스터 수가 게임보다 월등히 적다.
물론, 짐작 가는 원인은 있다.
‘망할 클랜 새끼들.’
대마경은 각 필드마다 자리한 거울에서 몹이 리젠 되며 협곡으로 풀려나는 구조다.
근데 클랜들이 그런 사냥터를 독점하며 리젠 되는 족족 사냥을 해대니, 밖으로 기어 나오는 몬스터가 적을 수밖에.
‘……뭐, 그 덕분에 일찍 찾기는 했지만.’
나는 길모퉁이에 자리한 이끼를 보며 씨익 미소 지었다.
지나가며 본 여타 이끼들과는 다르다.
적색 이끼와 녹색 이끼가 반반 섞여 있다.
그리고 두 이끼가 만나는 지점에 생긴 구슬만 한 크기의 흑색 이끼.
‘문제는 이걸 어떻게 자연스럽게 유도하냐는 건데…….’
고민하던 차 정면에서 몬스터가 나타났다.
6등급 몬스터인 ‘헬 하운드’가 여덟 마리.
호랑이 크기의 눈 넷 달린 들개를 생각하면 쉽다. 온몸이 검은 불꽃에 휩싸인 건 덤이고.
[크르르르르-!!]“전투 준비.”
며칠간 지긋지긋하게 잡은 몬스터이기에 뭔가 브리핑할 것도 없이 전투에 돌입했다.
전투 종료까지 걸린 시간은 약 10분.
“그럼 이제 더 내려갈 거예요?”
레이븐이 계획을 물었고, 나는 잠시 고민했다.
야영까지는 아직 한참이나 남은 시각.
어떻게 해야 위화감 없이 이 자리에 머무르게 할 수 있을까.
‘쩝, 냄새 제거 마법만 아니었어도 지금쯤 몬스터랑 싸우고 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입맛을 다시던 순간이었다.
‘……어?’
모퉁이에 자리한 흑색 이끼가 사라졌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집어가기라도 하듯이.
‘……그놈이 벌써 왔다고?’
나는 빠르게 오더를 내렸다.
“레이븐, 뭔가 우리 곁에 있는 기분이다.”
“네? 그게 무슨—”
“탐지 마법을 한번 써 봐라.”
4층에서 가면남에게 한 번 크게 홍역을 앓은 덕일까? 직감을 기반으로 한 지시에도 레이븐은 반문치 않고 마법을 사용했다.
“디레 타니브 카르사치.”
원형으로 퍼져 나가는 마력의 파동.
이내 레이븐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있어요. 무언가가 저기 앞에.”
“사람인가?”
나는 짐짓 모른 척 물었고, 레이븐은 대답 대신 ‘색출’ 마법을 사용했다.
후우웅-!
점토처럼 허공에 덕지덕지 달라붙는 빛무리.
이내 머지않아 빛이 잦아들며 몸을 숨기고 있던 녀석의 형체가 드러났다.
“……으응?”
그것은 다람쥐였다.
크기는 예닐곱 살 아이 정도.
이끼 앞에 오므려 앉은 채 흑색 이끼를 앞니로 갉아먹고 있었다.
[뀨우?]우리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하는 다람쥐.
“읏……! 귀, 귀엽당!”
“맛있을 거 같다!”
미샤와 아이나르가 동시에 감탄사를 뱉었다.
레이븐이 흥분해서 소리친 건 그다음이었고.
“밀라로든이에요! 어서 죽여야 돼요!!”
그래, 너는 알아주는 거구나.
얘가 얼마나 만나기 힘든 놈인지.
“아아, 그치…… 얘도 몬스터니까…….”
어딘가 슬픈 얼굴로 검을 치켜드는 미샤.
반면 곰아저씨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석궁에 화살을 장전했다.
가치를 알아본 건 한 사람만이 아닌 것.
“운이 좋군. 첫 탐사에 밀라로든을 만나다니.”
“자, 잠깐만요. 왜곡! 왜곡 마법을 아직 안 썼어요!”
레이븐이 곰아저씨를 만류하고서 재빠르게 마법 주문을 외웠다.
그냥 왜곡도 아닌 ‘상위 왜곡’ 마법.
이제 해당 몬스터를 처치 시 좀 더 높은 확률로 시체가 온전하게 남게 된다.
[뀨, 뀨웃-!!]왜곡 마법을 맞자마자 경기를 일으키는 밀라로든.
어쩌면 DNA에 새겨진 본능일지도 몰랐다.
선조들 대부분이 이걸 맞고 뒈졌을 테니까.
“아브만!”
내 외침과 동시에 석궁 화살이 쏘아졌다.
다만 미궁에 몇 없는 초식 몬스터답게 기민한 움직임으로 이를 피하는 녀석.
나는 즉시 앞으로 대쉬해 꼬리를 움켜잡았다.
[삐이! 삐이이! 삐잇!!]녀석이 발버둥치며 연약한 비명을 내질렀다.
이러고 있자니 새삼 동물을 해치는 느낌이 들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게 자연의 섭리인 것을.
스르륵.
그렇게 머리를 터트려 죽일 요량으로 손을 뻗던 차였다.
“잠시만요!”
레이븐이 나를 만류했다.
“최대한 온전하게 죽이면 안 될까요? 가죽도 제법 비싸게 팔린다고 들었는데.”
합리를 추구하는 마법사다운 말.
나 역시 순순히 동의하며 밀라로든의 목과 꼬리를 잡아 포박했다.
그리고…….
“미샤.”
“어, 어? 내, 내가 해야 하는 거냥?”
“네 검이 제일 얇지 않냐.”
아이나르는 대검을 쓰고, 곰아저씨의 화살은 화살이라기에 너무 크다.
내 메이스는 두말할 것도 없고.
얘도 명색이 몬스터인지라 일반 나이프로는 깔끔하게 찔러 죽이기 어려울 터.
“미간을 찔러라.”
“으으…….”
왠지 꺼림칙하다는 표정의 미샤였지만, 결국 검을 뽑아 안식을 선사해 주었다.
[뀨우…….]전원이 내려가듯 축 늘어진 밀라로든.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숫자를 셌다.
‘1초, 2초, 3초…….’
원래라면 사망 판정을 받고서 빛으로 사라졌을 그 시간.
“비요른!! 고기가 나왔다!”
시체가 사라지지 않았다.
***
7등급 밀라로든.
등짝에 거울을 달고 다니는 다람쥐.
미믹과 같은 희귀종으로 분류되는 놈이다.
만나기가 더럽게 힘들거든.
“후후, 얀델 씨 덕분에 굉장히 귀한 몬스터를 잡았네요. 우리크프리트 씨는 경험이 있으세요?”
“나도 처음이다. 그 정도로 귀한 놈이니까.”
5층에서 오래 활동했던 곰아저씨조차 이번이 첫 사냥일 정도.
하긴 얘 습성을 따져 보면 이해는 된다.
상시 은신 능력을 지닌 비선공 몬스터.
한데 탐지 마법을 돌리고 있으면 그 안으로 들어서지도 않는다니? 사실상 천운이 따라줘야만 만날 수 있는 몬스터인 셈이다.
물론, 검은 이끼에 대해 모른다는 가정하에.
‘여기서 대기하다가 탐지 마법 한 방이면 무조건 잡을 수 있는데 말이지.’
물론 말이 쉽지, 나도 5층에서 1년 넘게 막힌 다음에서야 이 방법을 알아낼 수 있었다.
온갖 히든 피스가 가득한 게임 아니던가.
밀라로든의 출현 조건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념하에 녹화 파일을 전부 돌려봤고, 녹화 파일 하나에서 지형에 있던 이끼가 사라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그때는 버그인가도 싶었지만…….
‘진성 변태 게임.’
확인 결과, 버그가 아니라 숨겨진 요소였다.
이끼가 사라지자마자 탐지 마법을 돌리면 100%의 확률로 밀라로든이 출현했다. 물론 왜곡 마법이 성공하냐는 건 또 다른 문제였지만.
“초행자의 운이 따라주는 모양이군. 왜곡 마법까지 한 번에 성공하다니—”
“상위 왜곡이요. 그냥 왜곡이 아니라.”
“아, 어. 그래 상위 왜곡…….”
게임에서 밀라로든의 왜곡 성공률은 20%.
상위 왜곡이라 해도 3할이 채 안 된다.
그래서 서너 마리는 잡아야 나올 줄 알았건만.
“아무튼, 이리 줘보실래요?”
“도축도 할 줄 아나?”
“견습 시절에 매일 하던 일인데요.”
축 늘어진 사체는 레이븐이 쥔 도축칼에 의해 순식간에 가죽, 내장, 뼈로 해체됐다.
로트밀러보다도 훨씬 빠르고 정교한 솜씨.
와, 전문가는 또 다른 영역인 거구나.
“근데 얘는 어디가 그렇게 비싼 거냥?”
“가죽은 희소성 때문에 수요가 있고, 힘줄은 마법 재료로 쓰여요. 하지만… 진짜 값어치가 나가는 건 따로 있죠.”
이내 레이븐은 등가죽에 달라붙어 있던 거울을 칼로 도려내는 것으로 도축 과정을 끝마쳤다.
“바로 이 거울이에요.”
“거울?”
“네. 도시로 갖고 나갈 수는 없지만, 안에서 굉장히 유용하게 쓸 수가 있거든요.”
이후 레이븐은 거울의 용도를 세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나는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봤다.
‘이래서 팀에 마법사가 있어야 하는 건가?’
진행이 한결 편하다.
예전엔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다 설명해 줘야 했는데. 후, 나도 이제 평범한 바바리안처럼 지낼 수 있는 건가?
“근데 얀델 씨도 감이 좋은가 봐요.”
“응?”
“밀라로든의 기척을 느꼈을 리는 없고.”
레이븐이 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기는 했지만 별다른 의심 없이 넘어갔다.
4층에서 본인도 비슷한 일을 겪었으니 말이 안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모양.
오케이, 그럼 이 부분은 됐고.
“그래서 이건 어떻게 사용하는 거냐?”
게임에서 거울은 그냥 마법사에게 장착한 후 버튼 하나 클릭하면 끝이었다.
그렇다면 현실판에서는 어떨까.
“어,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응?
“책에서도 거기까지는 안 적혀 있어서. 마력을 밀어 넣으면 작동하지 않을까요?”
“……한번 해봐라. 아, 잠깐 그 전에 결속 마법부터 맺지.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좋은 생각이에요.”
일단 결속 마법을 다시 맺은 뒤, 레이븐이 거울을 쥐고서 눈을 감았다.
마력을 흘려 넣는 거 같기는 한데…….
마력 재능이 전무한 바바리안이기에 딱히 느껴지는 건 없었다.
다만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번뜩-!
거울이 찬란한 빛을 뿌리며 우리를 휘감았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캐릭터가 불의 거울에 진입했습니다.」
우리는 어둠으로 가득하던 미궁에서 벗어나 드넓은 황야 위에 서 있었다.
“갑자기 공간이 변하니, 균열에라도 들어온 거 같군!”
곰아저씨의 감상평.
다만 이곳은 균열과 엄연히 다르다.
일단 수호자도 없고, 던전의 형태도 아니다.
단지 몬스터가 득실거릴 뿐인 오픈월드형 구조.
그러니까, 다시 말해…….
[다른 곳으로 가라, 바바리안. 이곳은 우리 클랜의 영역이다.]클랜들이 죽치고 앉아 나오는 몬스터를 받아먹던 그 거울 너머의 세계.
나는 평소 이 히든 필드를 이렇게 불렀다.
“비요른! 사방에서 몬스터들이 몰려온다!”
“전투 준비!”
버닝존.
「필드 효과 – 이면세계가 부여됩니다.」
「마석 드롭률이 대폭 증가합니다.」
「정수 드롭률이 소폭 증가합니다,」
더도 덜도 말고 딱 정수 두 개만 띄워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