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214)
214화 버림패 (3)
오러를 쓰는 4등급 탐험가.
실로 좌절적인 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 예전의 나였다면.
후우우우웅-!
물론 아직 오러 세팅은 끝내지 못했다.
5단계 금속 아다만티움 대검에 오러라니?
월광석 방패 따위야 순식간에 고철덩이로 변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넌, 베는 맛이 있겠군.”
4등급이고 검사고 3등급 탱커고 나발이고.
한 번의 판단 미스가 캐릭터의 사망으로 이어지던 하드코어한 게임.
“베는 맛은 지랄.”
얼마나 강하든지 간에 치명타를 입으면 뒈지는 건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와라.”
이기지 못할 상대는 결코 아니다.
뒤에서도 적이 몰려들고 있기에 단기간에 승부를 내야 한다는 패널티가 있다마는.
이 또한 무언가를 버리면 될 문제.
“바바리안 새끼들은 하나같이 주제를 모른단 말이지.”
그저 간절히 바랄 뿐이다.
부디, 저놈에게 각오가 되어 있지 않기를.
탐색전을 통해 스킬, 장비를 알아내는 등 안전하게 공략할 여유는 없다.
생자와 사자는 찰나에 정해질 것이다.
늘 그래 왔듯이.
“베헬—라아아아아아!!”
두려움을 버린다.
타닷.
그때 땅을 박차는 소리가 들렸다.
휘익-!
통로를 가득 메운 안개 속으로 인간 주제에 190이 넘는 체구를 가진 놈이 달려든다.
후우우우웅!
휘둘러지는 대검.
타닷.
방패로 막기보단 다급히 옆으로 몸을 피했다.
비싼 돈 주고 산 방패가 아까워서가 아니라, 단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버린다면, 얻는 것이 있어야지.
이렇게.
서걱-!
왼쪽 팔꿈치 위를 찍어내린 대검.
“야, 얀델 씨……!!”
순식간에 나는 외팔이가 되었다.
혼돈의 군주 리아키스전 이후로 두 번째 겪어 보는 경험.
딱히 우울하진 않았다.
사지 멀쩡하게 승리하겠단 안일함은 놈을 마주친 순간 버렸으니까.
치이이익.
잘려나간 팔죽지를 놈에게 겨냥해 분수처럼 치솟는 산성피를 뿌린다.
“아아아아악!!”
운 좋게도 눈에 명중.
‘개이득이군.’
팔을 대가로 놈의 시야를 봉쇄했다.
물론 그 시간은 길지 않을 터이나…….
“레이븐, 용암분출을 써라!”
이어서 오더를 내리며 놈에게 착 달라붙는다.
대검을 무기로 쓰는 놈이니, 이 거리면 오러로 나를 해칠 수 없다는 판단.
아마 시야를 막지 못했다면 접근하는데 더 큰 무언가를 바쳐야만 했겠지.
“하지만 그랬다간 얀델 씨도……!”
“괜찮으니까 어서 써라!!”
“알겠어요……!”
다급하게 호흡을 끊고서 근육에 힘을 불어넣는다.
4층에서 트롤과 레슬링하던 때와 비슷하다.
“이 망할 새끼가!!”
격렬한 저항.
놈의 몸에서 비늘이 돋아난다.
육체 수치가 일시적으로 증가하는 [실험체]의 이펙트 중 하나.
오러를 쓰기에 예상은 했는데.
‘역시 깡스텟파구나.’
공교롭게도 나도 비슷한 타입이라서.
“가만 있어.”
몇 분 안 썼으니, 30초 정도는 쓸 MP가 회복됐으리란 판단.
“으윽.”
순식간에 늘어난 중량에 놈이 힘겨운 소리를 뱉으며 허리를 굽혔다.
후웅, 후웅!
놈이 나를 업은 상태로 무작정 대검을 주위로 휘둘렀다. 통로의 벽이고 뭐고 무참히 썰고 지나가는 오러.
“앞이 안 보이니 무서운가?”
“죽여 버리겠다!!!”
“다들 물러나라!!”
놈이 칼춤을 벌인 탓에, 미샤를 비롯해 모두가 추가타를 넣기 위해 접근하지 못했다.
다만, 오히려 내게는 좋다.
놈의 발버둥 덕분에 적들도 쉽사리 녀석을 돕기 위해 다가오지 못하는 상황.
“병신 새끼.”
“아아아악!!”
놈이 업어치기를 하듯 상체를 기울였다.
근데 그래서 어쩌라고.
변태처럼 적에게 달라붙는 건 탱커의 기본 소양 중 하나.
쿠우웅-!
우리 둘의 몸이 쓰러지며 포개어졌다.
로맨스 영화의 어느 장면과는 거리가 멀다.
스릴러 영화의 마지막 개싸움이라면 모를까.
퍼억! 퍼억! 퍼억!
마침내 놈이 대검을 손에서 놓고 주먹으로 내 귓방망이를 연신 쥐어박았다.
물론 문제는 없었다.
너, 손으로는 오러 못 쓰잖아.
퍼억! 퍼억! 퍼억!
물리 공격이야 물리 내성으로 버티면 그만.
뭐, 아다만티움 대검을 쓰는 놈인 만큼 근력이 상당한지 뇌가 자꾸 흔들리긴 하지만…….
잘려나간 팔에 비하면 잔부상이나 마찬가지.
“케시알 님!!”
놈의 무지성 칼춤이 타의에 의해 종료되자, 다가오지 못했던 적들이 내게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지, 진짜 쏴요……?!”
한발 늦었다.
“뭘 묻고 있는 거냐!!”
마법이 완성됐다.
“……이헤르노 와투레 툰바르!”
4등급 화염 속성 공격 마법 ‘용암분출’.
화르르르륵!!
레이븐의 지팡이에서 뿜어진 검붉은 용암이 우리를 향해 덮쳐온다.
나는 즉시 자세를 고쳤다.
놈을 위에서 짓누르며 목을 조르던 자세에서 내가 땅에 가고 놈이 위로 올라오도록.
“놔라, 이 바바리안…!”
시야가 돌아왔는지, 놈이 소리친다.
우리를 덮쳐오는 용암을 본 모양.
“왜 뜨거운 건 싫은가?”
그럼 화염 내성을 올려뒀어야지 새끼야.
“안 돼!!”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순간.
화아아아악-!
모든 걸 녹여낼 듯한 열기가 느껴졌고.
“아아아아아악!”
동시에 무언가 흘러내리는 게 피부를 타고 전해졌다.
흘러내리는 무언가는 빠르게 식으며 굳었다.
「캐릭터의 생명력이 50% 이하입니다.」
「패시브 스킬 [영웅의 길]로 인해 모든 저항력 및 내성 수치가 상승합니다.」
불사자 각인 3단계에 붙은 화염 내성.
만티코어의 항마력.
불의 보주.
‘그런데도 이 정도라…….’
온몸이 후끈하고 간지럽다.
마치 포션을 마신 것만 같다.
고통 내성을 뚫고서 피어나는 고통.
근데,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아프지 않고 싶단 것?
내가 패시브처럼 버리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상냥한 세상이 아니니까.
‘……’냉혈’도 걸어달라고 할 걸 그랬나?’
돌연 피어난 나약함은 마저 치웠다.
안 그래도 레이븐의 마력이 간당간당한 상황 아닌가.
자원은 아껴야지.
“커허헉.”
숯덩이로 변한 놈을 밀쳐내며 일어선다.
내장이 익어서 순대로 변한 듯한 기분.
반면 몸을 움직일 때면 바삭바삭한 무언가가 후두두 떨어진다.
이게 겉바속촉인가?
“야, 얀델 씨? 괘, 괜찮아요?”
“……조금 탔을 뿐이다.”
“조, 조금 타다니…….”
오러를 쓰는 새끼를 단시간에 잡아냈으니 이 정도는 감수해야겠지.
게다가 팔꿈치에서 나던 출혈도 멈췄다.
화염 마법에 맞아서 지혈까지 된 것.
여러모로 개이득—
“크으윽.”
씨발, 이 새끼가 왜 살아 있어.
설마 화염 내성도 있던 건가?
나와 마찬가지로 일어서는 놈을 보며 다급하게 몸을 틀어 진작에 집어 던진 방패를 향해 하나 남은 손을 뻗었다.
그 순간이었다.
「캐릭터의 영혼력이 부족합니다.」
「[거대화]가 종료됩니다.」
[거대화]가 풀리며 몸이 균형을 잃고 기운다.동시에 방패에 근접했던 손이 멀어진다.
두근-!
온몸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상황에도 등골이 서늘했다.
만약 여기서 놈이 대검.
아니, 단검이라도 꺼내들어 내 목을 쑤시면 그걸로 게임 오버.
최악의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하지만…….
“커, 커헉.”
쓰러지는 몸을 틀어 황급히 뒤를 확인했을 때.
놈은 뒷모습을 보이며 멀어지고 있었다.
비틀거리면서도 빠른 속도로.
“…….”
그 예상치 못한 장면에 몸이 굳기도 잠시.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운이 좋군.’
놈은 오만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동료가 있음에도 혼자 나를 막았다.
“허억, 허억, 흐윽…….”
이후 기회가 있으리란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나를 죽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놈은 살고자 도주를 택했다.
그 심정이야 이해는 됐다.
“조, 가튼 바바리안, 새끼…….”
놈에게 있어 나와의 전투는 생존이 아니었다.
목숨을 걸고서 싸울 이유란 없었다.
그래서였다.
지금 놈과 나의 위치가 바뀌어 있는 건.
“어디, 가냐?”
나는 방패 대신 놈이 두고 간 대검을 손에 쥐었다. 오우거를 통해 얻은 근력은 아다만티움 대검을 한 손으로 다루기에 충분했다.
“……마, 막아라!”
나는 서둘러 놈을 추격했다.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몸의 대미지가 컸는지 걸음걸이에 영 힘이 없었으니까.
머지않아 검이 닿을 거리가 되었다.
“목은, 두고 가야지.”
검사도 나쁘진 않네.
서걱-!
검끝에서 느껴진 손맛에 미소 지으며 나는 외쳤다.
“베헬—라아아아아아아!!!”
살아남았다.
일단 당장은.
***
4등급 오러 유저를 만나고 목을 따버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2분 안팎.
원래 전투란 그런 것이다.
승자와 패자가 나뉘기까지 오랜 시간은 필요치 않다.
한 평생을 단련해온 기사도.
미궁에 수없이 들락날락했을 상위 탐험가도.
찰나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게 바로 이 세상.
“아이나르!!”
승리의 여운을 즐길 새도 없이, 쥐고 있던 대검을 아이나르에게 던졌다.
“어? 어?”
뭘 당황하고 있어.
챙길 건 챙겨가야지.
딱 보자마자 네 생각이 나더라고.
‘아깝네.’
다시 비게 된 손으로 방패를 집어든 나는 놈의 사체로부터 애써 시선을 돌렸다.
후, 더 루팅하면 쓸 만한 게 나올 거 같은데.
‘그럴 시간은 없겠지.’
욕심을 버리고 앞을 응시한다.
“케시알 님이 당했다!!”
“죽여라!!”
‘용암분출’ 때문에 멈칫했던 적들이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덤벼드는 상황.
너덜너덜한 몸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게 내 역할이니까.
실드차지.
하나 남은 팔로 방패를 쥐고서, 어깨로 체중을 실으며 달려나간다.
거의 목적지에 다다라서 그런지 바깥쪽보다 탐험가들 수준이 훨씬 높다.
방금 전 오러잽이 새끼도 그렇고.
이쪽이 최전선이라는 거겠지.
쨍그랑.
오더도 없었는데 포션이 날아와 깨진다.
상처 부위를 송곳으로 쑤신다기보다는 살을 불로 지지는 듯한 부드러운 통증.
“얀델 씨가 좋아하는 상급 포션이에요!”
그래, 어쩐지.
‘기운이 나는 것도 같네.’
힘내서 다시 한번 가보자.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잖아?
고지가 코앞이다.
“지금부턴 나도 돕겠다!”
아이나르가 내 옆에 섰다.
“레이븐은?”
“우락부라크에게 맡겼다!”
좋은 판단이네.
아마 레이븐이 그러자고 했겠지.
“베헬—라아아아아아아!!!”
지형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왔는지 확인하는 짓은 그만뒀다.
오직 지금 이 순간에만 집중한다.
“미샤! 내 뒤에 딱 붙어라!”
조금만 더 가면.
“에르웬! 지금이다! 그걸 써라!”
그래, 조금만 더 가면.
“케헥! 아, 안 돼. 지금은…….”
“얀델! 레이븐의 마력이 떨어졌다!”
그때 곰아저씨에게 업혀 있던 레이븐의 마법 지원이 끝났다.
가끔 길이 막히거나 속도가 느려질 때마다 [산소폭발]로 억지로 길을 뚫어내는 것도 이제는 불가능하다는 뜻.
“아, 안 돼! 레나……!”
속도가 줄어들며 또 한 명이 죽었다.
타켈란 팀의 술법사였다.
방어 및 지원이 특기인 서포터 계열 술법사라 뒤를 든든히 지켜주던 여자였는데.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앞으로는 더 힘들어지겠군.
이를 악물며 양심의 가책을 밀쳐낸다.
“제기라아아아알!!”
귀를 막을 여유는 없다.
설령 있다 한들 그래서도 안 될 테고.
나의 결정이었다.
선택과 집중.
버려야 하는 것.
그리고 버릴 수 없는 것.
내가 지키고자 한 것.
“…미샤!”
“걱정 마라! 아직 싸울 수 있으니……!”
누구 한 명 더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치열한 전황 속에서,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길을 뚫는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이쪽이다!”
마침내 어두운 통로가 보였다.
보이자마자 즉시 방향을 꺾어 통로 너머로 들어섰다.
“에르웬, 시야를!”
“네, 네!”
마력 소진 상태인 레이븐을 대신해 에르웬이 불의 정령을 소환해 주변을 밝혔다.
무채색의 수정들이 듬성듬성 자리한 통로.
도시 측 탐험가들이 마중을 나와 있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비요른! 놈들이 안 따라온다!!”
여기부터가 기점이라는 듯 추격이 멈췄다.
그래, 여기를 경계로 구역이 나뉘었단 말이지.
“방심하지 말고 계속 움직여라.”
안심하기엔 아직 이르다.
나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전진했다. 쉬고 포션을 먹고 정비하는 건 안전이 확보된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는 판단.
그로부터 한 3분쯤 흘렀을까?
우리는 그토록 보고 싶었던 무리와 조우했다.
“정지.”
기사로 이뤄진 열 명의 무리.
주변에는 벌거벗겨진 상태의 시체들이 가득했다.
아마 노아르크 측 놈들의 것이겠지.
역시 목숨 걸고 여기까지 오기를 잘했다.
얘들이 우리 편이라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든든해—
‘응?’
눈이 마주친 기사가 검을 뽑아 들며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검에는 오러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외쳤다.
“우린 적이 아니다! 여기 인식표도 있—”
아, 내 팔…… 거기 두고 왔지.
“나는 없지만, 다른 자들은 모두 있다!”
서둘러 말을 이어붙였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하다하다 이제는 같잖은 수작까지 부리는군. 그쪽은 노아르크 놈들에게 점령당한 길목이다. 근데 거기서 나타나 놓고 인식표?”
후, 안 믿기기는 하겠네.
우리가 이 모양 이 꼴인 것도 스파이로 안에 침투하기 위해 위장한 것으로 보일 터였다.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작은 발칸이라는 이명을 대면 믿어 줄까?
잠시 고민을 하던 나는 더 좋은 방법이 있음을 깨달았다.
“미샤, 반지를 빼서 보여 줘라.”
공교롭게도, 이럴 때 쓰라고 받은 물건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