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290)
290화 거물 (2)
두근.
낮게 뛰던 심장의 박동 주기가 점차 짧아진다.
“……당신이 아우릴 가비스라고?’
어쩌면 이 몸에서 눈을 뜬 그날 이후로 갖고 있던 모든 의문을 풀어줄 수도 있을지 모르는 존재.
“정말로…… 당신이 그 게임을 만든 건가?”
“질문은 하나씩이었을 터이네만, 자네 심정은 이해가 가니 여기까진 답해주겠네.”
이내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내가 그 게임을 제작했네.”
후, 그래 정말 본인인 거구나.
물론 저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가정하에.
“자, 그럼 내 이름을 말했으니 자네 차례겠군. 이름이 뭔가?”
그는 내가 이름을 물었으니, 자기도 이름을 묻겠단 듯 질문했다.
다만…….
‘아마 나랑 똑같은 의도겠지.’
이름은 중요하다.
외형이 의미 없는 영적세계라면 더더욱.
파멸학자가 꼬맹이 모습을 하고 있던 걸 봐도 알 수 있듯, 이곳에서 우리는 본인이라 여기는 모습을 가진다.
이름을 밝히는 순간 익명성이 사라지는 것.
바깥에서 나를 찾아낼 수단이 생기는 거다.
그러니까…….
“이한수.”
이백호를 제하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내 본명을 밝힌다.
물론 노인은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오호, 한국 태생이었나 보군? 한데 내가 물은 건 그런 것 말고 자네가 이곳에서 쓰는 이름이었네.”
“이곳에서 쓰는 이름이라…….”
오케이, 그 말이 나올 줄 알았지.
“니벨즈 엔체.”
이것도 일단 여기서 쓰는 이름은 맞잖아?
진실과 거짓을 분간해 내는 이백호를 본 적 있기에 일부러 트릭을 섞었다.
원탁을 만든 게 이자일 수도 있지 않은가.
집회의 핵심 시스템이었던 그 보석을 만든 자라면 그런 능력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판단.
‘애초에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실제로 내 대답을 들은 그는 의미심장한 눈길로 나를 응시했다.
“흐음…….”
“뭔가 문제라도 있나?”
“아닐세. 그럼 이제 자네 차례군?”
어딘가 애매하다는 듯 빤히 바라보던 그가 이내 턴의 종료를 알렸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대체 뭘 먼저 물어봐야 할까.
이자를 만난다면 묻고 싶은 게 너무도 많았기에 우선순위를 고르는 것도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 우선 그것부터 묻자.’
나는 생각해 둔 질문 리스트들 중 하나를 골랐다.
“왜 우리를 이 세계로 불러낸 거지?”
모든 사건의 근본이기도 한 그것.
동기動機.
그는 어째서 이러한 일을 벌였는가.
“……확실히 자네는 특별하군.”
아우릴 가비스는 대답 대신 묘한 말을 했다.
“무슨 의미지?”
“지구에서 온 자들을 몇몇 만나봤네마는, 대부분 자기가 그냥 게임 속에 들어온 줄로 알고 있더군.”
아, 그 소리였구나.
하긴 나도 예전엔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
다만 이곳에서 그 많은 일들을 겪었고, 그 많은 단서를 얻었다. 한데 아직도 그런 착각을 할 리가.
이곳은 하나의 독립적인 세상이다.
내 예상이 맞다면, [던전 앤 스톤]은 이 세상을 기반으로 제작된 게임일 테고.
“그래서 대답은?”
“하긴, 자네들 입장에선 그것만큼 궁금한 게 없겠군.”
이내 아우릴 가비스의 입이 열렸다.
그들이 머나먼 이계의 존재들을 이 세계로 불러와야만 했던 그 이유.
“심연의 문을 열 수 있는 게 자네들뿐이기 때문일세.”
“뭐? 심연의 문? 그게 대체 뭐기에…….”
아우릴 가비스가 내 말을 끊었다.
“질문은 하나씩, 그런 규칙 아니었던가?”
“아…….”
그래, 그게 맞긴 하지.
“해봐라.”
이내 내가 턴을 넘기자, 그는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네…….”
“…….”
“혹시 기록의 파편석을 사용했나?”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의 눈에는 열띤 기대감이 가득 맺혀 있었다.
***
기록의 파편석.
노아르크의 성주 가문이 수 대에 걸쳐 대물림 해온 가보이자, 시간 역행이라는 터무니없는 능력을 지닌 보물.
‘뭐야, 이건 또 어떻게 알아낸 거야.’
그것이 언급된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그도 그럴 게, 생각도 않고 있었다.
이름을 물어본 바로 그다음 질문이 내 모든 사정을 꿰뚫는 질문일 것이라고는.
‘……아씨, 뭐라고 대답하지?’
‘기록의 파편석’이 뭐냐며 태연하게 넘기기엔 이미 늦었다.
내가 당황했다는 것은 저쪽도 눈치를 챘을 터.
“천천히 대답해도 좋네.”
아우릴 가비스는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서둘러 판단을 끝마치고 되물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뭐지?”
물론 이렇게 묻는다는 것 자체가 반쯤 긍정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건 안다.
하지만 여기서 뭐 어쩌겠는가.
거짓말을 한다고 해서 통할 거 같지도 않은 상대일뿐더러…….
‘내가 모르는 근거가 있을 거야.’
아우릴 가비스는 거의 확신하는 단계이다.
그게 아니면, ‘기록의 파편석’ 같은 걸 콕 집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못했을 테니까.
“이유는 셋일세.”
실제로 아우릴 가비스는 손자 대하듯 웃으며 추측의 근거를 내게 설명해주었다.
“하나, 이제 1년이 됐다기에 자네는 너무 강하네. 둘, 내가 이곳에 초대한 자들 중에 자네는 없었네. 셋, 자네가 강하긴 해도 내 영역에 허락도 없이 침입할 정도는 아니지.”
“겨우 그것 정도로……?”
“허허, 겨우 그 정도가 아닐세. 이 수준의 모순이 납득 되려면 ‘그것’ 외에는 없을 정도니.”
아니, 그렇게 말해도 잘 이해가 안 되는데…….
“그래서 질문의 답은 긍정이라 여겨도 되겠나?”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하는 것도 우습기에, 그냥 쿨하게 인정했다.
두 번째 질문에서 까발려진 건 아쉽지만, 여기서 뭘 어쩌겠는가.
이 다음부터 잘 하는 수밖에.
“후후, 지구 출신이니 과거에서 온 건 아닐 테고. 자넨, 몇 년도에서 온 건가?”
“질문은 한 번씩이었을 텐데.”
“아, 그랬지. 어서 해보게.”
그는 어딘가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래, 자네는 이제 또 뭐가 궁금한가? 심연의 문이 뭔지? 마녀가 살아 있는지? 음, 아니면 바깥이 왕의 말대로 지옥인지가 궁금할 수도 있겠군.”
원하는 게 뭐든지 묻기만 하면 대답해 줄 것만 같은 목소리.
‘묘하게 껄끄럽단 말이지.’
아까 다른 회원들을 차갑게 내치던 모습을 봐서 그럴까? 아우릴 가비스의 이유 모를 호의는 내 청개구리 심보를 자극했다.
‘……그냥 지금이라도 때려치워?’
지금이라도 이쯤에서 질의응답 시간을 끝내고 바깥으로 내보내달라고 부탁하는 게 현명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합리적인 이유는 없지만, 우습게 여길 일은 결코 아니었다. 경험상 이런 종류의 직감은 무시했을 때 큰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영영 알 수 없을지도 몰라.’
단순히 찝찝하다는 것 때문에 지나치기엔 너무 귀중한 시간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 노인은 모든 해답을 갖고 있을 테니까.
이내 나는 고민을 끝마쳤다.
‘자잘한 건 다 쳐내고 중요한 것들만 확인하자.’
당신은 이곳 출신인가.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차원 이동을 했는가.
뜻을 함께하는 동료는 있으며, 이 영적세계는 어떤 이유로 만든 것인가.
그 외에도 수 많은 의문을 뒤삼키고서, 나는 물었다.
“왜 심연의 문을 열려고 하는 거지?”
인간을 파악하는 데 있어 가장 쉬운 요소 중 하나인 동기.
이 인간은 무엇을 위해 행동하는가.
아우릴 가비스는 잠시간의 텀을 두고서 답했다.
“왜 그게 궁금한 것인가?”
“질문은 한 번씩 하기로 했을 텐데.”
“허허, 정색하지 말게. 나는 그저 자네 입장에서 심연의 문이 뭔지 묻는 게 먼저 아닌가 싶었을 뿐이니.”
그의 의문은 합당했다.
단지 내게 있어선 합리적이지 않았을 뿐.
“하하, 자네가 어떤 성향을 지녔는지는 슬슬 알 것도 같군.”
“그래서 질문의 답은?”
“자네가 묻는 것엔 어지간하면 전부 대답해 줄 생각이었네마는, 이건 좀 불공평한 거 같군.”
“답하지 않겠다는 건가?”
“나는 아직 자네가 누군지 잘 모르지 않나. 모든 건 순서가 있는 법일세.”
후,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는데.
그럼 그냥 질의응답은 여기서 끝내야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던 때였다.
“그 대신 이건 어떤가? 심연의 문을 열면 자네는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네. 어때, 자네가 묻던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아우릴 가비스가 보상이랍시고 그러한 말을 꺼냈다.
딱 보니까 내가 심연의 문이 뭐냐고 물어보면 이걸 알려 주려 했던 거 같은데…….
‘이게 전부는 아니겠지.’
정말 중요한 건 숨겼다는 생각이 든다.
심연의 문이 가진 특징이 ‘귀환’뿐이라면, 그가 우리를 이곳으로 불러낼 이유가 없으니까.
쩝, 이래서 동기를 확인하려 한 건데…….
‘뭐, 이런 식이면 나도 앞으로 얼버무리기 힘든 건 그냥 패스해 버리면 되니까.’
“좋다, 이제 당신 차례다.”
이쯤이면 만족한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턴을 넘겼다.
그리고 빠르게 질문을 주고받았다.
“자네는 몇 년도에서 왔는가?”
“154년.”
“20년 뒤군.”
그는 천천히 내 인적 사항을 캐물었고, 이는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신은 왕가와 적대 관계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네.”
“볼 수 있다라니? 확실하게 말해 줬으면 하는데.”
“적대 관계일세.”
음, 그렇단 말이지?
한통속인 건 아니었구나.
“자네에게 초대장을 건넨 건 미래의 나……. 아니, 질문을 다시 하겠네. 자네에게 초대장을 준 게 누구였나?”
“GM이란 별명을 지닌 지구 출신 악령이다.”
“……GM?”
“나도 그것 말고는 알지 못한다.”
“그렇군. 이제 자네 차례일세.”
“왕가에서 바깥세상이 멀쩡한 걸 감추고 있는 이유가 뭐지?”
“흐음, 20년 후에는 거기까지 알려졌나 보군?”
아우릴 가비스는 은근슬쩍 나를 떠보더니, 내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자 대답을 내놓았다.
“왕가에서는 그게 이 세상을 지키는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네.”
“단순한 권력욕 때문은 아니라는 거군.”
“애석하게도.”
이후 턴을 넘겨받은 그는 내게 몇 배 난이도를 깼냐고 물었고, 나는 대답했다.
“15배.”
“……거짓말을 하는군.”
거, 정색하기는.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진짜 거짓말 탐지기가 돌아가고 있던 중이었던 거구나.
“그나저나 이해가 안 되는군. 왜 다른 것도 아니고 이런 데서 거짓말을…….”
이내 아우릴 가비스가 말꼬리를 흐렸다.
그리고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원본! 설마 자네는 내가 만든 원본을 클리어 한 건가?”
잔뜩 흥분하며 언성을 높였다.
‘빌어먹을.’
외통수였다.
그야 여기서 ‘아니오’라고 말하는 순간, 그것은 또 하나의 대답이 될 테니까.
‘후, 이래놓고 내 질문이 불공평하니 뭐니 하던 거야?’
어처구니없지만 뭐, 어떡하겠는가.
힘센 놈이 다 해먹는 세상 아닌가.
나 같은 잔챙이는 그러려니 하고 참아야지.
“…….”
그렇게 ‘아니오’라고도 말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때였다.
“그랬군, 그랬어! 하긴, 기록의 파편석이 그딴 쓰레기 같은 양산품으로 넘어온 자에게 반응할 리가 없거늘……!”
내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노인네가 감정적인 목소리로 뭐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듣고 있자니 뭔가 기분이 묘했다.
“말해보게, 어떻게 깬 건가? 얼마나 걸렸고? 아니, 원래는 뭘 하던 사람인 건가?”
갑자기 노인네가 간절해진 거 같다고 해야 하나?
다만 노인들은 원래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이기에, 일단 확인을 한 번 해 볼 필요가 있었다.
“뭔가 좀 마시고 싶군.”
“응? 여기선 갈증이 느껴질 리가 없는데…….”
“그럼 내가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건가?”
내가 가면을 벗고 인상을 찌푸리자, 노인네가 후다닥 컵을 만들어 물을 담아줬다.
흐음, 이거로는 조금 애매한데.
“사이다.”
“……사이다?”
“물이 아니라 사이다였으면 좋겠는데.”
“아아! 그거 말인가?”
노인네가 컵에 담긴 액체를 얼른 바꿨다.
투명했지만 아래에서부터 기포가 싹 올라오는 게 틀림없는 사이다였다.
나는 곧장 참지 못하고 컵을 들이켰다.
“크으으으.”
내 방에 있던 무미무취의 그것과 다르게 청량한 탄산의 감각이 목구멍에서 느껴졌다.
“꺼억.”
“허허, 사내답게 아주 시원하게 마시는군 그래. 아무튼, 다 마셨으면 이제 대답해 주게. 20년 뒤엔 자네처럼 원본을 깬 자들이 많이 있나?”
그 물음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도 그럴 게, 서열에 민감한 바바리안의 본능이 내게 말하고 있었다. ‘오리지널’을 클리어한 게 뭐 그리 중요한진 모르겠지만…….
“흐음, 그게 그렇게 궁금한가?”
지금부터는 내가 갑인 게 아닐까?
Any updates? I know it’s on a break but still some more chapters r 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