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469)
469화 피아 (1)
띠링-!
컴퓨터 전원을 켜자마자 경쾌한 알림음이 나를 반긴다.
“쪽지……?”
서둘러 쪽지함을 확인하자 최상단에 미확인 표시가 떠 있는 쪽지가 나타났다.
발신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몇 초 전.
커뮤니티가 열리자마자 나한테 쪽지를 보냈다는 뜻인데…….
딸깍, 딸깍.
일단 쪽지를 열어서 확인했다.
[발신인: Ghost master.] [잠시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짧은 한 줄의 용건.
그 아래에는 비밀채팅방의 이름과 패스워드만이 적혀 있었다.
“흐음…….”
어떡하지?
지금 저 초대에 응하면 이백호가 기다릴 텐데.
조금 고민이 됐지만, 결정을 내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얼른 끝내면 되겠지. 얘가 무슨 용건으로 날 호출했는지도 궁금하고.’
어쩌면 GM과의 대화에서 이백호를 상대하는 데 도움이 될 단서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 조금 늦는 게 뭐 어때서?
그런다고 이백호 걔가 그냥 가버리겠어?
“오랜만입니다. 수사자 님.”
이내 채팅방에 들어서자 ‘Elfnunalove’라는 닉네임이 뜬 백인 남자가 일어서서 나를 반긴다.
나는 인사에 답하지 않은 채 곧장 소파에 앉았다.
“그래서 이번엔 무슨 일이지?”
“수사자 님이 부탁하신 대로 벤은 풀어드렸는데, 어디 백호 씨와는 잘 만나셨습니까?”
거, 생색 내기는.
“고작 그 얘기나 하려고 부른 건가?”
“아뇨, 그럴 리가요.”
이내 GM도 뒤따라 소파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지난번 원탁에서 재밌는 이야기를 들어서 말입니다. ‘Elfnuna’ 님께서 이미 이 세상에 진입한 상태라고 하셨지요?”
역시 이거 때문이었구나.
뿌려둔 미끼가 잘 먹혔다는 생각에 뿌듯했지만, 애써 정색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런데?”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Elfnuna’가 혹시 당신입니까?”
본론을 좋아하는 바바리안으로서도 조금은 당황스러운 질문이었다.
설마 이렇게 노빠꾸로 물을 줄은 몰랐는데.
“글쎄, 내가 왜 답해줘야 하지?”
능글맞게 말하자 GM이 즉답했다.
“백호 씨의 벤을 푼 게 저니까요. 제가 정말로 저 하나의 안위를 위해 그런 요구를 들어줬을 거 같습니까?”
내가 무섭지 않았다고 하기엔 그때 식은땀을 흘리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다만, 아예 지어낸 말은 아닐 것이다.
“수사자 님은 저에게 필요한 게 있고, 저 역시 수사자 님에게 필요한 게 있지요.”
기브 앤 테이크.
GM 역시 내게 바라는 것이 있기에, 이백호의 벤이라는 카드를 내주었다.
적은 아군보다 가까이 두란 말도 있듯이.
GM 또한 원탁에서 내가 제공하는 정보들을 포기하는 건 아쉬웠을 터. 일단 요구를 들어주고서 지켜보고자 했을 것이다.
‘한데 그런 와중에 ‘Elfnuna’가 언급되자마자 나를 바로 불렀다라…….’
이쯤 되니 호기심이 더욱 커진다.
“지금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답해주십시오. ‘Elfnuna’가 당신입니까?”
어째서 GM은 ‘Elfnuna’에게 그토록 집착을 하는 걸까?
내가 원탁에서 그 닉네임을 언급한 것도 이러한 의문을 해소하고 싶어서였다.
그렇기에…….
“답하기 전에 한 가지를 먼저 묻지.”
나는 되물었다.
물론 대놓고 물어보면 너무 아는 게 없어 보이니, 수사자답게 최대한 돌려서.
“너는 그 늙은이가 한 말을 믿는 건가?”
일종의 떠보기였다.
나는 과거 시대에서 뉴비 시절의 GM과 대화를 나눴던 적이 있으니까.
[확실한 건 아닌데, 그때 마지막에 말씀하신 자가 누군지 알 것도 같습니다.] [스톤 아이벤이란 커뮤니티에서도 굉장히 유명했던 사람인데… 제가 굉장히 존경했던 사람이기도 합니다.]당시 GM은 나를 아우릴 가비스로 착각하고서 그런 말을 했었다.
따라서 나는 GM이 엘프누나에게 집착하는 것이 다 아우릴 가비스의 말을 믿어서일지도 모른다는 추론을 세웠다.
하지만…….
“믿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적어도 기록석의 이야기는 사실이었으니까요.”
굉장히 묘한 대답이 돌아왔다.
‘기록석……?’
처음 듣는 단어였다.
***
기록석이 무엇인가.
‘과거로 날려보냈던 기록의 파편석처럼 대현자의 유산 같은 건가?’
알 수 없지만 중요한 정보라는 느낌이 빡 왔다.
어쩌면 내가 가진 모든 의문을 해결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를 열쇠.
다만, 나는 티내지 않고 잠자코 얘기를 경청했다.
“역시 그분 말고는 없습니다. 그분이 아니라면, 과연 누가 오리지널 난이도를 클리어할 수 있단 말입니까?”
기록석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탓인지, GM의 이야기는 어딘가 중간이 빠진 것처럼 들렸다.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누가 뭐래도 그분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GM의 믿음은 광신도의 그것과 비슷하다.
사이비에 빠졌던 숙모의 눈빛이 딱 저랬거든.
“…….”
저 믿음이 향하는 장본인으로서 왠지 생리적인 껄끄러움이 먼저 찾아온다.
하나 슬슬 결정을 내릴 때였다.
“자, 그럼 말해주시지요. 수사자 님, 당신이 정말 ‘Elfnuna’인 겁니까?”
벌써 몇 번째나 반복이 된 질문.
제법 고민이 됐다.
저 맹목적인 믿음과 호감이 연기가 아니라면, 적어도 이용은 할 수 있을 터. 어쩌면 GM을 내 동료로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자가 아니다.”
다만, 끝내 내가 내린 결정은 이거였다.
기록석에 대한 정보도, GM이 오랜 시일 동안 쌓아올린 여러 기반들도 탐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터이나…….
‘그래, 이게 맞아.’
적어도 ‘기록석’이 뭔지는 조사를 한 다음에 저 물음에 답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의 대부분은 무지가 원인이니까.
[심연의 문을 열어선 안 돼요.]……그때 마녀가 했던 그 말도 뭔가 자꾸 마음에 걸리고.
“…그렇습니까.”
다행히 GM은 쉽게 수긍하고 넘어갔다.
콕 짚어서 나냐고 묻기에 뭔가 근거가 있나도 싶었건만.
단지 혹시나 해서 떠본 거였던 모양.
“그럼 말해주십시오. ‘Elfnuna’에 대해서. 그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종족은 무엇—.”
이어서 쏟아지는 질문에 나는 딱 잘라 말했다.
“무례하군.”
“……예?”
“첫 질문에 솔직히 답해준 것은 네가 나와 한 약속을 지킨 것에 대한 호의였다.”
쉽게 말해, 이백호의 벤을 푼 것에 대한 보상은 여기까지라는 뜻.
“…….”
넋이 나간 표정의 GM을 보고 있으면 양심이 제법 찔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기서 모른다고 둘러대는 것도 이상하잖아?
암, 이럴 땐 그냥 컨셉을 이용해 넘어가는 게 최고지.
“내 호의를 바란다면 너 역시 호의를 보여라.”
“……대가를 내놓으란 말씀이시군요.”
원탁에서부터 이어져 온 수사자만의 룰.
“하지만… 이건 너무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역시나 GM의 입에서 불만이 튀어나왔다.
근데 그래서 어쩔 건데?
“저는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이백호의 벤을 풀었습니다. 한데 질문 하나로 끝—.”
“내가 사람을 잘못 봤군.”
“……?”
“너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나? 고작 몇 초 들여 이백호의 벤을 푼 것과 ‘그자’에 대한 정보가 대등한 가치를 지녔다고?”
“그건…….”
GM은 그대로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고, 이걸로 대화는 끝이었다.
“알아들었다면, 이만 가보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호다닥 채팅방을 떠났다.
***
그렇게 먹튀를 끝내고 돌아온 이한수의 방.
“후우…….”
한숨을 돌린 뒤에 마우스를 조작해 채팅방을 확인했다.
[대한독립만세] – 2명이 접속 중입니다.2명이라…….
한 명은 이백호, 한 명은 현별이겠지.
다행히 내가 바로 오지 않았다고 떠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잠깐 생각 좀 정리하고 들어가자.’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방금 있었던 GM과의 대화를 복기했다.
[믿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적어도 기록석의 이야기는 사실이었으니까요.]아직은 무엇 하나 확실한 게 없지만, 이백호가 엘프누나를 신경 쓰는 이유도 바로 그 기록석과 관련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능하면 이번에 이백호한테도 떠봐야지.’
좋아, 역시 GM한테 먼저 가보기를 잘했네.
이내 생각 정리를 끝마친 나는 마우스를 클릭해 채팅방 안으로 들어섰다.
“……래도 안 된다니까요! 한수 형이 알면 저 죽어요 진짜!”
“우리 둘만 알면 한수 오빠가 어떻게 아는—.”
벽난로 앞 소파에 앉아 어딘가 수상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뭔가 싶어 잠시 지켜보고 있는데, 애석하게도 저쪽에서 눈치를 챘다.
“히익!”
귀신이라도 본 듯 놀라는 이백호.
“…….”
옆에 있던 현별이도 움찔하더니 잘못했을 때 나오던 그 특유의 표정으로 내 눈치를 살살 봤다.
“뭐 하냐 너희?”
내 물음에 이백호가 벌떡 일어나서 달려오더니 황급히 변명의 말을 해왔다.
“형! 저는 잘못 없어요! 현별 누님이 형 정체에 대해 알려달라기에 안 된다고 했을 뿐이에요!”
어쩐지 그런 거 같더라니.
사실이냐는 의미를 담아 현별이를 보자 현별이가 내 눈을 피하며 이백호를 노려봤다.
“…역시 이백호 씨는 상종 못할 인간이었네요?”
감정 없이 사실만을 말하는 듯한 목소리.
“하하, 누님!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왜 이백호 씨의 누나예요?”
“예? 아까는 그냥 그렇게 부르라고—.”
“이백호 씨는 지금이 아까랑 같아 보여요?”
“…….”
뭔 말을 할 때마다 현별이가 칼같이 끊으며 날 선 음성을 쏘아내자 이백호가 어색하게 웃으며 도와달라는 듯한 눈짓을 보냈다.
‘……뭐, 그래도 현별이한테 비밀을 지켜주긴 했으니까.”
슬슬 나서서 상황을 정리해볼까 하던 찰나.
‘아니, 잠깐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얘를 변호해 줘야 하지?
서로 죽이니 살리니 하다가 곤란해지니까 진짜 말 그대로 ‘뿅’ 소리를 내고 튄 새끼를?
‘후, 나도 모르게 그냥 넘어갈 뻔했네.’
그날에 내가 느꼈던 허망함과 분노, 치욕을 떠올리며 나는 마음가짐을 다잡았다.
“현별아.”
차갑게 가라앉는 감정만큼이나 낮게 울리는 목소리.
현별이가 움찔하며 답했다.
“………왜요?”
“잠시만 나가 있어. 얘랑 할 얘기가 있어서. 지금 일은 나중에 다시 하는 거로 하고.”
“알았어요…….”
지은 죄가 있어서인지 현별이도 군말 없이 채팅방을 떠났다.
그리고…….
“…….”
“…….”
둘만 남게 된 채팅방에는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 상태에서 가만히 꼬나보고 있자 이백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하핫… 형… 아직 많이 삐졌어요?”
기도 차지 않았다.
삐졌냐니, 이게 여기서 할 소리인가?
“됐고, 결론이나 말해.”
“……?”
“그때는 머리가 잘 안 굴러가서 다음에 대답해 준다며?”
“아하하… 냐옹이… 아니, 미샤 말이죠…….”
이백호가 멋쩍다는 얼굴로 목을 긁었다.
다만 그런 모습을 보인다고 우습게 보이거나 하기는커녕 오히려 경계심만 더 커진다.
그야 나는 아니까.
변덕스럽고 경박해 보이는 이 녀석이 실은 얼마나 계산적으로 판단하는지.
지금 보이는 이 모습도 모두 의도된 행동이다.
“그게, 제가 고민을 해봤는데 말이죠…….”
“…….”
“서프라이즈! 결국 저 이백호가 돌려드리기로 결정을 내렸다지 뭡니까! 와아! 짝짝짝! 경사로세, 경사야!”
얘는 진짜 미친놈인가?
“…….”
받아주는 순간 분위기에 휩쓸린다는 판단에 그냥 정색하고 있었지만, 이백호는 아랑곳않고 특유의 텐션을 이어갔다.
“어때요, 형? 이제 제 진심을 좀 알겠어요? 진짜 그때는 장난이었다니까요? 조크, 조크! 저스트 키딩!”
“…….”
“아이 차암! 아직도 화났어요? 이제 그만 좀 풀어요. 네? 대국적으로 보셔야죠! 대국적으로!”
“하아…….”
결국 참다못한 한숨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어! 한숨 쉬었다! 된 거죠? 이제 화 풀린 거죠? 네? 그렇죠?”
“한숨을 쉰 게 왜 그 뜻이 되냐?”
“에이, 괜히 또 그러신다.”
“…….”
그러고 보면 나는 항상 이런 타입에게 약했다.
입에 주먹이라도 꽂을 수 있으면 모르겠는데, 여기선 그런 방법도 쓸 수 없지 않은가.
“헛소리는 그만하고. 그래서 언제 돌려줄 거야?”
“언제든지요. 내일 바로 보낼까요?”
“어. 바로 보내. 너랑 나랑 있었던 일은 말하지 말고. 할 수 있지?”
“넵. 애초에 형 소식 들으면 곧장 찾아간다고 할걸요?”
“너… 그 말투 좀 어떻게 못 하냐?”
“넵? 왜욥?”
“…….”
“헤헷, 알았어요. 안 할게요. 화내지 마요. 형.”
“하아…….”
최대한 이 분위기에 말려들지 않도록 노력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상황이 최악으로 흘렀다면 또 모르겠는데, 일단 이백호가 한 발 물러나며 양보를 해준 건 사실이지 않은가.
‘못 돌려주겠다고 꼴통을 깠으면 곤란했을 텐데 말이지.’
“그럼 미샤 얘기는 다 된 거죠? 이제 다음 얘기 해도 되죠?”
“다음 얘기?”
“네! 저번에 미샤를 보내주면, 제가 부탁하는 거 들어준다면서요?”
“들어는 본다는 얘기였지.”
“그게 그거죠. 형이 손해 볼 게 뭐 있다고?”
“그거는 내가 판단할 몫이고. 그러니까 말해봐. 10층 뚫는 걸 도와주면 네가 나한테 정확히 뭘 해줄 수 있는데?”
“많죠. 이미 해드린 것도 있고요.”
“……?”
질질 끌지 말고 어서 말하란 눈짓을 보내자 이백호가 득의양양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테르세리온 후작요.”
“재상?”
“네. 그 새끼, 이제 형 못 건드려요.”
……이건 또 무슨 소리래?
Any updates? I know it’s on a break but still some more chapters r 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