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515)
515화 원주민 (3)
괴물이 본인이 인간이라 주장하고, 역으로 우리를 마물이라 칭하는 골 때리는 상황.
“재밌네.”
“재밌다니? 얘가 뭐라고 했기에 그러는 거냐?”
“우리가 마물이고, 본인이 인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오… 아주 멍청한 괴물이로군?”
명쾌하게 웃으며 넘어간 아이나르와 달리 함께 얘기를 들은 이들의 반응은 다양하게 나뉘었다.
나처럼 재미있다는 반응. 호기심.
그도 아니면 약간의 짜증.
의외로 마법사인 베르실은 별 반응이 없었다.
플레이어 출신이라 그런가? 레이븐이 있었으면 눈이 돌아갔을 거 같은데. 당장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 물어보라고 하면서.
[다들… 뭐라고 하는 거예요?]그때 꼬마 괴물이 내게 물었다.
이제 보니 눈치가 아예 없는 건 아닌 모양.
[네가 인간이라 한 것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는 중이었다.] [……의견을 나눌 게 있나요?] [그건 그렇지.] [당신들은 누구죠?]본질을 묻는 그 질문에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인간도, 바바리안도, 요정도, 수인도 모두 통틀어 일컫는 게 가능한 단어가 있었다.
[우리는 탐험가다.] [탐험, 가……?] [왜? 처음 듣는 단어인가?]꼬마 괴물이 오른손을 들어 검지만 아래로 내렸다. 이쪽 문화에서는 저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같은 제스처인 듯하다.
[탐험가… 탐험이 뭐죠?] [미궁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마물을 잡아 죽이는 사람을 뜻한다.] [……역시 당신들은 섬 밖에서 온 거군요.] [그래.]그리 말하며 검지를 아래로 내리자, 꼬마 괴물도 두 번 검지를 까딱였다.
뭐야, 이거 왠지 재밌네.
“아무래도 좀 더 길게 대화를 할 거 같은데, 다들 주변을 경계하고 있어라.”
“알겠다.”
일단 진형을 경계태세로 바꾼 뒤 원만한 대화를 위해 호감도 작업부터 시작했다.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놈이 정말로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먹는다는 게… 뭐죠?]순간 머리가 멍해졌지만, 아무래도 이 상황에서 장난을 칠 녀석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일단 설명을 해줬다.
[먹는다는 건, 음식을 이로 씹어서 목구멍 안으로 집어넣는 걸 뜻한다.]바로 이렇게.
예시를 보여주기 위해 육포를 질겅질겅 씹어서 삼키자 꼬마 괴물이 질색했다.
[…윽. 이상해요. 이빨은 적을 죽이기 위한 기관일 뿐인데…….] [그럼 너희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단 뜻이냐?] [당연하죠! 어떻게 그런 걸… 모, 몸 안에 집어넣어요?!]아니, 그런 생김새로 그런 말을 하니까 뭔가 기분이 이상한데…….
[가, 가끔 싸우다보면 모르고 삼키는 일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보통은 그렇지 않아요!]이건 좀 신기하네.
아니, 이 부분은 몬스터랑 똑같다고 해야 하나?
[그럼 너희는 아무것도 안 먹어도 살 수 있다는 거군?] [물론이죠. 생명수만 충분히 마실 수 있다면 우리 인간은 죽지 않아요.] [생명수……?]내가 의문을 내비치자 녀석이 매고 있던 가방에서 도자기로 된 병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꿀꺽꿀꺽 삼켰다.
절대 주기 싫은 눈치였으나, 본인이 붙잡힌 상황이란 자각은 있었는지 녀석이 병을 내밀었다.
오케이, 그럼 표본은 확보했고.
“베르실, 이게 뭔지 알겠나?”
“잠시만요……. 마력 밀도가 굉장히 높은데…….”
혹시나 하고 건넨 것이지만, 의외로 베르실은 단숨에 정체를 알아냈다.
“이거… 아무래도 마석을 갈아서 물에 탄 거 같은데요?”
“…마석을?”
“네. 일반적으로 도시에서 쓰이는 마력수도 그렇게 만드는데, 그거랑 완전히 똑같아요.”
마력수는 이것저것 마도구를 제작할 때 거의 필수로 들어가는 소재였다.
근데 이걸 주식으로 삼는다라…….
마루피치치…….
그러니까 줄여서 마루는 그리 말하면서도 수줍게(?) 검지를 앞으로 내밀었고, 나도 눈치껏 검지를 내밀어 부딪쳤다.
“지금… 저 괴물이랑 뭘 하고 있는 거지?”
“모른다. 악수인 거 같기는 한데.”
“정보는 어디까지 알아냈지? 마을의 위치에 대해서는 캐냈나?”
아, 그거…….
진작했어야 하는데 뭔가 재밌어서 쓸데없는 얘기만 한참 했네.
“안 그래도 계속 캐묻는 중이다.”
“그런가……. 하긴, 암만 어린애라도 그런 기밀 정보를 적에게 쉽게 노출하진 않겠지. 내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라.”
“…알았다.”
이쯤에서 나도 개인적인 호기심을 접고서, 중요한 정보부터 확인해 나갔다.
[마루피치치, 너희 마을로 가는 입구는 어디에 있나?]아멜리아의 우려와 달리, 붙잡힌 포로를 제 손으로 탈출시켜 줄 만큼 착해빠진 마루는 묵비권 행사 같은 비겁한 짓은 하지 않았다.
비록 내가 원하는 답변은 아니었지만.
[없어요. 지금은…….] [응?] [어른들이 열어줄 때까지, 아무도 마을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요……. 저, 저도 포함해서…….]하, 어쩐지 혼자 수풀에 숨어 있더라니.
[마을 입구를 닫는 게 일반적인 경우냐?] [아뇨……. 우기 때를 제하면 거의 닫지 않아요.]우기라면… 여긴 비도 내리는 건가?
하긴… 지하에 있는 마을이면 비가 많이 내렸을 때 문제가 생기겠네.
[근데 왜 지금은 입구가 닫혔지?] [그건… 아마 저 때문일 거예요.] [너 때문에?] [네. 어른들은 붙잡아온 마물들이 도망친 줄 알고 있을 테니까…….]아니, 그러면 추격조를 짜야지 왜 마을 입구를 닫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거였지만,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그럴 만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탐험가들이 마을 밖으로 탈출한 줄 모를 테니까.
마을 내에 숨어 있다고 판단하고서, 일단 봉쇄를 해두고서 수색을 시작했겠지.
‘얘네가 탈출하고 이제 네 시간쯤 됐으니, 이제 슬슬 놈들도 사건의 전말을 깨닫고 나올 거 같기는 한데…….’
일단 알아낸 사실들을 동료들에게 공유했다.
그리고 투표를 시작했다.
“주제는 ‘대화가 통하며, 자신들을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마물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이고,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개다.”
“두 개?”
아멜리아의 질문에 나는 검지를 위아래로 까딱이며 답했다.
“친구가 되거나.”
그도 아니면.
“전부 죽여버리거나.”
어느 쪽이든 탐험가스러운 선택이 되리라.
***
“친구… 라고요? 마물이랑?”
몇몇은 말도 안 된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나머지는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할까 의문을 갖는 모습이었고.
“그보다 왜 친구가 되려고 하는 거지?”
“이곳에서 살던 놈들인 만큼 아는 것도 많을 테니까.”
“그건 그냥 저 괴물에게 물어보면 안 되나?”
글쎄, 이 꼬맹이가 알면 얼마나 많이 알겠어?
결국 수준 높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어른 괴물들과의 대화가 필수적이다.
다만, 아멜리아는 여전히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그런 이유라면, 어른 괴물을 붙잡아서 심문을 하면 그만이다.”
“그건 그런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이놈이야 어려서 술술 불었지만, 놈들은 아닐 수도 있으니.”
“날… 못 믿는 거냐?”
“그럴 리가. 단지, 꼭 극단적인 방법을 쓸 필요는 없다는 거였다. 아직 놈들 세력이 얼마나 강한지도 모르니까. 근데… 얼마 전에는 함부로 죽이지 말자니 뭐니 하지 않았었나?”
“그건 사람일 때의 이야기고.”
“아.”
“……됐고, 친구가 되는 게 실패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거지?”
아멜리아가 거두절미하고 물었고, 나 역시 고민하지 않고 답했다.
애초에 선택지가 두 개였지 않은가.
A가 안 되면 당연히 B로 가야지.
“전부 죽인다.”
“그런가. 그렇다면 나는 친구가 되자는 쪽이다.”
“의외군?”
“나도 이들에 대해선 조금 흥미가 있으니까.”
아무튼, 아멜리아를 시작으로 투표가 이어졌다.
그리고…….
“친구가 되자가 셋. 그냥 죽이자가 셋이군.”
어째선지 이번에도 내 선택에 따라서 결과가 정해지게 되었다.
스윽.
나는 고개를 돌려 마루피치치를 보았다.
그리고 막 결정을 내리려는 차.
휘이이이이익-!
언제 어디서든 싸울 준비가 끝나있는 전사의 육신이 위협적인 소음을 캐치했다.
누가, 어디서, 왜.
그런 것을 머리로 판단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푸욱-!
상체를 가린 방패 위로 틀어박힌 의문의 화살.
솔직히 말해서 조금 놀랐다.
‘…이게 박히네.’
깊게 관통한 것은 아니지만, 방패의 합판을 뚫고 틀어박힌 한 발의 화살.
심지어 보아하니 물리 딜 100%였던 거 같은데.
“전투 준비!”
습관처럼 그 단어부터 외치며 화살이 날아든 방향을 확인했다.
안 그래도 수풀에서 각종 병기로 무장한 괴물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목표는… 이 꼬맹이를 구출하는 건가.’
아마 활을 쏜 건 빈틈을 벌기 위해서였겠지.
놈들의 의도를 눈치챈 즉시, 방패를 버렸다. 그리고 팔을 뻗어 마루피치치의 뒷덜미를 잡았다.
[으악!]내 새로운 방패였다.
[놔, 놔, 놓으라고……!]방패 주제에 발버둥치며 소리를 꽥꽥 지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성능 하나는 확실했다.
타닷.
특수 부대 요원처럼 일제히 등장한 괴물놈들이 내 새 방패를 보고서 주춤했다.
[비겁한 놈…….] [어린아이를 인질로 잡다니…….]가까이 오지도 멀어지지도 못한 채 쏟아내는 극찬.
[…마, 마우라티티 아저씨!] [걱정 마십시오. 반드시 구해드리겠습니다.]이제 보니 다들 이 꼬맹이랑 아는 사이인 거 같다.
‘근데 왜 존칭을 쓰지? 신분이 높나?’
알 수 없지만, 정말 그렇다면 차라리 잘 됐다.
나는 새로 획득한 몬스터 실드를 높이 치켜들며 외쳤다.
[전부 무기를 버려라! 아니면 이 꼬마의 목숨은 없다!]그런 내 행동을 보며 옆에 있던 아멜리아가 작게 중얼거렸다.
“의외군. 넌 친구가 되자는 쪽일 줄 알았는데.”
“응? 친구가 되려는 거다만?”
내가 천연덕스럽게 답하자, 아멜리아가 짧게 반문했다.
“…이딴 게?”
“크흠……!”
아무리 그래도 ‘이딴 게’라니.
“……원래 다들 싸우면서 친해지는 거다.”
우리도 그랬잖아?
***
침묵이 감돈다.
[인간말을 했다.] [마물이… 어떻게 우리 말을?] [설마 촌장이 말했던…….]수십 마리의 괴물들은 쉽사리 무기를 내리지도, 덤벼들지도 못한 채 나를 보았고.
나 역시 전투태세를 유지한 채 기다렸다.
그리고 한 1분쯤 흘렀을까?
터벅, 터벅.
머지않아 수풀 속에서 키가 3.5m는 됨직한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놈은 커다란 몸만큼이나 큰 활을 어깨에 매고 있었다.
그래, 얘가 그 궁수구나.
[네가 우두머리냐?]먼저 말을 걸자, 활괴물이 역으로 물었다.
[마물, 우리 말을 어떻게 쓰는 것이지?] [무기를 버려라. 그럼 말해주지.]그 말에 대답한 것은 놀랍게도 내 방패였다.
[……아, 아버지! 안 돼요! 저는 괜찮으니까……!]이야… 아빠였어?
“봤나? 비요른이 흉악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제 저 마물들은 전부 죽은 목숨이다! 하하핫!”
…내가 웃었던가?
잘 모르겠지만, 일단 표정 관리를 하며 대화에 집중했다.
아빠의 호통 한 번에 방패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 어른들 얘기하는데 애들이 낄 필요는 없지.
[마지막으로 말한다. 네 아들을 살리고 싶다면, 당장 무기를 버리고—.] [마물, 너를 마을에 초대하고 싶다.] [………뭐?]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으나, 내 귀가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너를 마을에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혹시 이해가 안 되나? 어려운 어휘는 아니었을 텐데.]어… 이건 어휘가 문제가 아니지 않나?
[이 상황에서 갑자기 초대를 하면 내가 응할 거 같나?]저 활괴물의 수준을 보니, 이 종족도 방심할 게 못 된다.
숫자는 우리가 명백히 열세고.
고립된 장소에서 뒤통수라도 맞으면 아주 높은 확률로 골치 아픈 상황에 처할 터.
확실하게 안전이 확보되거나 신뢰가 쌓이기 전까지는 턱도 없는 제안이다.
[초대를 거절하다니… 야만적이군.] [나무에 시체를 걸어둔 건 인도적이고?] [……마을로 데려간 네 동족들은 모두 무사하다. 절대 해치지 않을 테니, 경계심을 버려라.]그걸 어떻게 믿어?
[원한다면 내 아들을 계속 데리고 있어도 좋—.] [거절이다.]다시 한번 단호하게 거절하자 저쪽도 더 떼를 쓰지 않았다.
단지 특이한 요구를 해왔을 뿐.
[그럼 잠깐 기다려줄 수는 있겠나? 정말로 아주 잠깐이면 된다.]이래놓고 지원군을 불러오는 거 아냐?
좀 불안하긴 했지만, 이 제안은 응하기로 했다.
내 착각일 수도 있지만, 뭔가 저쪽의 적대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던 탓이다.
‘…내가 말을 할 줄 아는 걸 알고서 왠지 분위기가 확 달라졌단 말이지.’
그렇게 묘한 대치를 이룬 채 10분 정도가 흘렀을 때였다.
[촌장이다…….] [모두 길을 터라.]뒤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전사들이 홍해처럼 갈라지며 길을 내주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턱 아래로 하얗게 수염이 난 괴물이 지팡이를 짚으며 걸어왔다.
[반갑네. 이름이 뭔가?]어딘가 굉장히 부드럽게 들리는 말투.
[얀델의 아들 비요른이다.] [좋은 이름이군. 뉘아치치! 전사들을 이끌고 뒤로 물러나라! 이들과 긴히 할 얘기가 있으니!]스스로를 인간으로 칭하는 이 괴물들의 문화가 어떤진 모르겠지만, 촌장의 명령에 괴물들은 어떤 이견도 없이 멀찍이 떨어져 거리를 벌렸다.
묘하게 들리는 그 단어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했지만, 촌장은 송곳니가 과하게 튀어나온 주둥이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 소개를 하지 않았군. 나는 이 마을의 촌장인 브륀그리드일세.] [브륀그리드?]이거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은데.
“에밀리, 브륀그리드란 이름을 아나?”
“대현자의 동료 중 한 명이 그런 이름이었던 거로 기억한다.”
아, 그래서 들어봤던 거 같구나.
이내 다시 본래 대화로 돌아와 촌장을 보았다.
촌장이 손을 뻗고 있었다.
“경계치 말게. 악수를 하잔 것뿐이니.”
“아…….”
나는 멋쩍은 미소를 내지으며 악수를 받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뒤늦게 깨달았다.
“얀델의 아들 비요른이라고 했나?”
지금 촌장은 말하고 있었다.
고대어가 아닌 라프도니아어로.
“반갑네 정말로. 필시 자네는 라프도니아에서 온 탐험가겠지?”
뭐야, 이거.
“그래, 밖은 시간이 얼마나 흘렀나?”
얘 대체 정체가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