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552)
552화 데자뷰 (1)
미궁 진입 103일 차.
어느덧 진입 일수가 세 자리를 넘어간 시기.
슬슬 도서관 노가다를 잠시 멈출 때였다.
지금부터는 바위섬으로 가서 뉴비들을 맞이해야 하니까.
‘좀 괜찮은 애들이 들어와야 더 위에 있는 책도 노려볼 수 있을 텐데.’
지금만 해도 소환책을 까면 3등급이 네다섯 마리씩 등장하며, 간혹 2등급이 껴있는 경우도 있다.
뭐, 조합이 괜찮으면 한두 번은 어떻게 잡을 수 있겠지만…….
공장 돌아가듯 술술 잡는 건 이제 불가능했다.
내가 탱커 역할을 수행하며 장기간 전투를 펼쳤고, 한 번 전투가 끝나면 휴식 시간을 길게 가져가며 소모된 자원을 회복해야 했다.
‘저번에는 사망자도 나올 뻔했고 말이지…….’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인원 확충은 선택이 아닌 필수인 셈인데…….
야영지를 정리하고, 떠날 채비를 갖추고 있자니 멀리서 시선이 느껴진다.
해당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멀리서 나를 빤히 바라보는 햄식이가 보였다.
[가는 거냐……?]가까이 다가가자 엄한 발끝을 보며 말하는 햄식이.
첫 만남은 좀 그랬지만, 결과적으로 친구가 되고 도서관에서 사냥하는 내내 말동무를 해주었더니 정이 쌓인 모양.
“아, 걱정 마라. 금방 다시 올 거니까. 황금책도 두고 가지 않냐?”
[하지만, 내 만년필을 갖고 가면서……!]“어허, 친구끼리는 사소한 건 묻고 넘어가는 거다. 알겠냐?”
[…….]“아니, 정말 금방 올 거라니까 그러네.”
[누, 누가 기다리고 있겠다 했냐? 평생 오지 마라! 너희 같은 건 없는 게 훨씬 편하다! 조용하고!]허허, 얘 또 이러네.
햄식이가 뱉는 마음에도 없는 말은 바바리안답게 대충 한 귀로 듣고 흘려 넘겼다.
“남작님, 전원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래? 알겠다.”
이내 도서관을 떠날 채비가 끝났지만, 어째선지 쉬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야, 햄식아.”
[……왜?]“없는 동안에 책 정리 잘 하고 있고. 배 안 고파도 시간이 되면 내가 준 육포도 먹고, 만약 이상한 애들이 나타나면 절대 얼굴 보여 주지 말고, 책장 뒤에 꼭 숨어서 내가 올 때까지 기다—.”
[내가 애냐! 그런 헛소리하지 말고 얼른 갈 거면 떠나라!]아니, 그렇게 말해도 말이지.
후… 진짜 왜 이렇게 걱정이 되지?
그사이에 정이 쌓인 건 사실 내 쪽이었나?
“그럼… 간다, 햄식아…….”
“빨리 올게.”
[…응.]이내 나는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떼며 등을 돌렸다. 그리고 멀리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대원들 사이를 지나쳤다.
스윽.
내가 선두에 설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대원들.
먼저 앞에서 계단을 오르자, 대원들이 내 뒤를 따라 진형을 갖춘 채 이동이 시작됐다.
섬 밖으로 나온 뒤엔 소환한 배에 몸을 실었고, 그대로 몇 시간 뒤에는 바위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누군가 온 흔적은 없는 듯하네요.”
혹시 몰라서 일찍 오기는 했지만, 역시나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지하 1층에 내려온 탐험가는 없었다.
하긴, 이제 미궁이 열린지 3일 차니까.
그 시간에 3층에서 파밍을 끝내고 1층까지 다시 내려오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는 할 터.
“무슨 생각하세요?”
“그냥, 햄식이가 잘 있을까 걱정돼서.”
“아저씨 눈에는 정확히 어떻게 보이는지가 조금 궁금하네요……. 저는 아무래도 모습이 그렇다 보니 영 다가가지를 못하겠던데…….’
“너는 어떻게 보인댔지?”
“……마법사요. 해골로 된 지팡이를 들고 있고, 리치보다도 사악한 몰골을 한 채 끔찍한 소리를 내요.”
아, 그랬댔지.
그때는 그냥 듣고 넘어갔지만, 여러 표본들이 쌓인 지금에는 그런 생각이 든다.
‘해골 지팡이를 든 사악한 마법사라…….’
이거 시체 수집가랑 파멸학자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그런 상상 속의 모습인 거 아닌가?
물론,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저… 남작님, 단원들을 데리고 해변가에 가도 괜찮겠습니까?”
“해변가?”
“그… 바다에는 이것저것 떠다니지 않습니까? 남는 시간 동안에 그거라도 좀 주워볼까 해서…….”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한동안은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으니.”
대기 시간이 지루했던 몇몇 탐험가가 총대를 메자, 눈치를 보던 다른 대원들도 하나둘 합류해 폐지를 주우러 해변가로 떠났다.
예전에 항해 중에 3등급 소재의 장비를 주웠던 게 크게 작용한 거 같았다. 그때부터 우리 사이에서 그런 말이 돌기 시작했거든.
잘하면 잭팟이 터질 수도 있다고.
운만 따라준다면 고대 영웅들이 쓰던 장비를 줍는 것도 가능한 게 아니냐고.
‘뭐, 진짜 운이 좋으면 그런 대박이 있을 수도 있긴 하겠지만…….’
솔직히 말해, 나는 회의적이었다.
그동안 그 많은 곳을 돌아다녔지만, 결국 제일 값비쌌던 게 얼마 전에 주운 3등급 갑옷이었으니까.
‘나중에 지하 1층이 제대로 개방되면 전문적으로 폐지만 줍는 놈들도 나오는 거 아냐?’
음, 내가 보기엔 비효율적인 짓이지만 그런 부류가 나타날 거 같기는 했다.
바위섬 자체는 몬스터가 없기도 하고.
우기만 제때 피할 수 있다면, 여기서 노가다를 하는 것도 하나의 수익원이 될 수 있으리라.
‘그나저나 시간 진짜 안 가네…….’
하루 종일 스타트 포인트에 앉아 노가리를 떨기도 잠시, 지루함을 이기지 못한 나는 결국 해변가로 떠나 대원들과 함께 폐지를 주웠다.
그리고 얼마나 흘렀을까.
하루, 이틀, 사흘…….
어느덧 107일 차가 끝나갈 무렵이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1층이 폐쇄될 때까지 불과 몇 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는 뜻.
‘……이렇게까지 안 올 리가 없는데. 왕가 새끼들이 뭔가 수를 썼나? 못 내려가게?’
슬슬 그런 불안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토록 떡밥을 뿌렸으니, 이번에는 실력 있는 뉴비들이 유입될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건만.
‘지금까지 안 온다는 건… 위에 뭔가 문제가 생겼단 거겠지.’
쩝, 그러면 이번에는 뉴비들 없이 우리만으로 공략을 이어나가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며 애꿎은 시계만 바라보던 때였다.
후우우우웅-!
“포탈! 포탈이 열렸습니다!”
수십 개의 포탈이 열리며 뉴비가 들어섰다.
***
새로 들어온 뉴비를 어떻게 요리해야 하는가.
그것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다.
일단 지하 1층에 대해 알려 주겠다며 이곳저곳 데리고 다니며 지하 1층이 녹록지 않은 곳이란 걸 인지시킨 뒤, 그대로 노예 계약을 맺으면 끝이었다.
하지만…….
‘후, 어쩐지 마지막 날까지 아무도 안 내려오더라니.’
이번 회차에 유입된 뉴비들을 본 순간 나는 곧장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방식이 결코 통하지 않을 상대라는 걸.
“진형 재구축!”
“재구축!”
이내 지하 1층에 내려와 착지하자마자 엄숙하고 절도 있게 진형을 잡기 시작한 무리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최악의 경우네.’
일반적인 클랜이라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신관.
복장을 단일화한 마도 병단.
그리고 매끈한 판금 장비를 걸친 기사 무리까지.
직업군은 크게 셋으로 분류됐지만, 그들은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니아 라프도니아……!”
왕가의 문양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는 것.
이내 진형 구축이 끝나자, 그들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사내가 나를 보며 단걸음에 다가와 경례를 취했다.
“뵙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얀델 남작님! 설마 이렇게 바로 만날 수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건만. 생존해계셔서 정말로 다행입니다!”
“너는… 누구지?”
“아, 제 소개가 아직이었군요. 제1 왕실기사단 소속 질런 에보스트입니다.”
“에보스트 남작과의 관계는?”
“제 형님이십니다.”
후,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건 지휘관의 신분이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이었다.
남작 본인인 것도 아니고 동생이라니.
어떻게 잘만 하면 내 남작의 직위로 찍어 누르는 것도 가능할 것 같은데…….
“아, 그리고 현재는 이번 탐사군의 부사령관직을 임시로 수행 중입니다.”
그런 희망은 그 한마디에 산산조각 났다.
“부사령관……?”
“예. 잠시 물러서주시겠습니까? 곧 2차 탐사군이 진입할 예정이라서.”
그 말에 멍하니 뒤로 물러서기도 잠시.
후우우우웅-!
다시 한번 상공에 수십 개의 포탈이 열리며 수십 명의 탐사군이 지하 1층에 진입했다.
그것도 시간 차를 두고서 두 번이나.
‘60명이 세 번 들어왔으니…….’
180명.
탐사대가 아니라 ‘탐사군’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규모의 병력.
다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니아 라프도니아! 왕실의 명을 받은 탐사군 180인 전원이 무사히 목적지에 진입했음을 보고드립니다, 사령관님!”
진입하자마자 보고부터 듣는 사령관.
“현재 주변에 위협적인 존재는 감지되지 않으며, 현 임무의 제 1급 목표물인 비요른 얀델 남작을 발견했습니다. 총원 38인으로 클랜 아나바다의 일곱 명을 제한 나머지는 1차, 2차에 진입한 헥츠 클랜, 아르민 탐사단의 일원으로 추정됩니다!”
“그렇군.”
귀신처럼 새하얀 피부를 가진 사령관이 은발을 찰랑거리며 내게 걸어왔다.
너무도 익숙한 얼굴의 남자였다.
물론 젊음이 가득하던 그때보다는 20년 정도 늙기는 했지만.
“승작식 때 멀리서 보기만 하고 인사는 나누지 못한 것으로 기억하오.”
제1 왕실기사단의 단장.
빛의 기사란 이명을 지닌 왕가의 집행자이자…….
“처음 뵙겠소이다, 얀델 남작. 제롬 세인트레드라 하오.”
20년 전에 철가면으로 노아르크에서 활동하던 시절에 만나 이런저런 사건이 있었던 바로 그놈.
“그, 그래… 처음 뵙겠다! 반갑다! 야, 얀델 남작의 아들 비요른이다!”
……못 알아봤겠지?
***
세간에 도둑이 제발 저린다는 말이 있듯.
두근두근두근-!
절대 알아볼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한다.
“……얀델 남작의 아들? 소개가 특이하시구려.”
오케이, 일단 아직까지 뭔가 낌새를 느낀 거 같진 않고…….
하, 아까는 당황해가지고 말이 아무렇게나 나왔네.
“특이하단 말은 자주 듣는 편이다.”
일단 차분하게 바바리안스러운 대답을 해준 뒤, 열심히 상황을 정리했다.
제롬 세인트레드.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전에 기록의 파편석을 노리고 노아르크에 내려왔다가, 나랑 한바탕 싸웠던 그놈.
이놈이 나를 알아보는가 아닌가에 대한 불안과는 별개로 상황은 최악에 가까웠다.
그야 이놈은 백작 작위를 갖고 있으니까.
쉽게 말해, 작위로 찍어누르는 게 원천 봉쇄됐다는 뜻인데…….
‘설마 탈출법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곳에 이런 거물을 보냈을 줄이야.’
암만 봐도 왕가답지 않은 행보다.
그래서 당연히 이번에도 뒷짐을 진 채 사태를 더 주시하리라 여겼건만.
“하하, 아무튼 이런 데서 고향 사람을 만나니 너무 반갑군! 도시에는 별일 없나?”
“도시? 도시는 당연히 왕가의 비호 아래 무탈하게 잘 보호받고 있소만…….”
“그렇다니 참으로 잘 됐군! 그럼 우리는 이만 가보겠다. 너희도 탐사 잘 하고! 잘 지내라! 다들 뭐 하냐? 얼른 떠날 준비하지 않고?”
이내 자연스레 작별 인사를 하고 등을 돌리자, 녀석이 순간이동을 한 듯 내 앞에 나타나 길을 가로막았다.
그때도 봤던, 3등급 이동기 [빛의 관문]이었다.
“남작, 지금 어디를 가시려는 것이오?”
“아… 배가 고파서…….”
“본인의 배려가 없었구려. 식량이 떨어졌을 수도 있을 터인데, 하나 이제는 걱정 마시오. 지원 물자는 충분하니.”
그래, 이렇게 달아나게 둘 생각은 없다 이거지?
나도 장난스러운 태도를 접고서 목소리를 낮췄다.
“세인트레드 백작, 내 앞에서 비켜라.”
공과 사를 명백하게 구분하는 차가운 태도.
다만, 놈은 그런 내 기세에도 아무렇지 않게 할 말을 다 이어갔다.
“그럴 수는 없소이다. 남작께서는 미지의 계층에 가장 먼저 진입한 탐험가인 데다가, 우리 탐사군의 목표 중 하나는 남작의 구출도 있단 말이오.”
“거, 누가 구조해달라고 요청이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군.”
“남작께서는 우리 왕국의 귀중한 보물이오. 그런 남작을 잃는 게 얼마나 큰 손실인지를 알아주시오.”
“그래서? 앞으로 어쩌겠다는 거지?”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지금 한 클랜의 수장이기도 한 나를 사적으로 징집해서 탐사군에 강제로 편입시키기라도 하겠단 거냐? 무슨 권리로?”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했지만, 녀석은 전혀 기분 상한 내색을 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미소 지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게는 남작을 강제로 군에 편입시킬 권리가 없소. 재난 상황 시 탐험가에 대한 강제성을 얻는단 법률이 있기는 하나, 이를 왕국의 작위 귀족인 남작에게는 적용할 수 없을 것이오. 하지만…….”
녀석은 내 반발을 예상했다는 듯 품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냈다.
뭐하는 물건인지는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는 왕명이오.”
쉽게 말해, 저 종이에 뭐가 적혀 있든 따르지 않으면 반역도 무리로 낙인찍힌다는 것인데……
“라프도니아의 남작, 비요른 얀델은 들어라.”
이내 녀석이 두루마리를 펼치며 근엄한 목소리로 내용을 읽어내렸다.
“사악한 반역도들이 활개를 치는 혼란스러운 날이다. 왕가의 빛이 언제까지고 이 아름다운 도시와 신민들을 보호할 것은 믿어 의심치 않으나, 헛된 소문을 믿은 인재들이 욕심에 눈이 멀어 덧없이 사라지는 것은 이 도시에도 크나큰 손해일 것이다.”
예법의 최고봉인 왕실 문서인 만큼 서두가 길기는 했지만.
“하여, 군주로서 이대로 좌시할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이렇게 탐사군을 꾸려 출정을 보내니…….”
결국 핵심만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비요른 얀델 남작은 제 1차 탐사군에 합류하여, 사령관 제롬 세인트레드의 ‘지휘 아래’ 미개척 지역을 샅샅이 탐사하고, 도시로 돌아갈 수단을 찾아내라.”
에헤이, 제대로 조졌네 이거.
Any updates? I know it’s on a break but still some more chapters r 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