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582)
582화 개문 (3)
다음 행선지를 어디로 할 것인가.
그 질문에 어디로 하는 게 좋겠냐며 질문을 던져 떠보기도 했지만, 촌장은 내 마음대로 하라는 답변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네.’
결국 나는 한숨을 쉬며 행선지를 정했고, 촌장은 이따가 있을 수뇌부 회의에서 그곳을 행선지로 공표하겠다고 말했다.
탐사에 개입할 생각이 없단 말이 사실인 듯, 촌장은 철저하게 바지사장 역할을 수행하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연구는 어떻게 됐나?”
촌장과 헤어지기 전에 나는 다시금 연구에 대해 언급했다.
마법사들이 차원 비석을 강제로 활성화시킬 수 있을지 모른단 가능성 제시에 시작되어 열흘이 넘게 진행됐던 바로 그 연구.
“흐음, 그거라면 실패했다고 말했지 않나?”
“그만큼 붙잡고 있었으니 뭔가 성과라도 있진 않았을까 해서.”
“성과라…….”
말꼬리를 흐리던 촌장이 의미심장한 말을 뱉었다.
“실은 아예 없지는 않았네.”
“…없지는 않았다니?”
“[이교제단]을 통해 이곳을 탈출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으니 말일세.”
어떻게 해서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가.
그러한 세세한 설명은 없었지만, 저 말은 사실일 것이다. 아니, 애초에 저 양반이 마법사들에게 열흘 넘게 연구 시간을 줬던 것도 그래서겠지.
나는 그냥 직설적으로 물었다.
“그럼 도시로는 언제 돌아갈 생각이지?”
내가 생각하기로, 촌장이 아직까지 미궁에 남아 있는 진짜 이유는 ‘불확실성’이었다.
지하 1층은 굉장히 특이한 계층이었으니까.
대표적인 예로, 탐사군이 처음 이곳에 내려왔을 때 차원문을 열려 했지만 차원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
여길 일반적인 미궁의 필드로 간주해도 되는가.
마법사와 탐험가들 사이에서 수많은 갑론을박이 있었고, 끝내 의견은 ‘그렇다’라는 쪽으로 기울었다.
결정적인 증거는 명예의 돌이었다.
[바바리안족의 위대한 전사 비요른 얀델과 그의 동료들이 최초로 지하 1층을 발견했다.]여러모로 특이한 장소지만, 이 문구 하나만으로 미궁 내에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차원문이 어째서 안 열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뭐, 차원문을 열 수 없는 특수 공간이 미궁 내에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니까.
“확신을 얻었으니 이제 그냥 돌아가면 되는 거 아닌가?”
재촉하듯 그리 물었지만, 촌장은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은 준비가 끝나지 않았네. 당장 돌아가 어떠한 의심도 받지 않을 자신이 없으니 말일세.”
뭐, 그건 그렇지.
내가 촌장의 입장이었어도, 한참은 그 몸에서 머물며 제롬 세인트레드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을 테니.
“자네는 내가 얼른 떠났으면 하는 모양이군?”
“허, 그걸 말해야 아나?”
“어째서인가? 우리는 한배를 탄 입장일 텐데.”
어째서기는. 그걸 몰라서 묻나.
“한배는 무슨. 차원 비석을 작동시키는 방법에 대해서 아직 아무 말도 안 해주고 있으면서.”
“하긴… 나를 믿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군.”
툴툴대듯 말하자 촌장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윗 사람처럼 내 팔뚝을 살짝 두드린다.
“너무 불안해 말게. 나는 분명하게 이곳을 떠날 것이고, 그때가 되면 모두 말을 해줄 터이니.”
조금 웃기다.
과연 촌장 이 녀석은 알기나 할까?
이렇게 의미심장한 말을 할 때마다 괜히 더 불안감이 커진다는 걸.
‘……그냥 내가 먼저 조질까?’
잠시 그런 충동이 피어오르기도 했으나, 조금만 더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렇게 자리를 떠나려는 때였다.
“아, 그나저나 아침에 가져간 그 물건은 잘 썼나? 어긋난 신뢰 말일세.”
“……아, 돌려주는 걸 깜빡—.”
“굳이 돌려줄 필요는 없네. 나보다는 자네에게 더 필요한 물건 같으니.”
거, 아주 저주를 하라지 그냥.
돌려까는 듯한 말에 순간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어긋난 신뢰는 챙겨서 집을 나왔다.
***
주거지로 삼고 있는 저택으로 돌아왔을 때.
에르웬과 아멜리아는 뭘 하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이는 미샤도 매한가지였다.
대신 베르실 고울랜드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어요?”
“그러고 보니, 할 말이 있다고 했지.”
무슨 말을 할지는 뻔했지만 모르는 척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소리를 차단하는 마법까지 쓴 후에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역시나 내 예상대로였다.
“악령들의 집회가 폐쇄됐다는 소문이 있어요.”
일단 ‘소문’이라는 말을 통해 가장 중요한 정보를 전달해오는 베르실.
살짝 어이가 없었다.
“소문이 있다고?”
“네. 일단… 우리 중에도 악령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아니, 그러니까 그 소문은 어디서 들었는데?
보통 사람이라면 캐물을 테지만, 나는 이번에도 모른 척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항상 정보의 출처를 묻지 않았기 때문인지, 베르실은 나를 대할 때 안일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다른 곳에 가서 이러면 안 되는데 말이지…….’
리더로서 조금 걱정이 되는 부분이다.
아무튼, ‘소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후에는 자연스럽게 미샤가 대화의 도마 위에 올랐다.
“근데 오전에 그건… 어떻게 된 거예요?”
“미샤 말이냐?”
“네. 칼스타인 씨가 배신자일 수도 있다는 정보, 그거 아직 유효해요. 너무 친하게 지내시는 건…….”
조심스레 우려의 감정을 표하는 베르실.
다만 그렇기에 더욱더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그 부분은 네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얼마 전 배신으로 볼 수 있는 정황을 직접 확인했으니까.”
“…네? 정말요? 그런데 왜 제게는 말을…….”
“그야 별거 아닌 일이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우리를 해칠 의도였던 것도 아니고.”
“칼스타인 씨를 믿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걸 어떻게 신용할 수 있죠?”
후, 그렇게 물을 줄 알았지.
“어긋난 신뢰를 사용했다. 사정을 전부 들은 뒤엔 숨기고 있는 게 없단 것까지 확인을 끝냈고.”
어긋난 신뢰를 썼단 말에 베르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여기서 더 믿지 못하겠다고 하면 그건 억지나 다름없으니까.
물론 내가 별거 아니었다고 말한 배신 행위가 무엇인지가 자못 궁금한 듯했지만, 이 부분까지 말해줄 생각은 없었다.
“아무튼, 이제 미샤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감시 같은 것도 하지 않아도 되니, 앞으로는 그냥 평범하게 동료처럼 대해줘라.”
“……네. 그럴게요.”
오케이, 그럼 이 주제는 여기서 끝.
이후 나는 베르실에게 임시 4조 전원을 모아줄 것을 부탁했고, 전원이 집결한 후에는 오늘 이 섬을 떠날 것이니 채비를 갖추라 전했다.
“아……! 다시 탐사를 시작하는 겁니까?”
“그럼 비석 연구는 실패했나보군요…….”
“하아… 가족들이 걱정할 텐데.”
당장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단 것에 낙담한 이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크게 나쁜 분위기는 아니었다.
“안 그래도 지루하다 싶었는데, 잘 됐군요.”
“아직 못 가본 곳도 많으니까 말이오.”
이들 또한 모두가 탐험가였다.
***
솨아아아아.
네 척의 배가 은빛 물결을 헤치며 나아간다.
참고로 군함에 비해 한없이 작고 소중한 우리 클랜 아나바다의 배가 위치한 곳은 최후방.
뱃머리에 앉은 나는 멍하니 앞서 가는 군함들을 바라보았다.
‘돈을 얼만큼 더 벌어야 저런 배도 사고 할 수 있으려나…….’
사실 아이기스의 장벽이랑 신록거창을 팔면 못 살 건 아니지만, 그래 봤자 쉽푸어가 될 뿐이다.
여유 자금으로 저런 걸 사도 문제가 없을 정도의 재력을 갖추지 않으면 저 배를 사도 의미가 없—.
“얀델 씨! 지금 거기서 뭐 하는 짓이에요!”
뱃머리에 앉아 유유자적 생각을 정리하고 있던 때, 뒤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3 마도병단의 부단장, 레이븐이었다.
“위험하게! 얼른 내려와요!”
어딘가 화가 난 듯한 목소리라 얼른 갑판 위로 올라오니, 내 가슴보다도 작은 눈높이를 가진 레이븐이 마치 어린애를 보듯 나를 본다.
거, 그렇게 올려다보면 웃기기만 한데.
“뭐예요? 지금 그 눈은……?”
“…아무것도.”
이내 기지개를 켜며 선상 위를 쭉 둘러보자 레이븐 외에도 익숙한 얼굴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멜란드 카이슬란, 스벤 파라브, 그리고 도서관섬 공략 당시 친해진 기사들 중에 눈여겨 봤던 녀석들 몇 명.
이제부터 이들은 임시 4조의 소속원이었다.
그야 떠나기 전에 촌장에게 부탁을 했더니 흔쾌히 들어줬거든.
“그나저나 레이븐, 물을 게 하나 있는데.”
“…뭔데요?”
“마을에서 비석 연구 때 무슨 일이 있었나? 너도 연구에 참여하지 않았나.”
“아, 그거요?”
항해하느라 시간도 남겠다 궁금했던 부분을 묻자, 레이븐은 열과 성을 다해 전문 용어까지 써가며 내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 그 결과.
‘뭔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네.’
차원단절 현상이니, 공간좌표이니 뭐니 말을 해봤자 야만인의 탈을 뒤집어쓴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을 리가 만무.
대충 한 귀로 흘리며 듣고 있자니, 그런 내 상태를 눈치채고서 레이븐이 부끄러워하며 주제를 돌렸다.
“크흠! 제가 너무 어렵게 말한 거 같네요……. 근데 얀델 씨, 저도 하나 물어봐도 돼요?”
“뭐든지.”
“지금 우리가 가는 곳이 어디예요? 얀델 씨라면 알고 있을 거 같아서.”
“아, 너는 저번 수뇌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지.”
“마법사들은 다 열외였어요. 서둘러 연구 자료를 정리해야 해서요.”
“우리가 갈 곳은 여기다.”
이내 나는 햄식이 하우스에서 약탈해 온 지도를 펼친 뒤 목적지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도서관 섬을 기준으로 일주일 거리 정도 떨어진 미확인 섬. 무지개 섬과 달리 가까운 편이니, 일단 이곳부터 탐사를 해보려는 판단이었는데…….
참고로 이 섬에 대해 아는 게 있냐는 내 물음에 촌장은 이렇게 답했다.
[참으로 비밀스러운 섬이지. 특이하기도 하고.] [특이하다니?] [직접 가보면 알 걸세. 나머지는 도착하면 말해주지.]특이한 건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하니 확실히 비밀스럽게 느껴지는 섬이긴 했다.
“흐음… 여기는 어떨지 궁금하네요. 이 계층의 비밀을 밝힐 단서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무튼, 미확인 섬이기 때문일까?
레이븐은 그곳이 어떤 곳이냐 하는 식의 물음을 던지지 않았고, 그거로 대화는 끝.
이후로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다.
그리고.
“단장님! 대장선이 멈췄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신호도 올라왔어요.”
일주일의 항해 끝에 목적지에 도달한 나는 왜 촌장이 특이한 섬이라 말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저게 섬이라고?”
나무도, 흙도 없다.
아니, 정확히는 그런 게 올라가 있을 수 있는 지반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솨아아아아아-!
거대한 비석 같은 무언가가 철렁이는 은빛 물결 사이에 우뚝 솟아 있을 뿐이었다.
***
섬 근처에 대충 배를 띄워둔 뒤, 나는 촌장이 타고 있는 대장선으로 넘어가 독대를 했다.
“자, 이제 도착했으니 말해봐라. 저… 바다 위에 떠 있는 비석은 대체 뭐지?”
안에 들어서자마자 ‘어긋난 신뢰’를 작동시키며 묻자 촌장이 어이없다는 시선을 보냈다.
“왜? 너도 말했지 않냐. 내게 필요할 거 같다고.”
“그런 의미가 아니었네마는…….”
“됐고, 대답이나 해라. 시간이 아까우니까.”
이번에도 스리슬쩍 넘어가게 둘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그 의지를 촌장도 느꼈을까?
알 수 없지만, 촌장은 순순히 질문에 대한 답을 털어놓았다.
“저건 비석이 아니라, 문일세.”
“문……?”
“손을 대면 문이 열리고, 미지의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지.”
“안에는 뭐가 있지?”
촌장은 잠시간의 텀을 두고 답했다.
“나도 모르네.”
기대했던 답변은 아니었다.
“…모른다고?”
“그래, 애초에 저 문은 내 예전 몸으로는 여는 것조차 불가능했으니까.”
“그런데 저게 문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지?”
“실험을 해봤네. 자네들과 달리, 우연히 이곳에 흘러들어온 생존자를 이용해서. 아, 미리 말하지만 나는 저 문 안으로 들어가는 게 불가능했기에 저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전혀 알 수 없네.”
“…….”
“안에 들어갔던 그는 결국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으니까.”
왠지 모르게 오싹하게 들리는 한마디.
다만 불길한 감정은 일단 뒤로한 채 확인할 것부터 얼른 확인했다.
“생존자란 건 무슨 소리지?”
“일전에 가끔 흘러들어온 인간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들 중에 간혹 살아남은 이들도 있었네.”
“이해가 안 되는데. 그럼 어째서 그들의 몸을 빼앗아 나가지 않은 거지?”
내 물음에 촌장은 흑색의 돌덩이를 품에서 꺼냈다.
“그땐 이 돌멩이가 바라는 만큼의 제물을 모으지 못했으니까. 사실 필요한 만큼 모인 것도 최근일세. 알다시피… 이번에 꽤 많이 들어오지 않았던가?”
마을에서 실종됐다가 지하실에서 시체로 발견된 은사자 클랜을 말하는 것이리라.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듯한 저 눈빛이 오늘따라 유난히 거슬렸지만, 일단 티는 내지 않은 채 촌장의 말을 새겨들었다.
“홀로 안으로 들어섰던 그 탐험가가 자네만큼 강했다는 것. 하지만 그럼에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 내가 알려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일세. 몇 명이 그 안으로 진입할 수 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네.”
“…….”
“그런데도 예정대로 저 안까지 탐사를 해볼 셈인가?”
기분 탓인진 몰라도 어딘가 시험을 하는 듯한 말투다. 뭐, 말투가 어쨌든 내가 할 대답은 정해져 있는 거나 다름없었지만.
“당연히, 저 안까지 조사한다.”
나는 이 계층의 모든 것을 낱낱이 밝혀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
이후 어긋난 신뢰가 꺼지기 전에 이때다 싶어 이런저런 질문을 해보았다.
하나 촌장은 그냥 꿋꿋하게 침묵으로 일관했고, 결국 나는 어쩔 수 없이 이쯤에서 만족하고 내 배로 돌아왔다.
그리고 누가 먼저, 몇 명이서 어느 순서로 저 안으로 진입할 것인지 인선을 뽑은 뒤에 촌장에게 알렸다.
“자네가 말한 대로 인원 배치를 하겠네. 한데… 괜찮겠나?”
“괜찮겠냐니?”
“이렇게 되면 자네가 가장 먼저 들어가게 되는 것 아닌가. 어떤 게 있을지 모르는 위험한 곳으로.”
“그런 곳이니까. 그러니까 내가 먼저 들어가겠다고 하는 거다.”
“흐음?”
촌장은 신기하다는 눈빛을 지을 뿐 별다른 말은 꺼내지 않았고, 배로 돌아가 나머지 준비를 끝낸 우리들은 조각배를 타고서 거대한 석문 앞으로 다가갔다.
솨아아아아아아-!
이미 앞서 보낸 조사단을 통해 활짝 열린 석문.
그 석문 안쪽에는 휘황찬란한 아지랑이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포탈.
탐험가라면 한눈에 알아볼 수밖에 없는 바로 그것.
다만, 이렇게까지 거대한 포탈은 난생처음인지라 신기한 마음에 구경하던 때였다.
“얀델, 다시 생각해보는 게 어떻지?”
같은 배에 탄 아멜리아가 내게 말을 걸었다.
“우리는 몰라도, 네가 가장 먼저 들어가겠다는 건 좀 무모해 보여서.”
“뭐라는 거냐? 몸도 약한 게.”
알 만한 사람들은 다들 알겠지만, 바바리안은 자신보다 약한 자의 말을 듣지 않는 특성이 있다.
그러니 그런 의미에서.
“먼저 들어가 있겠다. 말해둔 대로 혹시 모르니 1분을 기다린 다음에 들어오고.”
동료들과 시선을 한 번씩 맞춘 뒤, 나는 조각배 앞에서 점프를 뛸 자세를 취했다.
저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실 나도 조금은 두렵고, 긴장되었다.
하지만 내 경험을 믿기로 했다.
[던전앤스톤]은 불친절한 게임이지만, 그래도 포탈을 넘자마자 몬스터와 함정이 튀나오는 그런 종류는 거의 없었다.그래, 그러니까…….
타닷.
크게 도약해 포탈 안으로 몸을 집어넣는다.
후우우우웅-!
몸을 감싸는 형형색색의 빛.
온몸이 부유하는 듯한 특유의 감각.
툭.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어둠으로 가득했다.
하나 횃불을 꺼내며 오랜만에 바바리안 캔들 모드를 꺼낼 이유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지금 내가 몇 렙인데?
휘유우우우우웅-!
이런 상황에 대비해 허리에 꽂아놨던 조명탄을 아무 곳에나 대고 쏘아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
화아아악-!
주변이 밝혀지며 시야가 확보된다.
‘일단 장소는 실내.’
바닥은 반듯한 대리석.
양옆으로는 벽이, 위로는 천장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
주변에는 몬스터들이 가득하다.
아니, 정확히는 몬스터를 본 따 제작한 석상들이 가득하다.
‘데스나이트, 킹 슬라임, 라이칸스로프, 철기병…….’
가장 앞에서 보인 석상부터 순서대로 확인하던 나는 이 몬스터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균열 수호자.’
균열 수호자를 형상화한 석상이 기다란 복도를 따라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