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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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마드 스타일로 짝 넘긴 백금발.
잡티 하나 없는 피부와 차가운 눈빛.
이것만 보면 귀공자 느낌으로 잘생겼다는 인상을 주지만…….
“읏차!”
저 경박한 몸짓과 말투, 표정들로 하여금 어딘가 엉뚱하고 천연덕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왜요? 무슨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이내 열린 창문 사이를 통해 마차 안으로 들어선 이백호가 내 맞은편 좌석에 앉고서는 뻔뻔하게 말을 던진다.
“오늘따라 많이 놀라시는데?”
그리 말하는 녀석의 입은 헤실헤실 웃고 있었으나, 눈은 그렇지 않았다.
“뒤에서 뭔가 구린 짓을 하다 걸린 사람처럼.”
날카로운 눈빛을 뿌려대며 뼈가 담긴 말을 뱉는 이백호.
뭐, 실제로도 틀린 말은 아니긴 했다.
솔직히 말해, 이놈을 보자마자 뒷담화라도 하다가 걸린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당황해서 얼 타고 있을 생각은 없지만.
‘…마부한테 목소리는 안 들리는 거 같고.’
여전히 앞만 보고 마차를 이끄는 중인 마부를 쓰윽 확인한 뒤, 나는 일상적인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럼 안 놀라냐? 갑자기 나타나서 창문으로 들어오는데.”
“음, 그것 때문만이 아닌 거 같던데…….”
“아니긴 하지. 너는 대체 얼마나 마른 거냐? 밥 좀 잘 먹고 운동도 좀 해라. 어떻게 해야 남자가 저런 좁은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거냐?”
“……제가 마른 게 아니라 형님이 비정상적으로 큰 건데요.”
“거, 말대꾸는.”
어떻게 네가 여기에 있냐.
무엇을 하러 온 거냐.
그런 말을 하기보단 자연스럽게 훈계하듯 대화를 이끌어 나가자 이백호가 무안하다는 표정을 내짓는다.
그리고…….
“…….”
“…….”
불편한 정적이 잠시 이어진다.
사실 우리는 이렇게 만나 이런 대화를 나눌 사이가 아니다.
그야 마지막이 최악이었으니까.
[……그래서 소생의 돌을 내게 쓰려 했다고?] [네. 형이 먼저 끊어내질 못하니까. 제가 조금 도와주려 했죠. 어차피 집에 돌아가면 전부 필요없는 인연들이잖아요?]고스트 버스터즈가 운영을 종료하는 날.
뒤에서 부리고 있던 수작질이 들통난 이백호는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날 선 말들을 내게 토해냈고, 이에 나는 다짐했다.
언젠가 다시 보게 되는 날, 반드시 이 새끼의 소원을 이뤄주겠노라고.
“그래서 떠나고 싶어서 날 찾아온 거냐? 네가 말했던 이 좆같은 세상에서.”
“에이, 형… 그 일로 아직도 삐져 있어요?”
내가 이놈과 얽히기 싫은 가장 큰 이유다.
무슨 소시오패스 같다고 해야 하나?
그런 일이 있었는데 별일 아니라는 것처럼 저렇게 말하는 것도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아직은.’
당장 면상에 주먹을 꽂아넣기엔 아직은 이르다.
물론 지금 상태에서도 질 자신은 없지만.
반대로 이길 자신도 없다고 해야 하나?
이 영악한 녀석은 상황이 불리해지면 언제든 뒤로 몸을 뺄 테고, 그때는 내 주변이 위험해질 가능성이 높—.
“그냥요! 그냥 와봤어요. 뭔가 형이 뒤에서 구린 일을 하는 거 같아서!”
능청스럽게 말하는 놈을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말이 좀 웃기지 않냐?”
“네? 뭐가요?”
“내가 아니라 너잖아?”
“……?”
“항상 뒤에서 구린 짓을 하던 놈은.”
서로를 마주보는 좁은 마차 안.
은은한 살기를 드러내며 놈을 주시한다.
한데, 이런 태도가 놈 입장에서는 신선했을까?
“…재밌네.”
짧은 그 말을 끝으로 이백호도 입을 꾹 다물고서 나를 응시한다.
누군가 칼만 뽑아 든다면, 그 순간 당장 전투가 시작될 것만 같은 살벌한 공기.
“그래서 후작은 왜 구해줬어요?”
그 공기 속에서 이백호가 차가운 목소리로 묻는다.
아까도 그랬지만, 이 질문으로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었다.
‘후작을 암살하려 한 게 이 새끼였구나.’
다만, 이 새끼가 마법을 쓸 수 있을 리는 만무하니 필시 그 마법을 쓴 놈은 ‘파멸학자’였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둘이 늘 짝꿍처럼 붙어다녔으니.
‘어쩐지 아파 뒈질 거 같더라니…….’
그래도 한 가지는 위안이 된다.
암, 그 정도 되는 마법사가 흔하게 있을 리 없지.
“뭔 생각을 그렇게 해요? 왜, 말하기 어려운 이유라도 있나?”
“거, 보채기는. 네가 물으면 내가 무조건 대답하고 그래야 하냐?”
“그건 아닌데, 궁금하잖아요. 언제는 나보고 후작을 좀 죽여달라고 하더니, 이제는 죽이려 하니까 몸까지 던져가며 지켜주고 있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죽여달라 할 때는 못한다고 그러더니, 왜 이제 와서 그러고 있는 건데? 어차피 죽여봤자 왕궁에서 살아난다는 놈한테?”
역으로 되묻자 이백호가 침묵한다.
참으로 이기적인 놈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만 알아두세요.”
“그럼 그냥 나한테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알아두면 되겠네.”
본인 패를 까기 전에는 내 패는 절대 까지 않겠단 의지를 담은 답변.
이백호는 잠시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후작한테 그 부활 아이템이 없어졌을 가능성이 있어서요. 일단 한 번 확인해보려 했어요. 죽으면 죽는 대로 좋은 거고. 살아나도 살아나는 대로 좋은 게 있기도 하고.”
“살아나면 살아나는 대로 좋다니? 횟수 제한 같은 건 없다고 하지 않았나?”
“그건 그렇죠. 근데 살아나기까지 시간이 좀 소요되는 거 같더라고요. 그 시간을 잘 이용해보려 했죠. 대리인이 갑자기 사라진 격이니, 잘만 하면 개벽왕이 움직일 수도 있을 테고요.”
“개벽왕……?”
“네. 맨날 아프단 핑계로 공식 석상에는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는 바로 그놈요.”
“개벽왕을 왜 움직이게 하려는 건데?”
“숨기고 있는 게 너무 많아서요. 근데 일단 밖에 나와 움직이게 만들면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흘리고 그러지 않겠어요?”
모든 내용을 100% 말한 건 아니겠지만, 우선 거짓을 말하는 느낌은 아니다.
“자, 그럼 저도 말해줬으니 형도 말해줘요. 후작을 왜 구해준 거예요? 이제 아예 그놈 편에 붙기로 한 거예요?”
흐음,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말하기 싫다고 그럴까?
얘라면 먹튀를 해도 딱히 양심에 가책 같은 건 안 생길 거 같은데…….
‘그래도 이상한 오해를 하게 만드는 건 좋지 않겠지……. 냉정히 생각하면, 얘한테서도 이용할 수 있는 부분은 이용하는 편이 나으니까.’
판단을 끝마친 나는 그날 있었던 상황의 100%를 얘기했다.
놀랍게도 딱 한 줄로도 설명이 됐다.
“실수… 였다고요?”
그날 후작을 구한 건 실수였다.
***
당연한 말이지만, 이백호는 내 말을 쉽게 신용하지 못했다.
“습관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가서 대신 처맞았다고요? 그걸 저보고 믿으란 말이예요?”
“믿든 말든 그건 네 자유다. 하지만… 내가 기습을 미리 알고 있던 상황도 아니고. 생각하고 움직여서는 절대 막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다만 이어진 내 진솔한 말에 설득을 당했을까.
아니면 본인도 뭔가 이상하다 생각했던 부분을 콕 짚어 말해줬기 때문일까.
알 수 없지만, 이백호가 찜찜한 얼굴로나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형님 말도 일리가 있기는 한데요…….”
“일리가 있는 게 아니라, 진짜 그랬다. 구하고 나서 내가 얼마나 후회를 했었는데.”
“근데… 그러면 오늘은 뭔데요? 후작 집에는 찾아가서 오래 얘기 나눴잖아요.”
“그거야 걔한테 감사인사도 듣고 했으니까 그런 거 아니겠냐. 아, 보상인진 몰라도 그 공사 수주를 나한테 맡긴다는 확답도 듣기는 했다.”
절반뿐이긴 하지만 틀림없는 진실이다.
물론 후작의 본론은 회유 제안이었으며, 그 조건이 무려 ‘이백호 암살’이었지만.
얘도 100% 솔직하게 다 오픈한 건 아니잖아?
“……진짜 그것뿐이에요?”
“그것만큼 의미없는 질문도 없는 건 아냐?”
“그렇죠. 제가 실언을 했네요.”
이내 이백호는 스스로 판단을 하겠다는 듯 잠시간 나를 바라보았다.
“모르겠네요. 진짜 모르겠어. 다른 사람들은 전부 쉬운데, 형은 왜 이렇게 어렵지?”
사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눈앞에서 저렇게 말하고 있는데도 잘 모르겠거든.
내 속내를 모르겠다는 지금 저 말이 연기인지 아닌지조차도.
“……그래서 이왕 만난 김에 말이나 해봐라. 너는 지금 대체 뭔짓을 하고 다니는 건데?”
“갑자기 친근해진 말투네요? 아까는 저를 막 때려 죽일 기세더니.”
“진짜 때려 주길 바라는 거냐?”
“그건 아닌데……. 그냥 형도 저랑 참 비슷한 부류란 생각이 들어서요.”
“그건 또 무슨 신박한 개소리냐?”
“그렇잖아요? 감정은 순간의 감정일 뿐, 결국에는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본인 이득을 위해서 행동한다는 거죠.”
“…….”
“아, 보아하니 형은 가끔 감정에 지배당할 때도 있는 거 같긴 하지만요.”
뭔가 분석하는 듯한 말이 굉장히 짜증이 나면서도 마땅히 반박할 말은 없었다.
실제로도 지금 당장 이놈을 때려서 내쫓는 것보단 조금 더 대화를 하면서 정보를 캐내고자 하는 마음이 훨씬 강했으니까.
“속셈은 알지만, 그래도 제가 형한테 잘못한 것도 있으니까 몇 가지 답은 해드릴게요. 어차피 정말로 제 근황이 궁금해서 묻는 것도 아닐 테니까. 뭐가 제일 궁금한 건데요?”
그래도 이백호가 이리 나와주니 훨씬 더 상황이 편해졌다.
다만, 다른 게 고민이었다.
질문, 질문, 질문…….
몇 가지라 말한 만큼 정말 중요한 것만 딱딱 물어봐야 할 거 같은데, 대체 뭘 묻지?
짧은 고뇌 끝에 나는 첫 질문을 택했다.
“그래서 아우릴 가비스는 만났냐?”
이 녀석에 대해 내가 아는 가장 마지막 근황은 ‘아우릴 가비스’를 만나기 위해 성벽 밖으로 나갔다는 것이었다.
하면, 과연 이 녀석은 그 목적을 이뤘을까.
“하하, 그 할아버지 말이죠……. 이걸 뭐라고 말을 해야 할—.”
“예, 아니오로만 답해라.”
“예. 만났어요.”
그래, 목적을 이룬 거구나.
왠지 모를 불안이 생기면서도 일단 추가 질문을 덧붙였다.
“커뮤니티 내가 아니라 실제로?”
“실제로 만났어요. 형도 원탁에서 만났다면서요?”
“그 늙은이가 그리 말하디?”
“뭐… 그런 거로 치죠……? 중요한 건 아니니까.”
음, 이렇게 애매하게 말하는 걸 보면 직접 들은 건 아닌 듯하다.
그럼…….
‘흑가면이 현별이고, 늑대는 아우릴 가비스가 보낸 놈이 거의 확실했으니까…….’
나비 가면이 이백호가 심은 첩자였나?
아직 뭐라 단정 짓기에는 이르지만, 커뮤니티가 지금에 와서는 딱히 중요한 것도 아니니까 이쯤에서 패스.
“성벽 밖에 나간 뒤에 지금까지 뭐하고 지냈던 거냐?”
이번에는 예, 아니로로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라 포괄적으로 물었다.
놈은 정말 자기 근황이 궁금한 게 아니지 않냔 식으로 말했지만, 사실 나는 궁금하거든.
이놈의 근황이.
“그냥 이것저것 정신없이 지냈어요. 바깥 세상을 돌아다녀보기도 하고, 노아르크 애들이 지내는 캠프를 찾아 살아보기도 하고. 7층까지 이어진 포탈을 타고 미궁에도 가보고……. 아, 새로운 동료도 생기긴 했네요. 어쩌다 보니.”
대략적으로 답했음에도 느껴진다.
정신 없이 지냈다는 그 말에 숨겨져 있을 긴 이야기들이.
내가 지하 1층을 탐험하고 그러던 동안에, 이놈도 이놈만의 여정을 열심히 이어가고 있던 것이다.
“…새로운 동료?”
“얘는 아직 비밀이라 못 말해드려요. 근데… 이렇게만 말하면 제가 너무 양아치 같은데……. 이 질문은 개수에서 제가 빼드릴게요. 자, 그럼 마지막 질문이니까 잘 해보세요.”
“아깐 몇 가지라면서?”
“네. 몇 가지 맞잖아요?”
음…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긴 하네.
어차피 보너스 같은 느낌의 질문권이었던 만큼, 나는 미련을 버리고서 마지막 질문을 꺼냈다.
“노아르크 놈들은 대체 뭐가 목적이냐?”
이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궁금해할 질문이며, 참고로 이는 왕국의 이인자인 후작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하면, 이 질문의 답을 이백호는 과연 알고 있을까.
그 답은 머지않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살아남는 거요.”
“……뭐라고?”
“사람 사는 목적이 다 똑같지 않겠어요? 다들 잘, 오래 살아보겠다고 그리들 열심히 사는 거지.”
장난스러운 말투로 한 답변이었으나, 나는 그 안에 숨겨진 진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소문과 달리, 성벽 밖에서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거군.”
“네. 쉽게 설명하자면 그런 거예요.”
성벽 바깥은 대체 어떤 곳일까.
이에 대해서도 좀 더 묻고 싶었으나 애석하게도 질문 횟수는 이제 남아있지 않았다.
“음… 마지막 질문치고는 제가 너무 간략하게만 대답해 준 거 같아서 서비스 좀 드릴게요.”
…서비스?
이내 고개를 갸웃하자 이백호가 씨익 웃는다.
“앞으로 1년 동안 노아르크 쪽에서 뭔가 일을 벌일 일은 없을 거예요. 그러니 안심하셔도 좋아요.”
참 아이러니하게도 안심하란 말을 듣자마자 심히 불안해졌다.
그야 우리 같은 사람은 항상 말의 이면을 보니까.
‘1년 동안이라…….’
그 기간이 지나면 뭔가 큰 게 온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