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655)
화 이벤트 (4)
악령이냐고 묻는 것이 아니라, 확정하는 듯한 말.
이에 뭐라 항변하려 했으나 후작은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물론 자네가 여기서 인정하는 듯한 발언은 할 수 없겠지. 함정인가도 싶을 테고. 그러니까 그냥 일단 내 말이 끝날 때까지 듣게.”
“…….”
“자네가 무슨 말을 하든, 나는 자네가 악령이라고 생각하네.”
“…….”
“그래서 자네가 귀족이 되었을 때에도 아무도 알 수 없게 뒤처리를 했네. 자네 같은 영웅이 악령이라는 게 알려지면 시민들의 인식에 부조화가 올 테니까.”
지난날, 아멜리아와도 얘기를 했던 주제였다.
어째서 나는 ‘검증’ 없이 귀족이 될 수 있었는가.
…정말 이게 이유였던 거구나.
“악령은 언제까지나 모든 주민들의 주적이어야 하며, 실제로도 그러하네. 우리들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가는 그들은 미궁의 어느 마물보다 두려운 존재이지.”
그리 말하는 후작의 목소리에는 보이지 않는 깊은 분노가 어려 있었다.
“자네가 미궁에서 죽었다고 알려졌을 때, 속으로는 기뻤네. 악령인 게 밝혀지지 않은 채 사라지는 게 이 나라를 이끌어야 하는 나로선 최고의 상황이었으니.”
여기부터는 나도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후작이 말한 최고의 상황은 머지않아 틀어졌다.
“하지만 한 녀석이 방해를 해오더군. 자네도 알고 있는 자일 걸세. 이백호라는 이름을 지닌 뻔뻔한 녀석이지.”
후작은 이백호에게 협박을 당해 비요른 얀델이 ‘악령’임을 공표해야 했고, 그 후에는 악령편입정책을 도마 위에 올려야 했다.
뭐, 워낙 큰 정책인 만큼 아직 실행되진 않았지만.
“그자는 내 가장 아픈 상처를 헤집었네.”
“…아픈 상처?”
“내 아들… 엘토라 테르세리온은 이미 죽었네. 지금 내 아들놈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건 이름도 모를 어느 악령이지.”
“……!”
나는 진심으로 놀랐다.
처음 듣는 이야기여서가 아니라, 설마 이 얘기까지 솔직하게 고백할 줄은 몰라서.
“그 반응을 보니 정말 몰랐던 모양이군.”
“어… 예상도 못 했다.”
“아무튼, 그자는 내 아들의 정체를 갖고서 협박을 했네. 당장 아들을 처리할 수 없으니, 나로서는 그 협박에 응할 수밖에 없었지.”
그래서 후작은 지금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알 수 없기에 나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야 다 내가 알고 있던 얘기는 아니었거든.
“악령편입정책은 절대 이뤄져선 안 되네. 설령 악령이 된 것이 그들의 의도가 아니었다고 하여도, 만약 우리가 그들을 받아들인다면……. 몸을 빼앗긴 이들의 한은 그 누가 풀어줄 수 있겠는가?”
오늘의 대화에서, 처음으로 후작의 내면을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네가 사라졌다 돌아왔을 때, 바로 변명거리를 만들어 낼 수 있던 것도 그래서였네. 참 역설적이게도, 그자의 계획을 막기 위해서는 자네가 악령이어서는 안 됐으니까.”
“…미리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군.”
“그렇네. 물밑에서 가짜 정보를 만들고 기록하며 있지도 않은 자네의 잠입 임무가 실제로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지. 그 누가 봐도 가짜란 걸 눈치챌 수 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네.”
이제야 의문이 풀린다.
어쩐지 막 급조해 낸 설정이라기엔 케알루너스 공작쯤 되는 거물들도 의심 없이 믿는 듯하더라니.
설마 내가 없는 기간 내내 철저하게 준비된 계획이었을 줄이야.
“물론 원래는 때가 되면 해당 임무 중 사망했다고 알릴 셈이었으나……. 자네가 살아 돌아오며 이 계획도 무산됐지.”
이제야 후작의 의도가 전부 이해되는 한편으로 양주먹이 꽉 쥐어쥔다.
“그것 때문에… 우리를 아이스록에 보냈던 거냐?”
후작은 정말이지 어떠한 표정 변화도 없이 쉽게 긍정했다.
“이제 와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들 이유는 없겠지. 그렇네. 그래서 보냈네. 그때 자네가 이름을 되찾기 전에 죽어 사라지면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생각했으니까.”
어떻게 사람이 이리도 뻔뻔할 수 있을까.
앞에서 나눈 진솔한 얘기고 뭐고, 맘 같아서는 이 자리에서 얼굴에 주먹을 욱여넣고 싶은 기분이다.
하지만…….
‘참기로 했으니까.’
그날, 차가운 얼음장 위에서 맹세했지 않나.
분노를 터트리는 건 지금이 아니다.
그래, 그러니까.
“그래서… 이제 말해봐라.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대체 뭐냐?”
최대한 평정심을 지키며 후작에게 묻는다.
일국의 이인자가 병신인 것도 아니고, 한 번 구해줬다고 해서 감정적이게 변할 리 없지 않은가.
물론 구해 준 게 아무런 영향도 없진 않겠지만…….
그래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데는 분명 합당한 이유가 있을—.
“혼란스럽기 때문일세.”
…응?
“자네가 나를 구할 이유가 전혀 없으니까. 자네는 오히려 내가 죽으면 죽기를 바랐지, 내게 잘 보이려는 부류의 인물도 아니지 않은가?”
음,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자네가 왜 나를 구하려 몸을 던졌을까.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네. 한데 생각해 보니 딱히 나만이 아니었더군.”
후작이 나를 보며 말을 잇는다.
“자네는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구해냈네. 다만 그 사람들을 구해내야 할 이유 같은 건 자네에게 없었지. 덕분에 결론을 내릴 수 있었네. 아니, 마침내 인정할 수 있었네.”
“뭐였지……?”
“자네가 비록 악령일지라도, 영웅의 성질을 지닌 사람이라는 걸.”
영웅이라…….
사실 저리 말해봤자 딱히 실감은 안 난다.
나는 단지 살아남으려 발버둥쳤을 뿐이니까.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악령이든 아니든 자네는 이 세상에 이로운 영향을 끼칠 사람일세.”
아무튼, 그런 내 감상이야 어쨌든.
직감적으로 이 뒤에 나올 말이 본론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자네에게 제안하겠네.”
이내 후작이 빛나는 눈으로 내게 말한다.
“우리의 편에 서게. 그리고 진정으로 이 세계의 주민이 되어 균형과 평화를 유지하는 데 자네의 힘을 써주게.”
빌드업을 착실히 쌓아두고서, 저렇게 힘차고 열정적인 목소리로 말해서 그럴까?
후작의 말에는 사람을 이끄는 듯한 힘이 있었다.
다만, 나는 알고 있다.
이런 힘을 가진 사람일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걸.
‘아오, 나도 모르게 넘어갈 뻔했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제안’을 들었을 때 그 제안의 좋은 점만 생각하며 희망 회로를 돌리는 부류와, 그 반대인 부류.
나는 언제나 후자이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힘을 써달라니, 이상한 말이군. 나는 지금도 충분히 그러고 있는데.”
애매모호한 답을 늘어놓으며 후작에게 패를 더 오픈하기를 요구한다.
“악령이니 뭐니 이해할 수 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원하는 게 있으면 속 시원하게 말하는 게 어떠냐?”
내 요구에 후작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태연하게 말을 이을 뿐.
“허허, 당연히 바라는 게 없는 건 아닐세.”
“그럼 말해봐라.”
“설령 자네가 지금 내 손을 잡는다 해도 자네를 믿을 수 있는 증거가 없지 않은가? 증거가 필요하네.”
거, 언제는 착한 악령이라 결론을 내렸다더니.
아주 그냥 손을 위아래로 뒤집는 게 자유자재인 양반이 아닐 수 없—.
“이백호.”
순간 공기가 차갑게 굳는다.
“이 세상의 균형을 어지럽힐 생각뿐인 그자를 죽여 주게.”
그래, 이게 진짜 목적이었구나.
“그럼 나도 자네를 온전하게 신뢰할 수 있을 것 같네.”
역시 아니나 다를까.
이 양반이 한 번 구해줬다고 저럴 리 없지.
***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후작은 나를 설득하듯 말을 덧붙였다.
“마음이 불편하다면 그냥 거래라고 생각하게. 자네가 이백호를 처리해준다면, 자네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든든한 후견인이 되어주겠네.”
뭐, 정말 말처럼 된다면 든든하긴 할 거다.
도시 한복판에서 내 입으로 직접 악령이라고 외치고 다녀도 무마할 힘이 후작에게는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의문이다.
후작이 이백호를 왜 죽이고 싶어하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으니 제쳐두고.
“왜 나한테 그런 일을 시키려는 거냐?”
어째서 후작은 직접 처리하지 않고 나에게 이런 일을 맡기려고 하는가.
“그게 가능한 건 자네뿐이니까.”
되돌아온 후작의 답변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미 수도 없이 시도해봤으나 모두 실패했네. 우리로서는 그자를 만나는 것조차 쉽지 않았네. 하지만… 자네라면 다를 수도 있겠지. 어째선지 그자는 자네에게 관심이 많았으니까.”
“…….”
“물론 이 자리에서 결정할 필요도 없고, 결정을 했다고 해서 내게 말할 필요도 없네. 그저 기억만 하고 있게. 자네가 그자의 목을 베어오는 순간 자네는 그 무엇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걸.”
“…….”
“부디 올바른 선택을 내리게. 자네는 이 세계를 사랑하지 않는가. 다른 악령들과 달리.”
그 말을 끝으로 할 말을 다했다는 듯 후작이 다 식은 차를 홀짝였고, 이로서 대화는 잠시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후작은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뿐 결코 먼저 말을 꺼내는 법이 없었고, 그럴수록 내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뭐라 대답을 해야 할까.
아니면 뭐를 따로 더 물어봐야 할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무슨 대답을 한들 후작의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어떤 질문의 답변을 듣던 나는 100% 신뢰할 수 없을 것이다.
지하 1층에서 만난 연구소장과도 그러했듯.
[타인을 통해 진실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믿는 것뿐일세. 따라서 내가 자네에게 길게 말을 이어가 봤자 시간 낭비에 불과하지.] [그렇기에 거래라고 말한 걸세. 내가 누구인지가 중요한가? 내 제안을 받아들일지 말지, 자네는 그것만 보고 결정을 내리면 되는 걸세.]언제나 중요한 것은 본인의 판단이다.
‘그래도 그냥 알고만 있으라고 한 정도니까…….’
부가 퀘스트 정도로만 생각해도 될 거 같다.
딱히 깨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는 없는 거잖아?
“네 제안은 생각해보겠다. 아, 물론 나는 악령 같은 게 아니지만.”
오랜 침묵을 깨고 말하자, 후작은 어떠한 미련도 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대로 하게. 그래도 보답은 끝났으니 이제 마음은 편해지겠군.”
“……무슨 뜻이냐? 생각만 해본단 뜻이었는데.”
“은원을 확실히 하지 못하면 잠을 잘 자지 못하는 성격이라서 말일세.”
“아, 7구역 공사 건을 말하는 거—.”
“그걸 말하는 게 아닐세.”
이내 후작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올바른 길을 제시한 것. 이게 바로 자네가 날 구해준 것에 대한 보답이었네.”
“…….”
“자네가 믿을지 않을지는 모르겠네마는 말일세.”
쩝, 진짜 끝까지 사람을 찜찜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니까.
“…이만 가보겠다.”
“식사라도 하는 게 어떻나? 이대로 보내기에는 역시 마음이 불편한데.”
“오늘은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아서.”
이 상황에 후작이랑 밥까지 같이 먹으면 머리가 터질 거 같았기에, 도망치듯 저택을 나왔다.
그리고 후작이 대여해준 마차를 타고 군용 승강장으로 이동하며 눈을 꾹 감았다.
여러모로 심력 소모가 큰 날이었다.
드르륵, 드르륵…….
부드럽게 굴러가는 마차의 바퀴 소리.
이를 배경음을 삼아 머리를 비우고 있자니 금방 졸음이 밀려왔—.
“형.”
…응?
뭐지 환청인가?
“그때 후작은 왜 구해줬어요?”
또렷하게 들리는 목소리에 나는 눈을 번쩍 뜨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왜, 후작이랑 친구라도 하려고?”
아우, 깜짝아.
이 새끼가 왜 여기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