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697)
“하하… 자네는 여전하군. 걱정은 고맙네마는, 그럴 필요는 없네. 개미가 사람을 걱정한다고 해서, 뭔가 달라지는 게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인자하게 웃으며 뼈를 때리는 아우릴 가비스.그 말에 표정 관리 못하며 어색하게 입만 웃고 있는 걸 보니 이번 딜교환은 마지막까지 이백호의 완패였다.
“자, 그럼 오늘의 만남은 이쯤에서 마무리하는 게 좋겠군.”
“저… 어르신?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오늘은 시간이 늦었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오늘 하려 했던 질문은 그때 듣지.”
“…또 만나뵐 수 있단 뜻일는지요?”
“물론일세. 자네는 모범생이니까. 항상 잘 지켜보고 있다네.”
“그, 그렇습니까……?”
또 기회가 있다는 말에 GM도 아쉬움이 덜어진 듯했고, 그런 GM을 보며 푸근한 미소를 내짓던 아우릴 가비스가 우리를 동굴 안쪽으로 이끌었다.터벅, 터벅.
한 1분 정도 걷자 나타난 널찍한 공동.
“와…….”
“몇 개야, 이게?”
공동에 도착하자마자 모두가 탄성을 흘린다.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축구를 해도 될 것처럼 널찍한 공동의 벽면에 차원 비석이 가지런히 세워져 있었거든.얼추 봐도 수백 개는 될 거 같은데…….
“자네들은……. 음, 이게 좋겠군.”
이내 아우릴 가비스가 우리가 이용할 차원 비석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혹시 저게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 수 있을는지요?”
“흐음, 마음 같아선 나중의 재미로 남겨두라 하고 싶네마는. 자네가 너무 불안해하니 말해주지. 이걸 타고 나가면 처음 그 장소로 가게 될 걸세.”
“처음 그 장소라 하심은……. 혹시 마법진이 파손된 그곳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그렇네.”
행선지를 알고 나자 마음이 놓인 듯한 표정을 짓는 GM.근데 이게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이건가?‘이상할 정도로 얘 질문엔 매번 대답을 잘 해준단 말이지.’
어쩌면 GM이 그걸 노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뭐, 내가 보기엔 쓸데없는 짓 같지만.암만 앞에서 하하호호 웃고 떠들어도, 이 음침한 할배는 웃는 얼굴로 뒤에서 침을 뱉어댈 것이다.
솨아아아아아-!이내 포탈이 열리자 아우릴 가비스가 어서 떠나란 듯한 시선을 보내고, 이에 이백호가 바닥에 침을 퉷 뱉는다.그리고…….
“재수 없는 망할 늙은이.”
더는 한 공간에 있기 싫다는 듯 첫 순번으로 포탈 안에 들어선다.
“다음은 내가 가지. 혹시 백호 군이 그새 사고를 칠 수 있으니.”
두 번째는 파멸할배, 세 번째는 아우레스…….이후 제이나와 GM까지 포탈을 넘어가며 어느새 나와 아우릴 가비스 단둘이 남게 됐다.
‘이제는 연기할 필요가 없겠네.’
그런 생각을 하며 포탈 앞에서 멈추자 아우릴 가비스가 나를 빤히 바라본다.
“왜, 얼른 갔으면 좋겠습니까?”
툴툴대듯 말하자 이번에도 인자하게 웃는 아우릴 가비스.
“허허, 그럴 리가. 내가 언제 자네에게 눈치라도 준 것처럼 말하는군? 단지 내게 할 말이 있는 것 같아서 봤을 뿐이네.”
“…….”
“자네답지 않군? 할 말이 있으면 어서 해보게.”
거, 그래놓고 대답하기 싫은 것들은 절대 말해주지 않을 거면서.나는 주변을 쓱 둘러보다가 GM을 참고해 나름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
“어르신, 딱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자네는 항상 나만 보면 뭔가 물어보는 거 같군.”
“어르신께서는 그만큼 비밀이 많으시니까요.”
“허허… 한번 말해보게. 무엇을 물으려는 겐가?”
“여기는 대체 어떤 장소입니까?”
내 질문에 아우릴 가비스는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왜 하필 그게 궁금한 겐가? 다른 중요한 질문들도 더 있을 텐데.”
“다른 중요한 것들은 벌써 몇 번이나 물어봤지만, 제대로 답을 못 들었으니까요.”
헛물 켜는 건 이제 안 하기로 했다고 툴툴대듯 말하자 아우릴 가비스가 갑자기 빵 터졌다.
“……뭣? 하핫! 하하핫! 아하하하핫!”
…미친 늙은이인가?여기서 대체 어느 부분이 웃기다고?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이 늙은이의 기분이 좋아진 건 긍정적인 부분이었다.
“아하하… 미안하네. 갑자기 옛 기억이 떠올라서.”
“옛 기억……?”
“아무튼, 최근 들어 자네에게 미안한 일들이 여럿 있었으니, 물은 것에 답은 해주겠네.”
“오, 그렇다니 정말 너무나도 감사하군요.”
“비꼬지 말게.”
“예…….”
모처럼 답을 해줄 마음이 생긴 늙은이인 만큼, 더 신경을 긁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기로 했다.그야 이번 질문이 나름 중요해보였거든.
[이곳은 성벽 바깥 어딘가일세.]성벽 바깥 어딘가.[내겐 아주 의미가 깊은 장소지.]아우릴 가비스의 의미 깊은 장소.심지어 이곳은 1층 수정 동굴과도 굉장히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다.대체 여기는 어떤 장소일까.
“잠시 걷겠나?”
의문이 점점 커져가는 가운데 아우릴 가비스가 산책이라도 가자는 듯 말했고, 나는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앞서 나가기 시작한 아우릴 가비스의 뒤를 따르고 있자, 돌연 선문답 같은 말을 해왔다.
“진실이라 믿고 싶은 거짓과 거짓이라 믿고 싶은 진실.”
“예……?”
“자네는 이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무엇을 택하겠나?”
갑자기 이런 걸 왜 묻나 싶기도 하지만, 이 늙은이가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닐 터.나는 신중하게 고민했다.
그러고 보면 옛날에 인터넷에서 이것과 비슷한 주제의 밸런스 게임을 본 적 있었다.똥의 맛이 나는 카레.카레 맛이 나는 똥.
아, 물론 조금 전에 시작된 선문답 내용과는 명백히 다른 부분들이 있었다.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고르기가 쉬웠다.
“전 후자입니다.”
“거짓이라 믿고 싶은 진실 쪽이 좋다는 건가?”
“그래도 진짜이니까요.”
“흐음, 그렇군…….”
아우릴 가비스는 내 답변을 듣고서 애매한 반응을 보일 뿐, 더 이상 말을 해오지 않았다.거, 성심성의껏 답변을 해줬건만.
“도착했군.”
아우릴 가비스가 멈춰선 곳은 동굴 통로를 가로막은 석문 앞이었다.석문엔 마법적인 무언가가 잔뜩 발려있는지 손을 올리자마자 자동으로 열렸다.
그리고…….
“……?”
전혀 예상치 못한 구조의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마치 우주를 연상케 하는 공간.일직선으로 뻗은 계단이 저 위로 이어져 있다.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서 올라오게.”
늘 그렇듯 할배는 아무런 설명 없이 먼저 성큼성큼 계단을 올랐고, 나도 묵묵히 주변을 구경하며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얼마나 흘렀을까.터벅, 터벅.계단을 하염없이 올라가는 중에도 알 수 있었다.
저 계단 끝, 제단 위에 올려져 있는 저것을 보여주기 위해 날 이곳에 데려왔다는 것이.
“저게 뭡니까……?”
“가서 보면 자네도 바로 알아볼 걸세.”
이건 또 뭔 소리인가 싶었으나, 실제로도 계단의 끝에 올라선 순간 알 수 있었다.얇은 막으로 둘러 싸인 채 제단 위에 떠올라 있는 이 물건의 정체가 무엇인지.
“기록의 파편석…….”
심지어 하나도 아닌 수백 개가 허공에 떠오른 채로 돌아다니고 있다.
“이걸 전부 손수 모으신 겁니까?”
그런 내 물음에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인 아우릴 가비스가 허공 위로 손을 뻗자, 은하수처럼 흩어져 천천히 공전하듯 부유하고 있던 파편석 하나가 서서히 이쪽으로 당겨졌다.
“읽어보겠나?”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군말없이 파편석에 적힌 고대어를 읽어내렸다.다만 문제는…….
“이계에서 온 악령……. 이건 어떻게 읽는 겁니까?”
해석이 되지 않는 것이 있다.
“이건 그냥 고대어가 아니라 그냥 무늬 같은데…….”
“해석하지 않아도 되네. 사람으로 치자면 이름 같은 것이니까.”
음, 그렇다면 일단 넘어가기로 하고…….남은 파편석의 내용을 전부 다 읽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그야 엄청 짧았거든.
“이계에서 온 악령 ‘————‘가 세 명의 동료를 잃고서 비로소 본인이 나아가야 할 길을 깨달았…….”
…어?아니, 잠깐만.
“혹시 이거 ‘————‘가 접니까……?”
황급히 옆을 보며 물었지만, 아우릴 가비스는 부드럽게 웃을 뿐 답하지 않았다.
“…….”
니미럴.
기록의 파편석.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통틀어 모든 시간을 적어 두었다는 ‘기록석’의 파편.
난 이 ‘기록’의 힘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그야 한 번 겪어보았으니까.두근-!기록의 파편석을 통해 가게 됐던 과거 시절.
그때부터 나는 한 사람이 죽는 미래를 바꾸기 위해 온갖 난리를 쳤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기록석에 적힌 이야기들은 결국엔 완성된다.
물론 아멜리아처럼 ‘눈속임’을 이용하는 꼼수도 있긴 했지만…….
‘이번엔 그런 꼼수는 안 통하겠지.’
애초에 어떻게 하겠는가?내가 순진한 열살배기 꼬맹이도 아닐지언정.
동료들한테 죽은 척하며 날 속이라는 것도 불가능.게다가 그 시기조차 제대로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두근-!세 명…….‘세 명이라…….’
[던전 앤 스톤]을 하다보면 동료가 죽는 일은 일상다반사다.한데 어째서 이 작은 숫자가 이토록 크고, 절망적이게 느껴지는 걸까.두근-!심장이 벌써 조여오는 것과 별개로, 머리는 차갑게 식으며 생각한다.그 세 명이 누구일까.아니, 정확히는 차라리 누구였으면 좋을까.
한 집단을 이끄는 사람으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될 생각마저 빠르게 스쳐지나가던 그때.
“결말을 알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지.”
내게 인생 최대의 고민거리를 던진 아우릴 가비스가 날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그 모습에 순간 머리에 피가 거꾸로 솟았다.
“…뭐?”
당장에라도 주먹을 휘둘러 저 늙어빠진 면상에 박아넣고 싶은 기분이었다.하지만…….
“…….”
참아야 했다.여기서 주먹을 박아넣어봤자 내 손해밖에 안 될 테니까.그래, 그러니까…….
“언제…….”
몸이 부르르 떨릴 만큼 이를 악 물고 버티며 그에게 묻는다.
“언제인지… 아십니까? 여기 적혀진 일들이 벌어지는 때가……?”
“알 수 없네. 기록석이 온전했다면 모를까. 떨어져 나온 파편만으로는 시기를 추측하기 어렵지.”
‘뭐야, 그럼 나한테 도움을 줄 게 하나도 없다는 거네?’순간 머리에서 실 같은 무언가가 픽 하고 끊어지는 감각이 듦과 동시, 아우릴 가비스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기록석에 기록되는 방식을 보았을 때, 이 또한 분명 하나의 사건일 걸세.”
쉽게 말해, 오랜 시간 동안 한 명씩 죽어서 총 세 명이 되는 게 아니라, 한 ‘사건’이 이어지는 동안 무려 세 명이 죽는다는 뜻.
이내 나는 이를 악문 채로 그에게 물었다.
“……그 세 명이 누구인지도 알 수 있나?”
찰나 동안 물어볼까 말까 수백 수천 번을 고민한 말.하나 그런 내 고민을 알기나 하는지 이 할배는 정말이지 쉽게 즉답했다.
“알지 못하네.”
어떠한 변명도 설명도 없는 ‘모른다’.그런데 어째선지 그 말에 화가 나는 한편으로는 안도하기도 했다.만약, 그 이름들이 나왔다면 정말 미쳤을 테니까.
“심경이 복잡해보이는군. 동료들이 자네에게는 그토록 중요한가?”
“……긁지 마십시오. 지금 진짜 한계니까.”
“그렇다면야.”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며 한 말에 아우릴 가비스도 더 이상 뭐라 말을 걸지 않았고, 그 이후로 정적의 시간이 이어졌다.두근-!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심장은 쿵쾅거렸고, 발끝에 들어간 힘은 풀릴 기미가 없었다.하지만…….
‘정보.’그래도 조금은 이성이 돌아왔다.
“어르신.”
“조금은 정신이 돌아왔나보군.”
그야 어차피 ‘기록’ 된 일은 당장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지 않은가.
“어르신께서 이걸 제게 보여준 이유가 대체 뭡니까?”
일단 이걸 알아내는 게 먼저라 판단했다.사람 갖고 장난치는 게 특기이자 취미인 이 할배가 이유 없이 이걸 보여주진 않았을 테니까.
“이유라……. 솔직히 말하면 변덕에 가깝네. 실제로 아까 자네가 그대로 떠났다면, 또 이곳이 어디인지 묻지 않았다면 보여줄 일도 없었을 테니.”
“…….”
“한데, 믿기지 않는단 표정이군?”
당연히 그 말이 믿어질 리가.암만 내가 먼저 떠나지 않고 말을 걸었다 한들, 이걸 보여준 데는 어두운 꿍꿍이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하지만…….
“암만 봐도 자네는 전자일세.”
“……?”“아까 자네는 후자라고 말했지만, 그건 단지 자네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서일 뿐. 자네는 전자일세.”
처음엔 무슨 말을 하려는가 싶었으나, 머지않아 이해가 됐다.아까 나눈 선문답의 연장선이었다.진실이라 믿고 싶은 거짓.그리고 거짓이라 믿고 싶은 진실.
“자네는 ‘변덕’이라는 내 말이 거짓이었으면 하지만, 이건 틀림없는 진실일세.”
논점 흐리기를 위한 억지 논리처럼도 들렸지만, 뭐라 날카롭게 반박할 만한 거리가 없었다.하나 그럼에도 어떻게든 거리를 찾던 중.
“물론 그렇다고 자네에게 실망하지 않네. 이 물음을 백 명에게 던지면 모두가 ‘진실’을 택하지만, 실제 그 상황에 처하면 상황이 역전되니…….”
“…….”
“안 그런가 비요른 얀델… 아니, 이한수 군?”
씨바, 저러니까 할 말이 없네.이 할배를 말로 이겨먹는 건 깔끔하게 포기하자.
“……알겠습니다. 내가 괜히 말을 걸어서 일이 이렇게 됐을 뿐, 뭘 노린 게 아니란 뜻 아닙니까?”
체념하듯 말하자 아우릴 가비스가 어딘가 쓸쓸한 눈으로 은하수처럼 허공 위에 펼쳐진 기록의 파편석을 올려다본다.
“자네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진 몰라도, 나는 괴물 같은 것이 아닐세. 또한 백호 군이 말했듯, 만능도 아니지…….”
“…….”
“단지 한 가지를 위해 열심히 발버둥치며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평범한 인간일세. 자네와 마찬가지로.”
음, 글쎄.진지한 와중에 미안한데,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내 눈엔 그냥 미친 늙은이처럼밖에 안 보인다.굳이 말해 산통 깰 필요는 없겠지마는.
“…이왕 온 김에 다른 것도 보고 가도 됩니까?”“동료들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텐데, 괜찮겠나?”
“…동료는 무슨.”
걔네들은 그냥 딱 ‘동행’ 정도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