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11)
제 1111화
246화. 미트라 대사막 쟁탈전(22)
* * *
크리틸, 투신의 집무실.
시마트가 책상에 놓인 보고서 뭉치를 바라보았다. 참모들이 한 차례 걸러서 올렸음에도 책상 위엔 자리가 거의 남지 않았다.
“후우…….”
대부분은 정복지들과 그 안에 속한 구 루테로 연방의 주민들, 즉 적명족의 2급 시민의 관리 감독에 대한 보고였다.
‘우스운 일이지. 정작 우리 적명족은 매일 같이 대사막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데, 이 하등한 놈들은 우리로부터 시민 권한을 받아 단잠을 누리고 있으니.’
적명족이 처음 민간 피해 없는 전쟁을 하겠다고 선언한 건, 당시는 진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그저 뱉은 말을 지켜야 하기에 무분별한 학살을 멈추고 있는 것이다.
‘뭐, 그래도 리마가스의 보고에 의하면 저 평범한 인간 놈들이 추후 지플의 마신석을 상대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였으니. 그때까진 그냥 둬서 나쁠 게 없겠지. 기초적인 단순 노동만 부과하면서.’
당장은 그들에게 신경을 쓸 여력이 없기도 했다.
미트라 대사막 쟁탈전의 국면이 계속 혼란스럽게 바뀌는 중이었다. 바로 어제도 투왕이 둘이나 더 소환되었으니까.
‘……진 룬칸델은 자신을 십삼투왕이라 밝혔다. 그는 아마 마지막 순서일 테니, 저 안에 남은 위험인물은 투신 한 명, 투왕 여덟인가. 게다가 평전사들도 보통은 아닐 것이다.’
전부 다 통로 포격을 견디고 빠져나온다면 답이 없는 숫자였다. 특히 투신은, 결코 같은 창성이라 할 수 없는 경지가 분명했다.
심지어 운명은 날이 갈수록 바멀 연합 쪽으로만 미소를 지어주었다. 진과 연합은 가만히 있어도 투왕들이 소환되는 반면, 적명족은 크리를 제외한 거의 모든 전력을 쏟는데도 아직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손해만 보는 중이었다.
적명족의 적뇌는 청명족이나 명왕족과 마찬가지로 체내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기는 하나, 그들의 주 영양분은 생물의 피다.
따라서 적명족 개개인은 물론이고, 공중요새와 함대 모두 피가 사용되고 있었다. 소량의 피로도 어마어마한 적뇌를 생성할 수 있기는 하나, 일반인의 피는 큰 의미를 가질 수 없었다.
단련된 무인, 마법사, 특별히 강한 힘을 가진 생물.
적뇌로 변환되는 효율이 아무리 뛰어나도, 황실에 반기를 들며 얻은 청명족 매몰자들의 피와 지플을 쳐서 얻은 피는 결코 무한이 아니었다.
치잉, 시마트가 팔찌를 눌러 리마가스에게 영상 통신을 걸었다.
{투신 동포.}
“리마가스 동포, 통로에 대한 정보를 더 얻은 바가 있나?”
리마가스는 지금껏 내내 파틀을 이용해 라프라로사를 추적해왔다. 시마트가 크리를 이용하는 걸 반대하며.
{없습니다, 차원 오류가 제 예상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그렇다면…… 현재로서는 동포조차 청명의 후손들이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할 방법을 찾기 어렵다는 뜻이군.”
{죄송합니다.}
“아니, 동포는 잘못한 것이 없다. 어차피 결국 판단은 내가 한 것이니. 다만 계획을 수정할 필요는 있겠어.”
{크리를 사용하시려는 겁니까?}
“또 말릴 텐가?”
{예. 저번에도 말씀드렸듯이, 차라리 마녀를 이용하셔야 합니다.}
“동포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그래, 나도 사실 그건 하책이라고 생각한다. 소멸의 빛을 사용해서 내 광심장이 멈추는 날부터, 우리에게 남을 건 멸망밖에 없으니.”
{그렇다면 어떤?}
“마녀를 더 빠르게 이용해야겠어. 룬칸델에서 추방된 자들, 그들이 마녀를 뒷배로 둔 정황이 있다고 했지.”
황실과 지플로부터 얻은 정보들이었다.
“그들을 찾아라. 지금껏 대사막 쟁탈전에 참전하지 않은 이유는 모르겠으나, 놈들도 진 룬칸델의 세력이 커지는 건 필시 원치 않을 것이다.”
거기까지 말한 순간,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라.”
“투신 동포.”
“안돌린 동포, 무슨 일인가?”
“투신 동포를 뵙고 싶다는 인간이 크리틸을 찾아왔습니다. 자신을 로키아 가네스토라 밝히더군요.”
“이 정도면 내 이야기를 엿듣고 있던 건 아닌가 싶군.”
“예?”
“지금 그자는 어디에 있나?”
“남쪽 관문입니다.”
“거기 그대로 있으라 하라. 내가 나가겠다.”
시마트가 크리의 옥상으로 올라가자, 소형선 한 대가 떠올랐다. 시마트는 곧장 그걸 타고 남문으로 날아갔다.
로키아는 검은 로브를 입은 채 관문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녀의 주변에 얼어붙은 적명족 문지기들이 보였다.
“동포들을 왜 얼렸지?”
“지금쯤 당신에게 내가 필요할 것이라 말했더니 믿지 않기에. 뭐, 죽지는 않았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어.”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왠지 신경을 긁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나를 들여보내는 게 아니라, 당신이 직접 나올 줄은 몰랐군. 적명족 투신, 시마트. 보기보다 겁이 많은가.”
“내가 마녀와 연이 깊은 자를 도시로 들이는 머저리처럼 보이던가? 게다가 밖에 있더라도 이미 우리 속사정을 다 아는 모양이니, 더더욱 들여보낼 이유가 없군.”
프스스…….
시마트가 가볍게 뇌기를 방출하자 평전사들을 감싼 얼음이 녹아내렸다. 평전사들은 바로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시마트는 후드 속에서 번들거리는 로키아의 눈동자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내게 겁이 많다고 말하기엔 우스운 입장이 아닌가, 로키아 가네스토. 분신을 보낸 주제에.”
“오, 역시 창성은 창성이네. 바로 알아볼 줄이야. 지금은 영체로 활동할 수밖에 없어 그런 것일 뿐이니, 양해해주길.”
“내게 무엇을 바라는가?”
“아직 내가 찾아온 목적을 이야기하지도 않았는데?”
“바멀 연합과 청명의 후손들을 훼방할 방법을 알려주러 온 것일 테니까. 원하는 게 무엇인지 말해라.”
“아아, 원하는 것이라면…… 딱히 없어.”
“뭐라고?”
“너희 적명족이 가진 것 중엔 탐나는 게 없거든. 그래도 차원 균열쯤은 무난하게 막으리라 생각해서 기다렸는데, 돌아가는 꼴을 보니 안 되겠더라고.”
“그건 마녀의 수족들이 있기 때문이다. 네놈들이 훼방을 놓은 것이나 다름이 없는데, 시비를 걸러 온 건가?”
“안타깝게도 그 부분은 내가 관여할 수 없어. 지금 마녀는 할 일이 많아서 그쪽에 신경을 못 쓰거든.”
“어이가 없을 정도로 얕은 거짓말이군.”
“믿거나 말거나 그건 당신의 자유. 어쨌거나, 나는 당신에게 이 물건을 줄 거야.”
로키아가 허공에 손을 넣었다. 그러자 잠시 그 부분의 공간이 반죽처럼 일그러졌는데, 로키아는 그 속에서 시커먼 구슬을 꺼냈다.
한껏 응축된 혼기 덩어리였다.
“명왕족의 투신, 반. 그에겐 한 마리의 애완 혼돈이 있지. 이름은 링링, 귀엽지? 이건 말하자면…… 광견병 유발제 같은 물건이고.”
“……애완 혼돈?”
“그래. 본래 진 룬칸델을 숙주로 태어난 혼돈의 생명인데…… 투신 반이 그로부터 흡수했지. 즉, 지금 반과 링링은 한 몸이라는 뜻이고, 이 구슬은 링링을 폭주시킬 수 있어. 즉, 반도 영향을 받겠지?”
“지금껏 라프라로사는 한 번도 해방된 적이 없고, 오로지 진 룬칸델만 오갈 수 있는 차원이었다고 들었다. 너는 어떻게 그 일들을 알고 있지?”
“그렇게 묻는 걸 보니, 내 말을 믿고 싶기는 한 모양이네. 후후, 대답을 해주자면, 여러 번 재현을 해봤다고 해두지.”
로키아의 말들이 진실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시마트는 그저 창성의 통찰력으로 그녀를 주의 깊게 살필 뿐이었다.
“재현이라…… 태양신이 죽었다곤 하나, 결국 이 세상은 그가 남긴 위대한 창조의 부산물이다. 너 따위가 그걸 어떻게 재현한다는 것이지?”
“지금 중요한 문제는 아니니까 그냥 넘어가자고.”
“그리고 이 혼돈 덩어리가 그리 간단하게 라프라로사의 투신을 해할 수 있다면, 왜 직접 사용하지 않는 것이냐.”
“그렇지, 그건 중요한 문제지. 혼돈을 품은 자들에게 그 구슬은 좀 위험해서. 보다시피 나는 혼돈의 힘을 사용하지, 모든 가네스토가 그렇듯이.”
로키아가 시마트에게 조금 더 가까이 구슬을 내밀었다.
이내 시마트는 구슬을 넘겨받았다. 설령 구슬이 어떤 함정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었다.
구슬은 시마트의 손아귀 안에서 터지거나 변형되지 않았다. 감각을 곤두세워 관찰해보니, 그저 순수한 혼기 덩어리임이 분명했다.
오직 마녀만이 만들 수 있는 순도 높은 혼돈이었다. 라프라로사의 명왕족들은 이런 걸 ‘최초의 혼돈’이라 불렀다.
“한 번, 그 물건을 라프라로사의 균열 근처로 가서 깨뜨려봐.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얼마나 편리한 물건을 준 것인지 깨닫게 될 거야.”
로키아의 분신이 빠르게 흐려지고 있었다. 시마트는 그녀가 사라진 자리와 구슬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팔찌를 눌렀다.
[투신 동포. 로키아 가네스토가 무슨 제안을 했습니까?]“마녀의 혼돈 한 덩이를 내어주더군. 라프라로사의 투신을 손쉽게 해할 수 있다며. 우리에게 따로 요구한 건 아무것도 없다.”
[그게 더 불안하군요. 사용하면 분명, 우리도 무언가를 잃게 될 겁니다.]“마녀가 아니라 그 추종자와 거래한 것이니, 아주 극단적인 피해는 아닐 거다.”
[바로 사용해보실 생각이십니까?]“그래. 설령 다소 피해를 받더라도 라프라로사를 무너뜨릴 수 있다면 나쁘지 않아. 애초에 크리와 소멸의 빛을 제외하고 마녀를 이용하기로 한 순간부터, 우리도 무언가를 잃을 각오는 끝낸 거다.”
리마가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런 대가 없이 마녀의 힘을 이용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시마트의 목숨보다 크지는 않을 터였다.
“다시 대사막으로 가겠다. 차원문을 열도록.”
{알겠습니다, 투신 동포.}
시마트가 소형선에 올라탔다.
곧 크리틸의 중앙부에서 거대한 기둥이 치솟았다. 공중요새 크리의 공간 도약 장치였다.
기둥이 하늘로 시뻘건 광파를 쏘자, 시마트의 앞에 거대한 차원문이 열렸다.
이내 시마트가 소형선을 이끌고 차원문 너머로 비행을 시작했다. 차원문 속에서 수차례 붉은 폭풍이 몰아치더니 대사막과 그 위에 떠 있는 공중요새와 함대의 모습이 나타났다.
시마트는 피빌의 함교로 가는 대신 복잡하게 일렁이는 라프라로사의 통로로 향했다. 포격을 일시 중지하고 한 시간이 지났건만, 아직도 통로 인근은 용암이 끓듯 뜨거웠다.
통로에 다가갈수록 손에 쥔 혼돈 덩어리가 진동하는 게 느껴졌다. 시마트는 그것을 균열 쪽으로 던지고는, 검기를 쏘아 양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