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50)
제 1050화
250화. 지플과 킨젤로(4)
이곳은 마지막 세계다.
헬루람이 한 그 말을 떠올릴 때마다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실제로 그는 저도 모르게 머리를 쥐어뜯는 습관이 생긴 상태였다. 비슈켈은 오르갈이 손바닥을 펼 때마다 한 움큼씩 잡히는 머리칼을 보고 제 머리칼을 조심스레 만졌다.
“단장님! 머리 빠져!”
“단장님, 여기 고구마크로켓이라도…… 우유랑 같이.”
아이나스와 부바르가 기어이 멍청한 소릴 내뱉었다. 오르갈이 홱 고개를 돌려 눈을 부라리자, 두 사람은 반사적으로 손을 들고 눈을 질끈 감았다.
오르갈은 평소 자신이 그들을 때린 적이 없건만 이런 반응을 보인 것에 또 한 번 기가 찼다.
이번엔 그냥 시원하게 두들겨 패버릴까, 그런 충동에 주먹을 내지르려던 찰나. 오르갈은 검은 병사들의 눈으로 본 다른 세계의 일들이 떠올랐다.
-단장님! 아이나스 님이…… 아이나스가!
-단장님, 그런 슬픈 표정 짓지 말자, 내가 희생한 덕분에 여길 뚫었잖아? 드디어 비앙카 언니를 볼 수 있겠어…… 지지 마!
놀랍게도 이 끔찍한 바보 콤비가, 어떤 세계에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함께 싸운 전우들이었다. 심지어 시론 같은 인물보다 더 오래 살아남아서 항전한 순간도 있었다.
오르갈이 아는 한, 세계가 멸망하거나 지플의 손아귀로 넘어간 건 최소 수백 번 이상이다. 말 그대로 최소일 뿐이고, 수천 번일 수도, 수만 번일 수도, 수백만 번일 수도 있었다. 그토록 많은 싸움이 있었으니, 부바르와 비앙카조차 대활약을 한 적이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떠올리니 차마 때릴 수가 없었다. 오르갈은 주먹을 풀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다시 헬루람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게다가…… 내가 너의 부탁으로 심연 군단을 만들었듯, 지플 또한 전 차원을 아우르는 거대한 군대를 만들었다.
-[뭐!?]
-마신대, 그렇게 부르더군. 놈들은 차원 사이를 오가며 각 세계의 지플을 지원하고 있어.
-[그건 또 미친, 무슨 빌어먹을 소리지?]
-그만 놀라라. 너도 다 알고, 이미 겪은 일일 뿐이니.
맞는 말이었다. 애초에 오르갈이 겪은 모든 최후의 순간에, 켈리악은 매번 ‘이 세계의 싸움은 끝났다’며 조롱하고는 했으니까. 어떤 세계든, 그 단계에 다다를 때쯤이면 세계가 여럿이란 사실은 그리 큰 비밀도 아니었다.
-이 세계의 지플은, 현재 마신석을 거의 완성한 상태다. 요 며칠 사이에 갑자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지. 마신대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이다.
마신대.
이미 전 차원의 지플은 지금의 헬루람을 뛰어넘는 힘을 얻었다. 그들이 헬루람의 심연 군단 같은 병력을 만들지 못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이를테면 지플은, 대부분의 차원을 정복하거나 파괴한 유일한 집단이었다. 이 세계의 지플은 아직 그 단계까진 다다르지 못했을 뿐.
-[하! 하하! 그렇다면 지플 그 새끼들이 이 난리를 치는 동안, 너는 대체 무얼 한 것이냐? 헬루람. 그 수많은 세계가 닫히고 망할 때까지, 넌 무엇을 했느냐고? 너만 문제가 아니다. 솔더렛, 그리고 그 수많은 신들도! 이 지경이 되도록 손가락만 빤 거냐?]
-솔더렛은 그 시기에 이미 힘을 잃었어. 나는 지금껏 그 이유를 나와의 갈등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으나 아마 이 사태, 또한 진 룬칸델과 관련이 있을 테지. 다른 신들은 네가 본 그대로다. 대부분이 지플의 노예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늘 너를 선택해왔지.
헬루람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녀는 늘 ‘세계는 여럿이다’라는 사실을 인지한 시점부터 지플을 막기 위해 움직이고는 했었다.
그러나 다른 세계의 지플들은 언제나 헬루람을 견제했고, 그 결과가 바로 이런 악순환이었다. 헬루람은 언제나 세계의 진실을 뒤늦게 인지한다는.
일정 시점이 넘어야만 인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마저도 그게 헬루람이기에 가능한 일일 뿐, 다른 대부분의 불멸자는 그 어떤 역사 속에서도 스스로 이 사실을 알아내지 못했다. 태양신의 자아들마저도 말이다.
오르갈은 병사를 통해 이미 그 사실을 깨달았으면서도 헬루람에게 악을 썼을 뿐이다. 달리 할 말도, 할 수 있는 말도 없기에.
-이제 곧 마신대가 너와 나의 만남을 인지하게 될 것이다, 오르갈.
-[……그래, 그렇겠지. 놈들이 가진 완성된 마신석들에 머잖아 이 사실이 기록될 테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지플의 차원 간섭엔 제약이 존재한다는 사실이고.]
그 제약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헬루람과 오르갈 둘 다 알지 못했다. 제약이 없었다면, 이미 ‘모든 차원’이 지플의 손에 넘어갔을 터였다. 그 경우엔 멸망이라는 미래조차 기대할 수 없었다.
소름 끼치는 진실에 오르갈은 계속 몸을 떨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이성을 되찾으려고 노력했다.
이제부터 자신이, 그리고 킨젤로가 지플과 싸워야 하는 것은 명확하다.
혹은 지플의 밑으로 들어가 ‘편안한’ 삶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하면 조작된 역사 속에서 이 무거운 진실을 다 잊은 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오르갈은 자신이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싸워왔는지를 잊지 않았다. 심연 군단의 모든 병사들이 그랬듯이.
-[태양신을 부활시키고, 완전한 세상을 되찾겠다는 내 오랜 꿈은 다 헛짓이었던 건가. 푸흐흐…… 미치겠군. 그 수많은 세계를…… 한 번도 구하지 못한 주제에.]
주인공.
명백히, 오르갈은 패배하거나 멸망한 그 수많은 세계에서 주인공이었다. 가장 강한 신의 축복을 받고, 우여곡절 끝에 모두에게 인정받는 대영웅이 되지만, 결코 비극적인 결말을 피할 수 없는.
불현듯 오르갈은 심연 군단의 병사들을 쳐다보았다. 다른 세계의 오르갈들이 겪은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이상하리만치.
그 어떤 세계에서도 등장하지 않는 이름이 있었다. 분명 지금 이 세상에선 그 누구보다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 사람의 흔적이, 어떤 기억에서도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진 룬칸델. 이 수많은 세계의 역사 속에, 그는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군…… 이 오르갈들은 룬칸델은 물론이고, 하이란, 비궁, 지플의 배신자, 태양신의 자아, 진마계를 비롯해 그 세계에 존재하던 거의 모든 세력과 연합한 적이 있는데도.]
하다못해 부바르와 아이나스조차 대영웅이 된 순간, 세계의 희망이 된 순간이 있건만, 그 대단한 진 룬칸델은 어떤 세계에서도 활약한 일이 없다.
속이 거북해질 정도로 위화감이 들었다. 어떤 면에선 세계의 진실보다도 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흥미로운 일이지.
-[단지 그뿐인가? 이 모든 이야기 속에, 어떻게 진 룬칸델이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을 수 있지? 심지어 솔더렛이 그를 선택한 역사조차 없었어. 당연히 바멀 연합 같은 건 생긴 적이 없고, 언제나 우리 킨젤로를 필두로 연합이 결성됐다고…….]
-아까도 말했듯이, 그는 솔더렛이 힘을 잃은 이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나도 확실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해.
-[그렇다면 솔더렛은 처음부터 이 모든 일을 예견했고, 아주 특수한 순간에 딱 한 번의 기회를 붙잡기 위해 진 룬칸델에게 모든 것을 투자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지금 이 세계다.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 말에 헬루람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솔더렛은 매번 테마르를 선택했다. 내가 지금도 너를 선택했듯이. 무엇보다 그가 가진 힘은 나보다 크지 않아. 내가 인지하지 못한 걸, 그가 나보다 먼저 알았을 것 같지는 않군.
그 말대로 솔더렛은 늘 테마르를 선택했다. 천 년 전의 ‘검마전쟁’은 어떤 세계에서도 빠진 적이 없는 사건이었다.
그러다 딱 한 번, 이 세계에서만 진에게도 힘을 내린 것이다. 적어도 심연 군단의 기억에 의하면 그랬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다면, 나보다 먼저 분화된 세계들을 알아보았을지도 모르지.
-[누군가의 도움……?]
그 순간, 오르갈은 ‘진 룬칸델’ 외에 또 하나의 이름이 어떤 세계에서도 나타나지 않은 사실을 깨달았다.
-[발레리아 히스터…… 설마 그 여자를 말하는 것인가?]
발레리아 히스터.
그녀 또한 진과 마찬가지로 어떤 세계에서도 활약한 일이 없었다. ‘히스터’라는 가문이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은 세계가 있었는데도.
오직 그 둘만이 오르갈과 함께 싸운 적 없는 것이다. 그토록 많은 세계가 끝나는 동안.
그 사실을 깨닫자 심장이 터질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진과 발레리아, 두 사람은 이제껏 그 어떤 세계의 지플도 겪어보지 못한 비밀병기나 다름이 없었다. 문자 그대로 최대 변수인 것이다.
‘힘이 쭉 빠지는군. 하지만 진 룬칸델과 발레리아 히스터. 정말 그 두 사람을…… 믿어도 되는 건가?’
헬루람과의 대화를 정리하며, 오르갈은 또 한 번 머리를 쥐어뜯고 주먹으로 제 가슴을 내리쳤다.
당장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솔더렛이 이미 ‘지플에 귀속된 상태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는…… 아닐 것 같긴 하지. 그러나 사실이라고 가정하면, 지플이 왜 이런 식으로 두 사람을 이용하고 있는 거지?]“단장님? 갑자기 무슨 소리야?”
갑작스러운 혼잣말에 단원들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마르지엘라는 그의 말뜻을 정확히 알아들었다.
그녀는 현재 킨젤로 내에서 오르갈만큼 진실을 이해한 유일한 인물이었다.
“어쩌면 태양신을 부활시키기 위해 두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죠, 단장님. 그들에게 태양신이 필요한 이유는 마신석을 추가로 강화하기 위해서거나, 분화된 세계를 통합하기 위해서거나, 그런 목적이 있을 거고요.”
“마르지엘라 양은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하하, 그리 재미있는 이야긴 아니에요. 부바르 씨.”
이내 오르갈은 결단을 내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진 룬칸델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겠다. 지금 바로 그와 발레리아 히스터를 만나러 가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