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29)
제 555화
144화. 친구를 위해(8)
그 심리적 압박은 범인들이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황제군으로서는 어떤 대의도, 명분도, 증오도 없는 전쟁이었다.
그저 어린애들 편 가르기처럼 이기고 지는 쪽을 고를 뿐인 싸움에 참여한 이들이, 꺾이지 않는 의지나 불타는 투지를 갖고 있을 리 없었다.
후방 전장의 모든 평기사와 마법사는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진이 등장하고 채 삼십 분이 지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다시 진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앞을 가로막던, 정확히는 진과 한참 멀리 떨어진 채 그저 서 있었을 뿐인 평기사와 마법사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몸을 피했다.
맞서도, 도망쳐도 지옥이다.
평기사들은 단 한 사람도 전자를 선택하지 않았다. 다리가 굳지 않은 이들은 전장 바깥으로 미친 듯이 내달렸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울고 기며 도망쳤다.
약속대로 진은 도망치는 적들을 붙잡지 않았다.
하지만 적장들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이 미친놈들이……! 싸워라, 도망치는 놈은 내 손에 죽을 것이다!”
“황명을 어긴 죄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나? 차라리 싸우다 죽어라, 그리하면 혈육이 죽고 가문이 멸문되는 건 막을 수 있다!”
황제군 지휘관들의 악독한 명령에도 평기사들은 도주를 멈추지 않았다.
황제와 진 룬칸델, 둘 중 어느 쪽이 더 두려운지는 이미 결정이 난 것이다.
지휘관들은 결국 도망치는 평기사와 마법사들을 직접 베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광경이 이어지고도 평기사들은 전장 이탈을 멈추지 않았다.
사태가 그 지경에 이르자 지휘관들도 공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단결하고 결속해도 상대할 수 없는 룬칸델의 기사가 다가오고 있건만, 전열은 이미 오합지졸이라고도 부를 수 없을 만큼 흩어져버렸다.
남은 것은 주요 기사들과 헨서크, 릴리스타 마법대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죽음을 각오하는 일뿐이었다.
최대 전력인 용창은 대부분 파괴되거나 빼앗겼고, 진은 결전기를 그토록 난사하고도 전혀 지치지 않은 채 형형한 살기로 그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전방과 측면 전장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도 없었다.
전방은 여전히 단테가 버티고 있는 중이고, 양 측면은 각각 프로치 남매와 카시미르, 알리사, 율리안, 쿠잔, 길리 등이 전장을 휘젓고 있었다.
심지어 측후방의 황제군들은 미처 떠나지 못한 검황성의 피난민들을 인질로 잡으려는 시도까지 하고 있었다.
추후 최악의 자충수가 될 수도 있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전황을 흔들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조차 진의 동료들 때문에 실패로 돌아가고 있었다.
“메사, 스컷! 두 사람과 조원들은 피난민 보호를 우선하라. 벨롭, 너는 나와 적장을 잡는다!”
룬칸델의 전 집행기사 루턴 페르마와 막내 사단.
그들 역시 이번 전쟁에 함께하고 있었다.
루턴에게 지옥 같은 훈련을 받아온 만큼, 또한 애초에 룬칸델의 수호기사인 만큼. 황제군 후방의 기사들은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렇게 진과 동료들은 다들 독이 오를 대로 오른 채 전장을 박살 내고 있었다.
“주군을 위해!”
“주군과 하이란을 위해!”
“아군을 구출하라, 부상자들을 수습해!”
평기사급 적들이 도망가고 있으니, 비명보다 함성이 커졌다.
전쟁이 이렇게 쉽게 승리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나 검황성의 기사들은 이제 절망을 빠져나와 승리로 향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용창들이 아멜라 경에게 모이고 있습니다! 현재 여덟 문, 계속 늘어납니다!”
“가이파 군도에서 죽은 게 아니었어, 12기수의 사람이 되었었단 말인가……!”
대규모 전쟁에서 아멜라의 능력은 특히 빛을 발한다. 그녀는 자신의 탁기와 발카스의 힘을 이용해 계속 용창을 모으고 있었다.
동시에 빠른 속도로 개조하고 있었다. 탁기로 빚어진 수십 개의 손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부서진 용창과 다른 포들의 부품, 미리 준비해온 물건들을 떼어내 빼앗은 용창에 붙이고 있었다.
“곡사포화 완료당! 주군, 준비 거의 다 됐엉! 명령 내려주면, 전방 포격 지원 시작한당!”
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멜라가 덤불 옷을 빠져나온 손을 들어 경례했다.
“명령 접수했습니당, 아멜라의 신나는 포대 지원 기대해주세용!”
용창들이 아멜라의 손길을 따라 일제히 포신을 올렸다.
“펑!”
콰아아아-!
여덟 문의 용창이 동시에 하늘을 향해 사선으로 쏘아졌다.
포탄은 검황성을 넘어 전방 저 멀리, 황제가 있는 곳까지 나아가는 모습이었다.
시야가 전혀 없는데도 아멜라는 거침없이 포를 쏘았다.
전장의 진동만으로도 아군이 피해를 입지 않을 정확한 거리를 측정하고 있는 것이다.
발카스가 전쟁이라면 그 누구도 아멜라를 따라올 수 없다고 평가한 것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단테는 숨을 고르며 저 멀리 황제군의 위로 유성처럼 떨어지는 포들을 바라보았다.
포들이 가로막히는 모습이 보였다. 헨서크와 릴리스타 마법대의 최정예들이 보호막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용창은 본래 제국 최강의 전쟁 무기.
마법사들이 이토록 간단하게 막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도 한 문이 아니라 여덟 문이 동시에 쏘고 있다면 더더욱 그랬다.
황제군 마법대의 마력은, 기사인 그조차 느낄 수 있고 평기사들도 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증폭되고 있는 상태였다.
단테가 알기로 제국은 그런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이런 규모의 마력 증폭이 가능하다는 건 학계에도, 역사서에도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지플.
오직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알톤의 경고는 듣지 못했으나, 단테는 황제가 지플과 모종의 거래를 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깟 하얀 돌 때문에……!’
하얀 돌, 그 물건은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계속 단테의 내면을 검게 물들여왔다.
그리고 전쟁이라는 잔이 엎질러지자 하얀 돌에서 시작된 증오와 분노는 점점 더 빠르게 커지고 있었다.
아멜라의 용창이 황제군에게 아무런 타격을 입히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법대의 최정예들은 황제를 비롯한 중요 인원만 보호하고 있을 뿐, 평기사들의 목숨을 지켜주지 않았다.
단테가 다시 검을 고쳐 쥐었다.
눈앞에서 폭사하는 황제군 평기사와 마법사들의 죽음에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않는 자신이, 오히려 마땅한 죽음이라고 쾌감 비슷한 감정에 휩싸이는 자신이 문득 무서워졌으나.
전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비켜라, 황제를 죽이겠다.”
황실친위대와 평기사들이 단테의 검에 밀려 흩어졌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자, 그들 사이로 한 거구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단테 경.”
용왕기사단장, 제국제이검.
존시나 페럴이 단테를 가로막은 것이다. 잔뜩 핏물을 뒤집어써서 흉악한 악귀처럼 보이는 단테와 달리, 그의 청색 갑옷은 어둠 속에서도 번쩍번쩍 광채를 띠었다.
존시나의 영웅담과 각종 미담은 세상의 수많은 기사들에게 꿈을 심어주었다. 비록 론에게 가려 개인의 무력은 비교적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존시나는 그 자체로 기사들의 귀감과도 같은 존재였다.
단테 역시 그를 무척이나 존경해왔다.
그렇기에 헛웃음이 나왔다.
“케빈 페럴이 왔을 때부터…… 당신도 황제군에 있으리라 예상은 했지. 그러나 막상 경이 내 앞을 가로막는 걸 직접 보니 역겨운 마음을 참을 수가 없군.”
퉷, 단테가 핏물을 뱉어냈다.
존시나는 대답 대신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가 선 일대의 대지가 진동했고, 작은 돌무더기들이 흩어지고 떠올랐다.
“사실은 나의 조부께 오랜 열등감을 품고 있었소? 아니면 하이란을 대신해 페럴가가 제국의 기둥이 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소?”
배신감에 목소리가 떨렸다.
용왕기사단 전체가 생각 없이 황제의 명을 따르는 한이 있더라도, 존시나만큼은 명예를 잊지 않으리라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단테가 한 번 더 비아냥대려는 순간.
그의 시야에서 존시나의 모습이 사라졌다. 급히 시선을 돌렸을 땐, 이미 존시나의 대검이 자신의 어깨로 떨어지고 있었다.
콰직, 쩌엉-!
일격은 막자마자 어깨가 탈골되었다. 밀려난 단테는 바닥에 처박혀 땅을 굴렀고, 그 위로 존시나의 검기가 쏟아졌다.
단테는 재빠르게 어깨뼈를 맞추며 일어서 검기를 쳐냈다. 후들거리는 두 다리는 금방이라도 중심을 잃을 것 같았다.
제국제이검의 검이다. 단테가 부서지기 직전의 몸으로 쉽게 받아낼 수는 없었다.
“그만 멈추시오.”
“이놈이나 저놈이나, 먼저 검황성을 찌른 주제에 멈추라고만 지껄이는군. 부끄럽지도 않나, 이 위선자!”
악을 쓰며 달려들었으나, 단테의 검은 존시나의 대검을 뚫어내지 못했다.
한 합을 주고받을 때마다 단테는 뼈와 장기가 진탕되어 피를 토했고, 존시나는 호흡조차 가빠지지 않았다.
철벽 같았다.
이제껏 베어온 기사들과 존시나는 확연히 다른 격을 보여주고 있었다.
“부탁하오.”
“하, 부탁?”
“그대가 죽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소.”
“날 봐주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군, 용왕기사단장…… 내가 지치고 피를 토하니, 우습게 보이는 모양인데…….”
단테의 몸이 오러로 물들었다.
제왕검의 또 다른 비기가 펼쳐지려는 전조였다. 그리고 존시나는 그 검이 무엇을 담보로 펼쳐지는 것인지를 알고 있었다.
목숨이었다.
“고작 나 따위와 함께 죽을 생각이오? 대체 언제까지 악수를 둘 생각인가, 단테 하이란! 차라리 후일을 도모하란 말이오!”
그대는 지금 검황성의 성주다!
존시나가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그대가 죽으면 하이란은 두 번 다시 일어설 수 없다, 왜 한 치 앞의 어둠에 자꾸 몸을 던지는 것이오, 이게 론 경이 바라는 모습일 것 같은가!”
“감히 조부님의 존함을 그 더러운 입에……!”
[먀-!]그 순간, 후방 전장이 정리되자마자 쉴 새 없이 달려온 적옥묘 슈리가 단테와 존시나의 사이로 몸을 던졌다.
슈리의 등에는 진이 타고 있었다.
단테는 처음 시퍼런 검기가 밤하늘을 밝혔을 때부터 그가 찾아온 것을 인지했으나, 설마 이렇게 빨리 후방을 정리하고 자신에게 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또한 그와 합류하며 전열을 가다듬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내면이 수렁에 빠져 있던 것이다.
하이란과 하이란을 따르는 기사들이 그토록 많이 죽었다. 혼자서 조금이라도 생존을 도모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단테.”
진은 그런 단테의 속내를 다 안다는 듯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너만 살릴 생각이었다면 도우러 오지도 않았다. 너와 검황성 모두를 구하러 왔다. 그러니 이제, 이게 끝인 것처럼 싸우지 마. 다음이 있어야 한다는 걸 잊지 말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