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55)
제 777화
185화. 남은 사람들(6)
* * *
다음날, 비먼트 제국 전前 수도.
광장에선 한참 전부터 진의 성명 발표가 이어지고 있었다.
전사자들의 이름을 읽고, 그들을 추도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몇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차양 하나 없이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도, 광장에 모인 이들은 단 한 사람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많았다.
누군가는 흉신에게 학살당한 이들을 생각하며 울었고, 누군가는 싸우다 죽은 이들을 위해 울었으며, 누군가는 앞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 울었다.
“……이상으로 추도식을 마치겠습니다.”
진의 등 뒤로 각 세력과 가문을 상징하는 조기들이 올라왔다.
진은 마지막으로 돌아서서 조기를 향해 오랫동안 묵념을 올렸다.
이제 성명 발표를 할 차례였다.
“오늘부로 흉신에 대항했던 바멀 연합과 지플, 킨젤로의 임시 동맹은 공식적으로 해체가 되었습니다. 이제 각 세력은 본연의 관계로 돌아가게 되겠죠.”
새로운 전운이 감돌고 있다는 사실은 세인들 모두가 이미 아는 바였다.
“룬칸델과 지플, 킨젤로는 흉신과의 최종전을 시작하기 전 한 가지 협약을 맺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최소 1년 동안은 서로를 공격하지 않겠다는 한정적 불가침조약입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룬칸델은 결코 그 협약을 먼저 깨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겠습니다.”
뒤에 있던 로닐과 제피린은 진의 말을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진 공이 굳이 이런 자리에서 협약을 깨지 않겠다고 공표하는 건 무슨 의도지? 우릴 시험해보려는 것인가?’
‘진 경이 약점을 드러낼 리가 없겠죠. 전쟁 명분을 챙기기 위한 수작이라기보다는, 경고나 협박에 더 가까워 보이는군요…….’
투신 반과 무라칸.
그들의 소환 가능 여부는 현재 지플과 킨젤로의 최대 고민이었다.
그걸 알아내기 전까지 두 세력은 함부로 룬칸델을 위협하지 않을 터였다.
반면, 진은 그들만큼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아울러, 룬칸델은 흉신과의 전쟁에 관한 모든 기록을 일반에 공개하고자 합니다. 기록 마법사, 발레리아 히스터의 도움을 받아서 말입니다.”
그 말에 로닐을 비롯한 지플의 인사들은 간신히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췄다.
‘기록 마법사’와 ‘히스터’라는 말에 광장 곳곳이 술렁였다.
그 이름과 의미를 아는 이들이나 모르는 이들이나 모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마법사 발레리아 히스터는 바멀 연합으로서 이번 전쟁에 참전해, 전쟁의 거의 모든 기록을 정리했습니다. 발레리아.”
진의 부름에 군중 속에서 후드를 눌러쓰고 있던 발레리아가 연단으로 올라섰다.
후드를 벗자 붉은 머리칼과 변장하지 않은 맨얼굴이 드러났다.
“발레리아 히스터입니다. 저는 히스터가의 마지막 생존자로서, 지금 보시는 바와 같이 기록 마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우우우웅……!
발레리아가 은소나무 지팡이를 한 번 흔들자 연단 옆으로 거대한 기록창이 떠올랐다.
빼곡하게, 흉신전에 대한 기록이 서술되고 있었다.
“저게 마법이라고?”
“들어본 적 있어. 몇백 년 전까지 저런 마법을 사용하는 가문이 있었다고…….”
군중들의 시선이 기록창에 집중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지플은 앞으로도 진이 발레리아에 관한 정보를 철저히 감추리라 예상했었다. 정보라는 건 독점적일수록 가치가 상승하기 마련이니까.
무엇보다, 지플은 진이 발레리아를 일반에 공개해 봐야 이득이 될 게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진은 전혀 다르게 생각했다.
‘힘이 없을 땐 무조건 숨겨야 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지. 당황한 눈치들을 보아하니, 전혀 예상치 못한 모양이군.’
지플은 흉신전에서 진의 힘을 보고 공포를 느꼈음에도, 일정 부분은 여전히 과거의 타성에 젖어 있었다.
아직도 진이 자신들에게 무언가를 숨겨야 하는 입장이라는 의식이 남아 있는 것이다.
“제가 히스터가의 유일한 생존자인지라, 이 기록창을 계속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기록 공개는 오늘부터 일주일간 유지될 겁니다. 그 정도 기간이라면 이 내용이 필사되고, 전 세계에 알려지기에도 충분할 겁니다.”
“진 경, 그리고 발레리아 히스터 양! 기록 마법사의 존재를 갑자기 공개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 기자가 물었다. 물론 그는 디노 재글런의 기자로, 질문도 미리 예정된 것이었다.
“전 세계가 힘을 합쳤던 전쟁인 만큼, 모든 정보가 투명히 공개되어야 마땅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오.”
“임시 동맹이었던 가문들과는 합의된 내용입니까?”
“그렇지는 않소. 하나 굳이 합의가 필요한 사안인가? 당연한 공개라고 생각하오. 이상, 기자들의 질문은 성명 발표가 다 끝난 후에 받도록 하겠소. 발레리아, 계속 설명하지.”
“예, 소가주님. 아울러 룬칸델과 바멀 연합은, 앞으로도 기록 마법으로 얻을 수 있는 모든 가치를 세상과 공유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실전失傳 기술의 발견을 통한 사회 발전, 소실된 역사의 복원, 국제범죄 추적 등이 대표적입니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세상의 ‘발전’을 주도해온 것은 명백히 지플이었다.
집안마다 있는 마법등 하나조차 모두 지플이 개발한 물건이다.
‘마법’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모든 생활 필수 제품들이 지플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발레리아의 말대로라면, 이제 지플의 자리를 룬칸델과 바멀 연합이 대신하게 될 수도 있었다.
그게 정말 가능한 일입니까?
기자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그런 질문을 던질 법도 하나, 군중들은 의심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진 룬칸델이, 검가의 소가주가 단언하고 있는 까닭이었다.
그간 진이 쌓아온 명예의 무게가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히스터의 마지막 마법사입니다. 몸이 하나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습니다. 아울러 흉신전을 치르기 전까지, 오랜 시간 한 집단으로부터 추적을 당하느라 가문의 마법을 복원하는 일도 상당히 더딜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집단’이라는 표현은 마지막 배려인가.
로닐이 진땀을 쏟으며 그런 생각을 한 순간, 발레리아는 시원하게 그 이름을 말해버렸다.
“그 집단의 이름은 지플입니다.”
이번엔 군중들의 시선이 지플의 인사들에게 쏠렸다.
“우리 히스터와 지플 사이엔 여러분께 다 설명할 수 없는, 길고 어두운 역사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잠시나마 흉신과 함께 싸운 전우의 입장으로서 지플가에 청을 올리자면, 이제 그만 저를 놓아주시길 바랍니다. 지플이 히스터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는다면, 저 또한 과거를 잊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그건 진심이 아니었다.
설령 지플이 정말로 히스터를 포기한다 한들, 그들을 향한 발레리아의 원한은 조금도 희미해지지 않을 것이다.
그저, 지플이라는 이름을 훼손하기 위해 내뱉은 말일 뿐이었다. 지플은 결코 저 말을 받아들일 수 없을 테니까.
거절하면 쓰레기가 되고, 받아들이면 대중 앞에서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는 셈이다.
결국 로닐은 한숨을 내쉬며 전자를 택했다.
“발레리아 양의 제안은 수용할 수 없습니다. 이런 민감한 사안을 논하기엔 적절한 자리도 아닌 것 같군요. 다만, 건승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진은 로닐의 대응에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베라딘이었다면 차라리 과거를 잊겠다는 발레리아의 말이 사실인지 지금 기록 마법으로 증명하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오히려 물을 먹는 건 우리 쪽이었겠지. 대응이 아쉽군, 로닐 지플.’
발레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하나 경의 말대로, 어울리지 않는 자리는 아닙니다. 방금 지플 측에 저에 대한 룬칸델과 바멀 연합의 입장을 발표한 것이니까요. 어쨌거나 무례하게 느껴졌다면 사죄드리겠습니다.”
지극히 도발적인 언행에, 지플과 킨젤로는 감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진이 지금 과연 흉신전 때의 힘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지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불가침조약을 지키겠다고 했다가 이런 도발이라, 어쨌거나 자신이 있다는 뜻 같기는 하군요.’
‘……카둔 님을 모셔오지 않길 정말 잘했군. 언성이 지나치게 높아졌을 것이다.’
발레리아가 진의 뒤로 물러났다.
“방금 다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긴 했으나, 앞으로도 글리엑이 남긴 오염 구역은 이전 임시 동맹 모두가 힘을 합쳐 정화를 할 예정이니 안심하시길 바랍니다. 룬칸델의 성명 발표는 여기까지입니다. 마지막으로 자리하신 모든 분들께, 그리고 참석하지 못한 모든 흉신전의 전우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진이 군중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 역시, 이전의 룬칸델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던 모습이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지금의 룬칸델이 그 어느 때보다 낮은 곳을 자처하는 가문처럼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어느 때보다 강한 가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진이 연단을 내려서자 박수와 함성이 이어졌고, 기자들은 앞다퉈 진과 발레리아를 쫓았다.
* * *
기자와 군중들의 관심이 온통 발레리아에게 집중된 사이, 진은 조용히 수도를 벗어나고 있었다.
그가 향한 곳은 제국의 공식적인 수도.
이제 ‘검황지’라는 이름을 갖게 된 옛 검황성의 영지였다.
단테는 섭정이 되자마자 제국의 수도를 이곳으로 이전했으나, 그건 그저 론을 기리기 위한 상징적인 변경일 뿐이었다.
검황지는 혼기로 인해 행정 시설을 옮기기는커녕, 사람이나 동물이 살 수조차 없는 땅이니까.
분명 세인들은,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
“단테.”
진의 목소리에 단테가 뒤돌아 미소를 지었다.
단테의 앞엔 론이 남긴 한 덩이의 빛과, 과거 두 사람이 함께 검으로 새긴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검황 론 하이란. 이곳에서 하이란의 빛, 혹은 세상의 빛이 되다.
“왔소? 진.”
진은 단테가 건넨 술잔을 받아 조심스레 론의 빛 앞에 내려두고 묵념을 올렸다.
두 사람이 오늘 이곳에서 만난 건 론을 기리기 위함만이 아니었다.
“정말로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땅이 훨씬 더 빨리 정화되고 있군.”
“조부께서 나를 굽어보신 덕일 것이오.”
글리엑의 가장 거대한 혼돈이 남았다고 알려진 검황지는, 사실 이미 충분히 사람이 활동할 수 있을 정도로 변화한 상태였다.
그 사실을 아는 건 현재 진과 단테가 전부였다.
외부에서 보기에 검황지는 여전히 끔찍할 만큼 거대한 혼돈에 휩싸인 상태인 것이다.
“어려운 결정이었을 텐데, 정말 괜찮겠냐?”
“그리 어렵지 않았소. 땅이 빨리 정화되는 걸 확인하자마자 결정을 내릴 정도였으니. 조부께서도 이걸 바라실 것이오.”
단테의 결정은 다름이 아니었다.
정화된 검황지를, 바멀 연합의 비밀 함선 건조장으로 사용하자는 결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