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54)
제 777화
185화. 남은 사람들(5)
진은 잠시 파들러라는 인물의 삶을 생각하며 한숨을 삼켰다.
천 년 전, 십대 기사로서 룬칸델을 수호했던 청뇌왕은 이제 괴물이 된 채 가문의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다.
“상태는 어떤가.”
“……좋지 않습니다.”
“바로 가보도록 하지. 기수들은 따라오고, 나머진 해산해서 일들 해라.”
지하 감옥은 영묘의 반대편 저지에 위치했다. 진은 영묘를 지나칠 때 잠시 그 앞에 멈춰 섰다.
검의 정원이 무사하듯 영묘 역시 예전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흉신전으로 인해 많은 선조들이 추방되었으나, 여전히 영묘는 가문의 근간이었다.
“누님, 그리고 형님들.”
진이 사적인 호칭으로 부르자 형제들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졌다.
“응, 막내야.”
“우린 반드시 죽어서도 끝까지 싸운 선조님들을 닮읍시다.”
파들러는 최하층, 과거 추락한 조슈아가 갇힌 방에 있었다.
진은 그를 보자마자 미간을 좁혔다.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미리 듣기는 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다. 몸에 난 대여섯 개의 주먹만 한 구멍에서 피처럼 혼기가 치솟고 있었다.
베일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흔적이었다. 토나 형제는 최후의 전투 당시 파들러가 베일과 전장을 이탈해 따로 승부를 가렸다는 사실을 알렸다.
결과는 베일의 완벽한 승리였다. 파들러가 분전하기는 했으나 베일은 현역 때부터 단 한 번도 그에게 패배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베일이 파들러를 소멸시키지 않은 이유는 하나였다.
사슬의 존재.
진은 파들러의 구멍 난 가슴 속, 심장을 묶은 사슬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베일도 전투 중 그걸 알아보고 파들러를 우선 살려둔 것이다. 이게 ‘살았다’고 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닌 것 같지만 말이다.
“파들러 경.”
심장을 묶고 있는 사슬은 이미 반쯤 깨진 모습이었다. 그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심정이 복잡해졌다.
파들러 역시 결국은 타락한 선조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의 타락엔 단지 흉신의 권능만이 작용한 게 아니었다. 혼기에 심장이 묶이기 전에, 이미 테마르에 대한 깊은 증오가 있던 것이다.
[오셨는가.]“억지로 소멸을 버티고 계시군요.”
[그렇소. 회복이나 소생은 불가하지.]“무언가 미련이 남은 겁니까?”
[그런 건 없소. 다만 세상에서 사라지기 전 그대에게 할 말이 있었을 뿐.]“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습니까.”
[옛이야기…….]파들러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살아남기 위한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지는 않을 터였다. 진이 보고 있는 그의 두 눈동자는 이미 삶을 놓은 사람 특유의 허무감이 깃들어 있었다.
“내가 바라는 건 룬칸델의 부흥이 아니라 타락과 파멸이다…… 처음 만났을 때, 경은 내게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 생각이 바뀐 것이면 좋겠군요.”
-저는 천 년 전의 일을 다 알지 못합니다, 파들러 경. 그리고 실더레이 경과 사라 경의 이름을 꺼내며 하고 싶던 말은, 경 또한 그들을 닮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분들과 경은 서로를 무척 아끼는 듯 보였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건 아마 경의 기억 속 이달 왕국이 멸망하기 전의 시점이겠지요.
-[한때 어울렸던 마음이 사라진 내 전부를 대신할 수는 없소.]
1차 총공세 당시 파들러와 나눈 대화.
그때 파들러는 테마르가 이달을 멸망시킨 것 외의 다른 과거는 기억하지 못하고,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었다.
[사실은 변하지 않소. 테마르가 내 왕국을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멸망시킨 사실은…… 변하지 않아.]파들러의 두 눈에서 검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테마르가 이달 왕국을 친 날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흉신이 죽어갈 때쯤, 한 가지 기억이 더 떠오르더군. 내가 잊고 있던 진실이.]“진실이라면.”
[테마르가 미쳤던 이유. 가문과 이 세상의 희망이었던 그를 광기에 찬 괴물이 되도록 만든 사람이 있소. 가문에 배신자가 있었지.]진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게 누굽니까?”
[로키아. 로키아, 가네스토.]파들러가 씹어뱉듯 말했다.
[그자가 배신자였소…… 마녀와 손을 잡고, 테마르를 괴물로 만들었지. 모든 게 로키아의 계략이었소. 솔더렛이 테마르를 잠시 떠났던 것도, 신들이 우리를 배신한 것도, 지플이 득세하게 된 것도.]-가주, 아니! 오라버니. 아무래도 안 되겠어. 내가 흑해에 있다는 그 마녀를 한 번 만나보고 올게. 로키아가 그랬는데, 마녀라면 뭔가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랬어. 지플의 역사 조작을 막을 수 있는…….
과거 세 번째 무덤에서 들은 사라와 테마르의 대화가 떠올랐다.
당시 테마르는 사라에게 신들을 회유할 수 있다는 듯 거짓말을 했고, 사라는 그의 만류에도 몰래 로키아를 만날 생각이었다.
“더 자세히 말씀해주십시오.”
[날 죽이기 전, 로키아는 자신의 목적이 태양신의 부활이라 하였소. 동료들을 모조리 죽여놓고 베일만 살려둔 이유지. 지금의 세계를 완전히 말소시키고, 다시 온당한 세상을 되찾겠다더군. 세상의 본래 형태라고 했던가, 로키아는 그걸 위해 모조리 다 이용한 거요. 가문도, 마녀도, 심지어 지플까지도.]“지금도 비슷한 말을 하는 놈들이 있습니다.”
[마수왕 오르갈일 테지. 하나 그자도 당했을 것이오. 마수왕이 역사에서 지워지도록 종용한 것도 로키아가 한 짓이지. 심지어 이번에 흉신이 탄생한 일까지도, 로키아의 개입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소.]“어찌 그렇게 확신하십니까?”
[흉신은 가네스토의 피를 이어받은 자니까. 심장의 사슬이 풀린 다음에야 알 수 있었소. 자신이 가네스토의 핏줄이라는 사실을 안 건, 흉신에게도 최근의 일이더군. 그러나 로키아의 개입을 인지하지는 못했을 것이오.]파들러가 그걸 알게 된 이유는 그가 오랜 시간 흉신의 내계를 들여다보았기 때문이었다.
[로키아만 아니었다면, 그자만 우릴 배신하지 않았다면. 테마르가 미칠 일도, 나의 왕국이 사라질 일도, 동료들이, 사라가 그렇게 죽을 일도 없었어……!]울컥!
파들러가 혼기를 토하며 몸을 떨었다. 이제껏 진이 올 때까지 억지로 붙잡고 있던 숨이 꺼져가고 있었다.
“파들러 경!”
[내가 기억하는 건 이것이 전부요…… 테마르를 그토록 원망했건만, 결국 나도 똑같은 수작에 놀아나 가문을 위협하고…… 많은 사람들을 죽인 괴물이 되었군.]파들러가 진의 어깨를 붙잡았다.
파들러의 몸에 난 구멍들이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소멸이 엄습하고 있었다.
[마녀로부터 영생을 받은 것이오. 내 눈으로, 로키아가 몇 번이나 부활하는 걸 똑똑히 보았소. 가주의 검으로도, 엘로나의 마법으로도 로키아를 죽이지 못했소! 반드시 로키아를 찾으시오, 그자에게 당해서는 안 돼!]진과 맞닿은 파들러의 눈동자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이제…… 나도 사라에게, 가주와 동료들에게…….
그 말을 끝으로, 파들러는 완전히 소멸하고 말았다.
진과 형제들은 한동안 파들러가 사라진 허공을 응시했다.
“대체 이게…… 이 모든 일이, 천 년 전의 배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흉신이 그 배신자에게 이용되었다면 그, 막내야. 콰울 박사도 로키아에게 이용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 않나?”
“콰울 역시 본인이 가네스토의 핏줄이라는 걸 최근에 알았다고 했지.”
이내 메리와 토나 형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 와서 파들러 경이 거짓말을 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로키아가 배신자라면 최근까지 역사에서 완벽하게 지워진 이유는 뭐지?”
“그 부분은 로키아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지플의 역사 조작을 이용했다고 가정할 수 있기는 합니다. 더 이상한 점은, 로키아가 같은 목적을 가진 오르갈을 모략한 대목이죠.”
“그건 그렇군…….”
“중요한 건 로키아의 정체와 생존 유무입니다. 살아 있고, 정말 배신자라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파들러 경의 말대로 찾아서 처단을 해야겠죠.”
아직 파들러의 말을 전부 다 신뢰할 수는 없다. 그를 의심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기억이 완벽하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파들러의 이야기가 모두 사실일 경우, 로키아는 지난 천 년 동안 세상을 뒤에서 주물러온 최대의 흑막이었다. 심지어 지금까지도 마수를 뻗치고 있는.
“단서가 지나치게 부족하니, 이 문제는 차근차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정세부터 안정시키면서 눈앞에 보이는 적들에 대비하도록 하죠.”
감옥 문을 열고 나서자 벽에 기댄 베일의 모습이 보였다. 진은 아까부터 그가 벽에 기댄 채 대화를 엿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내 허락 없이 함부로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이다, 베일.”
“아는데, 옛 십대 기사니까 이 정도는 이해해주면 안 되나?”
“그래서 말만 한 거야.”
“……그 녀석이 한 말들, 아마 다 진실일 거다.”
“넌 알고 있었어?”
“아니. 파들러가 재수 없는 놈이긴 하지만, 가문과 사라를 향한 마음은 진짜였어. 놈의 말대로라면 사라의 원수는, 로키아다. 지플은 물론이고, 로키아까지 찾아내서 내가 반드시 고통스럽게 죽일 것이다.”
“로키아에 대해 기억나는 바가 있나?”
“의뭉스러운 놈이었어. 배신자일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로키아가 마녀와 자주 교류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봉인된 이후의 행적은 전혀 몰라. 아, 그러고 보니…… 날 죽이지 말고 봉인하자고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던 게 로키아였다.”
“알았다. 특별한 무언가가 떠오르면 즉시 내게 알려줘.”
“그런데, 파들러의 유품은 어떻게 할 거냐?”
“유품?”
“실루스. 놈의 검 말이다.”
파들러의 검은 현재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옛 동료로서 의견을 말해봐. 어떻게 하면 좋겠나?”
“지금 당장 영묘에 두거나 정원에 꽂는 건 안 되겠지.”
“그래. 어떤 사정이 있었다 한들, 파들러 경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막판에, 놈은 다른 이들을 죽이지 않기 위해 일부러 나를 끌어내 승부를 했어. 그래도 무리한 이야기라는 것쯤은 나도 안다.”
베일은 파들러를 혐오했으나, 막상 그가 정신을 되찾은 채 소멸하니 묘한 마음에 휩싸이고 있었다.
사라를 가운데 두고 늘 다툰 상대지만, 그래도 동료였던 시절이 있던 것이다.
“……그러니 그 검은 누구에게도 주지 말고 갖고 있다가, 나중에 파들러의 말이 전부 진실로 밝혀지면. 그래서 그것 덕분에 가문이 다시 옛 위엄을 되찾게 된다면. 그때 영묘에 두는 건 어때. 영묘가 아니라면, 정원에라도. 부탁이다.”
진은 베일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이렇게 답했다.
“그렇게 하지.”